지권인

by 마정열


석가탄신일이다. 부처님의 은덕으로 한가한 하루를 보낸다. 방송국에서는 부처님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경쟁적으로 내보낸다. 채널을 돌리다 우리나라 산사(山寺) 소개를 하는 방송에 채널 돌리기를 멈춘다. 지권인을 한 비로자나불이 보였다. 불현듯 옛 생각이 떠오른다.


독실한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철원에서 근무할 때 거의 한 달에 한 번은 도피안사를 찾았다. 철제 비로자나불 하나로도 도피안사는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절이다.

나는 부처님의 위엄에 압도되기도 하고, 당당한 자세에 취하기도 하며 그 앞을 떠날 줄을 몰랐다.


그때 느낀 감흥을 몇 자 적어 놓았다.


1.

아픈 손가락 감싸듯

왼 손가락을 오른손으로 지그시 감싸 쥐고

사바세계의 붉은 노을을 보는

법당 안의 부처님

아이의 해진 옷을 꿰매다

바늘에 손가락을 찔린

어머니의 안쓰러운 눈빛


2.

여인은 자신의 오른손 검지를 왼손으로 감싸 쥐었다. 바느질을 하다가 또 찔린 것이다. 고된 하루 일을 끝내고 아이들을 재운 후에 호롱불 밑에서 하는 바느질을 늘 졸음과의 싸움이었다. 손가락 사이로 붉은 피가 배어 나왔다.


여인은 잠든 아이들을 보았다. 세 명의 아들과 딸 하나. 한 명씩, 한 명씩 거두다 보니 어느새 네 명의 자식이 생겼다. 여인은 난리통에 남편과 아들을 잃었다. 그들의 시신 앞에서 여인은 오열을 했다. 여인은 신을 원망했다. 신이 자신에게 내린 형벌은 너무도 가혹했던 것이다. 여인은 삶의 의지를 잃고 거리를 헤매었다. 그 와중에 한 아이를 발견했다. 난리통에 어미를 잃고 며칠을 굶어 죽어가는 아이였다. 여인은 그 아이를 거두었다. 마치 죽은 아들에 대한 속죄라도 하듯이 소중하게 길렀다. 그렇게 어미 잃고 거리를 헤매는 아이 4명을 정성을 다해 키웠다. 그들을 위해서 새벽부터 일을 했다. 아이들도 여인의 마음을 알아 바르게 커 주었다. 아이들은 여인의 품을 떠났고, 여인은 신에게 감사했다.


홀로 남은 여인은 이웃의 도움이 있으면 언제든지 달려갔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여인은 남의 집 품앗이를 갔다가 밤늦은 시간에 산을 넘어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걸음을 재촉했다. 날씨는 점점 매서워지고 있었다. 급기야 눈보라까지 몰아쳤다. 눈보라를 뚫고 걸어가기에는 여인의 몸은 너무 쇠약했다. 여인은 잠시 눈을 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바위틈에 쪼그리고 앉은 여인은 몸은 추위로 점점 굳어갔다. 여인은 밤새 눈사람으로 변하였다.


이듬해 봄눈이 녹으며 그 자리에 한 그루 나무가 자랐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사람들은 나무의 가지를 꺾여 추위를 이기는 땔감으로 사용했고, 나무의 피를 받아 어둠을 밝히는 기름으로 사용했다. 자신의 몸과 피로 사람들이 추위와 어둠을 이겨낸다는 것이 나무에게는 큰 기쁨이었다. 나무는 무성하게 잎을 드리워 길손의 쉼터가 되었으며, 가지를 내주어 비탈길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손잡이가 되었다. 심지어 나무는 자신의 뿌리마저 내 주어 사람들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발받침이 되어 주었다. 나무는 내어 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내어 주었다. 그러는 사이 나무의 우렁찬 몸집은 점점 야위어갔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벌써 여러 날이 지났다. 목공은 어머니의 생전 모습이 잊히지가 않았다. 젊은 나이에 홀로 되어 자식을 키워 내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여인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목공은 자신이 어머니의 살을 파 먹고 살아왔다는 사실에 가슴을 쳤다. 목공은 어머니를 눈앞에 두고 싶었다. 목공은 어머니를 모실 나무를 찾아 온산을 뒤졌다. 한 나무 앞에 섰다. 순간 목공은 전율이 일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어 주듯 껍질은 벗겨지고 뿌리마저 드러난 나무는 생전 어머니 모습 그대로였다. 목공은 그 나무를 베어다 작업장 안에 다 놓고 삼천 배의 예를 올렸다. 그리고 나무 안에 자리 잡은 어머니를 현실로 모시는 작업을 시작했다. 몇 날 며칠, 밤낮으로 계속된 작업으로 목공의 손에서는 피가 맺혔지만 목공은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나무 안의 자리 잡고 있던 어머니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습은 지권인을 하고 있는 부처님이었다.


부처님은 외롭고 의지할 곳이 없는 대중을 안아주듯 왼손으로 오른손 검지를 감싸 쥐고 있었다. 목공을 안아주는 어머니처럼, 아이들의 해진 옷을 꿰매다 바늘에 찔린 손가락을 감싸고 있는 여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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