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사망부곡(思亡父曲) 2

by 마정열

벽장 속의 아버지는 웃고 있었다. 무엇이 그리 좋은지. 한편으로는 다행이라 생각했다. 웃는 모습으로 나를 반겨주니.


아버지는 호스피스 병동에 이틀마다 모습을 드러냈다. 누가 엄마의 소식을 알렸는지 모르겠다. 이십여 년 가까운 세월 동안 소식이 없던 아버지가 불쑥 나타났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포천의 산정호수로 놀러 간 이모가 모텔에서 하룻밤을 묵었는데 거기서 아버지를 만났다 한다.

모진 인연이다. 차라리 만나지 말 것을. 그랬다면 아버지를 평생 원망하며 살아도 되는데. 엄마의 죽음도 아버지의 탓으로 돌려도 되는데. 나의 이 지랄 같은 인생도 아버지의 탓으로 돌려도 되는데.

그날 나는 엄마의 병실을 지키고 있었다. 웬 남자가 병실 밖에서 기웃거리더니 빼꼼히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남자는 침대 위의 엄마를 보자 왈칵 눈물부터 쏟았다. 한참을 흐느껴 울더니 엄마의 손을 잡고 말했다.

“이게 뭔 일이여, 나 알아보겠는가?”

엄마는 약 기운에 취해 자고 있었다.

나는 그 남자가 아버지임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아무 말이 안 나왔다. 내 기억 속에 아버지는 없었다. 내 생에 아버지란 존재는 없었다. 낯선 남자가 나타나 아버지임을 알리는데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랐다.

엄마가 눈을 뜨지 않자 그제야 나에게 눈길을 주었다.

“니가 희수냐?”

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많이 컸구나.”

서른이 넘은 여자보고 많이 컸다니, 더군다나 그는 나의 어린 시절의 모습을 보지 못했으니 상황에 맞지 않는 가당치도 않은 말이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뻣뻣하게 그의 곁에 서 있었다.

어색한 침묵이었다.

“미안하다.”

침묵의 공간에 작은 파장을 일으키는 말이었다.

그가 나에게 어떤 일을 했길래 미안하다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실로 미안한 일이 많았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미안한 일은 단 하나,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것, 그거 하나였다. 책임지지도 못할 생명 하나를 지상에 떨구어 놓고 그는 떠났다.

자리를 비켜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 자리에서 어떤 말을 할지, 어떤 행동이 나올지 몰라 자리를 떠났다.

병원 복도의 의자에 한참을 앉아있었다. 생각을 정리하고자 했지만 좀처럼 가닥이 잡히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만큼 흘렀을까? 병실 창문을 통해 병실 안의 풍경을 살폈다.

엄마는 잠에서 깨어나 있었다. 아버지는 한 손으로는 엄마의 손을 잡고 한 손은 엄마의 이마에 손을 올려놓고 있었다. 간혹 엄마가 야윈 손을 들어 눈가의 물기를 훔쳐냈다.

젊은 시절에 잠깐 만났다가 죽음을 앞두고 다시 만난 이 상봉에 엄마는 어떤 감정이었을까? 또한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가지고 느닷없는 이 방문을 결행한 것일까?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병실 문이 열렸다. 병실 밖에 앉아있는 나를 보고 사내는 미안하다, 또 올게, 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진짜 그는 이틀마다 병원을 찾았다. 그럴 때면 나는 병실을 벗어났다. 사내가 떠나고 병실에 들어서면 엄마의 표정은 평온해 보였다.

엄마 그러면 안 되잖아. 엄마를 이 지경으로 만든 게 누군데 엄마가 지금 그 남자의 방문을 기다리면 안 되잖아, 라고 엄마에게 핀잔을 주고 싶었다.

“나는 용서가 안 되는데, 엄마는 어때?”

엄마에게 물었다.

“용서는 무슨....”

용서는 상대에게 잘못이 있음을 인식하고 그 잘못으로 인해 자신이 피해를 입었을 때, 그 잘못에 대하여 꾸짖거나 벌하지 않고 너그럽게 봐주는 것을 의미한다.

엄마에게 그는 잘못이 없었다. 적어도 엄마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우리를 버리지 않았어. 내가 아버지를 버린 게지.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어. 너의 새아버지와 만나고 있던 때라 너의 장래를 생각해서 그게 옳은 선택이라 생각했어.”

나는 엄마의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나의 장래를 위해 아버지를 버리고 계부를 선택했다고? 계부 때문에 우리 모녀의 삶이 조각난 것을 생각하면 치가 떨리는 일이었다.

하긴 미래의 일을 다 예측하고 현재를 선택할 수는 없다. 단지 현재의 선택이 미래의 좋은 결과를 가져올 현명한 선택임을 바랄 뿐이다.

나의 삶에 있어서 친부나 계부나 걸림돌로 작용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엄마는 결혼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임신을 했다. 젊은 시절 아버지와의 불장난의 결과였다. 아버지는 성실한 사람이 아니었다. 속된 말로 하자면 동네 건달이었다. 여자들은 왜 이런 남자들에게 끌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성실하지 못한 사람이 책임감도 없었다. 최소한 자신이 저지른 일은 수습할 자세는 갖춰야 하는데 아버지는 그러지 못했다. 애비란 작자는 아이를 지우라고 엄마를 다그쳤다 한다. 그리고는 사고를 쳤다. 술김에 거리에서 시비가 붙은 사람을 흠씬 두들겨 패고 돈까지 훔쳐 달아났다. 전형적인 동네 건달, 양아치다운 행태였다.

폭행 사건으로 아버지는 도피 행각을 벌였다. 일 년 동안 아버지는 잘도 숨어 지냈으나 결국에 붙잡혀 이 년의 감옥살이를 했다.

엄마는 나를 낳았다. 무슨 생각으로 나를 낳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나는 세상에 태어났다. 엄마는 친정의 도움으로 나를 키우고 생활을 하였다. 엄마는 생활 전선에서 일을 했고, 나는 외할머니의 손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에 대해 별 소문이 다 돌았다. 조직 폭력배가 되었다느니, 장가를 들어 다른 여자와 살고 있다느니, 심지어는 죽었다는 소문까지 있었다.

엄마에게 남자가 생겼다. 아내와 사별한 홀아비였다. 나이는 좀 들었지만 재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양계장을 운영하였는데 그가 소유한 토지가 개발되어 큰돈을 만지게 되었다.

엄마가 조심스럽게 그 사람과의 관계를 나에게 말했다. 초등학생이었지만 나도 알 것은 아는 나이였다. 나에게 새아버지가 생긴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나는 싫다고 하였다. 엄마가 다 너를 위해서 그러는 거라 했다. 어떤 게 나를 위한 건데, 라고 나는 대들 듯이 물었다. 엄마는 대답하지 않고 돌아서 눈물을 훔쳤다.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나와 엄마는 그 남자의 집에 들어가 살게 되었다.

이 무렵에 아버지가 엄마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 같았다. 아버지가 엄마 앞에 모습을 드러낸 타이밍은 실로 절묘했다. 하필 이때, 새로운 삶을 시작할 때, 누추한 과거의 남자가 나타나면 어쩌자는 것인가?

엄마는 단호하게 아버지를 밀어냈을 것이다. 아버지도 그것이 자신의 운명임을 받아 들었을 것이다.

바보 같은, 끝까지 책임감 없는 아버지. 아버지가 그때 아주 단호하게 자신의 책임을 주장하고 우리 모녀와 함께 생활을 했다면 나의 삶은, 그리고 엄마의 삶은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쓸데없는 상상이었다.

계부는 착실한 사람이었다. 몇 년 동안은 그랬다. 돈은 사람을 꼬이게 했다. 그중에는 분명 사기꾼도 있었다. 몇 번의 보증으로 큰돈을 잃은 계부가 술에 취해 살기 시작했고 사람들에게 속은 분함을 엄마에게 풀기 시작했다. 작은 손찌검이 차츰 큰 폭력으로 이어졌다. 엄마는 계부의 폭행을 감수하며 살았다. 나는 그게 억울하고 분했다. 나는 계부에게 엄마를 때리지 말라고 대들었다.

엄마에게 향했던 폭력을 급기야는 나에게까지 행사했다. 그것만은 엄마가 용납할 수 없었다. 돈 보고 몸 팔았다는 세상 사람의 온갖 수군거림을 다 참아낸 것이 딸 하나 온전하게 키우고 싶은 바람 때문이었는데 딸에게 손을 대다니.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엄마는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말았다. 그날도 한바탕의 회오리가 몰아친 뒤, 술에 취해 곯아떨어진 계부의 목을 졸랐다. 계부는 발버둥을 치다 숨이 끊겼다. 그리고 엄마는 감옥에서 오 년을 살고 나왔다.


생각해 보면 모두가 가혹한 운명이었다. 엄마는 이 가혹한 운명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이제야 평온을 찾나 하는 순간에 찾아온 췌장암은 엄마의 마지막 호흡을 재촉하고 있었다.

엄마는 나와 아버지가 곁을 지키고 있는 가운데 숨을 거두었다. 아버지는 장례 기간 내내 식장을 떠나지 않았다. 장례식장의 한구석에서 머물며 빈소를 지켜보고 있었다. 굳이 나설 수 없는 입장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기록상 아버지는 엄마의 남편도 아니었고, 나의 아버지도 아니었다.

친척들도 아버지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아버지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주를 이루었다. 듣기가 거북했다. 거북한 자리임에도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아버지가 측은하게도 생각되었다.

화구 속으로 관이 들어갔다. 울컥 눈물이 나왔다. 화구의 문이 닫혔다. 빨간 불빛이 틈으로 새어 나왔다. 엄마의 영혼이라 생각했다. 자리를 벗어나 화장터의 뒤뜰을 찾았다. 거기에 아버지가 있었다. 아버지는 굵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손으로 입을 가려 소리를 죽이고 울고 있었다.

엄마는 아버지를 용서할 것이 없어도 나는 용서를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며칠 후, 이모에게서 아버지의 연락처를 받아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의 끝을 함께 해 주어 고맙다고 했다. 아버지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입에 붙은 단어가 아니었다.

아버지가 또 미안하다고 했다.


그것이 며칠 전인데 아버지의 부고를 들었다.

휴대폰에서 조심스럽게 여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혹시 장석남 씨 아세요?”

“장석남 씨요?”

“네.”

장석남이라는 이름의 주인을 추리하는 데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마땅한 인물이 떠오르지 않았다.

“포천에 사는....”

대답이 오래 지연되었음을 인지한 핸드폰 너머의 상대가 이름의 주인에 대한 정보를 더 주었다.

“석남이 저 친구는 여긴 왜 왔어?”

장례식장에서 조문객들의 대화가 퍼뜩 떠올랐다.

아, 아버지의 이름이 장석남이었구나. 실로 처음 들어보는 아버지의 이름이었다.

“아, 네.”

안다고 신호를 보냈다.

“어떻게 되세요?”

“그냥 알아요.”

아버지라는 말은 입에 붙은 단어가 아니었다. 핸드폰으로 나누는 대화의 상대는 나와 장석남의 관계에 대해 더 묻지 않았다.

“돌아가셨어요.”

핸드폰 너머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아버지의 죽음을 알렸다.

“네?”

현실이 아닌 것 같았다. 충격의 한마디를 내지르고 다음의 대화를 잊었다. 한참 후에야 불러준 주소를 받아 적고 전화를 끊었다.

포천을 찾았을 때는 장례가 끝난 후였다. 장석남의 딸이라는 여자가 나를 맞아주었다. 나도 장석남의 딸이라고 했다. 여자가 스스럼없이 나를 언니라고 불렀다. 조금은 어색했지만 싫지는 않았다.

경황이 없어 연락이 늦어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괜찮다고, 연락을 주어 고맙다고 했다.

동생과 함께 봉안당을 찾았다. 아버지의 웃고 있는 모습을 한참을 바라보았다. 동생이 먼발치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동생이 수줍은 미소를 보였다. 그녀의 손을 잡았다. 따뜻했다.

아버지에게 받은 거라고는 지랄 같은 운명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따뜻한 손이 있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설레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새로운 유산이 내 삶의 지침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지 새삼 궁금해졌다.


*

이전 12화7화 사망부곡(思亡父曲)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