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눈사람

by 마정열

경찰서는 민간인에게 그리 기분 좋은 관공서는 아니다. 그곳을 기쁜 마음으로 찾아가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물론 예외적인 상황은 늘상 있기 마련이다.

정수는 설레는 마음으로 경찰서의 정문을 들어섰다. 정문 안내소의 경찰이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묻는다. 정수는 경찰의 얼굴을 훑어보았다. 20대 초반의 순경 얼굴이 파릇파릇하다고 생각되어 슬며시 미소를 흘리며 청소년 선도위원이라고 말했다. 안내소에서 방문증을 내어 주었다. 정수는 방문증을 가슴에 매달았다.

오늘은 청소년 선도위원회가 개최되는 날이다. 회의의 안건이 무엇인지 관심도 없다. 정수가 이 위원회를 좋아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 그녀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젊은 나이에 지역에서 숙박업을 하다 보니 경찰서 출입이 잦았고, 그러는 사이 알게 모르게 여러 경찰들과 안면을 익히는 사이가 되었다.

경찰서에 무슨 위원회가 그리 많은지...

정수는 청소년 선도위원회 지역위원이다. 평소 안면이 있던 경찰이 느닷없이 할 사람이 없다고 한 자리 맡아달라고 부탁을 하는데 안 들어줄 수가 없었다.

‘청소년 선도위원회’ 이름이 멋있다. 그러나 하는 일은 별로 없다. 경찰 몇 명과 지역의 노친네 그리고 조금 젊은 남녀 몇 명이 모여 무슨 청소년을 선도하겠는가? 몇 번의 회의 참석과 가끔 보육시설과 소년원 방문이 고작이다.

그렇지만 정수는 그 위원회의 위원이 된 것을 행운으로 여기고 있었다. 왜냐하면... 흐흐. 생각만 해도 기분 좋은 웃음이 흐른다. 그곳에서 한 여인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녀의 이름은 이주영, 직업은 경찰이다. 그녀는 청소년선도위원회의 담당 경찰이다. 연락이며 회의 진행을 그녀가 맡고 있었다. 위원 중 유일하게 미혼인 남자가 미혼인 여성 경찰에게 호감을 갖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지 않은가?


정수는 자신이 정서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건강한 대한민국의 30대 청년이라고 자부한다. 그의 연애사를 돌이켜보면 그리 화려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연애를 전혀 못 해 본 숙맥은 아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여자를 사귀어보지 못했다. 그렇다고 공부만 열심히 한 것도 아니다. 아마 부끄러움이 많은 성격 탓일 것이다. 대학에 와서 비로소 연애를 시작했다. 첫 미팅에서 만난 인근 대학 영문과 학생인 영숙이. 몇 달을 가지 못했다. 친구 소개로 만난 간호학과의 수희. 그녀 역시 정수의 서투른 연애 기술로 몇 달을 가지 못했다. 진희, 순영을 거치는 동안 연애 기술을 조금씩 발전했고, 같은 과 소현과는 꽤 오래 사궜다. 졸업 후 소현은 공기업에 취업을 했고, 그는 취업 전선에서 번번이 좌절했으니 그 결말은 뻔하지 않겠는가? 누가 먼저 헤어짐을 제안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홀로 된 상태에서 포천으로 내려와 숙박업을 하는 통에 여자를 만날 기회조차 박탈당한 느낌이었다.

그러다 이주영 순경을 만났다. 그녀는 제복이 어울리는 여자였다. 제복이 주는 묘한 설렘을 그녀는 백 퍼센트 충족시켜 주었다. 첫 만남부터 그랬다. 긴 타원형의 테이블에서 각자 소개를 할 때 청량한 그녀의 목소리는 정수에게 짜릿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위원회의 간사를 맡고 있는 이주영 순경이에요.”

정수는 회의 내내 그녀를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다. 귀를 덮고 있는 단발머리가 찰랑거려 귀가 보일 때면 귓불에서 빛나는 조그만 귀걸이가 선명한 빛을 발하였고, 턱을 괴고 있는 손 위로 흐르는 가름한 턱선과 그 위에 오똑하게 솟은 콧날. 위로 조금 솟구친 눈썹 아래의 맑은 눈동자. 아마 첫눈에 반한다는 말이 이런 느낌을 가리켜하는 말일 것이다.

정수는 위원회에 참여해 달라는 경찰관의 부탁을 내색은 안 했지만 성가셔했다. 거절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 이런 행운을 가져다준 그 경찰관이 고맙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아름다운 포천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남자가 여자에게 접근하는 방법은 뻔하다. 차를 마시고 식사를 하다가 거리를 같이 배회하는 것. 그 횟수가 늘려가면서 이 얘기 저 얘기하면서 친해지는 것. 정수는 그렇게 생각했다. 정수는 그 루틴을 성실하게 실천했다. 회의가 열릴 때마다 즐거운 마음으로 그녀 몫의 커피를 준비했고, 일을 보기 위해 경찰서를 들를 때면 늘 그녀를 찾아 함께 커피 마실 시간을 갖고자 노력했다. 심지어는 우연을 가장하여 그녀와 마주치기를 시도하기도 하였다.

정수는 그녀에 대해 아직 많은 것을 알지 못한다. 그녀에 대해 많은 것을 탐색하려 해도 쉽지 않다. 하긴 아직 연애하기로 서로 약속한 사이도 아닌데 자신의 속사정을 술술 털어놓겠는가?

정수도 역시 자신의 집안 사정을 여자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특히 모텔을 운영하게 된 사정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차차 알아가면 된다고 정수는 생각했다.

그런데 정수는 그녀의 비밀 한 가지를 알았다. 그녀가 그냥 밝혔으니 비밀도 아니다. 그녀에게 아주 어린 동생이 있다는 것이다. 도무지 동복이라고는 볼 수 없는, 이십 년의 차이가 나는 동생이 있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가정의 흑역사 같기도 한데 그녀는 별로 신경을 안 쓴다는 점이 이상했다.


첫 테이트 신청은 늘 어렵다. 정수는 몇 번의 망설임 끝에 용기 내어 그녀에게 테이트를 신청했다. 정수의 망설임과는 다르게 그녀는 테이트 신청을 웃으며 흔쾌히 받아 주었다.

그녀는 놀이동산에 가고 싶다고 했다.

마음까지 아이처럼 순수한 여인이라고 정수는 생각했다.

솔직히 정수는 놀이동산을 좋아하지 않는다. 놀이동산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줄 서서 기다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진희는 맛집이라며 몇 시간씩 줄을 서서 음식을 먹었다. 정수는 기다림에 지쳐 음식을 먹을 때쯤은 맛보다는 짜증이 먼저였다. 진희는 잠시 후의 짜릿함을 상상하라며 긴 대기 줄 속에서 놀이기구를 기다렸다. 정수는 몇 초의 짜릿함을 위해 몇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바보 짓거리라고 생각했으나 진희를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 지루함을 견뎠다. 소현도 놀이동산을 좋아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갖가지 포즈로 사진을 찍기를 좋아했다. 정수는 금세 지쳤지만 소현은 지치지 않았다. 여자라는 동물은 이해하기 힘든 생명체였지만 그들은 비위를 상하게 해서는 안되었기에 정수는 겉으로 불만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녀가 놀이동산을 이야기했을 때 정수는 “나도 놀이동산에 가 보고 싶었어요.”하고 말했다.

진심이었는지도 모른다. 진희, 그리고 소현과는 다른 여자이니까.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약속 장소에 일찍 나갔다. 겨울 날씨가 매서웠다. 주말을 맞이한 놀이동산은 붐볐다. 실내에 놀이시설이 있는 곳이다 보니 이런 날씨에 사람들이 많이 모인 것 같았다.

정수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며 그녀가 나타나길 기다렸다. 그녀가 보였다. 그런데 혼자가 아니었다. 대여섯 살 정도 되는 사내아이의 손을 꼭 잡고 그녀가 걸어오고 있었다.

정수는 그녀에게 인사를 하면서도 한눈은 꼬마를 향하고 있었다. 정수의 얼떨떨한 표정을 알아챈 여자가 아이에게 “인사해.” 하니 아이가 “안녕하세요?” 하고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아이의 목소리가 대개 그러하듯이 찬 공기를 가르는 투명한 목소리였다.

“동생이에요.”

정수의 궁금증을 해소해 주려는 듯 여자가 아이에 대한 정보를 주었다. 그러나 그 정보는 궁금증을 해소시키기는커녕 도리어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이십여 년의 나이 차로 봐서 꼬마 아이가 그녀의 동복의 동생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이복동생? 그렇다면 가정사의 비밀이 있는 것일까?

동생을 소개하는 그녀의 밝은 표정을 보니 음침한 가정사의 비밀이 상상되지가 않았다.

“아, 네. 동생이 어리고 귀엽네요.”

“네.”

여자가 간단히 대답했다.

정수 말의 속뜻은 동생이 어리니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었으면 하는 뜻이었는데 그녀는 귀엽다는 말에 방점을 찍었나 보다.

어쨌든 첫 데이트는 그렇게 시작됐다. 놀이공원에서 정수는 외톨이였다. 여자는 온종일 아이 옆에서 웃고 놀았다.

헤어질 때 여자가 “즐거웠어요.”하고 인사를 했고, 아이도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를 했다. 정수는 미소로 그들의 인사를 받았지만 그리 밝은 표정은 아니었다.

그들과 헤어진 후에 정수는 생각했다.

이건 나와의 테이트가 아니라 나를 이용해 아들 같은 동생과 놀이동산에 놀러 온 것이라고.

상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며칠 후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놀이공원이 고마웠으니 점심 한 끼 대접하고 싶다고 했다.

억울하고 분했던 마음이 순식간에 풀어졌다. 정수는 진심으로 기뻐하며 최대한 빠른 시간에 점심 약속 날짜를 잡았다. 전화를 끊고 정수는 자신이 참으로 속없는 사내라고 생각하고 피식 웃음을 흘렸다.

다음날 정수와 그녀는 피자와 파스타로 점심을 먹었다. 정수가 점심값 계산을 하고 싶었으나 여자가 굳이 내겠다고 하여 정수가 어쩔 수 없이 양보했다. 정수는 그냥 가기가 섭섭해 커피숍으로 그녀를 안내했다.

이렇게 추운 날씨에는 따뜻한 커피가 좋았다. 경찰 복장에 양손으로 커피잔을 쥐고 커피를 마시고 있는 그녀는 정수의 눈에는 제복 입은 천사로 보였다.

천사는 거짓말을 모른다. 정수는 믿음이 있었다.

동생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아야겠다.

“동생이 어리던데요.”

“아들이에요.”

‘쿵’하고 가슴이 떨어졌다.

“농담이에요. 호호.”

그녀가 깔깔대며 웃었다. 정수의 볼이 빨개졌다.

“진짜 동생이에요.”

“친동생?”

“그럼요. 친동생이죠.”

아무래도 안 되겠다. 질문을 계속하면 말하기 곤란한 가정의 흑역사를 캐묻는 것이 될 것 같아 정수는 묻기를 그만두었다.

그날의 점심시간은 그렇게 끝났다.

정수는 할 일이 생겼다. 자신의 정보망을 총 가동하여 그녀의 가정사에 대해 탐색하는 것. 그것이 자신의 과업이라고 정수는 생각했다.


*


삶의 자장 안으로 한 아이가 들어왔다.

지구대 근무할 때였다. 칼날 같은 바람이 부는 날이었다. 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가 두려운 눈빛으로 지구대 문을 밀고 들어왔다.

뛰어왔는지 아이의 두 볼은 빨갛게 상기되었고 숨을 헐떡였다.

“아저씨, 우리 엄마 좀 도와주세요.”

“무슨 일이 있니?”

장 경사가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무릎을 굽히고 아이에게 물었다.

“우리 엄마가 아파요.”

아이의 눈빛은 애절했다.

장 경사는 사무를 보고 있던 주영을 보며 말했다.

“무슨 일인지 이 순경이 한 번 가 보지?”

주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네, 경사님! 애야, 누나랑 같이 가 볼까?”

주영은 아이를 앞세우고 걸었다. 아이는 다급한 마음인지 종종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언덕배기의 고갯길이라 숨이 찰 만도 한데 아이는 쉼 없이 걸었다.

“집이 어디니?”

“다 왔어요. 저기 계단만 올라가면 돼요.”

아이가 눈앞의 계단을 가리키며 말했다.

“엄마가 어디 아프니?”

“몰라요. 그냥 일어나지 못하고 누워만 있어요.”

“그런데 어떻게 파출소를 찾아왔니?”

“엄마가 항상 이야기했어요. 무슨 일이 생기면 경찰관 아저씨 찾아가라고, 그러면 도와준댔어요.”

영특한 아이다. 아이가 초롱한 눈망울을 굴리며 말했다.

“그래, 잘했다.”

주영이 아이의 등을 토닥거리며 말했다.


아이의 집은 언덕배기에 있는 연립의 반지하층이었다. 문을 여니 곧바로 집안이 보였다. 거실 겸 주방이 있고 안쪽으로 방이 있었다. 아이가 먼저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주영이 아이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한 여인이 자리에 누워 있다. 여인은 인기척이 나자 가늘게 눈을 뜨고 일어나려고 하는데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그냥 누워 계세요.”

주영이 여인의 곁에 앉아 물었다.

“어디가 안 좋으세요?”

“모모..르겠어요. 그냥 어지럽고 못 일어나겠어요.”

“언제부터 그랬어요?”

“어제저녁부터 갑자기 아파요. 우리 애가 배 고플 텐데... 오늘 아무것도 못 먹었을 텐데...”

여인의 말투는 어눌했다. 여인은 자신의 아픔보다 아이의 배고픔이 더 걱정인 듯했다.

주영이 아이를 보며 물었다.

“배 고프니?”

아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 엄마 병원부터 가고 밥 먹자.”

주영은 휴대폰의 119 버튼을 누르고 환자가 있으니 응급차를 보내 달라는 통화를 했다.

“나 돈 없어요.”

여인이 통화를 하는 주영을 지켜보더니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괜찮아요. 걱정 마세요.”

주영은 여인을 안심시키려 노력했으나, 여인은 “돈이 없는대”를 연발하며 불안한 얼굴빛을 감추지 못했다.

잠시 후 구급차가 와서 여인을 태우고 떠났다. 아이도 엄마를 따라 함께 갔다. 밥을 먹여야 하는데 울기 일보 직전의 표정으로 엄마를 따라가야 한다고 하기에 어쩔 수 없이 엄마와 함께 보냈다. 이웃 주민 몇이 나와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래요?”

“연립에 사는 애 엄마가 아픈가 봐요.”

“에휴! 애기 엄마 고생 고생하더니 결국...”

사람들이 한두 마디씩 말을 보탰다.

“애 아빠는 지금 어디 계시죠?”

주영이 모인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사람들은 주영의 경찰 제복을 보고 더 많은 정보를 주고자 노력했다.

“애 아빠는 없어요. 여기 이사 올 때부터 엄마하고 애 하고 둘이만 살았지.”

“요 아래 공장 다녔는데, 그 사장이 못 됐어. 엄마가 좀 모자란다고 월급도 제때 안 주고.. 때리기까지 했다는 말이 있지.”

“엄마가 조금 그래. 그런 사람을 이용하는 사장 놈이 아주 못된 놈이지.”

“에구, 갈수록 팍팍해지는 세상이야.”

여인의 말이 어눌하여 조금은 눈치를 채고 있었으나 그런 여인의 약점을 이용한 고용주가 있다는 말에 주영은 가슴의 한편이 무겁게 내려앉음을 느꼈다.

지구대로 복귀한 주영은 컴퓨터에서 여인의 정보를 검색했다.

여인의 이름은 장정순, 보육원에서 자랐고 결혼한 남편은 3년 전에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아이의 이름은 인하였다.

주영은 그날 저녁 업무를 마치고 병원을 찾았다. 병원에는 주민센터에서 나온 사회복지사가 여인의 곁을 지키고 있었고, 침상의 곁에서 아이가 엄마의 손을 잡고 있었다. 여인은 자고 있었다. 그 모습은 평화로워 보였다.

사회복지사가 상황을 알려주었다. 썩 좋지 못한 소식이었다. 악성빈혈이고 너무 늦게 병원을 찾아 상태가 아주 안 좋다고 했다. 아이는 아동보호시설에서 돌보겠다고 했다.

다음날, 주영은 사람들에게서 들은 여인이 다녔다는 공장을 찾았다.

주택가 안쪽에 자리 잡은 공장에는 대여섯 명이 모여 일을 하고 있다. 전형적인 가내수공업 공장이었다.

주영은 사장을 찾았다. 머리가 하얗게 센 초로의 사내가 나왔다. 주영은 신분을 밝히고 장정순 씨가 여기서 무슨 일을 했냐고 물었다.

“별일 안 했어요. 완성된 면장갑에서 실밥 정리하는 작업이죠. 조금 복잡한 일은 시켜도 못해요. 그 여자 완전 반편이예요.”

사장의 반편이라는 말에 기분이 언짢았지만 애써 표정을 감추며 물었다.

“월급은 제때 주셨어요?”

“그럼요. 월급뿐만 아니라 점심도 매 끼니 챙겨줬는걸요.”

“점심 제공하는 거야 당연한 거 아니에요? 근로계약서 좀 볼 수 있을까요?”

“그런 거 없어요.”

주영의 추궁에 사장은 기분이 나빴는지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그 여자 반편이예요. 어디 가서 일 못해요. 여기서 일자리 준 건만 해도 감지덕지해야지.”

사장은 반편이라는 말을 또 강조했다. 이번에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정상인과 조금 다르다고 그렇게 대접해도 되는 건 아닙니다. 사장님에게 그런 권리는 없습니다.”

주영의 격앙된 목소리에 사장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내가 뭘 어쨌다고 그러는 겁니까?”

“혹시 때렸습니까?”

“더 이상 말 못 하겠네. 조사하려면 정식으로 수색영장 가져오던지 하세요. 나가요.”

사장이 주영의 등을 밀어 문밖으로 몰아냈다.

주영은 본청의 동기생에게 전화를 하여 상황을 이야기하고 수사를 요청했다. 동기는 잘 알았다고 이야기했다.

며칠 후 동기에게서 전화가 왔다. 사장을 연행하여 수사 중이라고 했다.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술 한번 사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여인은 며칠을 버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하필 눈이 몹시 내리는 날이었다.

화구 안으로 관이 들어가고 화구 문이 닫혔다. 유리문 밖에서 주영과 사회복지사가 지켜보고 있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대기석 안내판에 ‘장정순 종료’라고 화장 종료를 알리는 문구가 떴다.

사회복지사가 분골 상자를 안고 걸어 나왔다.

“좋은 데로 갔겠죠?”

주영이 눈이 촘촘히 박힌 하늘을 보고 물었다. 이승의 삶이 고단했으니 저승길이나마 편해야 하는데 거친 눈발이 야속했다.

“그러겠죠. 그래야 되고.”

사회복지사가 대답했다.

“복지사님, 아이한테는 말했어요?”

“아직 못했어요. 엄마가 많이 아파 멀리 병 고치러 갔다고만 했어요. 병 나으면 온다고.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이기에 너무 적은 나이라...”

주영과 사회복지사는 눈을 맞으며 걸었다. 화장터 뒤쪽에는 분골을 수거하는 곳이 있었다. 장정순의 분골이 순식간에 수거함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한 인생이 이승에서 흔적도 없이 지워졌다.


인하는 보호시설에서 지냈다. 문제가 있었다. 사회복지사가 전한 소식은 인하가 저녁마다 보호시설을 나와 집으로 가는 계단에 앉아 엄마를 기다린다고 했다.

눈은 그칠 줄 모르고 퍼부었다. 주영은 흰 입김을 내뿜으며 언덕을 올랐다. 인하가 계단 위쪽에 앉아 있었다.

주영이 급히 계단을 올라 인하를 껴안았다.

“누나가 얼마나 무서웠는데, 너마저 눈사람이 될까 봐.”

“엄마 기다려야 해. 엄마가 오는데 아무도 안 나와 있어 길 잃어버리면 어떡해.”

인하가 울먹이며 말했다.

“걱정 마, 인하야. 엄마는 인하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길을 잃지 않고 찾아올 거야.”

“이렇게 눈이 오는데 엄마가 집을 찾아오다가 길을 잃어 눈사람이 되면 어떡해.”

“아니야 인하야, 엄마는 절대 눈사람이 안 돼.”

주영은 인하의 머리에서 눈을 털어내며 이 아이는 절대 눈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주영은 커피잔을 앞에 두고 엄마와 마주 앉았다.

“엄마! 나 동생 하나 둘까?”

여자가 살포시 웃으며 말했다.

“얘가 무슨 소리야?”

엄마는 얘가 뭔 말을 하나, 하는 표정으로 주영을 빤히 바라보았다.

“동생 하나 가지고 싶다고.”

“뭔 소린지 모르겠네. 니 아빠한테 얘기해 봐. 어디서 낳아서 데려오면 내가 잘 키워줄게.”

“아빤 그런 능력도 없잖아. 엄마, 내 얘기 잘 들어봐. 내가 아는 아이 중에 ....”

주영은 엄마에게로 바짝 다가앉았다. 그리고 엄마의 팔짱을 꼈다.

“얘가 왜 이래, 징그럽게.”

말은 그렇게 했어도 싫지 않은 표정이었다.

“엄마, 내가 아는 아이 중에 인하라고 있는데...”


주영이 아이와 함께 계단에 앉아 노을을 보고 있었다. 추위도 시간의 흐름을 이길 수는 없었다. 한결 푸근해진 날씨다.

“눈사람의 꿈은 자신이 살아갈 수 있게 추위가 계속되는 것일까, 아니면 자신이 사라지더래도 따뜻한 봄날이 오기를 기다릴까?”

혼잣말로 주영이 말했다.

누나, 무슨 말이야?”

인하는 주영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주영이 웃으며 인하의 볼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아무 말도 아니야, 인하야.”

“누나, 오늘도 엄마는 못 오나 봐.”

인하가 울먹이며 말했다.

“언젠간 올 거야, 인하야. 따뜻한 봄날처럼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엄마는 올 거야.”

계단 아래 언덕길에서 엄마가 이들을 향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주영은 올라오는 엄마를 보고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인하를 껴안으며 말했다.

“엄마는 반드시 올 거야, 인하야.”

엄마가 계단 위로 올라와 두 팔을 벌려 인하를 안으며 말했다.

“아가야! 추운데 왜 나와 있어? 어서 집으로 가자.”


*


단둘이서 식사를 한 것이 데이트라면 첫 데이트는 놀이동산 데이트보다 며칠 전이다. 정수가 그녀를 포천 시내에서 우연히 만나 저녁 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

세무사를 만난 세금 관계 상담을 하고 나오니 토끼 꼬리처럼 짧은 겨울해는 어느새 떨어지고 거리는 어둠이 점령군처럼 밀려와 있었다.

바람이 불었다. 정수는 옷깃을 세워 바람을 막으며 종종걸음으로 정류장을 향해 걸었다. 정수의 눈에 찬바람 가득 안고 걸어가는 그녀가 보였다.

한창 그녀에 대해 관심을 키워가고 있을 때이니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이런 곳에서 보다니 운명인가 보다, 하고 정수는 제 맘대로 상황을 해석했다.

정수는 만면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그녀를 불렀다.

“이 순경님!”

아직 이름을 부르기가 어색하다.

그녀가 돌아보았다. 놀라는 표정이었다.

“어디 가세요?”

“퇴근하는 길이에요.”

“그럼 저녁 안 하셨겠네요. 같이 저녁 할래요?”

어디서 이런 용기가 나왔는지 술술 말이 풀어져 나왔다.

그녀가 시계를 보더니 “네” 하고 승낙했다. 우리는 가까운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그녀와 단둘이서 하는 식사 자리인데 허름한 곳에 들어갈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분위기 있는 곳을 찾아가려 하였는데 그녀가 배가 고프니 갈비탕을 사달라고 했다. 그녀의 청인데 거절할 수가 없다. 흔하게 널린 곳이 고깃집이다. 눈에 띄는 고깃집으로 들어갔다.

갈비탕을 주문했다. 갈비탕으로 끝낼 수는 없어 술도 주문했다. 따뜻한 국물과 어우러진 술은 차가운 겨울 저녁을 푸근하게 만들었다.

정수는 많은 말을 했고, 그녀는 미소로 남자의 말을 들어주었다. 시간이 어지간히 흘러 그들은 음식점을 나왔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함박눈이었다. 음식점 앞에 벌써 눈사람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나는 눈사람이 싫어요.”

“왜요? 귀엽지 않아요.”

“불쌍하게 눈 맞고 서 있는 것도 싫고 우글쭈글 녹아 사라지는 것도 싫고, 어쨌든 싫어요. 무서워요.”

옷깃을 여미며 그녀가 말했다.

그녀의 머리 위로 눈이 떨어졌다. 조금만 더 쌓이면 그녀가 눈사람이 될 것만 같았다. 너무도 귀여운 눈사람. 정수가 눈사람이 된 그녀의 모습을 상상하며 웃으며 말했다.

“눈사람이 얼마나 귀여운데요. 온통 흰 눈사람. 마음마저 흴 것 같은 눈사람이 사랑스럽지 않아요?”

“나는 눈사람이 싫어요.”

조금은 서늘한 그녀의 표정으로 보아 진심인 것 같았다. 눈사람이 귀엽다는 말은 더 이상 해서는 안 되겠다.

소현은 눈을 뭉쳐 호숫가에 서 있는 눈사람을 향해 던졌다. 눈뭉치는 눈사람의 입가에 정통으로 맞아 마치 혹이 생긴 양 우뚝 솟은 흔적을 남겼다. 소현이 깔깔거리며 웃었다. 정수도 소현을 따라 눈뭉치를 눈사람을 향해 던졌다. 눈뭉치는 눈사람의 가슴에 총탄처럼 박혔다. 상처 입은 눈사람을 보며 둘은 깔깔거리며 웃었다. 웃음소리는 찬 겨울 공기 마냥 청량했다.

둘은 눈사람을 만들었다. 아주 작은 눈사람이었다. 정수가 자기가 만든 눈사람을 소현의 눈사람 옆에 놓았다.

“사랑해”

정수가 말했다. 소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눈사람은 너무 작았다. 조금만 날이 풀려도 금방 녹아 사라질 것 같았다. 겨울 산정호수는 적막했다. 좀 더 크게 만들 걸, 하고 산정호수를 떠나며 정수는 후회했다.


비밀이랄 것도 없지만 그녀에 대해 특이한 점 한 가지를 또 알았다. 세상에 눈사람을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정수는 처음 알았다.

알면 알수록 신비스러운 여인이었다.


*


“눈사람이 된 발달장애인 오빠가 있었어요.”

눈사람을 왜 싫어하냐, 고 남자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을 때 주영은 하마터면 이 말을 할 뻔했다.

주영은 길 한 모퉁이에서 애처롭게 눈을 맞고 서 있는 눈사람에게서 애써 눈길을 거두었다. 눈사람은 춥지도 않은 모양인지 꼼짝도 않고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눈사람만 보면 눈사람인 된 오빠가 생각났다.


오빠가 있었다. 어린아이 같은 오빠가. 발달장애인, 그래, 오빠는 자폐아였다. 엄마는 오빠를 돌보느라고 날마다 전쟁이었다. 오빠에게서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주영은 그런 엄마가 안쓰럽고 그럴수록 오빠가 싫었고... 왜 우리 가족에게 이런 비극이 일어났을까? 원망도 많이 했다. 그래서 오빠가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오빠가 없어졌다. 몹시 추운 겨울날, 오빠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주영이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엄마가 주방에서 음식을 하고 있는데 방에 있던 오빠가 사라졌다. 주영은 오빠를 찾으러 다니며 울면서 빌었다.


잘못했어요. 하느님. 다시는 오빠가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겠어요. 제발 오빠를 돌려주세요. 하느님, 제발.


잔뜩 찌푸린 하늘에서 기어이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눈발은 점점 굵어져 이젠 아예 함박눈이다. 골목 안쪽에 한 아이가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아이의 머리에 눈이 쌓였다. 아이는 점점 눈사람으로 변해갔다.

다음 날 엄마가 오빠를 발견했을 때, 오빠는 이미 싸늘한 눈사람이 되어 있었다. 엄마가 눈사람이 된 오빠를 부여안고 통곡을 했다.

“아이고, 승우야! 이게 무슨 일이냐, 승우야, 내 새끼야. 얼마나 추웠니. 세상 사람들이 뭐라 해도 나는 니가 있어 살았는데 이젠 나는 어쩌란 말이냐.”

그렇게 오빠는 눈사람이 되어 세상을 떠났다. 봄이 되면 눈사람은 녹아 사라지지만 여전히 주영의 마음속에는 골목길에서 웅크린 채 눈사람이 된 오빠가 살아있었다.


오빠가 사라진 자리에 인하가 들어왔고, 또 한 남자가 서성이고 있었다.

남자가 주영을 처마 밑에 세워두고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잠시 후 편의점을 나온 그의 손에 우산이 쥐어져 있었다. 주영은 남자가 펼쳐 든 우산 아래에서 눈을 피하며 걸었다. 우산은 주영 쪽으로 잔뜩 기울었고, 주영의 눈에 눈이 수북이 쌓인 남자의 어깨가 보였다.


*


주영은 아직 그를 받아들일지 어쩔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하지만 자신에게 보내는 미소가 싫지는 않았다. 자장에 이끌려 조금씩 자신에게 다가오는 남자가 정문에서 걸어오고 있는 것을 주영은 발견했다. 그의 손에 또 커피가 들려 있었다.


*




'모텔 나이아가라'의 연재는 8화로 마치고자 합니다.

읽어 주시어서 감사합니다.

빠른 시간 안에 다른 작품으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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