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씨가 모텔을 나간 지 몇 시간 후에 경찰서 이 형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장 씨가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것이다. 믿을 수 없는 일이 종종 벌어지는 것이 현실이었다.
장 씨가 모텔을 들어선 것은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다. 장 씨는 격일 근무여서 이날은 근무가 없는 날이었다. 술을 마셨지만 취해 보이지는 않았다.
“웬일이세요?”
“그냥 집에 가다가 들러 봤어요.”
장 씨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들어오세요.”
나의 안내를 받은 그는 안내 프런트를 지나 내가 있는 내실로 들어왔다. 나는 그를 위해 커피를 내렸다. 향긋한 커피 향이 내실 안을 채웠다. 나는 일을 하면서 곁눈으로 그를 살폈다. 그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피어있는 것을 보았다.
“좋은 일 있나 봐요?”
“좋은 일? 아, 그럼 좋은 일이제. 이것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간디요?”
그는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은 듯 웃음을 흘렸다.
나는 커피를 두 잔 내려 그에게 한 잔, 그리고 나를 위해 한 잔을 내 손에 쥐었다. 졸음이 밀려오는 시간이라 커피 생각이 간절하던 차였다.
“오늘 딸내미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고맙다고요. 글쎄 나보고 고맙다고 하네요.”
홀짝 커피를 들이켠 장 씨가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정인이야 항상 아저씨 곁에 있잖아요.”
“아니, 정인이 말고....”
“정인이 말고 또 딸이 있어요?”
“응, 그려...그렇게 됐구만요.”
장 씨는 남아있는 커피를 마저 홀짝 마시고 커피잔을 어루만지며 무엇인가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는 또 다른 딸이 있다는 장 씨의 말에 다시 한번 그의 과거가 궁금해졌다.
그에 대한 동네 사람들의 말은 중구난방이었다. 젊은 시절, 그가 조폭이었다느니, 여자를 후리는 제비였다느니, 심지어는 살인자였다는 말까지 돌았다. 그 어느 말도 내가 경험한 장 씨와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장 씨의 도움이 없었다면 모텔 운영을 제대로 못 했을 것이다. 경험이 전혀 없던 내게 그는 선생처럼 하나하나를 알려 주었다. 그렇다고 무례하게 선을 넘지도 않았다. 항상 공손한 태도로 나를 대했다. 그것은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진상인 손님이 와도 최선을 다해 모셨다. 손님이 없는 데서 씩씩거리는 일은 있어도 손님 앞에서는 인상을 찌푸리는 일이 없었다. 장 씨는 정말로 열심히 사는 사람이었다. 모텔은 격일로 나오고 모텔을 나오지 않는 날이면 건물 청소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정말로 열심히 사는 사람이었다.
“나는 운이 좋은 남자여. 내가 만난 여자들은 다 좋은 사람들밖에 없었어.”
잠시 생각에 취해있던 장 씨가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는 진짜 기분이 좋아 보였다. 눈에 축축한 눈물이 고여 있을 지경이었다.
“내가 딸 얘기 해 줬던가요?”
“아저씨야 항상 정인이 얘기만 하고 다녔잖아요.”
“아니, 정인이 말고요.”
나도 아까부터 또 다른 딸 이야기가 못내 궁금하던 차였다. 어서 파란만장한 장 씨의 과거가 내 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기를 기대하며 그의 뒷말을 기다렸다. 그가 잠시 뜸을 들이며 말을 이었다.
“나는 참 책임감 없는 남자였지. 그때 무슨 일이 있어도 아내와 딸애 곁을 지켰어야 했는데 내 한 몸 살려고, 아내를 두고 도망간 내가 한심스러워. 그런 놈이었어 내가. 딸애한테 버림받아도 당연한 게지.”
기분에 들뜬 그의 표정은 일순간 사라지고 회한에 가득 찬 표정으로 넋두리 같은 말을 쏟아냈다.
“어깨에 힘주고.... 그게 무슨 자랑이라고 그렇게 살았을까?”
장 씨가 말을 멈추었다. 그는 진정 과거의 삶을 후회하는 듯했다.
보통의 남자들은 젊은 시절 거들먹거리며 다닌 사실을 훈장인 양 과장을 하여 허세를 부리는데 장 씨는 그러지 않았다. 장 씨는 과거 이야기를 잘하지 않았다. 간혹 토막토막 이야기를 할 때면 잘못 산 인생이여, 하며 목소리에 깊은 회한이 서려 있었다.
“열심히 사셨지 않아요?”
나는 장 씨의 뒷말을 끌어내기 위해 은근한 추임새를 넣었다. 장 씨는 나의 말에 곧바로 반응을 보였다.
“열심히 살긴요. 엉망으로 살았지.”
뒤이어 장 씨는 엉망으로 산, 아니 어찌 보면 열심히 산 이야기를 풀어냈다.
젊은 시절, 호탕함을 자랑질하던 장 씨는 여자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이 여자, 저 여자를 만나고 다니던 장 씨에게 한 여인이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했다. 임신을 했다는 것이었다. 믿기지도 않았고, 아버지가 될 준비도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장 씨는 여인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책임질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아이를 떼라. 그리고 해서는 안 되는 말까지 했다. 내 아이인지 어떻게 아느냐. 여인은 실망을 넘어 분노했고, 기어이 아이를 낳겠다고 했다. 어찌할 바를 모르던 장 씨는 술에 취하여 현실을 잊고자 했고, 그것이 폭행, 강도 사건으로 이어졌다.
죄의 대가는 반드시 치러야 했다. 좁은 반도국 내에서 영원히 피해 다닐 수는 없었다. 어떤 벌이 자신에게 내려질지 몰라,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몰라 너무 두려웠다. 도망 다니던 일 년 내내 그는 두려움에 불면의 밤을 보냈다.
여관에서 숨어있다 붙잡힌 그는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이 년의 형기를 마치고 사회로 나온 그는 여인을 다시 찾아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여전히 아버지가 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여전히 젊고, 호탕함을 자신하던 그에게 친구가 연락이 왔다. 같이 일하자고 했다. 클럽의 경비직이었다. 할 일 없이 시간을 보내던 그에게 거절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었다.
일은 거칠었다. 주로 하는 일은 술에 취한 손님들을 정리하는 일이었지만, 그뿐만이 아니었다. 떼로 몰려가 채무자에게 빚을 받아내기도 하고, 주택 철거에 항의하는 주민들과의 충돌 현장에 앞장서기도 하였다.
몇 년을 그렇게 보냈다. 그러나 피비린내를 맡는 것은 하고 싶은 일은 아니었다. 계속해야 하나, 하는 회의가 들 무렵, 장 씨는 폭행 사건에 연루되어 다시 교도소에서 일 년을 보냈다. 교도소에서 나오자마자 그는 그 동네를 떠났다.
노동판을 찾아 전국을 떠돌던 장 씨에게 가정의 따뜻함이 아련한 그리움이 되었다. 장 씨는 용기를 내어 여인을 찾았다. 초등학생의 숙녀가 된 딸애도 먼발치에서 보았다.
장 씨는 먼저 여인에게 용서를 빌었다. 여인이 차갑게 말했다. 다 용서하고 다 잊어 줄 테니 다시는 찾지 말라고. 그리고 여인은 먼발치에서 이 광경을 보고 있는 아이를 가리키며 이렇게 덧붙였다.
“저 아이를 위해서라도 다시는 찾아오지 마세요.”
여인의 말은 비수보다 더 날카로웠다. 아니다. 돌아서며 장 씨가 여인의 말을 곱씹어 보니 그것은 절실하고도 간곡한 부탁이었다.
장 씨는 그것이 자신의 과오에 대한 당연한 결과라고 받아들였다. 가정은 이룰 수 없는 그리움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공사장을 따라 포천에까지 올라왔다. 그는 포천의 식당에서 정인의 엄마를 보았다. 아픈 몸으로 정인을 보살피는 그녀의 처절한 모습에서 홀로 딸애를 키우는 여인의 처절함을 새삼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정인을 보았다. 뇌리에 남아있던, 먼발치에 서 있던 딸애의 모습이 떠오름을 어찌할 수 없었다.
정인의 엄마는 장 씨를 가족으로 받아들였다. 장 씨는 다시는 가족을 잃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다.
“근데 말입니다. 인연이란 묘한 겁디다.”
딸애를 위해서도 다시는 찾지 말라던 여인의 소식을 알았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죽음을 앞두고 있다던 소식이었다.
장 씨는 여인의 최후를 지켰다. 그리고 여인을 지키지 못한 자신에 대해 용서를 빌었다. 미안하다고 말하면 그녀는 미안해하지 말라고 말했다. 예전처럼 차가운 목소리는 아니었다.
서른이 넘은 딸애는 결혼을 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생부란 놈도, 계부란 놈도 한결같이 자신의 인생을 엉망으로 만든 인간들이니 그녀에게 남자는 믿을 수 없는 존재였을 것이다.
장 씨는 딸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딸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차가운 표정은 대답을 짐작하게 하였다.
장례식이 끝나고 며칠 후, 그러니까 오늘, 딸애가 장 씨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의 마지막을 함께 해 주어 고맙다고 했다. 장 씨는 울먹이며 다시 한번 딸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딸애가 말했다.
“이제 그만 미안해하셔도 돼요.”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장 씨가 늦은 시간에 모텔을 찾은 것은 잃었던 딸을 새로 얻은 것을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장 씨는 어깨를 들썩이며 모텔을 나갔다. 그게 장 씨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래도 나는 장 씨의 마지막 모습이 너무도 기쁘고 들뜬 마치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빈소에 향내가 가득했다. 나는 장 씨의 영정에 절을 하며 그의 향기에 대해 생각했다. 사람의 향기는 타인의 기억 속에 남는 것이다. 장 씨는 좋은 향기를 남기고 떠났다. 장 씨가 부러웠다. 나는 어떤 향기를 세상에 남길까, 문득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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