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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보식 Aug 02. 2020

< 길 위의 명상 >

10. 무심, 바라지 않는 마음_한라산둘레길 사려니오름입구~이승악



  10살의 나이에 소아급성림프구성 백혈병 진단을 받은 큰아이는 오랜 입원생활과 퇴원 후에도 계속되는 치료를 위해 사실상 초등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항암치료로 면역력이 급격히 떨어져 언제 어떤 경로로 병균과 바이러스에 감염될지 모르는 상황이라 아이의 외부 활동은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겨우 학교의 최소 출석요건을 맞추기에 급급했다. 아프기 전에는 무척 명랑하고 밝았던 아이였지만 친구들과의 단절로 인해 사회성이 급격히 저하되었을 뿐만 아니라 제대로 수업을 따라갈 수 없어 성적도 많이 떨어지면서, 점점 웃음을 잃고 자신감까지 오간데 없어져 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도 시간은 흘렀고 진단결과를 받아 들고부터 6년간, 아이는 아이대로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아빠인 나는 나대로 아이의 생존을 위해 나의 길을 찾아야 하는, 저마다 격변의 세월을 보냈다. 

  그러던 날들 중, 당시 아이와 나 둘 다 서울에 살고 있던 2009년 겨울, 나는 제주도로 모든 것을 정리해서 떠나야겠다고 아이에게 이야기를 전했다. 아무런 연고도 없지만 무작정 제주도로 이사를 가야겠다고, 뭘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지에 대한 대책이나 계획은 없지만, 아이를 살리는 길은 그것밖에 없다고 변명도 아닌 결정을 해버렸다. 그 일은 아이의 입장에서는 막무가내의 선전포고일 수밖에 없었다. 아이가 그해 봄, 그동안 함께 지낸던 엄마로부터 떠나와 먼 등하굣길을 마다하지 않은 채 아빠랑 살게 되어 기뻐하고 있었는데, 느닷없는 아빠의 제주도 이사소식은 부모의 이혼에 이은 또 다른 청천벽력이었다. 더구나 서울집 근처 걸어 다닐만한 곳에 위치한 역사가 오래된 유서 깊은 고등학교로 이미 입학 배정까지 받아 놓은 터에, 나는 제주도로 내려가는 것이 아이를 살리는 길이라고 믿는다고 일방적으로 통고한 것이다. 다만 나는 큰아이와 함께 가고 싶지만 만약 아이가 원치 않으면 서울의 친척집에서 학교를 다녀도 좋다고 설명하면서 아이가 스스로 제주도로 함께 내려갈지 여부를 선택하고 결정하게 했다. 제주도로 이사를 가게 되면 제주시나 서귀포 시내가 아니라 인적조차 뜸한 제주도 서남쪽 최남단 모슬포 쪽으로 이사를 갈 거라고, 그리고 그 동네엔 고등학교가 하나 있지만 대학입학률이 좋은 곳은 아니라고 미리 알아본 정보도 알려 주었다. 물론 제주시내의 대학진학률이 좋다는 학교로 입학하는 게 불가능하진 않았지만 나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아이의 등하교를 위해 픽업해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아이에게도 버스로 1시간이 넘는 통학은 당시 건강상태로는 무리일 거라고 함께 귀띔해 주었다. 10년 만에 아빠와 함께 살기 위해 엄마로부터 떨어져 나온 아이에게, 집 앞 서울의 학교 배정을 받아두고 대학진학조차 불분명한 제주도 모슬포란 외딴곳으로 이사를 갈지 말지를 스스로의 의견을 존중한다면서 결정하라고 하는 아빠의 무심함과 무책임함에 아이는 그때 그저 눈물만 흘렸다. 아빠를 따라가는 것 말고 무슨 다른 선택권이 있을 수 있냐며 체념하며 말없이 따라주었던 아이 모습이, 12월 추운 겨울날 밤 작은 차에 짐을 한가득 싣고 전라남도 고흥의 녹동항으로 차를 달려 다음날 아침 제주도행 페리선에 오르던 기억과 함께 지금도 선명하다. 하지만 그렇게 충분히 짐작되는 아이의 생각과는 달리 아이를 살릴 유일한 방법은 내안의 목소리를 따라 내 모든 것을 전부 던져보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게 나에게 보이는, 그래서 가야 한다고 여겨지는 유일한 길이었다. 왜 이렇게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나에게 생기는 것인지, 도무지 합리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않은 혼돈상태에서의 선택과 결정들이 요구되었지만, 정상적으로 보이는 다른 판단들은 아이의 생명을 지켜야 한다는 무의식적인 부모의 본능 앞에 무기력했다. 그 당시 나에겐 내안의 목소리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와 같았다. 북소리를 들으면 그것으로 여행을 떠나는 충분한 이유가 되었던 것처럼, 나도 내안의 목소리를 듣자 또 다른 여행을 시작한 것이다.     


  제주도로 내려온 때로부터 다시 10여년이 넘게 흘렀다. 백혈병 진단 후 꾸준한 치료로 재발되진 않았지만 언제 건강이 악화될지 한 치 앞을 몰라 늘 조마조마했던 아이에게 전혀 뜻밖의 일들이 그 이후 제주도에서 벌어졌다. 

  우선, 제주도로 내려온 이후 아이는 고등학교 3년간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30~40분 거리의 학교를 혼자서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다녀야 했다. 오랜 입원생활과 외부활동이 거의 없었던 관계로 바닥이었던 체력과 면역력이 그렇게 조금씩 단련되면서 건강을 회복해가는 것이 눈에 띄게 확연해졌다. 그리고, 아빠에게 이미 이야기는 들은 터였지만 고등학교 급우들은 애초에 대학진학에 목숨을 건 서울의 친구들과는 전혀 달랐다. 수업시간에도 공부보단 그저 떠들고 놀기 바빴고, 하교 후 학원은커녕 야간자율학습도 다르지 않았다. 아이는 서울에서 본 친구들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친구들을 보면서 이렇게 지내면 아무도 대학을 못 갈 텐데 하고 겁이 났다. 한국에선 대학을 못 가면 미래가 없는 곳인데 자기 자신도 문제였지만 친구들이 걱정이 되었다. 서울에선 자신감을 뽐내던 건강하고 당찬 친구들에게 치여 자존감마저 바닥을 치던 아이가, 오히려 여기 제주도에선 주위 친구들을 걱정해 이런저런 서울 친구들 이야기까지 들려주며 함께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오지랖을 부릴 지경이 되었다. 그러던 중 2학년이 되자 그런 아이의 변화를 지켜보던 담임 선생님이 아이에게 반장을 한번 맡아 해보라고 했다. 아이는 조금씩 잃었던 자신감을 회복해갔으며 친구들과 밝게 어울려 지내는 모습이 잦아졌다. 또 다른 한 가지로는, 나는 그저 아이가 건강하기만을 바라는 바람 하나뿐이었기에 공부나 대학진학 따위의 일들은 모두 호사가들만 누리는 사치였으므로 아이에게 한 번도 공부하라고 이야기한 적이 없는데 (기억에 정말 단 한 번도 없다.), 제주도로 이사 오고 나서 1년쯤 후 아이에게 친구들이 생기기 전까지 아이는 저녁이면 가로등 하나 켜지지 않는 아무 데도 갈 곳 없는 외딴 마을에서 혼자 컴퓨터게임 이외에 할 일이 없었다. 그러다 고2로 올라가면서 친구들이 생기고 친구들과 함께 미래를 걱정하게 되면서 스스로 자신의 앞날을 꾸려가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에게도 설명하지 못할 나만의 이유를 명분으로 아이를 살려야 한다며 제주도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니느라 정작 아이를 돌볼 겨를이 없었기에, 아이는 스스로의 미래를 자기 자신을 책임지고 챙겨야 한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달았다. 중3 졸업 무렵땐 아빠를 따라 제주도행을 함께하는 것 이외엔 실질적인 대안이 없어 제주도로 내려올 수밖에 없었지만 고3이 되면서 아이의 생각이 달라졌다. 아이에겐 고등학교 3년간이면 아빠와 함께하는 생활기간으로 충분하다고 여겼다. 제주도는 공기도 맑고 건강해져서 좋았지만, 도시의 소음과 시끌벅적함이 아이에겐 여전히 그리웠다. 태어나고 자라난 서울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대학입학이란 방법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혼자 교육방송으로 틈틈이 공부하며 스스로 입시준비를 해갔다. 고등학교 졸업식을 마치고 다시 아이는 서울의 한 대학교의 입학식을 위해 올라갔다. 제주도에서 마지못해 시작한 3년이란 세월은 아이에게 그런 시간이었다.      

  제주도로 내려오던 고흥녹동-제주간 여객선에서 뺨을 때리던 추운 바닷바람을 맞을 땐 백만분의 일도 꿈꾸지 못했던 일들이 벌어졌다. 아이가 건강을 회복하게 될 거라곤, 아이가 친구들과 어울리며 자신감을 되찾을 거라곤, 아이가 스스로 공부해 대학을 가게 될 거라곤, 그런 기대들은 생각조차 아이에게 부담이 될까 조심스러워하던 일이었다. 인간의 예측이란 게 얼마나 우매할 수 있는지, 머리를 굴리고 온갖 이성적인 대비를 한다고 가능한 일이 결코 아니었다. 생명의 불꽃이 시들지 않기만을 바라는 것 이외에는 그 무엇도 바라지 않았으며 오히려 오로지 그것만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뒤로한 채 제주도로 내려왔어야 했는데, 가장 바라고 또 바라던 아이의 건강과 함께 아이 스스로의 홀로서기가 꿈처럼 이루어져 갔다. 그제야 지옥을 헤매며 혼란스럽던 마음에 한줄기 빛이 평온함과 감사함으로 잦아들었다. 내안의 목소리가 나를 어디로 어떻게 인도하며 안내해 왔는지, 그를 계기로 나는 내가 만들어낸 수많은 감정들의 막연한 불안과 공포의 덫에서 자유로워지는 방법을 길 위에서 익혀 나갔다. 그리고 세상에서의 공부와 그 위에 터 잡은 여러 경력으로 쌓인 합리적인 이성과 판단력이라는 보이지 않는 덫에서도 조금씩 자유로워지기로 마음먹었다. 항상 옳다고 믿었던 나의 감정과, 나의 생각과, 나의 선택과 결정이 오히려 나를 더욱 옭죄었던 운명의 그물망에서, 간신히 자유로워질 수 있는 길이 내안의 목소리를 따라 보다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걷는 길 위에서 내안의 목소리를 따라 새롭게 살 수 있는 길들이 시선 안으로 분명히 들어오기 시작했다.    

     

***     


아홉 번째길한라산둘레길 수악길코스 (사려니오름입구~이승악     

 

  제주도 해안가에는 제주올레길이 있듯이, 한라산 숲에는 한라산둘레길이 있다. 한라산둘레길은 사계절 아름답다. 봄날의 초록향연과, 여름날의 시원함과, 가을날의 은은함과, 겨울날의 호젓함이 늘 한결같고 시시때때로 또 색다르다. 한라산둘레길은 해발 600~800m의 옛날 일제 강점기 병참로와 임도 그리고 표고버섯재배지 운송로를 연결하여 한라산의 환상고리처럼 연결한 숲길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원모양의 전체 구간 중 동쪽 사려니숲길에서 시작해 서쪽 천아숲길까지 약60km 정도 연결된 상태인데, 이 길 중에 이번엔 사려니숲길이 끝나는 사려니오름입구에서부터 돈내코탐방로까지 연결된 수악길코스 중 길이 편안하고 숲이 아름다운 초반부 길을 택했다.  

  교통이 불편해서인지 인적이 드문 구간이지만 그래서 더욱 이 길이 걷는 일을 즐기는 도보여행객들에겐 쉽게 만나기 어려운 소중한 숲길이다. 숲이 길을 품은 곳들의 면면들이 다양하고 아름답다. 건천이 흐르는 사려니오름 입구쪽에선 동백나무가 가득하고 본격적으로 한라산둘레길로 접어들면서부터는 오래전 인공조림해서 지금은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삼나무숲이 한참 이어진다. 그러다 이승악에 가까워지면서 서어나무와 다양한 참나무 수종들의 하늘로 오르는 줄기의 곡선들이 달라지며 분위기를 새롭게 한다. 도시 빌딩숲 사이에서는 만날 수 없는 오만가지의 곡선들과, 도시의 공원에서는 접할 수 없는 오만가지의 초록색들이 길 위로 접어든 이들에게 처음엔 경이로움을 그리고 한참 후엔 말할 수 없는 평안함을 준다.   

   

  사람의 혈액 속엔 헤모글로빈이 있고 여기에 철성분이 들어 있어 호흡을 통해 받아들인 산소를 만나게 되면 철의 산화작용 때문에 피가 붉은 색을 띈다. 오징어에는 구리성분이 있어 산소와 결합하면 피가 푸른 색깔로 보이는 것처럼, 혈액이 산소를 만나면 산화과정으로 녹이 슬게 되는데 사람의 경우는 그게 철 성분 때문에 붉은 색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붉은색이나 갈색은 사라지는 시간의 색깔이다. 태어나고 성장하는 시기의 색깔은 노란색이거나 초록빛을 띄고, 가장 절정에 이르면 푸르다고 할 만큼 짙은 녹색에 다다르며, 이후로는 붉은 색으로 갈색으로 저마다의 개성에 따라 늙어가서, 마침내 잎을 떨구는 순간에 이른다. 그래서인지 한라산의 숲길은 도시의 빌딩들이 주는 인위적인 직선들의 연속과 자신의 삶을 불태워 온통 뜨겁고 열정적인 에너지로 살아내야 하는 붉은 색깔로 가득한 것과 정반대인 것들로 가득하다. 직선대신 곡선들이, 붉은색대신 초록빛들이, 거기에 있어 처음엔 생경하고 경이롭다가 이내 편안해지게 되는 것은 선과 색이 주는 시간의 의미가 이곳엔 달라지기 때문일 것이다. 시작하는 시간들이 숲에선 곡선으로 초록색으로 있다. 그래서 낯선 이들은 처음엔 어디가 숲이고 어디가 길인지 구분이 되질 않다가, 마음속 불안함과 공포라는 생경한 감정이 사라지고, 도시의 합리적인 생각과 이성의 판단 작용들이 줄어들면서 그제야 숲이 품고 있던 길과 나무들과 풀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 찾아가는길 

    

서귀포시 1119번 산록도로로 자가 차량을 이용해 먼저 남원쓰레기매립장쪽으로 방향을 틀어 조금 들어가다 보면 사려니오름 입구로 향하는 길과 수악길이 이어지는 교차점이 나오는데, 여기서 왼쪽 계곡 숲길로 길을 잡으면 수악길코스가 시작된다. 수악길은 총 16.7km이지만 후반부는 돌길이 많으므로 출발점부터 시작해 이승악입구 주차장까지 약 6km 구간만 추천한다. 전체 길이가 길지 않고 편안한 숲길들로 이어져 있으니 이승악입구 주차장에서 반환점을 찍고 다시 수악길 출발점으로 되돌아가는 왕복코스도 좋겠다. 물론 일행 중 한 명이 도착지점에 미리 차를 이동해 주차하고 일행과 합류하는 편도코스를 선택할 수 있다. 혹은 이승악입구 주차장에서 일정을 마치거나 또는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가지 않고, 1119번 산록도로까지 약 2.5km 구간을 더 걸어내려 가서 편도일정을 마무리하는 방법도 있다. 시멘트 포장길이라 더운 날씨에는 권하지 않지만, 일대 전체가 소 방목장으로 날씨가 맑은 날엔 한라산과 어울려 기막힌 풍광을 선물하며 도보여행자들을 힘겨운 줄 모르고 걷게 한다.      

   

* 주위추천명소

     

- 서귀포 치유의 숲

서귀포 치유의 숲은 서귀포시가 제2산록도로 시오름 근처에 수년간 공을 들여 2016년에 탄생한 곳이다. 숲 치유 전문가들과 함께 꼼꼼한 해외답사와 연구를 통해 수없이 기획안을 수정 보완해서 만들어졌다. 한라산 숲에서의 치유가 어떻게 가능한지 그리고 얼마나 탁월한지, 숲 테라피스트의 안내에 따라 진행되는 3시간 산림치유프로그램에 잊지 말고 미리 예약을 해서 참여해보자. 참가비는 1인 2만원이며, 프로그램은 오전/오후 2회에 걸쳐 진행되는데 시작 전후에 미리 점심으로 차롱치유밥상(17,000원/1인)도 신청해서 먹어보자. 서귀포 치유의 숲 인근 마을 주민이 직접 챙겨준 정성스러운 제주 토속음식이 1년생 대나무로 엮어 만든 도시락(이걸 ‘차롱’이라 한다)에 정갈하고 푸짐하게 들어있다. (064-760-3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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