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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보식 Oct 04. 2020

< 길 위의 명상 >

12. 동적명상_한라산 영실~어리목



  나는 왜 걸을까. 처음부터 나는 운동하기 위한 방법으로 걷지는 않았다. 물론 한참이 지난 후 되돌아보니 걷고 나면 운동효과와 함께 기분전환효과 또한 분명히 있었다. 나는 생각하기 위해 걸었다고 해야겠다. 나를 가둔 지난 생각과 기억들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생각을 얻기 위해 걸었다. 일상의 자리에선 새로운 생각으로 탈출하는 길이 보이지 않았고 그곳에 있는 동안은 끝없이 혼란만 가중되었으므로 그 환경으로 벗어 나와 자연으로 들어가 지속적인 그리고 반복적인 걷기로 더 이상 지난 생각과 기억들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수시로 스멀스멀 나의 배꼽 위로 올라와 감정과 생각에 닿지 못하도록 다잡아 단속하는 일로서의 걷기를 거듭했다. 그런 걷기가 계속 이어지면서 몸에 익숙해지자 그때부턴 생각을 해야 할 때면 그것도 중요한 결정과 선택을 해야 할 때마다 일상의 공간과 일상의 사람들 사이에서 벗어 나와 낯선 자연으로 갔다. 아무런 색깔도 소음도 방해도 없는 곳에서 모든 지난 생각과 기억들을 지우고 그곳에 갇혀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하는 굳어버린 나의 성(城)에서 탈출해 나와 마음껏 미래를 위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도록 매번 ‘지금’에만 집중할 수 있는 자연으로 들어가 걷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에겐 걷기가 명상적인 것이며, 한편 명상적이나 가만히 앉아서 하는 것이 아니므로 ‘동적명상’이 되었다.      

    

  나의 구체적인 그리고 실존하는 몸속 세포 사이사이에 수십 년간 배인 게으름과 온갖 욕구들과 기억들과 상처들과 자책감과 죄책감과 상실감과 우울감들이 옭아매어놓은 거대한 틀을 벗어나서 새로운 시작이 가능하기 위한 태어남의 순간으로 다시 돌아가야 했다. 생각을 바꾸고 싶었고 나의 감정을 바꾸고 싶었고 나의 삶을 바꾸고 싶었다. 계속되는 걷기를 통해 한참이 지나자 몸이 지난 스스로의 의사를 버리고 나의 의지에 이끌려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나의 존재를 증명할 도구인 몸이 나의 의사와 분리되어 존재했던 것에서 나의 의사에 따라 그간의 시차와 간극을 좁혀가며 점점 생각과 행동이 하나가 되어갔다. 그렇게 걷기는 나를 바꾸는 수련이 되었고, 수련은 내게 끝없이 반복하는 것을 의미했다. 반복해서 계속한다는 것의 의미는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위해 정성을 들인다는 뜻이기도 하다. 반복하는 것이어서 특별한 것이 아닌, 일상의 것으로 들어가 아무런 감정과 생각의 출렁임이 없는 순간에 평상심이 찾아와 주었다. 그렇게 만난 평상심에서 새로운 감정과 새로운 생각의 출발이 가능해졌다. 그렇게 걷기로부터 나를 옭아매 온 과거로부터의 해방이 시작되었고 미래를 향한 새로운 상상력이 춤을 출수 있었다. 걷기는 그러기 위한 준비운동이었다. 새로운 삶을 창조하기 위한 상상력의 재가동을 위한 리셋이었다. 그렇게 새로운 출발 내지 창조를 위한 상상력의 시작은 기존의 틀을 벗어난다는 것이다. 나의 몸의 기억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고 여태껏 나를 지배한 탐욕스러운 이데올로기와 그로부터 비롯된 영혼을 말살시키는 이기적인 사회시스템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순히 다른 대체적인 이데올로기나 시스템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틀에선 불가능했던 새로운 시각을 얻고 전혀 다른 차원의 삶으로 진입한다는 것이다. 편협되고 편향적인 사유로부터 벗어 나와 정(正)의 반대편에 있는 반(反)을 볼 수 있게 하고 마침내 합(合)의 길을 발견하기 위한 시작이 거기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의 새로운 시작, 내 삶의 주체적인 공부와 성찰의 시작이 ‘자연에서의 걷기’라는 동적명상으로 가능했다.    

      

  다른 시선과 다른 관점의 획득을 위한 낯선 곳으로의 이동, 이것이 여행의 목적이자 결과이다. 여행은 먼 곳으로의 이동을 전제로 한 것이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익숙한 장소에서 떠나가는 이동 자체에 더욱 방점이 있고, 그 이동의 핵심적인 역할은 몸을 움직여 새로운 곳으로 나아간다는 뜻이며, 여기에 필수적으로 동반되는 것이 걷기이다. 몸의 이동을 통한 새로운 시선의 확보, 그러므로 걷기는 여행의 전제조건이며, 여행은 거리와 상관없이 평소 생활반경의 주거지에서 떠나가는 집과 사무실로 대변되는 일상의 생활반경으로부터의 탈출을 아우른다. 여기서 익숙한 장소 또는 생활반경은 선과 악, 남과 여, 옳고 그름으로 대별되는 분리의 세계를 의미한다. 여행은 그 이분법의 공간에서 빠져나와 제3의 시선과 그를 통한 또 다른 가능성을 만나는 기회를 포착하는 적극적인 모험행위이다. 내게 부여된 삶은 내가 바라던 옳고 그름의 세계로 선악의 세계로 명백히 구분되는 이분법의 세상이 아니었다. 나의 몸과 욕구가 동물이며 감정인 동시에 나의 생각과 마음이 신과 이성의 것이듯 끝없이 혼재되고 혼돈된, 이것과 저것이 뒤섞이고 무질서하게 출몰하는 곳 자체가 내 몸이고 나의 삶이고 이 세상이고 현재의 지구라는 구체적인 시공간의 특성이라는 사실을, 걷기를 통해 이제 더 이상 아무런 저항 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그 혼돈의 상황에서 인간에게 주어진 것은 오직 선택과 결정의 자유의지란 걸 알고, 살아있는 동안 끊임없이 반복되는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는 혼란 자체의 수용과 나와 상대 그리고 세상의 특수성을 헤아리는 마음, 즉 연민과 용서를 향해 계속해 나아가기로 한 마음가짐 하나를 얻게 된다. 헤아리고 받아들이며 그 가운데 나의 작은 실천으로 수없이 조화와 균형의 방향으로 삶의 항로를 조정해가는 것, 그것이 삶이라는 것을 알기 위해 지난한 삶의 여정을 지내왔다. 지금까지 이해할 수 없었던 혼돈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작했던, 있는 그대로의 자연에서의 걷기를 통한 동적명상으로, 이제 혼돈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있는 그대로 수용하며 그 혼돈의 뒷면조차 헤아려 혼돈 속의 다른 모든 이들에게까지 연민을 품고, 나아가 스스로 작게나마 움직여 실천하고 행동하는 사랑의 실천으로서의 새로운 삶을 꾸려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새로운 삶의 문 앞에서 스치듯 지나가는 떠오른 생각들을 잡아 지금껏 분리된 내 몸과 마음과 영혼의 조율과 연결을 위해 이제는 가만히 정좌하고 자리에 앉아 깊은 호흡으로 하는 또 다른 명상에 잠기고 싶다. 제대로인 명상을 하기 위해 정리와 준비기간으로 지난 10여 년간을 헤매며 걸어온 길들이 아련하다.

      

***     


열한 번째 길한라산 (영실~어리목)     


  나는 늘 높은 시야를 확보하고 싶었다. 지금까지의 시야에서는 도저히 확보되지 않았던, 그래서 혹시 내가 보지 못했을 장벽 너머의 무언가가 없는지를 확인하고 싶었다. 그 너머에 무언가가 있다면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 원래 내가 있던 곳이 아닌 새로운 그곳으로 이동해 다시 현실의 세상으로 내려가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했고 그런 다음 다시 새로운 시작으로 내려가야 했다. 그 모든 것의 시작이 한걸음 한걸음의 움직임인 걷기로만 가능했다. 내게 걷는다는 것은 새로운 시선의 확보를 위한 새로운 시공간의 이동을 위한 전제였다. 그럴 때마다 해수면고도인 모슬포 바닷가 마을에서 몸을 일으켜 가까운 제주의 오름을 올랐고, 이따금 제주도의 더 높은 곳을 찾아 해발 1280미터에서 시작하는 영실의 병풍바위를 지나 해발 1700미터의 한라산 윗세오름을 찾았다.  

        

  백록담을 제외하고 접근 가능한 한라산의 가장 높은 곳이 해발 1700미터에 있는 윗세오름인데, 그곳으로 올라가는 방법은 세 가지 코스가 있다. 영실에서 출발하는 방법과 그 외에 어리목과 돈내코계곡에서 출발하는 방법이다. 각각의 코스마다 장단점이 있지만 영실휴게소에서 출발해 병풍바위를 지나고 윗세오름 대피소까지 올랐다가 어리목탐방로를 따라 어승생악 쪽으로 내려가는 코스를 추천한다. 우선 영실탐방로를 시작하는 것이 초반부터 1시간가량 급하게 계단길을 따라가야 하는 부담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오르는 내내 여행객을 압도하는 병풍바위를 바라보거나 아니면 쉬는 종종 걸어온 길을 뒤돌아 제주도 남서쪽과 그 앞바다 전체를 관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어승생악 입구 또는 돈내코에서 출발해 영실탐방로로 하산하는 방법도 있겠으나 급한 내리막 계단길로 시선과 신경을 빼앗기는 것보다 오르막으로 이 길을 택하는 것이 몇 번의 경험을 통해 보다 더 현명하다는 생각이다.      

  영실에서 급한 계단길을 다 올라 윗세오름 고원길에 당도하면 툭 트인 공간 저 멀리 백록담의 서사면이 우뚝 솟아있다. 윗세오름대피소에 이르기 전에 왼쪽으로 작은 윗세오름 전망대가 있는데 다리가 팍팍해도 5분만 더 발품을 팔아 전망대까지 올라가 보자. 가려져 있던 제주도의 서북쪽이 환하게 열리며, 어쩌면 시계가 좋은 날 전라남도 땅끝 마을과 그 앞바다의 수많은 섬들이 펼쳐지는 장관을 경험할 수 있다. 윗세오름대피소엔 대피소와 화장실밖에 없으므로 요깃거리와 간식등을 챙겨야 한다. 어떤 탐방로를 이용하든지 오후 2시 전에 입산을 시작해야 하므로 가급적 오전에 출발해서 간단한 식사를 준비해 윗세오름대피소 너른 데크위에서 한라산의 풍광을 만끽하며 점심을 들고 잠시 쉬었다 하산하는 것을 권하고 싶다. 그리고 날씨가 수시로 바뀌므로 항상 따뜻한 물과 함께 바람막이옷/우산/아이젠 등 계절에 따라 준비물을 잘 챙겨야 한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음식찌꺼기나 쓰레기는 가지고 간 가방에 반드시 다시 넣어 들고 내려와야 함을 잊지 말자. 제주도 전체가 그렇지만 한라산 곳곳이 버려진 쓰레기로 신음을 앓고 있다.         


* 찾아가는길   

  

출발점인 영실휴게소에 가려면 버스를 이용할 경우 제주시외버스터미널이나 중문국제컨벤션센터에서 240번 버스를 이용해 영실주차장 매표소에서 일단 하차해서 영실휴게소까지 내처 약 3km 정도 걸어 올라야 한다. 개인차량을 이용하는 분은 차량으로 주차장 매표소를 지나 출발점인 영실휴게소까지 진입할 수 있으니 참고하자. 코스는 출발점으로 되돌아오거나 아니면 어승생악 입구 또는 돈내코로 하산해 그곳에서 택시 또는 버스를 타고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방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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