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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보식 Dec 04. 2020

< 길 위의 명상 >

16. 나의 꿈, 나의 삶_곶자왈 교래자연휴양림 오름산책길



  군더더기가 아닌 삶을 살고 싶다. 잉여인 삶보다 비참한 게 있을까. 있어도 되고 없으면 더욱 좋은 존재보다 끔찍한 게 있을까. 뭐든 너무 많아 문제인 세상에 나조차도 넘치는 중복의 한 부분으로 살기는 참으로 죽기보다 싫다. 드넓은 우주에서 아무리 작은 존재일망정 나란 존재가 태어난 필연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누군가와의 존재 위에 겹치지 않고 나만의 자리가 있을 거라고 믿는다. 무엇을 놓치고 살았을까, 무엇 때문에 그 자리를 찾지 못했을까, 내가 아니면 안 되는 그 자리는 어디에 있을까, 혼자여도 결코 외롭지 않을 나만의 그 자리는 어디일까. 살아오는 동안 나의 지적 능력 내지 학습능력을 온전히 지금의 사회 시스템에 적응하는데 쏟아 부었다. 주어진 것을 의심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모두 습득해서 결코 시시비비를 가리거나 딴죽 걸지 않는 선량한 사람으로 살았다. 그곳에 적응해 내는 것이 주어진 책임이라고 간주했다. 하지만 그런 나의 생각은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전면적으로 수정되어야만 했다. 비록 그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데에 이르기까지 혹독한 대가를 치렀지만, 그것을 알기 위해서라면 그 정도의 고초를 겪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던 것 같다.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알기 위해서, 그 아니었던 삶을 나의 목표로 삼고 직접 경험하고 부딪혀 보는 것 이상의 강력하고도 확실한 방법이 있을까. 그러므로 어쩌면 내가 태어난 이유는 그리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방향은 아닌 것을 철저히 부딪쳐 알게 된 다음에 그 아닌 것의 대척점에 있는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을 발견함으로써 아님과 그 반대 사이의 어느 곳에 있을 나만의 균형점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런 다음, 지금까지와 전혀 다르게 살아보기라는 과정을 거쳐 나만의 균형점을 발견하는 전 과정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남겨 나와 같은 꿈을 꾸고 용기를 내고자 하는 이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어 나누는 것이 어쩌면 나에게 주어진 삶의 책임이 아닐까. 인간이 다다르기 어려운 극지방이나 우주의 어느 행성을 마침내 정복해낸 아문센이나 암스트롱과 같은 스타 탐험가가 아닌, 그들의 모험의 여정에 함께하며 그 곁에서 모험의 모든 과정들을 기록해서 전하는 어느 이야기꾼의 역할이 나에게 부여된 존재의 이유가 아닐까. 그런 생각들이 이어진다.

  남들과 다르기가 어려운 세상에 다르다는 것처럼 부담스러운 시도가 있을까만 그래도 그렇게 감행하게 된 데에는 그렇게 살지 못한 무엇에 대한 회한이 얼마나 클지를 앞서 예감할 수 있는 나만의 감각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내겐 삶에 있어서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마다 그 기준이 되어주는 좌표가 있는데, 내가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될 때 지금 현재의 결정을 되돌아보아 후회하거나 미련을 갖지 않는 쪽으로 현재의 방향을 잡는다는 것이다. 언젠가 일지 모르지만 필연일 죽음의 순간에 결코 후회 내지 미련이 없도록 삶의 행보 마디마디에서 절대적인 선택 기준을 삼는다는 의미이다. 그런 나만의 기준으로 인해 매 결정과 선택들이 적절한 판단인지 확실하지 않았기에 고통스럽긴 했지만, 내안의 목소리가 인도해왔던 것처럼 죽음의 순간에서 바라본 후회와 미련이 없는 삶의 방향으로 나의 전부를 던지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랬기에 결정의 과정마다에서 우유부단함이 컸던 것은 결정이 끝나고 나서의 결코 번복되지 않는다는 것과 동일한 무게의 의미였다. 여하튼 양극단을 모두 경험하는 것, 즉 이 판단의 기준과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일어나는 다른 판단의 맞이함으로 마침내 찾아내야 하는 균형점에로의 열망이 나의 삶을 이끌어온 에너지라고 할까, 기꺼이 다른 삶을 살아보는 시간을 맞이하는 것으로 영혼의 방향을 맞추게 되었다. 그렇게 나만의 우연성 짓기 또는 일률적인 흐름에서 벗어나 이종 내지 변종이 되어보기 등의 새로운 길을 찾아보는 부딪침 자체를 부단히 시도해보는 것, 그럼으로써 다른 길이 가능하다는 것을, 나아가 어쩌면 훨씬 바람직한 새로운 방향일 수도 있음을 직접 체험하고, 세상의 하나인 흐름에 변주곡 하나를 덧붙이는 것을 내 존재의 차원에서 증명해 보이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삶의 자세이자 목표일지 모른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런 시간을 통해 대부분 의식 없는 가운데 치우친 삶의 한 방향으로만 쏠려진 획일화된 문명의 시대에,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의 방향이 존재할 수 있으며 또한 그 방향이 어쩌면 문명의 다른 균형점으로 이어진 작은 골목길이 되어 누군가를 숨 쉬게 하고 희망의 물꼬를 틔우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꿈을 꾸게 된다.  

    

***   

  

열다섯 번째 길곶자왈 (교래자연휴양림 오름산책길     


  이번 길부터 마지막 구간까지는 현실 세계에서 대부분의 사람들과 다른 방향의 길을 선택하고 결정해서 살아가겠다는 다짐과 함께, 제주올레 바당길과 한라산숲길을 지나, 코로나바이러스로 통째로 선물 받은 두 번 다시없을 시간동안 제주의 보고인 곶자왈과 오름들을 하나하나 걸으며 앞으로 나는 무엇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하는 시간으로 삼기로 했다. 


  그 첫번째는 교래자연휴양림속 큰지그리오름까지 편도 4km 구간을 왕복하는 곶자왈 오름산책로다. 교래자연휴양림내 오름산책길은 초반 2.1km까지는 천혜의 곶자왈 구간이고, 이어 나머지 1.9km 구간에는 편백나무숲길이 펼쳐지며 큰지그리오름까지 이어진 오름등반로로 구성되어 있다. 곶자왈은 덤불숲을 뜻하는 ‘곶’과 돌무더기 밭을 뜻하는 ‘자왈’의 합성된 제주어로, 화산 분화시 기생화산인 오름으로부터 용암이 흘러나와 굳어진 크고 작은 암괴가 요철 지형을 이루고 있고, 지하수를 내부에 품고 있어 사시사철 푸른 이끼류와 양치식물(고사리)들과 함께 다양한 북방한계 식물과 남방한계 식물이 공존하는 자연숲 지역으로 제주도의 허파 역할을 하고 있는 천연의 보고다. 

  오름산책길로 들어서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 <원령공주>의 탄생의 배경이 되었던 일본 규슈 남단의 야쿠시마를 방불할 만큼 자연 속 원시림 그 자체를 경험할 수 있는 곶자왈의 진수를 맛보게 된다. 곶자왈의 울퉁불퉁한 돌길을 걷는다는 게 자칫 잘못하면 발목을 삐끗하거나 넘어져 안전사고가 날 수 있어 꽤나 신경을 쓰고 걸어야 하는 만큼 제주올레나 한라산둘레길의 숲길보다 훨씬 느리고 천천히 걸을 수밖에 없는 곳이다. 그래서 한걸음 한걸음 조심스레 디뎌야 하는데, 발아래 펼쳐지는 온갖 식물들의 향연을 보고 있자면 더욱 걸음이 더딜 수밖에 없다.      

  넋을 놓고 느릿느릿 곶자왈의 비경 속을 걷다 보면 어느덧 잡목 숲이 옅어지면서 반환점인 큰지그리오름을 앞두고 편백나무숲을 만나게 된다. 큰지그리오름을 오르기 전에 이곳에서 편백나무향에 취해 한동안 쉬었다 가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거리가 멀다 하여 이곳까지 들어오는 이가 드물어, 곶자왈 원시림을 지나 이곳 편백나무숲 아래에서의 잠깐의 휴식은 도시인들에게 상상할 수 없는 고요함과 편안함 그리고 생명의 신성함까지 한꺼번에 선물처럼 마주하게 되는 숲 속의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 차가운 계절이라면 따뜻한 차를 보온병에 담아 몸을 녹이면서 충분한 휴식을 취한 다음 이제 큰지그리오름으로 올라가면 여느 오름과 마찬가지로 15~20분 남짓 만에 정상에 도착한다. 그곳에 서서 교래자연휴양림속 곶자왈 오름산책로를 눈 아래 바라보며 그 옆으로 제주돌문화공원의 현재와 미래를 위한 장대한 청사진을 한눈으로 만나 보자. 돌문화공원에 담고자 한 제주의 삼다(돌/바람/여인)를 떠올려 보면서, 바람을 맞으며 돌밭을 지나온 나의 옛길과 함께 설문대할망의 사랑을 품고 다시 가야할 나의 앞길을 양쪽 모두 가만히 떠올려 보게 된다. 제주의 거센 바람조차 파고들지 못하는 곶자왈 숲을 걷노라면, 울퉁불퉁 걷는 이를 힘들게 하는 거친 용암바위들은 더딘 걸음으로 자연을 천천히 걸으며 그 속의 생명들과 깊은 교감을 나눠보라고 설문대할망의 사랑이 일부러 빚어놓은 예술품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곤 한다. 곶자왈 숲길을 느리게 걸으면 걸을수록 숲이 간직한 비밀들이 하나둘 더 많이 눈으로 들어와 신비의 탄성을 지르게 하니까 말이다. 곶자왈은 그래서 더욱 넉넉한 시간으로 여유 있게 걸어야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 찾아가는길  

   

교래자연휴양림은 제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남조로행 231번 간선버스를 탁고 40분 정도면 도착하는 곳이다. 아직 제주돌문화공원을 들러보지 못했다면 오전은 교래자연휴양림 오름산책로를 걷고 오후엔 들러서 제주의 자연과 문화와 예술을 만나보길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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