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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보식 Nov 15. 2020

< 길 위의 명상>

15. 생활습관_한라산숲 숯모르편백숲길



  근대라는 역사의 장이 시작된 18세기 산업혁명 이전엔 인간에게 따로 운동이란 개념이 없었다. 온몸을 부려 노동을 해야 먹고사는 생존의 문제가 겨우 해결되었으므로, 삶이 곧 운동이었다. 시간이 흘러 21세기 호모데우스의 역사 주기 입구로 들어서자 밤낮이 따로 없고, 쉬는 집과 일하는 사무실로 쪼개져 생활이 분리되어 있으며, 먹고 살기 위해 몸이 아닌 머리만 써도 되는 시대를 산다. 환경은 넘치게 풍요로워졌지만 정작 몸과 마음은 건강을 잃고 여기저기 고통으로 아우성이다. 불과 19세기 초반으로만 돌아가도 평균수명이 45세 정도였다고 하니 100년 남짓한 세월 동안 평균수명이 70~80세를 웃도는 고령화시대를 살면서 그간 과학의 도움 또한 얼마나 컸는지 분명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이의 바람인 건강을 위해선 몸은 산업혁명으로 야기된 물질과학문명 이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때의 습관, 그때의 일상으로.

  몇 년 전 하버드 의대에서 주최한 생활습관의학(Lifestyle Medicine) 워크숍에 참가한 적이 있다. 로봇수술이 사람을 대체하고 인공지능 IBM 왓슨의 진단이 사람의 그것을 능가하는 시절에, 왜 하버드의대는 예방의학을 넘어 2008년경부터는 본격적으로 생활습관의학 분야로 관심을 옮기기 시작했는지, 그리고 왜 전 세계에서 수백 명의 의료전문가들이 며칠간의 생활습관의학 워크숍 참가를 위해 모여드는지 그 이유가 궁금했는데 막상 가서보니 이유는 간단했다. 진단법이 발달해 수많은 병들의 원인과 치료법을 찾아내고 수술과 약 처방 등의 온갖 중재법으로 인류의 수명은 획기적으로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과학의 발전은 그곳에서 멈추지 않고 오히려 최선의 건강법과 치료법은 최첨단의 의료 및 제약 기술에만 있는 게 아니라 일상의 균형 잡힌 생활습관과 가장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인간의 생명과 건강에 해로우니 과학을 외면하고 이제부터 원시시대의 삶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라, 과학의 발전도상에서 최근 수많은 연구결과로 확인된 결과, 우리의 건강한 삶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일상의 생활습관이라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특히 주요 연사로 초청되어 워크숍의 대문을 열었던 캘리포니아대학(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의 딘 오니시 박사가 제안한 라이프스타일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운동하라. (비건)채식하라. 스트레스관리를 위해 명상하라. 그리고 사랑으로 서로를 지지하는 관계를 유지하라.” 이렇게 딱 네 가지로, 결코 거창하거나 복잡하지 않고 아주 간단하고 명료했다. 그는 대학병원에서 미국 사망률 원인에서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심혈관질환으로 내방하는 수많은 환자들을 수십 년간 치료하면서, 사람은 위에서 언급한 네 가지의 심플한 생활습관을 이어가기만 해도 고통스러운 병세가 더 이상 악화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완전히 신체 장기가 손상되기 전이라면 아주 짧은 기간 내에서 다시 본래의 건강한 상태로 되돌아갈 수 있음을 증명해 보인 장본인으로 그 명성이 자자했다. 또한 오니시 박사는 빌 클린턴 대통령의 자문의를 맡아 동물성 단백질 위주의 식사를 즐겨 비만으로 심혈관질환의 위기에 처해 있던 대통령을 채식 위주의 식단으로 바꾸어 건강을 회복하게 한 것으로도 그 유명세가 대단했기에, 그런 소식이 멀리 한국의 변방 제주도에 사는 나에게까지 전해진 것이다. 오니시 박사가 제안한 4가지 생활습관은 익히 ‘블루존(Blue Zones)’으로 알려진 전 세계 최장수 지역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여 정리한 듯 거의 똑같이 겹친다. (* 블루존은 이탈리아 사르데냐 섬의 바르바지아 지역, 일본의 오키나와, 캘리포니아 주의 로마 린다 공동체, 코스타리카의 니코야 반도 등 세계적으로 공인된 장수 지역을 지칭하는 단어다.) 새삼 특별할 것도 없는 이미 알고 있었던 상식 같은 이야기를 나의 것으로 직접 체화시키기 위해 먼 이국의 땅을 찾아 직접 확인해야만 했다. 진리는 언제나 바로 곁에 있지만 한참을 먼 길을 돌아 출발점으로 되돌아온 다음에야 그 가치를 알아보는 게 또다시 아둔한 사람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인가 싶었다.     

  지금 이 자리에 오기까지의 삶의 흔적들을 하나하나 되짚어보니, 그동안 나의 존재 이유와 삶의 방향을 발견하기 위한 최소한의 전제조건을 갖추게 할 목적으로 무엇보다 건강을 우선 되찾아야 함을 내안의 목소리는 그렇게 쉼 없이 전하며 안내하고 있었다. 그간 내안의 목소리가 전해준 삶의 자세에 대한 큰 줄기의 이야기들을 정리해보면 대략 아래와 같았다. 멀리 돌아온 길이지만 이제는 내안의 목소리를 점점 더 명확하고 분명하게 느낄 수 있게 되었다. 


@ 물질문명이 강요하는 획일적인 삶의 공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연과 가까이 하는 삶으로 환경을 바꾼다.

@ 자연의 길을 걷는 동적 명상과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도시생활에서 길들여진 오랜 습관들과 기억들을 몸과 마음과 영혼에서 지우고 비운다.

@ 오래 그리고 꾸준히 길을 걷고 채식을 하며 심신의 건강을 회복함으로써, 물질은 소박하게 마음은 넉넉하게 사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체득한다.     

@ 세상은 이것과 저것으로 구별되지 않는 양극단 사이에서 끝없이 변화하는 그 무엇이다라는 것을 겸허히 인정하고 수용한다.     

@ 세상을 비관하며 도망가려는 나약함도 버리고, 세상을 송두리째 바꾸려는 헛된 욕심도 버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삶 하나를 본래 있어야 할 제 위치로 돌리는데 집중하며 최선을 다한다.

          

***     


열네 번째 길한라산숲 (숯모르편백숲길)         


  한라산숲길의 마지막 코스는 5.16도로 제주시 초입에 있는 한라생태숲에서 시작해 노루생태관찰원으로 이어지는 8km 구간의 숯모르편백숲길이다. '숯모르'는 제주말로 숯을 굽는 등성이라는 의미로, 한라산생태숲에서 시작해서 2.4km 지점에서 절물자연휴양림방향으로 꺾어 들어가 장생의 숲길과 일정 부분 겹쳐 걷다가 마지막 갈림길에서 노루생태관찰원으로 내려와 마무리되는 길로 이어진 코스다. 숯모르편백숲길은 한라산생태숲 구간의 초반부와, 셋개오리오름부터 시작되는 중반부, 그리고 장생의 숲길과 겹치는 종반부로 나눌 수 있는데, 각각 온난대림숲, 편백나무숲, 그리고 삼나무숲으로 그 모습을 달리하며 머체왓소롱콧길과 함께 길을 걸으며 한라산 숲의 향연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제주시에서 멀지 않아 시간이 넉넉지 않은 육지에서 온 지인들께 한라산의 아름다움을 선보이게 할 요량으로 이곳을 숲길 선물로 준비하여 함께 자주 걷는 길이기도 하다.     

  초반부 한라생태숲 내 구간은 여느 한라산둘레길 구간과 비슷한 온난대림 숲의 구조로 다양한 참나무과 나무들과 단풍나무과 나무들이 공존하며 가을산의 정점에 있다. 곳곳의 작은 계곡을 지날 때마다 다른 숲길에서는 볼 수 없는 다리들이 연이어 나오며 이국적인 해외 트로피컬 가든투어에 참가한 듯 또 다른 매력을 발견하며 행복한 산책을 이어갈 수 있는 곳이다. 출발점으로부터 2.9km 셋개오리오름에 이르는 동안은 11월 중순 깊은 가을 녘에도 바닥은 이끼류와 고사리가 여전히 초록빛을 잃지 않은 가운데 관목나무들은 종류마다 갈색으로 노란색으로 붉은색으로 물들어가며 가을의 절정을 함께 자아낸다. 하지만 셋개오리오름 정상을 지나자마자 펼쳐지는 편백나무숲은 전혀 다른 분위기의 숲길로 걷는 이를 반겨주는데, 제주시에서 멀지 않아 제주시민들의 발걸음이 잦은 치유의 공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편백나무숲에서 잠시 쉬었다 길을 재촉하면 한라산은 다시한번 삼나무숲으로 옷 단장을 하고 빽빽한 삼나무들 사이로 아침 햇빛이 쏟아져 내리는데 빛의 향연이 따로 없다. 자연이 연출하는 신비로움에 연신 걷는 이는 행복한 길이다. 임도사거리에서 노루생태관찰원 갈림길까지 1.4km는 장생의 숲길과 겹치는 삼나무숲 구간으로 이끼 가득한 원시림의 삼나무숲길을 연이어 걷는다. 얼마이지 않아 노루생태관찰원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을 만나게 되는데, 여기서 걷는 이의 체력에 따라 오른쪽 절물휴양림 장생의 숲길 입구 쪽으로 빠져 1km만 더 걷고 숲길을 마무리해도 좋고, 아니면 왼쪽 노루생태관찰원 방향으로 내처 길을 잡고 2.6km를 더 걸어 숯모르편백숲길을 완주해도 좋겠다.    

    

* 찾아가는길 

    

개인차량이 없을 경우, 출발점인 한라생태숲은 제주시 버스터미널에서 516 도로를 통해 한라생태숲 앞을 지나는 212번, 222번, 232번 버스를 타면 30~40분 정도 거리에 있다. 자가차량이 있다면 한라생태숲 내 주차장에 주차하고 숯모르편백숲길쪽으로 방향을 잡고 걷다 도착지점에 따라 노루생태관찰원이나 절물오름에서 마무리한 후 교래콜택시(064-727-0082)를 불러 다시 출발점으로 이동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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