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마지막 DJ(2)
1999년 1월
1년 정도의 시간 동안 다니던 고향 커피숍, 해가 넘어가며 DJ 아르바이트를 그만뒀다. 그리고 1999년 2월 학교 복학을 위해 고향에서 멀리 떠났다.
어느 봄이었다. 당시 그 지역에는 내놓으라 하는 유명한 음악전문감상실이 있었고 일요일 저녁마다 일일 DJ의 신청을 받았다. 일일 DJ를 잘해서 그곳 사장님이 마음에 들어 하면 되면 고정 DJ로 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도 했다. 일일 객원 활동이 곧 면접시험이 되는 셈이었다.
다행히 그곳 사장님께서 내가 진행한 일일 DJ 프로그램이 좋았는지 주말마다 파트타임으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음악 DJ를 하면서 좋은 추억도 많이 만들었지만 20년이 지난 지금도 이불킥을 하고 싶을 정도의 창피한 에피소드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저 그리울 뿐이다.
DJ를 2년 정도 하다 보니 어떤 내공이 생겼다. 새로운 음악을 찾는 직감 같은 것 말이다.
매주 감상실에서 곡을 틀다보면 알고 있는 레퍼토리가 다 떨어지는 일이 생긴다. 새로운 무엇인가를 틀어야 하는데...... 그럴 때는 DJ부스, 방안에 수북이 꽂혀있는 LP들 중 아무거나 하나 뽑는다. 그 아무거가 정말 대충 아무것이나 뽑는다는 뜻은 아니다. 몇 년 동안 DJ생활을 하다 보니 음반 제킷만 보더라도 대충 이 음악이 괜찮은지 감이 온다는 사실.
음반 제킷이 마음에 들면 음반 뒷면에 곡 리스트를 살펴본다.
'아 이곡이 가장 좋을 것 같은데?'
들어보지도 못한 곡이지만 곡 제목만 보고 나를 믿고 한번 틀어본다. 나의 직감을 믿고 LP에 바늘을 놓고 음악을 듣는 순간.
'어 이 곡 정말 대박인데?'
그렇게 찾은 곡들이 꽤 되었다.
그때 찾은 숨겨진 명곡을 소개하려고 한다.
첫 번째,
SKY LARK- I'll Have to Go Away(Saying Goodbye is not easy)
스카이락. 한국어로 종달새라는 귀여운 이름을 가진 이 밴드는 소울과 블루스에 기반을 둔 음악을 하는 그룹이다. "Wildflower"라는 곡이 국내에서 상당히 인기를 얻었었다.
"종달새가 부릅니다. '들꽃'."
그에 비해 훨씬 덜 유명하지만 "I'll Have to Go Away'는 고급스럽고 마치 아트락을 듣는듯한 연주가 돋보이는 곡이다. 그룹의 여성보컬의 목소리가 너무 애절하고 아름답다.
이별을 말하는 것은 너무나도 힘든데도 나는 떠날 수밖에 없다고 외치는 전형적인 사랑노래.
2번째 노래는 Barclay James Harvest(버클리 제임스 하비스트, BJH)의 "I've Got A Feeling"이란 곡이다.
이곡 역시 음반 제킷과 뒷면에 곡 타이틀만 보고 "아. 이 곡이 괜찮을 것 같아. "라는 촉으로 틀었던 곡이다. 이 곡을 처음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코 끝이 찡해지며 큰 감동을 받았던 것 같다.
원래 버클리 제임스 하비스트의 최고의 히트곡은 70년대 발표되었던 "Poor Man's Moody Blues"이다. 라디오에도 자주 나왔고 음악 카페에서 DJ 추천이었던 곡으로 상당히 유명한데 비해. 80년대에 발표된 BJH의 음악은 상대적으로 덜 유명하고 음악성도 평가절하 되는 편이다. 하지만 지금 소개하는 'I've Got A Feeling'은 예외이다. 저음의 소박한 멜로디로 시작되는 이 곡은 초 저음으로 단조롭게 읊조리는 것이 이 곡의 최고의 매력이라 생각한다.
나의 순수한 감으로 보석 같은 곡을 발견한 것은 정말로 큰 수확인 것 같다.
아무래도 80년대 음악이 70년대 음악보다 단순한 것은 시대 조류의 영향인 것 같다.
70년대 화려한 악기 구성으로 음악을 했던 밴드들도 뉴웨이브와 펑크가 쓸고 간 후 80년대를 거치며 단순함으로 무장을 하기 시작했다. 마치 프랑스 로코코시대의 엄격함과 화려함이 프랑스혁명을 거쳐 자유롭고 소박하게 바뀌었던 것처럼.
Barclay James Harvest [Victims Of Circumstance - I've Got A Feeling (1984)
어느 날 음악 감상실에서 Alan Parsons Project의 Eye in the Sky라는 곡을 틀고 있었다.
어떤 젊은 남자가 디스크 박스로 와서는,
"이 곡 제목이 뭐예요?"라고 물어봤다. 나는 잘 못 쓰는 글씨로 또박또박 곡 제목을 메모지에 써서 전달했다.
음악 감상실에 가끔 있는 일이다. 음악 소개를 놓쳤지만 곡 제목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 이런 분들이 있으면 음악을 트는 일이 더 신중해질 뿐 아니라 더 큰 보람을 느끼게 된다.
요즘은 전혀 볼 수 없는 일이다. 이제는 누구나 휴대폰 앱으로 쉽게 곡 제목을 알 수 있으니까.
The Alan Parsons Project - Eye In the Sky (1982)
원래 이 곡은 첫 곡인 Sirius(inst.)와 2번째 곡인 Eye in the Sky를 같이 연결해서 들어야 한다. 그래야 감동이 배가 된다. 나는 음악 감상실에서 틀어줄 때 거의 2곡을 연결해서 틀곤 했다.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들어보니 배철수 아저씨가 이곡을 틀어주실 때 항상 꼭 두 곡을 연결해서 들려주시더라.
2회에 이어 마지막 DJ 시절에 대한 추억을 담아보았다. 이제는 사라진 직업. 당시에는 자신의 전문성을 뽐내며 때로는 거들먹거리며 자랑스럽게 음악을 틀던 시절. 물론 그때가 무조건 좋았다는 것은 전혀 아니다. 당시에 어떤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는 눈치코치 봐가면서 때로는 욕까지 들으면서 힘들게 배웠었다. 그뿐 아니라 잘릴까 두려워 아슬아슬하게 비위를 맞추곤 했었다.
1년을 일했던 이곳도 내가 그만두고 얼마 안 되어 문을 닫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2000년 초였다. 바야흐로 21세기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