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커피숍 DJ 에피소드

한국의 마지막 DJ

by 랜치 누틴

70년대 중반에서 후반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은 다른 시기에 태어난 사람들과 뭔가 다른 특별함이 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기기를 모두 고루 맞 본 사람들. 군부 독재 전두환과 민주화를 둘 다 겪은 사람들. 또는 88 올림픽을 겪으면서 후진국과 선진국을 모두 겪은 세대. 그리고 꼰대와 MZ 세대 사이에 껴서 고통으로 비명을 지르는 세대 이기도 하다.


음악이 흐르는 커피숍에 DJ가 마이크를 켜고 능글스러운 멘트를 하면서 방송을 하는 커피숍. 나는 그 음악다방의 끝과 LP의 끝물을 맞본 세대 이기도 하다.

디스크자키(disc jockey)

1998년 새해를 맞이했던 한 겨울. 학교를 휴학하며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고 있던 나는 고향의 커피숍의 입구에 한 구인광고를 봤다. 이제는 잊혀 가는 이름 '커피숍'. 그것도 지하에 있던 커피숍.

"DJ 구함. 초보 가능."


음악을 좋아하는 내게는 정말로 가슴이 뛰는 문구였다.

DJ를 지원하기 위해 용기를 내어 커피숍에 들어갔고 면접을 보고 합격했다. 돈은 당시 겨우 최저 임금 수준이었던 것 같다. 어쨌든 커피숍에 DJ로 들어간 나는 누가 봐도 DJ 하게 생긴 사수에게 오디오 기기를 다루는 것과 마이크를 다루는 법 등을 하나씩 배우기 시작했다.


커피숍 디스크자키의 일상은 별 것 없었다.

1. 커피숍으로 오는 전화를 받는다.

"저. 5700번으로 삐삐 거신 분 좀 부탁해요. "

누군가를 다급히 찾는 전화 속의 목소리.

메모지에 불러 주는 번호를 조심히 적고 다시 한번 삐삐 번호를 확인한 후 마이크의 볼륨을 올린다.

"네. 5700번 호출하신 분 지금 연락 왔습니다. " 이런 멘트를 날려 보낸다.

그러면 누군가 전화박스로 들어가는 것이 보이고 전화를 받는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전화기를 놓는다.


2. 최신 영상을 튼다. 당시 젝스키스, 조성모의 투 헤븐 그리고 HOT 가 상당히 유행했다. 최신 히트곡 영상을 틀고 신청곡 영상을 받는다. 당시에 유튜브가 어디에 있겠는가. 다 녹화한 영상들을 찾아서 보여주는 시스템이었다. DJ의 방에는 두툼한 노트들이 빼곡했다. 거기에는 최신 히트곡 비디오 목록들이 있었고, 거기에 적힌 대로 정확하게 시간 맞춰 테이프를 돌려 음악을 들려주었다.

****예를 들면, 48:30 서태지와 아이들 - Come back home

적힌 시간에 맞춰 비디오테이프를 스탠바이 하고 음악을 튼다.


3. 신청곡 또는 내가 좋아하는 디스크 돌리는 시간. 이때만큼은 DJ의 개인기가 벌여지는 시간이었다. 최신곡을 영상 외 순수하게 DJ의 목소리와 음악에 집중하는 시간이다. 이 시간은 내가 들려주고 싶은 음악을 LP나 CD로 틀고 소개를 하는 시간이었다. 이때만큼은 방송국 DJ가 부럽지 않던 순간이었다.

나를 가르쳐 준 사수는 천여 장의 LP 속에서 신청곡이 자주 들어오는 곡들을 알려주며 LP가 꽂혀있는 위치를 미리 정확히 알아두라고 했다. 아날로그 기기의 사용에서 빠른 손놀림으로 판을 찾아 테크에 장착하고 바늘을 정확하게 맞추는 것은 정말로 중요했으니까 말이다.

Ranum의 - Photograph

Styx- Boat on the River

The Police - Every Breath You Take

Michael Franks - Antonio's Song

위 곡처럼 자주 신청이 들어오는 곡들의 위치는 확실히 알았다.


커피숍에서 DJ일을 한 지 한 두어 달쯤 되었을까? 하나의 신청곡 쪽지를 받았다.

아마도 이렇게 쓰여 있었을 것이다.



이 쪽지를 보고 떠오른 것은

바로 송창식의 '왜 불러'였다.

(팝 음악은 많이 들었지만 가요를 잘 안 들었던 나의 패착이었다. )

바로 DJ방에 꽂혀 있던 천여 장의 음반 중 "ㅅ"을 하나를 재빨리 집어 걸었다.


출처 Youtube 송창식 - 왜 불러

"왜 ~ 불러."가 시작되는 순간

저쪽 좌석에서는 폭소가 이어졌다.

'아 뭐지? 내가 잘못 틀었나?'


또 하나의 실수는 그 위의 디바였다. 90년대 후반 가창력이 뛰어난 여성가수들끼리 모여 'DIVA'라는 이름으로 프로젝트를 만들고 라이브 음반을 내놓았었다. 그중 유명한 곡은 캐럴 킹의 원곡인 "You've Got A Friend"였다.(Shania Twain, Gloria Estefan, Celine Dion, Carole King이 같이 불렀다. )

난 이 곡이라고 착각했던 것이다.

그래 이 프로젝트 역시 "디바"가 맞다.

출처 Youtube - Diva’s live You’ve got a friend

그러나 원한 곡은 그 곡이 아니었다.

바로 여성 한국의 여성 댄스 트리오 디바의 "왜 불러"

왜 불러 왜 불러 왜 불러 왜 불러 나를.

당시 이 곡이 신청곡인 것을 몰랐던 것이다.

그날 큰 창피를 당한 이후부터 최신 가요에 조금씩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아직도 이 영상은 잊혀지지 않는다.



어느 날은 아래와 같은 신청곡 쪽지를 받은 적 있었다.


당시 국내에 '한스 밴드'의 존재를 몰랐다. 내가 생각했던 그룹은 바로 3인조 형제 그룹 Hanson! 나는 그들을 말하는지 알았다. 한스와 핸슨 발음이 비슷하니 무조건 Hanson을 잘못 쓴 것인 줄 알았다.


그래서 틀어준 음악은. 내가 알고 있던

'Hanson - MMMBop '


그런데 Hanson의 "I love my teacher"라는 곡은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당시까지 저 위에 '선생님 사랑해요'라는 문구가 영어를 해석한 제목인 줄 알았고 그것에서 더 나아가 그룹 핸슨의 노래인 줄 알았다니.


수십 년 만에 이 영상을 보니 그들도 참 어렸구나 싶었다. 지금은 중년에 가까운 나이가 되었을 그들의 영상을 보며 잠시 당시의 추억을 떠올려 본다.

출처 유튜브. Hanson official - MMMBop


얼마 뒤에 신청곡이 한스 밴드의 노래라는 것을 알았다.

"선생님 사랑해요." 난 그대 옆에서 여자이고 싶어.


출처. 유튜브 한스밴드 오피셜- 선생님 사랑해요.


ABBA의 음악을 제대로 듣게 되었던 것도 이때부터였다. 당시에 ABBA는 평범한 추억의 팝이었다. 아직 뮤지컬 영화가 나오기 전이었고 아직 그들의 곡이 젊은 세대에게 재 유행하기 전이었다.

Electric Light Orchestra (ELO)의 음악도 단골 레퍼토리였다. 커피 한 잔, 호프 한 잔 마시면서 듣기 좋은 분위기 있는 음악이었다.



매일밤 8시부터 10시까지 커피숍에서 1년간 DJ 아르바이트를 했던 기억은 아직도 추억으로 남아있다. 내가 커피숍을 그만 둘 시점부터 가게가 조금씩 어려워지기 시작했고 얼마 후에 완전히 정리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후 다른 지역에서도 1년간 DJ로 음악을 틀었고 세이클럽 음악 방송 또한 2년 정도 진행 했었다.

그러나 언제부터 개인 음악 방송은 자취를 감추었고 그 자리를 완전히 Youtube가 차지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 Radio Star가 유지되었다면

진정한 Viedo Star가 힘을 발휘한 것은 2000년대 중반 이후였던 것 같다.

Viedo kill the radio star라는 노래가 80년대에 나왔던 곡이다. 그들은 아마도 21세기 미래를 예상했던 것일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