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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주 Mar 18. 2024

친정엄마가 비우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것만 남겨두고



아침부터 빨래하려 들어 온 세탁실.


원래는 세탁실에 슬리퍼를 신고 다녔는데 점점 귀찮아졌다. 그래서 남편과 이케아에서 발판을 사 와 간단하게 조립하여 세탁실 바닥에 깔아놨는데 굉장히 편하다.


군데군데 빈 곳까지 다 채우고 싶지만 사이즈가 안 나와서 저 부분들은 그냥 비워둘 수밖에 없어서 그냥 흐린 눈으로 못 본 체 지나간다. (ㅎㅎ)



그리고 세탁실의 오른쪽을 보면 이렇게 멋없이 정리되어 있다 ㅎㅎ


세탁할 때 쓰는 세제들은 집들이며 여기저기 선물로 받아서 사진의 왼쪽 편에 자리 잡고 있고, 가운데는 재활용품을 담는 통을 뒀다. 저 통에 재활용할 것들을 다 담아서 한 번에 비운다. 오른쪽 선반은 예전에 장식용으로 쓰던 선반인데 지금은 세탁실에서 비닐과 음식물 쓰레기, 기저귀 쓰레기통과 그냥 쓰레기통을 두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위에는 설거지 건조대로 쓰고 있는 판을 말린다고 잠시 걸어뒀다.


거의 우리 집 세탁실은 이 상태를 유지 중이며 뭐 사진으로 보다싶히 대단히 깨끗하지 않다. 그냥 적당한 위치에 필요한 물건들만 둔 상태다.



얼마 전 우연히 도서관에서 미니멀 인테리어에 관한 책을 읽었다. 미니멀한 라이프를 지속하기 위해 비싸더라도 필요한 리모델링들은 다 인테리어 했던 분의 책이었다. 30분 정도 짧게 읽은 거라 제목이 기억이 안 나지만, 책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난 원래 장을 짜는 스타일이 아니고 다 비워대는 스타일이라 세탁실에 눈을 어지럽히는 아이들을 다 비워버릴까 생각했었는데, 책을 읽으니 인테리어도 내가 원하는 대로 처음부터 잘해야 오래오래 사용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세탁실 장을 짜볼까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들고 있는 요즘이다.




근데 일단은 지금 뭐 불편한 거 없어서

당장은 안 할 듯하지만-



그리고 세탁실 옆으로 있는 주방.

25평 집 ㄷ자 주방이 나오는 세상이라니.


따로 옵션을 넣은 게 없어서

아무것도 없지만,

깔끔하고 넓어서 만족스럽다.


쁘이 v_v

깔끔한 주방을 보니

괜히 기분이 좋아져

요새 주방에서 키우고 있는 모스와

한컷 찍었다.


쁘이




날씨 좋은 오늘은 엄마집에 가기로 한 날!


분주히 외출준비를 하고 있는 중,

창문 밖으로 싹이 트고 있는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한참 바라보다 늦을뻔했지-


역시 봄은 봄이다.

싹트는 것만으로도

설레게 만드는구나.




설레는 마음으로 달려온 엄마집에는

상상도 못 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엄마도 봄이 왔나?



오래된 엄마집에

가득 차 있던 짐들이 많이 사라져 있었고,

엄마는 심지어

주방을 비우고 있었다.


- 엄마 뭐 해?

- 응, 이제 이사준비해야지.



올해 말 이사를 갈 엄마는

그동안 쌓아뒀던 짐들 중

필요 없는 것들은 모두 버리는 중이라 했다.


12월 이사에 맞춰 그동안 버려라 버려라 해도 버리지 않든 물건들을 하나씩 버리고 있었던 엄마.



사진만 보면 이게 비워진 건가?

하겠지만 이전에는 발 디딜 틈도 없던 베란다에

해가 들어오는 걸 본 딸은


그저 놀랜 마음과

괜한 감동이 차올라

엄마에게 대단하다는 소리만 연신해 댔다.


- 와, 엄마 대단하다.



엄마가 나만한 시절,

그러니까 엄마의 30대 신혼부부 시절.


그때 엄마아빠의 집은 정말 예뻤다고 한다.


좋은 집에 사는 것도 아니었지만

항상 집을 가꿨고

청소도 열심히 했었는데

어느 날부터 살림을 손에 놓고

더 이상 집에 사랑도 관심도 주지 않게 되었다고 했다.



엄마는 나이가 들어서라고 말했지만

아마 집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었던 거 아닐까라고

딸인 나는 짐작하고 있다.



얼마 전 내 집에 자주 들르던

엄마는 자기 집을 가꾸기 시작했다.


뭐가 이렇게 없냐고

자꾸 뭘 사준다고 말하던 엄마는

더 이상 뭘 사준다는 말 대신

본인도 하나씩 비우며

이건 당근에 올려줄 수 있냐고 물어보기 시작했다.

당연히 올려줄 수 있지-




뭐가 됐든 엄마가 즐거워 보였고

집에 활력이 도는 걸 느끼니 너무 좋았다.


요즘 엄마는

당신이 키우시던 화분들을 선물해 주신다.

그리고, 아빠와 자주 놀러를 다니기 시작했다.

매일같이 나와 싸우고 짜증 내던 엄마는 사라졌다.


초등학생 시절, 집에서 자라를 키우고 어항에 물고기를 키우고 예쁜 인테리어 소품들을 직접 만들어 오던 엄마. 직접 치킨을 튀겨주고 딸이 좋아하던 음식들이라면 뭐든 해주던 엄마.


그동안 내 기억 속에 잊혀 있던

화사한 엄마의 모습들이 자꾸만 떠올랐다.


아마도 엄마는 자식 키우느라 고생했던 지난 과거의 기억이 담긴 물건들을 하나씩 하나씩 비우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본인의 행복이었던 것들,


예를 들면 화분 같은 것들은

버리지 않고 나에게 선물해 주는 엄마가


너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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