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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주 Apr 08. 2024

수건 기부하기



남편과 아들, 그리고 나까지 우리 셋이 살고 있는

25평짜리 집에는 2개의 화장실이 있다.


하나는 부부욕실, 하나는 공용욕실.



침실에 위치한 부부욕실은 아무래도 아침저녁으로 우리 부부가 사용하는 곳이다 보니 자주 청소를 하게 된다. 바닥에 두는 것들은 거의 없고, 칫솔이나 치약 같은 것들도 벽면에 붙여놔서 사용에도 편하고 깔끔한 욕실 유지도 쉽게 할 수 있다. 엄청나게 깨끗하다고 말할 자신감은 없지만 뭐 어느 정도 깨끗한 편이라고는 말할 수 있는 정도.



부부욕실에서 사용하는 수건도

집들이 선물로 받은 예쁜 수건세트 덕분에

원톤으로 맞추어져 있어서

욕실에 들어갈 때마다 호텔 들어가듯

정돈된 느낌을 받는다.



거실 옆에 위치한 공용욕실은 아이가 씻을 때나 손님들이 놀러 왔을 때 사용하는 공간이다. 아이가 사용하다 보니 무채색부부욕실과는 달리 알록달록한 색상들이 많이 보이고, 아이의 세면용품이나 발 받침대, 물놀이 장난감과 같은 아이용품들이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다.


아이의 등원 준비를 할 때뿐만 아니라 외출 후에 돌아왔을 때, 또는 너무 뛰어놀아 땀이 많이 흘렸을 때 등 하루에도 몇 번씩 사용하는 공간.


그래서 수건이란 수건들이 욕실선반을 가득 채우고 있었는데, 늘 보던 그림이라 그랬는지 높쌓여 자리 잡을 수도 없이 가득 찬 수건들을 보고도 이상하다는 생각은 든 적이 없었다.



- 우리 집에 수건이 이렇게 많았나?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건조기를 돌리고 빨랫감을 가져와 TV를 보며 개키고 있는데,


갑자기 알록달록 제각각의 모양을 한 수건들이 눈에 가득 찼다.


원래 이렇게 수건이 많았나? 뭐지?




- 이건 너무 오래됐어. 와 10년이나 된 거네. 비워야겠다.

- 너무 얇아서 쓸 때마다 불편했어. 너도 나가거라.

- 이건 너무 표면이 꺼끌꺼끌했어. 안녕.



오래돼서, 너무 얇아서 쓰면서도 불편해서 등 저마다의 버릴 이유가 생긴 수건들하나씩 고르기 시작했다. 비우는 데에는 이미 도가 튼 대로 튼 나는 마음먹은 이상 과감했다.


'비워야지'라는 결심을 하고 나면 금방 비우는 보며 남편은 '가끔 아깝지 않아?'라고 되묻지만

나에겐 아까운 일이 아니다.



연인들끼리 이별할 때도

더 많이 좋아하는 사람이 승자야.

미련 없어. 좋아할 때 아낌없이 써왔거든.

그동안 참 알차게도 써왔어.





- 수건 어떻게 버려야 하지. 혹시 필요한 곳이 있지 않을까?



비울 수건들을 한 자리에 모으고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라는 생각에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다행히 유기견 센터에서는 수건과 얇은 담요 같은 것들이 많이 필요하다고 했다. 와 정말 다행이다-



수건기부는 택배로 보내면 되는데 보낼 때 여러 겹을 겹쳐서 예쁘게 접어 보내야 한다.


그동안 우리 집에서 열심히 일한 수건들이

그곳에서도 자신들의 소임을 다할 수 있길

기원하며 차곡차곡 은 수건들.




예쁘게 접은 수건들을 챙겨 아이와 우체국에 들렀다.


- 이게 뭐야?

- 선물이야. 강아지들한테 주는 선물.



이게 뭐냐고 물어보는 아이에게 뭐라 딱히 설명하기가 힘들어 '선물'이라 했다. 필요에 의해서 비운 물건을 선물이라는 단어로 포장한 같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맞는 말 같도 해서 그냥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 그냥 선물이라 생각하자-



참 신기하다-

버리려 한 물건들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을까 싶어 당근에 살포시 올려봤는데 누군가가 필요하다 했을 때, 아니면 혹시나 기부할 때가 있나 싶어 찾다가 발견했을 때마다 드는 생각. 참 신기해.


이럴 때마다 물건들을 소중히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혹시나 내게서 역할을 다한 물건들이 새로운 곳에서 다시 시작할 수도 있으니. 소중히 써야지.



우체국에서 돌아와 열어본 욕실 선반에는

빈 공간들이 생겼다. 빈 공간 덕에 생긴 여유.


공간만큼 생긴 여유와 적어진 수건의 양은 앞으로의 욕실관리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괜히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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