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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주 Mar 27. 2024

별거 없는데도 바쁜 전업주부.


오늘 기상시간은 6시 40분!

출근시간이 이른 편이라 6시에 일어나 6시 반이 되면 집을 나서는 남편이 깨워줘 아침을 맞이했다. 편의점에서 자꾸만 아침을 해결하는 남편이 안쓰러워, 도시락을 싸주기도 하고 피곤한 날은 간단히 먹을 빵을 사놓으며 아침을 챙기고 있다.


마음만은 반찬 가득 진수성찬 차려놓고

아침을 챙겨 주고 싶지만, 


출근준비로 바쁜 아침 시간에는 그것마저 사치인지 남편은 간단히 챙겨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한다.

이불속에 파묻혀 남편에게 조심히 출근하라며 인사를 하고, 아이가 깨지 않게 조용히 거실로 나왔다. 며칠 전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읽을 참이다. '더 메모리'_금필춘 소설



- 엄마!


한참 책 읽는 데 빠져있는데 벌써 깼는지 큰 소리로 나를 부르는 아이.


걸어 나올 수 있으면서도 아침엔 언제나 엄마를 외치며 일어나는 도하. 자세한 연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눈 떴을 때 엄마가 있는 게 좋은 가 보다 싶어 얼른 달려가 방 문을 열었다.


이제 막 잠에서 깨 부스스한 아이와

눈이 마주치자 도하는 그냥 웃는다.


아빠 닮아 예쁜 눈웃음.




- 빠빠줘.


예쁜 눈웃음에 감탄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배고프다는 아이의 아침을 챙겨주고 나면, 얼른 나도 씻어야 하고, 늦지 않게 아이의 등원 준비도 해야 한다. 생각만으로도 바쁜 기분이라 얼른 아침을 챙겨주었다.


분명 여유롭게 일어났는데 등원 준비는 왜 늘 바쁜 걸까?



시아버지께서 여행 다녀오시며 사주신

예쁜 하늘색 모자를 씌우며

오늘 등원패션도 완성!


비가 오고 있어 평소보다 더 일찍 집을 나섰다.

어린이집 차량에 아이를 태우며 오늘 아침 미션도 클리어!



도하야 조심히 다녀와-


아이를 보내고 집에 들어와 간단히 아침을 챙겨 먹었다. 내 사랑 커피.


요즘 헤이즐넛 라떼에 빠져서 헤이즐넛 시럽도 사놓고, 아침마다 헤이즐넛 라떼를 타 먹는다. 달달한 라떼를 좋아하는 편인데 바닐라 라떼는 커피 맛이 달달하고, 헤이즐넛 라떼는 향이 달달하게 느껴진다. 향이 달달한 헤이즐넛 라떼가 조금 더 내 취향이다. 어쨌든 달달 한 건 언제나 좋아!





오늘 반찬으로 먹을 두부조림을 하고

가득 찬 쓰레기통을 비우고

청소기도 돌리며 오늘 집안일 끝!


오전 중으로 모든 집안일을 끝내겠다는 목표로

부지런히 집안일을 하고

짧게 쉬다가 아이와 병원에 갔다.

얼마 전 살짝 다쳐 몇 바늘 꿰맨 도하의 병원 방문 날.


원래는 2일 뒤 실밥 제거를 할 예정이었지만 잘 아물었다며 갑자기 오늘 실밥을 풀게 되었다. 진료실 침대에 누워 본인이 왜 병원에 온 지도 잘 모르는 아이는 울지도 않고 잘 있어 주었다. 실밥을 푸는 짧은 시간 동안 아파하기는커녕 간지럽다며 웃는 도하를 보며, 생각보다 아이들은 강하다는 걸 다시 한번 더 배웠다.


엄마보다 병원을 안 무서워하는구나.



역시 아는 게 많아지면서 겁이 많아지는 걸까

용감하게 잘 버틴 도하를 위해 마트에 들러 아이가 좋아하는 과일이며 간식들이며 잔뜩 샀다.


뭐 한 것도 없는 기분인데

장을 보고 집에 들어와 시계를 보니


어머 남편 퇴근 시간이다.

왜 이리 시간이 잘 가는 거야.




아이 저녁을 챙겨 먹이고, 남편 저녁을 차려주고, 아이를 씻기고 나니 벌써 잘 시간이네?

씻고 난 뒤 도하는 오후 내내 빠져있던 타요 장난감을 잔뜩 챙기고는 아빠에게 같이 놀자며 쫓아다니기 시작했다.


- 아빠 우리 같이 놀자.



같이 놀자는 말은 어쩜 이렇게 잘하는 걸까.

같이를 발음할 때 '가치'와 '가티' 사이의 발음으로 말하는 귀여운 아이에게 피곤한 아빠도 별 수없는지 조용히 타요 줄 세우기를 시작했다. 하루종일 아빠를 기다려서 그런가, 엄마는 쳐다도 안 보고 아빠에게만 놀자고 하는 도하.


덕분에 나도 아침에 읽던 책을 꺼내 들어 마저 읽기 시작했다. 고마워 도하야 ♡


짧은 소설이라 금방 다 읽었음!


'더 메모리'라는 책은 잊고 싶거나 바꾸고 싶은 기억을 다루는 찻집의 이야기가 나오는 소설이다. 내용이 귀엽고 아기자기하니 상상하는 맛이 있어서 금방 읽었는데,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내게도 지우고 싶은 기억이 있는지를 떠올리게 됐다. 지우고 싶은 기억이라.


어린 시절 헤어진 남자친구 집 앞에 가서 한참을 기다린 일, 사회초년생 때 회사에서 부장님께 깨지고 나서 펑펑 울며 길거리를 걸었던 일, 지금의 남편과 연애시절 별것도 아닌 일로 싸우며 괜히 성낸 일, 떼쓰는 아이를 달래지는 못할 망정 같이 소리 지르고 싸운 일. 참 많은 기억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는데, 신기하게 지우고 싶은 기억은 없었다. 가끔 이불킥을 하게 되기도 하고, 그때의 내가 후회스럽기도 하지만 모든 순간들이 나라는 사람을 채우고 있는 거라 생각하니 모든 기억들이 나에겐 틋하고 소중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곁에 있는 남편에게 이야기하자 남편은 '만의 철학을 만들어낸 것 같아서 보기 좋다'라고 했다. '나만의 철학'이란 과분한 표현이 너한참 되새겼다.



주부가 되기 전 나는

전업주부가 되면 가만히 집에 있는 줄만 알았다.

그래서 하루가 너무 심심하지 않을까 걱정도 했었는데,

오만이고 편견이었다.


그냥 직장 다닐 때 바쁘던 사람은

주부일 때도 바쁜 사람이 되는 거였어.


주부라서, 직장인이라서, 자영업자라서, 어떠한 직업을 가졌기 때문에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가 그 사람의 하루를 결정하는 거다.




아직 모든 게 어설픈 주부지만

정신없던 하루를 끝낸다.


아이의 손을 잡고 깊은 잠에 빠지며.

아침이라며 깨워줄

내일의 다정한 남편 목소리를 기다리며.



오늘도 고생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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