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아이와 들린 숲놀이터.
이 날은 포도를 수확하는 날이라 많은 가족들이 시댁에 모인 날이었다.
나도 일손을 보태려 간 건데,
아이를 데리고 가려하니
정신 사나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안 되겠다 싶어 아이의 손을 잡고 향한 근처 숲놀이터.
맛있는 간식도 사고,
내가 마실 커피도 한 잔 챙겨서 잘 놀고 있는데,
갑자기 눈에 들어온 아이의 바지주머니.
...?
바지를 거꾸로 입히고 나왔구나.
아무것도 모르는 아들에게
조용히 미안하단 사과를 하며
화장실로 데려가 급히 옷을 다시 입혔다 ;;
왜 입힐 때는 몰랐지?
바지를 다시 입히고
더 놀다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들린 포도밭에는
아직 사람들은 일을 하고 있었고,
옆에 있던 강아지와 잠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밥이 올 때까지만
잠시만 같이 놀자 댕댕아
정신없이 바쁘던 주말이 끝난 월요일.
출근도 하지 않는 전업주부 주제에 월요병이 왔다.
딱히 대단한 일을 하지도 않았는데
주말 내내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그런지
피곤함으로 가득 찬 몸은 너무 무거웠다.
아 피곤해-
나이 30살에 연봉 4000이면 괜찮나요?
결혼하는 데 1억 5천만 원 모았는데 괜찮나요?
얼마 전에 신축아파트 샀는데 이 정도면 괜찮나요?
나이가 32살인데, 제 연봉이 어느 정도가 되어야 하나요?
인터넷을 무수히 채우고 있는
이 정도면 평타는 되나요?라고 묻는 질문들.
얼마나 오랜 시간
정답을 외우고 답을 찍는 삶을 살아왔기에
우린 늘 이런 질문을 하고
나의 월급을 나의 자산을
늘 남과 비교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걸까.
전업주부라고 하면 눈치주는 세상.
아이를 낳고 어느 정도 크면 당연히 여자는 일을 하러 나가야 하고 맞벌이 부부로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게 너무 당연해진 세상.
먹고살기 힘들다는 말로 시작해,
내가 더 힘들다 너 정도는 괜찮지 않니,
누가 더 힘드나로 경쟁하며
쓸데없는 소모전을 하는 세상.
내 나이가 마흔이고 오십이고 간에
하고 싶은 일이 생겨서
그 일을 할 수 있게 된다면
그거면 된 거 아닐까.
남이 일억을 벌던 이억을 벌던
그게 나에게 별 일인가?
맞벌이로 얼마를 벌어 어느 집에 살던
그 사람이 행복하다면 그걸로 충분한 거고,
외벌이로 얼마를 벌어 어떻게 살든
내가 행복하다면, 우리가 즐겁다면 그걸로 충분한 거다.
남과 비교하면서
내 삶이 괜찮은지를
꾸준히 확인받아야 하는 삶들로 가득 찬 요즘.
끝이 보이지 않는 경쟁의 레이스에서
난 일찌감치 내려왔다.
그럼 난
레이스를 완주하지 못한 실패자일 뿐일까?
아무도 없는 한적한 시간에
아들과 놀러 다닐 수 있는 지금이 좋다.
새벽 일찍 출근하는 남편의 출근길을
가끔은 함께 할 수 있는 여유가 난 좋다.
외벌이라 줄어든 급여에 걱정만 하는 게 아니라
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해 본다.
직접 음식을 해 먹으며 절약하는 식비.
그리고 그렇게 아낀 돈으로 하나씩 사모으는 주식.
경쟁의 레이스에서 내려왔다고
삶을 포기하는 게 아니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멋진 삶은 아니지만
그냥 우리대로의 삶을 살아가며
우리 방식의 노후를 준비하며 살아가면 된다.
나이 32살에 받아야만 하는 연봉 같은 건 애초에 없다.
한 달에 얼마를 벌어야 하고 얼마를 모아야 한다는 질문은 애초에 정답이 없는 질문이다.
눈에 보이진 않는 경쟁이라는 길에서
떨어진 낙오자는 깔끔히 그 길을 포기했다.
그리고 그 길로 가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러자 수십개의 새로운 길들이 눈앞에 나타났다.
지금 가는 길에서도 또 경로를 이탈할 수도 있겠지?뭔들 나에겐 상관없다.
어떤 길이건 내 마음이 편하고 괜찮다면
그 길이 꽃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자
앞뒤에 있는 사람들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냥 가는 거다.
내 마음이 편한 길로.
나만의 꽃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