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취향'을 알아가는 즐거움
아이의 마지막 어린이집 등원 날.
11월 중순에 이사를 해 그간 다녔던 어린이집에서 작별 인사를 하지 못한 아이가 신경 쓰였는지 '김장하는 날 인사할 겸 오는 건 어떠세요? '라는 권유를 받았다. '뭐, 안될 건 없지'라는 마음으로 아침 일찍 아이의 손을 잡고 기차 타고 버스 타고 도착한 어린이집.
나박김치와 함께 마무리한 친구들과의 작별인사.
하루동안 즐겁게 보낸 아이는
하원하는 길 데리러 간 날 바라보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사란 개념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한 것 같지만
아빠를 보러 대구를 간다는 건 이해했는지
이제 아빠 보러 가자며
내 손을 얼른 잡는 아들.
'얼른 가자 엄마!'
새로운 어린이집에 등원하기까지의 약 3주. 지난 3주 동안 집에서 지지고 볶고 얼마나 힘들었던가.
에너지 넘치는 4살 아들의 텐션을 맞춰주기가 힘들어
놀이터를 전전하던 때 좀 쉬고 싶어 데려간 집 앞 도서관에서
우연히 우리의 공통점을 알게 되었다.
도하도 도서관을 좋아한다는 것! (행운이다)
기회다 싶어 틈만 나면 손잡고 도서관을 갔다.
책 읽어주느라 목이 아플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나에겐 놀이터를 뛰어다니며
쫓아다니는 것보단 이게 훨씬 나았다.
도서관을 다녀와
아이의 점심을 먹이고
낮잠을 재우고 나면
그제야 즐길 수 있던 짧은 휴식시간.
점심시간 즈음 되면 조심스레 들어오는 햇살에
커피 한 잔 마시며 나름의 휴식을 취한다.
제발 아이가 30분만이라도 더 자길 기도하며.
오랜 시간 주방 한편을 차지하던
네스프레소 커피기기를
드디어 처리했다.
직원들과 먹어라며 남편 직장으로
커피머신을 보냈고
내가 좋아하는 믹스커피와 드립백을
사 오기 시작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냥 이렇게 먹는 게 더 편했고,
잘 먹지도 않는 커피머신이
자리차지하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가끔 라떼가 먹고 싶으면?
그냥 집 앞 카페에 찾아간다.
지금은 더 멋있는 장비들이 유행인 것 같은데
7년 전 내가 결혼하던 당시에는
네스프레소 커피머신이 그리도 핫했다.
그래서 친구들이
'집들이 선물로 뭐 사줄까?'
라는 질문을 했을 때에도 별생각 없이
'커피머신 사줘-'라고 말하던 나.
막상 써보니 한 달에 두 번은 쓰나?
커피머신 청소는 생각보다 더 귀찮았고,
캡슐커피는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때쯤 드립커피의 맛을 알아버려
드립커피라는 '취향'을 찾기도 했다.
'돈돈돈!'
'절약 절약 절약!'만을 외칠 땐
카페에서 커피 한 잔 사 마시는 게 너무 아까웠다.
그랬던 내가 어째서 지금 커피 생각이 들면
카페에 가서 사 마시고 마는 사람이 되었을까?
아침에 사마신 커피 한 잔은
다음날까지 지속되진 않는 하루짜리 행복이다.
돈으로 사는 행복은 쉽게 끝난다.
가성비 추구하는 내 삶에
고작 하루짜리 행복이
이렇게 비싼 건 말이 안 되는 거였는데,
그간 먹고살기 편해졌나.
이젠 3,500원으로 행복을 사버리고 만다.
사실 '먹고살기 편해졌다'라는 표현보다는
'나라는 사람을 깨달았다'라고 말하는 게
나에게 더 맞는 표현이다.
커피 한 잔에 산책 한 번이면
큰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사람.
저녁에 아이를 재우고
남편과 게임 한 판 하면 오늘이 행복한 사람.
절약한 돈으로 2만 원도 안 하는 주식 1주만 사면
마치 부자가 된 것 같다고 즐거워하는 사람.
그게 나라는 것을 이제는 알게 되었다.
나의 '취향'이 뭔지 알게 된 거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어떻게 해야 만족스러워하는지 모를 땐
잘 마시지도 않는 커피머신에
좁은 주방 한편을 양보하였고
남들이 맛있다고 하니
따라서 캡슐을 사 와한 잔씩 내려먹었다.
그냥. 카페인을 채웠다.
그리고 지금은?
내가 좋아하는 커피는 카페라떼라는 사실과
좋아하는 카페 브랜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우유의 고소함을 좋아하는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3,500원짜리 행복을 손에 쥐고
산책하는 기쁨.
그 기쁨을 유지하기 위해
귀찮지만 또 집밥을 한다.
외식을 줄이고,
교통비를 줄이고,
소비를 줄이며
내일의 내 기쁨을 사기 위해,
언젠가 일을 그만 둘 노후의 우리가
3,500원짜리 기쁨을 유지할 수 있기 위해
열심히 노후를 준비해 본다.
나이가 들어도 내 취향이 무엇인지
꾸준히 궁금해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발견해 나가는 사람으로 삶을 살아가고 싶다.
책이 좋아 책을 가까이하다 보니
글이 쓰고 싶어졌다.
글을 쓰다 보니 오랫동안 글 쓰기 위해서
재테크를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재테크를 공부하다 보니
건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취향을 찾아가다 보니
'내가 잘하는 게 없어도 문제가 없다'
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의 내가 더 좋다.
잘하는 거 하나 없는 나도
충분히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서 //
'세상에 초라한 취향은 없다. 내가 가진 취향을 초라하게 바라보는 나 자신만 있을 뿐이다.'
취향의 기쁨_권예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