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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주 Mar 05. 2024

아이 하나 워킹맘, 드디어 퇴사했습니다.

내 꿈은 '직장 없는 삶'.



한 달간의 휴식이 끝났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30일 동안 나와 우리 가족에게 집중 한 삶을 살았다.


그리고 평소의 나답지 않게, 

한 달 뒤에 다시 일하러 갈 건데 뭐 어때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그냥 흘러 보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들도 많았고,

별생각 없이 친구들을 만나러 간 시간들도 많았다.


예전이었으면 뭐라도 더 해야 한다며 안 달나 있었을 하루들을

그냥 보낸 것이다.



그렇게 시한부처럼 한 달을 쉬며 다가올 출근일을 기다리는 데, 

출근할 생각만 하면 가슴이 너무 답답했다. 


애써 모른 척했지만, 

아이를 낳은 이후부터 들었던 의문들. 

언제까지 일을 해야 하는 걸까?


일도 

가정도 

나조차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되지 않는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살고 있는 걸까.


지금 돈이 모자란가.

모자라다면 어디까지 더 벌어야 하는 걸까.



그렇게 시작된 고민은 끝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사실 나는 별 욕심 없는 사람이다.

그냥 적당히 사는 게 꿈인 사람.


그 적당히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많은 소득이 아니라도 

적당히 돈을 벌고 

적당히 아이를 키우면서 

남편과 알콩달콩 사는 게 꿈인 사람이다.



그런데 대학을 들어갔을 때부터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우리 집은 다른 집만큼도 사는 집이 아니었구나. 

너무 잘 사는 집들이 많구나.

빨리 돈 벌러 가야겠다-


그래서 졸업하기도 전,

24살의 나이에 취업한 건설회사.


적성에 맞는 과를 간 것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름 전공을 살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취득한 자격증을 가지고 취직을 했다.



새벽 6시 30분 출근, 오후 6시에 퇴근.

월급은 잘 나왔고, 그렇게 내 삶은 자본주의에 물들어 갔다.



더 열심히 일을 해야 해. 그래야 진급을 하지.

자격증도 더 따야 오래오래 회사를 다닐 수 있을 거야.


만 2년 동안 회사를 다니던 나는 일을 더 오래 하지 못했다.

그 이후로도

이런 일도 해보고 저런 일도 해보며

많은 일들을 경험해보기도 했었다.




누구 말대로 운은 좋았다.


나름 괜찮은 회사들에 취업이 잘 됐고,

언제나 내 월급은 적당했다.


결혼 후 취업한 회사도 2년간 다니다

아이를 임신하며 일을 그만뒀었는데,

출산 후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언제나 회사는 나에게 적당한 월급을 주었고,

내 삶에서 출근과 퇴근은 너무도 당연했다.



이직을 여러 번 하는 나와 달리

남편은 날 만난 첫 회사를 아직도 다니고 있다.

꾸준히 한 회사를 다니고 있는 그를 보고 있으면 

출근과 퇴근이 나만큼의 스트레스가 아닌 같아 보였다.


일이 적성에 맞는 편이라고 종종 말하는 남편이 

너무 신기했고, 그저 부러웠다.


나도 정신 차리고 살아야지.

모두들 직장생활은 힘들대.

남에 돈 받는 게 쉬운 줄 아나.



가끔 회사에서 일을 하다 보면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속이 너무 답답하고, 곧 쓰러질 것만 같은 느낌이 여러 번이었다.

근데, 남들도 힘들 다 하니깐 다 이런 걸 버티고 다니는 줄 알았다.


정신 차리자를 수십 번 나 스스로에게 외쳤던 날들.



그런데 이번 한 달의 휴식이

난 내 생각보다 더 절약을 잘하는 편이었고,

어쩌면 재능은 회사에서 발휘되지 않는 아닐까라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미니멀라이프 덕분에 줄어든 욕심과 생활비.


우리 가계는 이미 남편의 월급으로도 충분했고,

그간 나름대로 치열하게 살아온 나의 20대는 

무일푼이던 우리 가족에게 조금의 뭔가는 남겨주었다.





그래서, 남편과의 상의 끝에 일을 가지 않기로 했다.


출근 생각만 하면 두근대는 심장을 멈추게 하자.

무엇이 널 이렇게 불안하게 만드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쉬어보자.


남편의 격려 덕분에 조금 더 자신감을 얻었다.



그래. 내 꿈은 직장 없는 삶이니깐.

꿈을 한 번 도전해 보자.



그때 어떻게든 경력을 유지했어야지.

경단녀가 돼버렸으니 이걸 어째.

아이가 더 크면 학원비가 얼만지 알아.

요즘 애들은 돈 많은 부모를 좋아해.

직업 있는 엄마를 좋아한다더라.

남편들도 일하는 여자 좋아하지 집에 있는 거 싫어해.



참 세상에 여러 말들이 많다.

내가 나답게 살아가겠다는 데,

남들 시선을 뭐 하러 신경 쓰나.


그동안 남 눈치 보느라 내 인생을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했다.



그냥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우리 부부가 생각했던 대로 그렇게 살아보자.




어제 날이 좀 풀렸길래, 아이와 산책을 나섰다.

커피도 한 잔 타서 텀블러에 담아 나선 산책길.


커피 한 모금씩 하며 

천천히 아이와 동네 한 바퀴를 도는데


엄마 손 잡고,

아빠 손 잡고 산책하는 아이들이 참 많았다.


직장 다닐 때 내 눈엔 보이지 않던 것들.



내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 꿈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직장 다니는 것만큼의 노력이 필요하다.

어쨌든 남편과 나의 꿈은 결국 편안한 노후니깐.


낭비하지 않고 아껴서

또 우리가 하고 싶은 것들은 하고,

아이에게 지원할 수 있는 돈들도 모으고

그렇게 잘 살아보자.


직장 없는 삶을 유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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