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 자리에 삶의 질을 채워 넣자
지인이 요 동네 산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학교를 떠나도 서울 지도를 펼쳐 놓고 제일 월세가 싼 곳으로 가면 누구라도 다시 만나겠네 깔깔깔거렸다. 많은 청년들이 그렇겠지만 나도 오래, 괜찮은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최대한 삶을 유지하는데 드는 비용을 줄여야만 한다. 월급 그냥 다 쓰면 안 쪼들릴 수도 있지. 하지만 일단 월세, 교통비를 제하고 멘탈이 바닥을 칠 때를 대비해서 여행자금도 마련해두고 일상적으로 운동도 하려면 등록도 해야 되고. 그렇게 비자금 조금, 삶의질자금 조금씩 떼다 보면 남은 월급은 요만큼. 여기서 어떻게든 괜찮은 삶을 이어가려면 가계부를 매일같이 살피지 않을 수 없다.
거금을 들여서 방한비닐을 집 전체에 둘렀다. 재개발지역이라 수리를 꺼려했던 집주인과 난방 수리에 대해서 다시 이야기했다. 돈 드는 일에 호의적이지 않은 집주인과 얘기하는 건 늘 스트레스. 머리가 지잉 울렸다. 이런저런 체력이 낭비될 때마다 그냥 돈 좀 더 주고 오피스텔에 살지 무슨 주택에 산다고 이 난리냐 싶다가도 어린 시절 자라온 아파트촌을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싫다. 오래된 동네 쪽이 상상력을 발휘할 여지가 더 많은 것 같다. 오랜 자취로 이젠 안다. 아파트촌에서 사는 게 사람이 품 가장 덜 들이고 살 수 있는 걸 안다. 하지만 불편함을 감수해야만 얻을 수 있는 옥상, 골목을 포기할 수 없다. 아직은 좀 더 이야기를 누리고 싶다. 싸기도 훨씬 싸고.
오래된 동네에 대한 로망 썰은 이쯤에서 끊고 다시 돌아가, 살림에 드는 비용을 최대한 줄이고 싶다. 섬에서 EIDF 다큐를 본 적이 있다. 냉장고에는 eat me first상자가 있었고 시들시들한 채소, 빨리 먹어야 될 유제품 등을 담아두었다. 오 그거 좋네. 한번 산 식자재는 하투루 버리면 안 되니까 하나의 사이클을 만들어 모두 써버리는 게 목표니까. 1인 가정은 생각해서 열심히 쓰지 않으면 내다 버리게 된다. 주 단위의 계획을 몸에서 털어버려야 한다. 장기보관이 가능한 품목은 냉동고로 올리고, 매일같이 해먹지도 않으니 신선품은 그날그날 사다 해 먹자. 골목 사이사이로 구멍가게들. 심지어 카페들도 많아 취향껏 그때그때 사 먹을 수 있잖아. 좀 다른 걸 해 먹고 싶을 땐 마켓컬리, 배민프래시 소포장 제품을 활용해보자. 재료 아끼다가 외식만 하다 보면 더 식비가 많이 들더라. 한번 해 먹을 때 좋아하는 식자재를 잔뜩 써야지. 그래야 밖에서 사 먹고 싶은 생각이 덜 드니까. 일단 달걀 한판을 사다가 감동란을 해 먹어야지. 치즈와 향신료는 듬뿍듬뿍 쓸 것이다. 그리고 거들떠도 보지 않던 냉장고의 마른반찬은 눈에 잘 보이는 데에다 모아 두자. 참, 육지에 와서 벌써 같은 계절을 맞는데도 아직도 섬에서 그대로 가져왔던 반찬이 아직 냉동고에 남아있다. 올해엔 꼭 다 비우고 먹을 만큼만 조금 사서 채워 넣고 싶다.
얼마 전엔 요즈음 나 혼자 산다 장우혁 편을 열심히 봤다. "미니멀리스트"라면서 무슨 물건을 그렇게 많이 가지고 있느냐고 사람들이 놀렸다. 나는 미니멀리스트가 되고 싶은 거라고, 추구하는 거라고 단정히 대답하는 장우혁이 좋았다. 알고, 조금씩 행복한 만큼 해 나가면 되는 거지 뭐가 문제야. 얼마 전 팟캐스트(비밀보장)에서 김숙이 그랬다. 설레지 않는 물건을 버리려고 봤더니 다 설레더라고. 2개밖에 못 버렸다고. 뭐 그렇지 뭐. 결심과 실행의 간극이란. 그래도 최대한 물건의 가짓수를 줄이고, 연말이 오기 전엔 옷캔에 안 입는 옷 기부도 해야겠다. 단순하게 살아야 신경 쓸 가짓수가 줄어들고 내 삶의 질이 상승할 것 같다. 사고 싶은 것도 줄어들고. 지출도 줄고. 그러려면 훨씬 부지런해야지. 나에게 맞는 것을 선별할 줄 알아야 하고 그 외의 것들은 정리할 줄 알아야 한다.
... 내 리듬을 찾아 행복해지기 위해 애쓰는 중이다. 섬 생활 이후로 대비 효과 때문인지 한층 가난해진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