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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의 속도 Jun 11. 2019

육지 - 이젠 오늘을 살고 싶다

샤시 있는 집에서

이 글을 화나서 쓰는 글이다. 나는 사실 동네에 대한 애착이 대단하다. 생각날 때마다 애증의 마음을 담아 글도 쓰고

틈만 나면 동네 사진을 찍어두곤 한다. 골목의 다양한 얼굴을 좋아한다. '지네들 쫓아오는 줄 알고 도망가는 거 봐'라고 말하는 동네 아주머니가 있는, 그 사이를 뛰어다니는 고양이가 있는 우리 동네.

요즘은 5월부터 본격 여름이라며. 아열대 기후로 바뀌어서 그런가 우박 같은 국지성 호우가 기승이다. 그런 밤을 하루 지내고 나니 베란다에 강이 생겼다. 이사 갈 때 혹시 쓸까 고이 모셔둔 박스는 조금만 들어 올리면 물이 폭포처럼 쏟아진다. 그 안에 모셔둔 부츠며 신발이며 온수매트까지 다 버려야 하게 생겼다. 너무하다. 얼마 전엔 비둘기가 환풍구에 집을 짓더니. 애인이랑 손을 잡고 골목을 돌아 걸어 들어오며 우리 동네는 참 '기생충'같지만 나는 '기생충'당하지는 않을 거야 왜냐면 지대가 높으니까,라고 얘기한 게 어젯밤이었는데. 하루아침에 '기생충'당해버렸다. 주인 할머니께 항의하면서 '아 예전에는 이런 일이 되게 많았겠지, 듣고는 계시지만 당신한텐 아무런 일도 아닐 거야. 여긴 십수 년 전에 머물러있는 동네니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이런 동네를 지금 이 모습 그대로 두어야 된다고 말하던 사람들은 누구인가 생각해본다. 다들 오늘을 살아가면서 왜 몇십 년 전 그대로 살라고 그래. 나도 그랬던 사람 중의 하나지만. 나도 그냥 뜨내기니까 감상에 젖을 수 있었던 거 아니야? 너무 오래 살아버렸긴 했지만 우리 모두 물 안 새고 바람 들지 않는, 그러니까 샤시 있는 주거환경에서 살면 왜 안돼? 그게 바로 주거 복지 아니야? 왜 누군가의 감상을 위해 혹은 누군가의 우월감을 위해, '쯧, 그러니까 더 열심히 살았어야지' 하기 위해서 누군가는 더 한참 옛날을 살아야 하냐고. 재개발을 안 하면 그냥 그걸로 좋은 줄로만 알았지. 그게 끝이 아니다. 주거정비도 제대로 안되어있어 주차장도 분리수거도 경비도 아무것도 없어. 왜 누구는 당연히 누리고 누구는 당연히 이렇게 살아야 되는 거야. 물론 재개발이 된다면 싹 다 쫓겨나겠지만. 그건 그거대로 큰 문제. 한국인 너무 이기적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남아있길 바란다 그게 내가 되어서는 안 되지만. 열심히 안산 사람들이나 저 달동네 꼭대기에서 살아야 되는 것이다. 겉에서 보기엔 참 멀끔해졌는데 이렇게 생각하면 겉 딱지만 리모델링한 텅 빈 건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하다가 그냥 여기서의 내 유통기한이 다되었나 보다 생각하고 마는 것이다. 내가 뜨고 나면 또 그냥 당연히 여기고 살아갈 사람으로 채워지겠지. 동네를 한 바퀴 돌다 뒷동산으로 모험을 떠나던 유년시절이 불현듯 떠올랐다. 얕은 계단 시멘트 마감 같은 것들이 몇십 년 전 미감이라 그래. 1층 학원의 물이 차올라 피아노 책이 다 쭈굴 해졌던 기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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