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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의 속도 Mar 22. 2019

설득하면서 개척하는 길

아마도 이게 PO의 롤일까

기획자는 서비스 운영을 하고 개선을 한다. 기존 구조를 잘 파악하고 무리 없이 서비스가 돌아가게 만드는 걸 잘하는 사람이 있는 한편, 하고 싶은 걸 잘 제시하는 사람도 있고 하고 싶은 걸 구체화하는 걸 잘하는 사람도 있다. 뭐가 중하 다곤 할 수 없지만 역시나 연차가 쌓일수록 자연스레 '하고 싶은 것'에 관여를 많이 하게 되는 것 같다. 

'하고 싶은 것'은 다르게 말하면 '의사결정'인데 나 혼자 멋진 걸 뽑아내는 게 아니라 같이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큰 그림이 아니라 그에 대한 근거. "하면 좋잖아요" 가지고는 택도 없다. 좀 더 나아가서 "봐요, 우린 이런 이런 가치를 추구하는 거예요" 아직이다. "그래? 그게 우리 사업에 어떻게 도움을 주는데?"에 대한 법적, 수치적 구체적인 근거를 가지고 주요 의사결정자를 공감시킬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시작하지 않으면 모르지. 그렇다고 아무거나 좋아 보이는 것들을 무턱대고 시작하나? 자원이 모자라니 작은 단위로 쪼개서 시도해볼 것이고 그마저도 시작해보려면 근거가 필요하다. 이 단계를 못 넘어선다면 그냥 때가 아니거나 바른 일감이 아니거나 당신의 경험이 부족한 것. 

최근 n개월 동안 새로운 프로젝트의 TFT에 속해서 '하고 싶은 것'을 같이 만들어나갔다. 어떤 효과를 기대하며 어떤 개선을 진행할지, 어떤 신규 기능을 만들어나갈지 조율하고 우선순위를 정하고 진행했다. 이제껏 "일"을 어떻게든 정의하고 마무리지어야 된다에 방점이 찍혀있었다면 이번에는 모여서 그게 진짜 "일"인지 의심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에 더 방점이 찍혀있었다. 한번 방향이 정해지면 그리로 가는 거야 금방 하지 하루 이틀 한 것도 아니고 이 조직에서만 합을 맞춘 사람들이 얼만데. 되돌아보면 험난했지만 일이 진행되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해보고 성과가 보일 것 같으면 가보자." 아무래도 여러 팀이 모여 일하는 결이 다르니 뭐라도 조금씩 같이 만들어가면서 맞춰본다. 커뮤니케이션 와중에 잘못했을 땐 잘못한 행위에 대하여 공식적으로 사과한다. 너무나도 교과서적인 말이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건 처음이었다. 

1. 여러 이해관계자가 같이 일할 때 진짜 분석, 진짜 목적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돌아가는지. 신뢰도 쌓아야 하고 방식도 맞춰야 되고 톤도 맞춰야 되고. 아직 이쪽은 A도 할지 말지 결정하지 않았는데 저쪽에서는 안 그러면 또 진행되지 않을까 싶어 벌써 Z 얘기를 할 때도 부지기수. 드디어 프로세스를 만들었다 싶더라도 사실 그때부터 시작. 단위로 쪼개고 실험해보고 그게 타당하면 좀 더 나가보고의 수많은 반복. 뭘 타당하게 보고 어느 방향으로 더 나갈지는 매번 고민하고 논의해야 한다. 필요하면 대표와도 공유해가면서 안 그랬다간 다 엎어지기 일쑤. 그렇게 몇 바퀴 더 반복하다 보면 이제부터 일다운 일이 시작된다.

2.  갈 방향이 정해졌다면 지금 시스템이 왜 이렇게 구축되어있는지 설계와 히스토리를 파악하면서 새로 가야 할지, 조금씩 개선할 수 있을지 판단. 필요에 따라서는 히스토리를 더 잘 아는 사람을 옆에 둬야 할 수도 있다. 사무실을 둘러보면 해당 기능(제품)에 대한 전문가가 옆에 있잖아. 외치자. 도움! (구) 서비스라고 늘 나쁜 건 아니다. 지금껏 잘 운영되고 있었다면 거기엔 그 나름의 질서가 부여되어 있는 것. 못생겨도 인정하자. 단 기존 시스템이 삐걱이지 않고 제대로 돌아가게 신경 쓰는 것도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이다. 어쩔 땐 빨리 다시 만들어버리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이것은 판단과 결정의 영역 자원은 늘 한정되어있으니 지금 당장은 고쳐쓸 수 없는지, 뭐부터 손을 댈 건지 우선순위를 도출하고 할 수 있는 범위로 일을 잘라서 뭐라도 진행한다.

Photo by Mimi Thian on Unsplash

여기까지 경험하고 보니 시니어 기획자란(때로는 PM  또는 PO) 논리 구조화해서 뭘 해야 될지 도출하고 일감으로 나누어 실제로 실행시키는 사람. 아이디어가 단지 아이디어로 남을지, 구현이 될지에서의 키가 되는 사람. 너무 부담 가지지 말자. 첫 단추인 "무엇을"을 정의해나가기 위해서는 팀을 관찰하고 이끌어내면 된다. 회사에서의 일이란 게 일견 설득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이끌어내는 게 아닐까. 다만 모든 일은 타이밍이니 좀 더 빠르고 명확하게 정리해야 사업의 성과로 이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돌아 돌아 퍼실리테이션인데... 구성원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지식과 경험을 이끌어내는 퍼실리테이터형 인간이 되고 싶다. 운전을 잘하려면 전방을 주시하면서도 동시에 백미러와 사이드미러를 흘긋흘긋 쳐다봐야 한다. 조직도 잘 되려면 키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목표를 향해 가면서도 적절히 팀을 살펴보고 필요한 액션을 해야 될 것이다.

좀 더 멀리 가려면 아무래도 경영과 친숙해져야만 하는 것 같아 링크를 덧붙인다. 타고 들어가면 첫 번째 용어가 퍼실리테이터다. 하버드비즈니스스쿨(HBS) 온라인강좌,  HBS의 악명높은 cold call을 제목으로 한 팟케스트도 붙여둔다. cold call이 무엇인지는 여기에서. 와튼스쿨의 강좌는 Coursera에 무료로 올라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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