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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 읽어주는 남자 Jan 27. 2019

[레디 플레이어 원] 대중문화를 향한 러브레터

03화. 2018년 겨울, 세 번째 - <레디 플레이어 원>

About Movie. <죠스>, <이티>, <쥬라기 공원> 등 SF 영화의 대가인 스티븐 스필버그가 VR 기술을 기반으로 한 미래를 보여준 영화. 어니스트 클라인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가상현실이 인류를 장악한 세상을 배경으로 한다. 화려한 기술과 이에 취해있는 암울한 인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겉으로는 미래의 기술과 문화를 보여주지만, 이야기의 중심엔 80년대의 대중문화가 중요한 열쇠가 된다. 당시의 유명한 영화 및 감독인 스티븐 스필버그 작품의 흔적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등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이 많을수록 영화에 숨겨진 이스터에그를 찾는 재미가 있다. 영화와 게임의 캐릭터가 다수 등장하며, 덕분에 다양한 추억을 소환해 즐길 수도 있다. 키노라이츠 지수는 98.4%를 기록 중이다.


방 안에서 세상의 모든 곳, 우주, 그리고 상상 속의 공간까지 모두 갈 수 있다면 어떨까. 먼 미래의 일 같지만, VR 기술은 이를 가능케 하고 있고, 머지않아 그런 순간이 올 것이다. 그리고 여기, 그 미래의 순간을 미리 보여주는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이 있다. ‘오버워치’의 트레이서가 등장한 예고편만으로 전 세계를 설레게 했던 영화이자 스티븐 스필버그의 SF 영화이기에 무조건 봐야 하는 작품이다. 트레이서의 목소리를 빌리자면, “스필버그의 새로운 영화는 언제나 환영이야!”



대중문화를 향한 스티븐 스필버그의 애정

<레디 플레이어 원>은 인기 있는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에 등장했던 캐릭터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것으로 화제가 되었다. 슈퍼맨, 배트맨, 건담, 처키, 둠 등 대중문화의 총집합이다. <이티>, <인디아나 존스>, <쥬라기 공원> 등 스스로가 대중문화의 대통령인 스필버그 감독의 대중문화를 향한 애정이 잔뜩 묻어있는 종합 선물 세트라 할 수 있다. 관객에게는 영화의 내용만큼이나, 얼마나 많은 캐릭터를 찾을 수 있는지 내기를 하는 것도 재미있는 관람 포인트가 될 수 있을 정도다. 알고 있는 문화를 많이 찾을수록 영화의 감동은 배가 되는, 과거의 오락 거리를 공부하게 되는 영화다.


이 영화의 다른 감동은 오타쿠(한 분야에 열중하는 사람)의 해방에 있다. 과거의 오타쿠란 용어는 부정적인 느낌이 강했다. 방구석에 박혀 게임과 영화 등에 빠져 있던 ‘사회 부적응자’ 정도로 생각되었다. 루저였던 거다. <레디 플레이어 원>의 할리데이(마크 라이런스)도 자신이 사회 부적응자였다는 걸 고백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무한한 세계인 ‘오아시스’를 창조했고, 시궁창 같던 삶을 살던 인류에게 가능성을 열어줬으며, 신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이 오아시스를 구한 웨이드(타이 쉐리던)도 할리데이에게 집착하던 오타쿠였다. <레디 플레이어 원>은 이 부적응자들이 세상을 만들고, 구한 시간을 기록한 성서다.



이 영화는 문화에 몰두해있는 모든 이들을 승자로 만든다.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걸 즐기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영화의 뒤에 우리 시대의 문화 대통령 스티븐 스필버그가 있다는 점에서 더 설득력이 있지 않은가. 고급문화와 달리 대중문화는 장벽이 높지 않다. 대중문화는 인간을 차별하지 않고, 즐거움을 줄 수 있다. 그래서 누구나 위너가 될 수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영화 속 가상의 공간 ‘오아시스’를 구한 한 명의 오타쿠를 통해 이를 말하고 있었다. 천진난만하지만, 믿어보고 싶은 대중문화의 힘이다.


이런 대중문화를 향한 무한한 애정 외에 스필버그 감독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했던 건, 대중문화의 주인이 누구인가에 관한 것이다. <레디 플레이어 원>은 대중문화를 누구도 통제, 간섭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대중문화를 해로운 것, 별거 아니라 말하는 꼰대들을 향한 저항의 메시지를 담았다. 이를 무가치한 것으로 보는 기업가, 그리고 그저 지배의 수단으로 삼으려는 꼰대를 향한 반감이 소렌토(벤 멘델슨)라는 인물을 통해 잔뜩 드러나 있다.



영화를 향한 오마주

<레디 플레이어 원>에는 수많은 캐릭터 외에도 영화를 향한 오마주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오마주란 존경의 의미로 다른 작품의 장면, 혹은 대사를 인용하는 걸 뜻하는 용어인데,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 스탠릭 큐브릭 감독의 <샤이닝>이다. 이 영화는 원작자 ‘스티븐 킹’이 싫어했다는 것으로 유명하고, 영화에서도 이 사연을 들을 수 있다. 이렇게 불운했던 <샤이닝>이 영화사에서 얼마나 놀랍고 뛰어난 작품이었으며, 기억할 만한 작품인지를 스필버그는 <레디 플레이어 원>을 통해 보여준다. 문득, <레디 플레이어 원>에 관한 스티븐 킹의 반응이 궁금해진다.


스탠릭 큐브릭과 스티븐 스필버그는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감독이다. 정확히는 큐브릭이 더 먼저 활약했고,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등의 작품을 통해 영화사를 뒤집어 놨다. 스필버그는 스탠리 큐브릭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스탠리 큐브릭 - 영화 속의 인생>이라는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큐브릭은 <A.I>라는 영화의 연출을 스필버그에게 맡긴 인연도 있다. 그래서 스필버그에게 큐브릭은 특별한 존재였을 것이고, 오마주된 <샤이닝>엔 큐브릭을 향한 그리움이 보이는 듯했다.


그 외에 기억에 남는 장면은 ‘제임슨 카메론’ 감독의 <에이리언>과 <터미네이터>, <아바타> 등을 오마주한 장면이다. SF 장르와 특수효과 분야에서 큰 족적을 남긴 동료 감독을 향한 존경의 마음이 보이는 부분이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이 영화에 그와 함께했던 많은 영화를 곳곳에 전시했다. 그가 사랑했고, 영광을 누렸던 세대를 정리해 이 영화 속에 박제하려는 시도처럼 보이기도 한다. 확실한 건, <레디 플레이어 원>이 더 많은 영화를 알수록 더 많이 보이고, 더 짜릿함을 느낄 수 있는 영화라는 거다.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이미지

<레디 플레이어 원>에 관해 마지막으로 하고 이야기하고 싶은 건 ‘시물라시옹’이라는 철학적 개념이다. 이는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이미지를 뜻하는 용어로, 영화의 ‘오아시스’가 이 개념을 설명하기에 적절한 공간이다. 오아시스는 현실을 대체할 수 있는 공간이다. 관객은 영화를 통해 가상의 이미지가 현실을 대체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오아시스’엔 편견이 없고, 인간에게 엄청난 자유를 보장한다. 하지만, 역으로 가상의 이미지에 갇혀, 현실은 피폐해지는 인간의 모습도 볼 수 있다.


<레디 플레이어 원>은 ‘오아시스’를 통해 현실과 가상의 괴리를 보여주고, 결국엔 현실의 중요성까지 보여준다. 가상의 관계보다, 진짜 인간과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시물라시옹이라는 환상이 결코 대체할 수 없는 건, 인간과 인간의 신뢰, 우정 등의 관계라 말한다. 할리데이는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둔 ‘오아시스’를 만들었지만, 가장 중요했던 친구를 잃었다. 모든 상상이 가능했던 가상현실에서도 그 친구만큼은 구할 수 없었다. 이 영화의 웨이드와 사만다(올리비아 쿡)의 키스 장면이 다른 영화에 비해 중요할 수 있는 건, 진짜 인간 사이의 진짜 접촉을 보여준다는 데 있다. 이렇게 <레디 플레이어 원>은 환상적인 가상현실을 보여주지만, 결국엔 현실에 발을 붙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레디 플레이어 원>은 140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눈과 귀가 즐거웠던 영화다. 영화의 화려함과 스펙터클한 미장센보다 더 놀랐던 건 스티븐 스필버그의 감각이다. 이젠, 나이가 꽤 많은 스필버그 감독이 이렇게 세련된 감각을 유지하고 있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그는 영화와 함께, 여전히 모험하는 여행자였다. 그리고 누구에게 훈계하지 않는 문화의 향유자였다. <레디 플레이어 원>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여전히 꼰대가 아니고, 영원한 대중문화의 대통령이 될 것임을 증명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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