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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 읽어주는 남자 Mar 17. 2019

[허스토리] 그렇게 하나, 그렇게 역사가 된다

10화. 2018년 여름, 두 번째 - <허스토리>

<허스토리>는 여성 경제인 모임을 담으며 영화의 문을 연다. 모임의 특성과 문정숙(김희애)의 대사를 통해, 영화가 앞으로 여성의 주체성에 관해서 말할 것임을 당당히 밝히는 장면이다. 이 첫인상과 함께 <허스토리>라는 제목을 통해 알 수 있듯, 영화는 ‘관부재판’이라는 역사를 여성의 관점에서 풀어냈다. 행동하는 그녀(Her)들이 세상을 뒤흔들었던 과거를 조명해 한을 풀 시간을 주고, 바라보기도 아픈 과거를 정면으로 마주 보게 하는 영화다.


재미있게도 <허스토리> 속엔 정상적인 한국 남자가 보이지 않는다. 문정숙이 믿었던 최팀장(정인기)은 비윤리적인 일로 경찰서에 잡혀가고, 그곳에서 만난 경찰들의 태도 역시 강압적이다. 또한, 택시 기사는 할머니들이 창피하다며 욕하고, 나중엔 여행사 건물에 돌을 던지는 몰상식함을 보인다. 마지막으로 언급할 남성은 배정길(김해숙)의 아들 순모(최병모)인데, 그는 자신을 키워준 어머니를 ‘더럽다’ 말하는 패륜아였다.



<허스토리> 속 한국 남성은 한 번 이상 문정숙에게 적대적 태도를 보인다. 그리고 영화가 끝날 때까지 순모를 제외한 다른 남성들은 이 적대적 태도를 풀 기회를 얻지 못한다. 이렇게 영화는 한국의 남성을 배제하고, 여성은 그들에게서 아무런 도움을 받지도, 바라지도 않는다. 심지어 문정숙의 남편 자리는 비어있었다.


이런 성별의 구도가 팩트에 근거한 것인지, 혹은 작가의 설정인지는 알 수 없지만, 주인공들을 더 선명하게 보여주는 효과가 있었다. <허스토리>가 택한 한국 남성의 배제는 1990년대의 목소리를 내기 힘들던 여성의 현실을 생각할 수 있게 한다. 동시에 여성 캐릭터의 주체성을 더 잘 보이게 하고, 이들이 기존 가치관에 반하는 일을 용감히 해내고 있었다는 걸 강조한다.



이렇게 <허스토리>는 여성이 잘 보이게 연출된 영화다. 하지만, 이 영화를 이해하는 데엔 두 남성의 역할이 꽤 중요하다. 국가를 상대로 당당히 싸우는 이상일(김준한)과 앞서 패륜아라 말했던 순모를 이해할 수 있어야 영화를 더 깊게 볼 수 있다. 이 두 사람은 <허스토리>를 역사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진 영화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 어떤 속성이 이 두 남자를 특별하게 할 수 있을까.


이상일은 교포로서 한국과 일본의 속성을 동시에 지닌 남자다. 두 곳의 성격을 다 가졌지만, 어느 곳에도 완전히 속할 수 없는 이 남자는 ‘위안부 피해자’라는 사안을 두 국가의 시선에서 바라볼 수 있다. 덕분에 이성과 감성 두 가지 차원에서 관부재판에 접근 할 수 있었다. 문정숙과의 첫 만남에서 이상일은 ‘흥분하면 안된다’고 말하는데, 명백한 피해자가 있음에도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감정적 대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음을 꼬집고 있는 장면이다.



순모는 어머니의 아픈 과거가 만든 그림자 속에 살아온 인물이다. 특히, 매독균이 끼친 영향으로 정상적인 생활이 힘들고, 그는 자신을 피해자라 규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순모는 역사의 비극을 물려받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의 위치에도 선다. 어머니를 욕하고 모욕을 주며 그녀 가슴에 대못을 수없이 박는다. 이런 피해와 가해의 악순환은 영화 후반부, 배정길 할머니의 고백으로 끊어지고, 순모는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고 그녀를 어머니로 인정하며 화해를 이뤄낸다. <허스토리>에서 문정숙 외에 큰 변화와 성장을 이뤄냈다고 볼 수 있는 인물이 순모다.


두 남성을 특별하게 만드는 속성은 ‘이중성’과 여기에서 오는 ‘공감 능력’이다. 이상일과 순모는 일본과 한국, 가해자와 피해자의 복합적인 위치에 서 있던 인물이다. 이들은 두 입장을 경험했기에 두 입장 모두를 공감할 수 있었고, 둘 사이에서 접점을 찾을 수 있었다. 이 접점에서 이상일은 관부재판으로 두 나라를 위한 정의를, 순모는 어머니와의 화해를 통해 세대 간의 화합을 이뤄낸다. 관부재판의 중심에 있는 비극의 역사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공감 능력과 한국 내부의 공감 능력 모두가 필요했다.



역사학자 신채호가 말한 “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을 해소할 힘은 “아와 비아의 공감”에 있다는 걸, <허스토리>는 말하고 있었다. History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여성을 경유해 ‘Her’(그녀의)story가 되었지만, 결국 다시 남성을 경유하며 ‘His'(그의)tory가 되었고, 결국 이 두 가지가 모여 ’History‘가 되었다. 그렇게 하나 되고, 그렇게 역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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