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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험소녀 Jan 15. 2024

그때 그장소 : 모스크바 메트로폴 호텔

소설 『모스크바의 신사』 속 그곳 이야기

모스크바 대표 5성급 호텔 메트로폴(Metropol).

제정 러시아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드는 곳이다.


에이모 토울스의 소설 『모스크바의 신사』를 읽고 메트로폴 호텔이라는 공간이 더욱 궁금해졌다. 글로만 접 그려 그곳의 모습은, 소련 전환기 당시에도 왠지 고급스러운 귀족 스타일 유지하고 있을 것만 같았다. 호텔 구석구석 연결된 비밀 통로와 로스토프 백작이 머물던 종탑까지 다 탐험해보고 싶은 마음이다.



메트로폴은 어떤 곳일까?



(1) 예술의 절정이 담긴 호텔


모스크바 메트로폴 호텔 위치(출처: 구글 지도)


메트로폴 호텔은 모스크바 도심에 위치한다. 붉은 광장에서 도보로 5분, 볼쇼이 극장과는 대로 하나를 사이에 둔 거리이다. 호텔 건물은 4개동으로 규모에서 먼저 놀라고, 외관은 모자이크 작품과 조각들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게 된다.


메트로폴 호텔 프로젝트(출처: metropol-moscow.ru)


메트로폴 호텔 설립은 본래 19세기 말 '호텔을 갖춘 극장'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예술 애호가이자 재벌 기업가로서 오페라단도 소유한 사바 마몬토프(Савва Мамонтов)는 오페라단이 공연할 수 있도록 볼쇼이 극장 맞은편에 3천 관중을 수용하는 오페라 극장과 대형 호텔, 고급 레스토랑이 결합된 예술 궁전 설립 프로젝트를 구상했었다. 하지만 재정적인 이유로 그의 뜻과는 달리 결국 메트로폴은 '레스토랑을 갖춘 호텔'로 1905년 지어지게 되었다.

 

설립 초기 메트로폴 호텔(출처: www.behance.net)


건물 외부 장식과 인테리어에는 마몬토프의 권유로 당대 최고의 예술가가 참여했다.

큰 도로에서 보면 호텔 외관미하일 브루벨(Михаил Врубель)의 작품이 보인다. 건물 상단 브루벨의 도자기 모자이크 <꿈의 공주> 판넬은 멀리서도 보일 만큼 꽤 거대하다. <꿈의 공주>(1896) 원래 대중의 호응을 얻지 못한 작품이었는데, 그 사본을 마졸리카 도자기로 탈바꿈해 메트로폴 호텔 외부에 선보이면서 그 가치가 달라졌다.



미하일 브루벨의 <꿈의 공주>. 트레치야코프 미술관에 있는 원본(좌), 메트로폴 호텔 외부 판넬(우) (출처: nmcmosobl.ru / bangkokbook.ru)

호텔 4층 외벽에는 조각가 니콜라이 안드레예프(Николай Андреев)의 작품 <사계> 조각이 띠를 이루며 건물을 장식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분수가 있는 메트로폴 레스토랑의 유리 천장 구조는 엔지니어 블라디미르 슈호프(Владимир Шухов)가 만들고, 그림은 세르게이 체호닌(Сергей Чехонин) 작품으로 장식되었다.


니콜라이 안드레예프의 <사계>와 세르게이 체호닌의 그림이 있는 유리 천장(출처:  dzen.ru / bangkokbook.ru)


이처럼 호텔의 예술적인 절정은 모두 사바 마몬토프가 후원한 예술가들 손길이 담긴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호텔은 하나의 예술 작품과 같았다.


(2) 역사를 겪은 메트로폴


매순간 화려할 것만 같 메트로폴 호텔에도 시련의 시기는 있었다.

호텔은 제1차 세계대전과 사회주의 혁명 시기를 거치 무참하게 파괴되고 변형되었다. 볼셰비키에 대항하는 장소로 수많은 총알받이를 한 탓에 건물은 많 손상되었지만, 그 가운데 메트로폴에서의 삶은 계속되었다.


1917년 파손된 메트로폴 호텔(출처: metropol-moscow.ru)


혁명 정부가 모스크바로 이전한 이후 기능에 변화가 생겼다. 메트로폴 호텔에 소비에트 인민위원회가 자리 잡 당의 주요 인사들과 그의 가족들, 엘리트들이 숙식하며 지내는 '소비에트 두 번째 집'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20세기 메트로폴 호텔(출처: bangkokbook.ru)


1930년대에는 외국 손님 유치에 주력하는 소련의 노력으로 메트로폴 예전처럼 최고의 호텔로 돌아가는 듯했다. 덕분에 호텔은 당대 주요 인사들이 머무는 장소 주목받기도 하였으나, 1960년대 중반까지 '소비에트 두 번째 집' 때 들어온 현지인 거주지 외국인을 위한 호텔이 혼용되기도 하면서 시대를 따르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 여러 차례 개보수를 거친 메트로폴 호텔은 지금의 아름다운 모습을 지켜내고 있.

멋진 5성급 호텔이라 아픔이나 어려움 없었을 것 같지만, 그 아름다운 모습 뒤에는 세월의 부침이 함께 하고 있다.


현재의 메트로폴 호텔(출처: zelengarden.ru)


(3) 『모스크바의 신사』 그 장소


소설 『모스크바의 신사』에서 나왔던 그 장소가 궁금하다.

비록 현재 기준으로는 완벽하게 동일한 공간은 아니지만 한번 뒤쫓아봤다.


소설에서 로스토프 백작과 어린 니나가 처음 만난 장소 '피아차' 식당. 이 장소는 바로 분수대가 있는 '메트로폴 레스토랑'인데, 호텔의 중심이자 러시아의 역사를 모두 기억하고 있는 광장 같은 공간이기도 하다.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진 홀을 돋보이게 해주는 건 단연 천장 스테인드글라스로, 그 반사광은 공간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 준다. 이곳에서 레닌의 스피치가 울려퍼졌고, 조지 버나드 쇼가 비건 요리를 주문했으며, 마이클 잭슨이 포르테피아노를 연주했다고 한다.


피아차 식당으로 묘사된 메트로폴 홀(출처: 2gis.ru)


로스토프 백작이 웨이터 주임으로 일한 곳은 '보야르스키' 식당이다. 현재 호텔에는 동일한 이름의 '보야르스키 홀'이 있다. 소설에서는 2층 구석에 있는 식당이라고 했는데, 현 호텔에는 4층에 있는 홀이다. 소설에서 '러시아 귀족의 은거처를 연상시키는 둥근 천장'이라고 묘사한 걸 보면, 둥근 천장이 아늑하게 느껴지는 이 장소가 맞는 것 같다.


홀은 16세기 보야르(귀족) 저택 양식으로 천장이 높은 사원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든다. 고전적 러시아 스타일과 반복되는 자연 패턴 벽이 매력적으로, 이곳 아름다운 벽면에도 세르게이 차호닌의 손길이 지났다고 한다. 홀을 지키는 거대한 불곰 모형도 놓치지 말자.


보야르스키 홀(출처 oknovmoskvu.ru)


로스토프 백작이 술 한 잔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러 갔던 '샬랴핀'. 동일한 이름의 '샬랴핀 바'가 있다. 실제로 혁명 전에 가수 표도르 샬랴핀(Фёдор Шаляпин)이 메트로폴 호텔에서 노래를 부른 적이 있다.


가수 샬랴핀의 실력을 한눈에 알아본 건 앞서 호텔 프로젝트를 구상했던 사바 마몬토프였으며, 덕분에 유명가수로 성장할 수 있었다.

현재는 리모델링을 거쳐 20세기 초 스타일의 모던한 디자인으로 꾸며다.


샬랴핀 바(출처: dzen.ru)


소설과 인연이 깊으니, 메트로폴 호텔 어디선가에 『모스크바의 신사』 을 만날 수도 있을 것 같다.


호텔에 있는 소설책 『모스크바의 신사』(출처: eksmo.ru)




호텔 하나에도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있는 모스크바.


오래도록 지켜진 일수록 더욱 사연이 많다. 어디서 들어본 사람의 이름이 적혀있고, 유명한 누군가 즐겨찾는 곳이었고... 마치 타임머신 타고 옛날로 돌아간 기분마저 들게 하는 신기한 매력이 있다.

그것이 시간 여행의 힘이다.


오늘 하루만큼은 모스크바 메트로폴 호텔에서 멋지게 체크인하는 나의 모습을 꿈꾸며...



※ 원문 관련 영상 [모스크바의 예술 호텔 메트로폴]

https://youtu.be/eBIpjjefTJw

출처: 유튜브 채널 여행과 사색


* 표지 사진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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