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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험소녀 Apr 17. 2024

상트페테르부르크 넵스키 대로를 산책하며 고전을 느끼다

도심을 가로지르며 제국 시절을 거닐어 보기

러시아 제국의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

그곳이 서구로 난 창으로서 유럽 분위기를 자아내게 된 데는 도시의 아름다운 건축물과 거기서 풍기는 고전적인 분위기가 한몫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유럽과 닮은 듯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좀 다르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유럽의 것을 독자적으로 재탄생시킨 모습을 하고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구역별 지도(출처: yandex.ru/maps)

이제부터 네바강 흐르는 도시의 중심을 산책하면서 러시아식 고전을 하나하나 꿰뚫어 보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 중심가라 일컫는 곳들은 크게 중앙 지구, 해군성 지구, 그리고 교량으로 연결된 바실리섬 지구와 페트로그라드 지구 정도인데, 모두 네바강에 둘러싸여 한데 모여있다.


그중에서도 도시의 핵심인 중앙 지구를 둘러보겠다. 중앙 지역을 관통하는 '넵스키 대로(Невский проспект)'를 따라 도시를 활보하다 보면 표트르 대제가 기반을 닦고 여제 시절에 비로소 완성된 러시아식 건축물부터 그 사이사이로 흐르는 운하까지 멋들어진 상트페테르부르크가 한눈에 들어올 것이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넵스키 대로


넵스키 대로는 네바강 서쪽 해군성에서 시작해 반대편 네바 강변의 알렉산드르 넵스키 대수도원까지 4.5km 길이로 뻗어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중심 거리이다. 제국 시절 유럽 출신 건축가들이 건축한 성당과 박물관, 극장, 정원 등 온갖 명소들이 모두 이 대로를 중심으로 모여 있다. 거리는 모이카강, 그리바도바 운하, 폰탄카강 등 네바강으로 연결되는 주요 물줄기가 흘러 운치를 더한다. 넵스키 대로 주변 역사적 건축물들은 대부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어, 현대식 건물은 찾아보기 어렵다.


넵스키 대로(출처: carposting.ru)


넵스키 대로는 표트르 대제의 명으로 1710년대 조성되었다. 거리 양끝에서 공사를 시작한 탓에 모스크바 기차역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의 길이 굽었다. 길의 명칭은 노브고로드 대공 알렉산드르 넵스키(Александр Невский, 1221~1263)의 이름을 땄는데, 그는 13세기 네바강 전투에서 스웨덴군을 물리쳐 성인으로 추대된 인물이다. 표트르 대제는 그가 승리했던 장소 근처에 도시를 세워 거리에 넵스키의 이름붙안 것이다.


넵스키 대로와 알렉산드르 넵스키 대공(출처: sportishka.com, bel.cultreg.ru)


지금의 넵스키 대로는 잘 보존된 시아 제국의 유산을 잘 집대성해 놓은 장소이다.

클래식한 건축물과 정원 등 볼거리가 많고 길이 넓 산책하기도 좋아서, 수많은 차와 사람이 왕래한다.

넵스키 대로를 제대로 걸어보지 않았다면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다녀왔다고 말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넵스키 대로에서 러시아식 고전을 산책하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넵스키 대로 따라 산책(출처: yandex.ru/maps)


지금부터 넵스키 대로의 서쪽에서 동쪽으로 산책하면서 주요 장소들과 함께 도심의 정취를 느껴보겠다.

그 시작은 누구라도 알 법한 세계적인 박물에르미타가 되겠다. 제국 시절 '겨울 궁전'으로 황실의 공간이던 이곳이 지금은 유럽의 예술 작품 렉션을 감상하는 장소가 되었다.  


① 국립 에르미타주 박물관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Эрмитаж


겨울 궁전 속 국립 에르미타주 박물관(출처: mykaleidoscope.ru)


네바강과 넵스키 대로가 시작되는 지점에 고급진 에메랄드빛 겨울 궁전, 국립 에르미타주 박물관이 병풍처럼 드리워져 있다. 드넓은 궁전 광장에 위치한 건물은 현재 네바 강변의 5개 건물을 포함해 365개의 홀, 3백만 점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대형 미술관이다. 궁전에 있는 수많은 방은 러시아식으로 꾸며졌지만 그 속에는 러시아 그림이 아닌, 서유럽 명화예술품이 자리한다. 에르미타주 컬렉션의 특징을 꼽는다면, 대부분 약탈해온 그림과 문화재로 소장품을 이루고 있는 유럽 유명 박물관들과는 달리 이곳 미술품들은 모두 서양에서 직접 수집한 것이란 사실이다. 고대 유물뷰터 18세기까지 유럽 작품은 물론, 화려한 궁전의 방들과 러시아 황제의 홀과 좌는 덤이다.


에르미타주 내 요르단 계단과 황제의 옥좌가 있는 게오르기 홀(출처: yandex.ru, wikiway.com)


에르미타주 박물관이 소재한 겨울 궁전은 서양 문물을 사랑한 엘리자베타 여제의 명으로 1754~1762년 건축됐다. 1천 5백 여 개 공간을 갖춘 궁전은 여제 사후 완성돼 황제의 거주지가 되었다. 한편, 박물관으로서 에르미타주의 역사는 예카테리나 여제가 네덜란드 플랑드르 그림을 소장하게 된 1764년부터 시작된다. 작품들이 처음부터 겨울 궁전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수집한 작품들이 늘어보관 장소가 필요해서 소에르미타주를 증축했고, 이후 렉션이 방대해지자 신에르미타주로 옮겨 1852년 대중에개방했다. 그리고 러시아 혁명이 일어난 1917년 이후에는 겨울 궁전과 합쳐져사 지금의 총체적인 에르미타주 박물관을 이루게 된 것이다.


에르미타주 내 루벤스 홀과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 그림(출처: www.spbmuzei.ru, dzen.ru)


에르미타주의 대 소장품으로는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마돈나 리타> 등이 있는데 그 근방에는 늘 인파가 붐빈다. 작품 감상만이 아니라 아름다운 겨울 궁전 모습도 속속들이 구경할 수 있다. 19세기 상인 슈킨과 모로조프 형제가 수집한 피카소, 마티스 등 우리도 익숙한 19세기 프랑스 작품들은 겨울 궁전 맞은편 총참모부 건물 동편에서 전시된다. 그곳에 마티스의 <춤>, 피카소 <두 자매> 등 명작들이 쏟아진다. 에르미타주 박물관에서 작품별 5분씩만 감상해도 보는데 30년이 걸린다고 하니, 그 엄청난 규모를 가늠할 수 있다. 미리 동선을 계획하고 가지 않으면 지쳐서 나앉기 십상이다.


총참모부 동편의 에르미타주 전시관과 그곳에서 만나는 마티즈, 피카소 그림(출처: triptonkosti.ru, zelengarden.ru)
< 국립 에르미타주 박물관 >
- 주소 : Дворцовая пл., 2(드보르초바야 플로샤지) 궁전 광장
- 찾아가기 : 메트로 5호선 Адмиралтейская(아드미랄체이스카야)역에서 도보 10분


참, 에르미타주에 살고 있는 미술관의 호위무사 고양이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겠다!


② 해군성 Главное адмиралтейство


해군성(출처: ru.russiabeyond.com)


넵스키 대로 초입 네바 강변에 겨울 궁전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해군성이 있다. 노란 건물에 뾰족하게 솟은 첨탑이 눈에 띄는 이곳은 옛 해군성이다. 현재는 해군 총사령부가 소재하고 있어 건물 안으로 출입할 수는 없지만, 주변 공원이나 넵스키 대로를 산책하면서 보면 멋진 배경으로 카메라에 잡힌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도시 설립 이전부터 전쟁이 지속되던 지역이고, 바다로 나가는 길목이기도 해서 이곳에서 해군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건 당연하다. 높이 72.5m의 첨탑 꼭대기에 달린 길이 158cm, 무게 65kg에 달하는 황금배는 그러한 필연을 보여주듯 도시의 역사적인 상징이 되고 있다.


해군성 첨탑 꼭대기의 황금배(출처: sportishka.com)


표트르 대제는 1704년 네바강과 모이카강 사이에 위치한 섬에 군함 건조와 전쟁 방어를 위한 해군성 조선소를 설립했다. 그의 통치 기간 동안 본인이 직접 선박 설계와 건조에 참여했고 농노과 외국인을 포함해 1만 명이 조선소에서 군함 262척을 배출했으니, 황제가 바다 수호에 얼마나 큰 에너지를 쏟았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놀랍게도 함대건조이후 러시아는 스웨덴과의 북방 전쟁에서 승리를 얻었다. 러시아 함대의 탄생과 승리의 역사가 바로 이곳 해군성에서 시작된 셈이다.


표트르 대제 시절 조선소였던 해군성(출처: wikiway.com)


해군성은 18~19세기 러시아식 고전주의 양식으로 재건되었다. 그리고 이곳에는 해군 위원회, 군함 건축 전문학교, 해양부 등 해군 기관이 위치하기도 했다. 한편, 해군성을 둘러싸고 있는 공원 한켠 네바강을 향해 표트르 대제의 청동 기마상이 있다. 바다를 수호한 황제의 업적을 기억하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표트르 대제의 청동 기마상과 그 뒤로 보이는 해군성(출처: dzen.ru)
< 해군성 >
- 주소 : Адмиралтейский просп., 1(아드미랄체이스키 프로스펙트)
- 찾아가기 : 메트로 5호선 Адмиралтейская(아드미랄체이스카야)역에서 도보 7분


③ 카잔 대성당 Казанский кафедральный собор


카잔 대성당(출처: m.fotostrana.ru)


해군성을 등지고 모이카강을 건너서 넵스키 대로를 걷다 보면 우측에 웅장한 카잔 대성당이 모습을 드러낸다. 로마에 온 듯한 느낌을 주는 카잔 대성당은 반원형으로 굽이진 외관에 제국 스타일의 기둥 96개와 거대한 돔이 그 위용을 더하고 있다. 보기만 해도 규모에 압도당한다. 성당 내부도 웅장하다. 특별히 한 이콘(성화) 앞에서 수많은 이들이 줄 서서 기도할 차례를 기다리는데, 이는 성당의 탄생과도 관련이 깊다. 성당 이름에 ‘카잔’이 붙은 이유는 이 성당에서 승리의 기적을 가져다준다는 상징적인 카잔 성모 이콘을 성물로 보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오랜 기다림 끝에 나는 간절함이 바로 카잔 성모 이콘이다.


카잔 성모 이콘과 이를 섬기기 위해 줄을 선 신자들(출처: dzen.ru, trip-for-the-soul.ru)


카잔 대성당 건축은 파벨 황제가 로마의 성베드로 대성당과 닮은 성전을 짓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됐다. 당시 귀족 명문 스트로가노프 가문의 농노 출신인 안드레이 보로니힌이 10년 여 시간에 걸쳐 성당을 지어 1811년 완공했다. 성당이 카잔 성모 이콘을 위해 봉헌된 덕분에 1812년 러시아는 조국 전쟁(나폴레옹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카잔 대성당은 그렇게 러시아군의 영광을 기념할 명분이 충분했다. 카잔 성모 이콘 덕분이.


카잔 대성당 내 쿠투조프 장군이 모셔진 곳 그 주변의 훈장과 전리품들(출처: flectone.ru)


성당에는 조국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 미하일 쿠투조프 장군의 무덤이 있다. 또 러시아가 점령한 도시의 성벽 열쇠와 전쟁 트로피 등 전리품들도 함께 보관되어 있다. 그야말로 승리의 영광을 기억하고 감사 기도를 드릴 만한 장소이다. 카잔 대성당 건물 앞 양쪽에는 조국 전쟁의 두 영웅 쿠투조프와 바클레이 데 톨리 동상이 늠름하게 서있다. 이처럼 카잔 대성당은 성당과 박물관의 기능을 함께 하며 늘 열려 있어, 많은 이들이 찾는다.


카잔 대성당 앞 1812년 조국 전쟁의 영웅들 쿠투조프(좌)와 바클레이 데 톨리(우) 동상(출처: flectone.ru)
< 카잔 대성당 >
- 주소 : Казанская пл., 2 (카잔스카야 플로샤지)
- 찾아가기 : 메트로 2호선 Невский проспект(넵스키 프라스펙트), 3호선 Гостиный двор(가스치니 드보르)역에서 도보 3분


④ 예카테리나 정원 Екатерининский Сад


예카테리나 정원(출처: dzen.ru)


카잔 대성당에서 18세기 양식의 거대한 가스치니 드보르 백화점 건물을 지나면 예카테리나 정원이 나온다. 정원은 오스트롭스키 광장에 있데, 그 뒤로 알렉산드 극장이 있는 것으로 보아 광장의 명칭은 러시아 극작가 알렉산드르 오스트롭스키의 이름에서 왔다. 예카테리나 정원은 푸릇한 나무와 쉼터가 어우러져 넵스키 대로를 오가는 시민들이 앉아쉬어가거나 여유롭게 체스를 두기도 하는 아주 평화로운 공간이다.



예카테리나 정원은 건축가 카를로 로시가 1816년 극장 신설과 인근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만들어졌다. 공공 도서관과 알렉산드라 극장이 1828~1832년 건축되었고, 그 전면에4개의 굽은 가로수길이 있는 중앙 정원과 울타리가 세워졌다. 이후에는 예카테리나 여제 즉위 100주년이 되던 해 4m가 넘는 그녀의 동상을 10년에 걸쳐 제작해 그녀의 정원에 1873년 세웠다. 동상을 통해 여제 집권 당시의 권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무엇보다 여제의 동상 아래로 그녀의 애인으로 알려진 9명의 귀족이 개성 있게 표현된 모습에 눈길이 간다. 정원은 여러 차례 복원 후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예카테리나 여제와 그녀의 남자들 정원 뒤 알렉산드라 극장(출처: dzen.ru, stranabolgariya.ru)


예카테리나 정원을 앞마당 삼고 있는 알렉산드라 극장 또한 건축가 로시의 작품으로, 이곳은 러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국립 극장 중 하나이다. 18세기 황실 극장으로 사용되었으며, 니콜라이 1세의 황후 알렉산드라의 이름을 땄다. 극장 건물은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졌는데 상단에 말 네 마리와 아폴로 전차의 조각이 눈에 띈다. 황제 자리의 정당성을 강조하고자 제국 스타일을 강조예카테리나 여제의 에너지가 극장 건물에서도 느껴지는 것 같다.

< 예카테리나 정원 >
- 주소 : пл. Островского(플로샤지 오스트롭스코보) 오스트롭스키 광장
- 찾아가기 : 메트로 2호선 Невский проспект(넵스키 프라스펙트), 3호선 Гостиный двор(가스치니 드보르)역에서 도보 4분


⑤ 아니치코프 다리 Аничков мост


폰탄카강 위 아니치코프 다리(출처: ok.ru)


예카테리나 정원에서 동으로 내려가면 폰탄카강을 가로지르는 말 동상의 아니치코프 다리를 만난다. 이곳은 50m 길이의 아치형 다리로 넵스키 대로 명소이다. 도시에 수많은 다리가 있지만, 아니치코프 다리가 유명해진 이유는 네 귀퉁이의 아주 역동적인 동상들 덕분이다. 네 개의 동상은 청년이 야생마 길들이는 모습을 단계별로 묘사하고 있다.


도약하는 말의 동상이 돋보이는 아니치코프 다리(출처: neva-kronverk.com)


아니치코프 다리는 1716년 공학자이자 중령인 미하일 아니치코프의 지휘로 설립되어 그의 이름이 붙었다. 원래는 목조였는데 이후 1785년 다리는 석조로 재건되고, 차츰 현대적으로 보완되었다. 재건다리 위에 사람과 말의 동상이 등장한 시기는 1841년이다. 조각가 표트르 클로트의 작품 '야생마 길들이는 사람' 동상은 당초 예술 아카데미 부근의 제방에 설치할 예정이었으나 무산되고, 이후 해군성 근처에 두려 하였으나 계획이 변경돼 결국 아니치코프 다리로 왔다. 먼저는 ‘말과 걷는 청년’, ‘말 고삐를 잡은 청년’ 조각이 다리 서쪽 받침대에 설치되었다. 이후 나머지 동상 ‘말을 통제하는 청년’, ‘말 때문에 넘어진 청년’은 1851년 제작되어 순차적으로 자리 잡아 '야생말 길들이기 4단계' 완성체를 이루었다. 이후 동상은 전쟁으로 훼손되었으나 지속적으로 복원 및 관리되어, 지금은 아니치코프 다리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수많은 다리 중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말과 함께 걷는 청년, 말 고삐를 잡은 청년 동상(출처: dzen.ru, vk.ru)
말을 통제하는 청년, 말 때문에 넘어진 청년 동싱(출처: tourister.ru, dzen.ru)


네 개의 동상 하나하나 보면 눈앞에서 사람 말이 진따로 움직일 듯 사실적인 생동감에 감탄하게 된다.

동상이 얼마나 멋있었으면 제작 당시에도 사본을 여럿 만들어 궁전이나 영지를 장식하는데 사용했을까?


쿠즈민키 대저택 내 아니치코프 말 동상 사본(출처: fotoload.ru)


폰탄카강을 지나게 된다면 아니치코프 다리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동상 하나하나를 감상할 만하다.

< 아니치코프 다리 >
- 주소 : наб. реки Фонтанки(폰탄카강 나베레쥐나야) 넵스키 대로에서 폰탄카강 건너는 다리
- 찾아가기 : 메트로 2호선 Невский проспект(넵스키 프라스펙트), 3호선 Гостиный двор(가스치니 드보르)역에서 도보 7분


⑥ 봉기 광장 Площадь Восстания


봉기 광장(출처: 2023-foto.ru)


아니치코프 다리에서 동으로 주욱 걸어 내려가면 넓은 차로 가운데 오벨리스크가 있는 확 트인 봉기 광장이 나온다. 이곳은 인근에 지하철역과 모스크바 기차역이 위치하는 교통의 중심지로 사람들이 늘 붐빈다. 쇼핑몰과 호텔, 각종 상점과 레스토랑 등이 몰려 있어 유동 인구 자체가 많다. 궁전 광장 부근에서 시작한 넵스키 대로는 성당과 박물관 등으로 절정을 이루다 체감상 이곳 봉기 광장을 중심으로 끝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실제로는 알렉산드르 넵스키 수도원까지 이어지는 넵스키 대로의 동편은 우리에겐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다.


즈나멘스카야 교회와 동상이 있던 옛 봉기 광장(출처: mirmetro.net)


봉기 광장 부지에는 1765년 즈나멘스카야 교회가 처음 등장했다. 1840년대 즈나멘스카야 광장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1851년 이곳에 열차로 모스크바까지 갈 수 있는 니콜라예프 기차역이 건설됐다. 러시아 혁명 이후 1918년 광장의 이름은 지금처럼 봉기 광장으로 바뀌고, 교회와 인근 건물을 철거하여 지하철 공사를 추진했으나 대조국 전쟁으로 인해 중단되었다. 광장은 전쟁 후 재건되어 1955년 고전식 첨탑이 있는 원형 파빌리온의 지하철역이 오픈했다. 역사 내부 장식은 10월 혁명을 묘사하고 있다.


봉기 광장과 원형 파빌리온 지하철역(출처: aphilippoff.livejournal.com)


차가 오가는 봉기 광장 공터에 높이 서 있는 기념물은 레닌그라드 오벨리스크다. 꼭대기에 1.8m 길이의 황금 별을 받치는 화강암 기둥은 높이가 36m에 달한다. 기둥 아래쪽에는 청동 화환과 전쟁 중 도시 방어의 주요 순간을 묘사하는 타원형 부조가 장식되어 있다. 레닌그라드(現 상트페테르부르크)가 1945년 대조국 전쟁의 '영웅의 도시'라는 칭호를 받게 되면서 이를 기념하는 오벨리스크가 전쟁 40주년 되던 1985년 세워졌다.

 

봉기 광장의 오벨리스크와 전경(출처: ru.dreamstime.com, imperiyaroz.ru)


지금은 왕래하는 차들과 사람들이 가득해진 봉기 광장은

러시아 혁명과 소련 시절의 영광을 기억하는 장소로서 넵스키 대로의 중심을 잡고 있다.

< 봉기 광장 >
- 주소 : пл. Восстания(플로샤지 바스타니야)
- 찾아가기 : 메트로 1호선 Площадь Восстания(플로샤지 바스타니야)역에서 바로




여기서 넵스키 대로 산책을 마무리한다.


사실 넵스키 대로 인근에는 이 여섯 장소보다 훨씬 유명한 곳들이 더 많다.

어디선가 본 적 있는 정교회 성당부터 멋진 명화가 가득한 미술관까지,

황제와 귀족들이 사랑한 녹색 정원부터 미로처럼 굽이 흐르는 운하까지,

그야말로 다채로운 모습에 지루할 틈이 없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유명한 나머지 명소들은

다음 이야기를 위해 남겨두기로 한다.


넵스키 대로(출처: photoby.ru)


* 커버 사진 출처: stranabolgariya.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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