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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험소녀 Apr 24. 2024

조국 전쟁과 우주 경쟁

모스크바를 둘러싼 주요 역사적 사건 중심으로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에는 고대의 모습도 남아 있고 현대적인 모습도 공존한다.

옛것을 지키려는 노력과 시대에 뒤쳐지지 않으려는 의지가 대단했음을 드러내고 있다.


역사 속 수많은 사건을 겪어 온 수도 모스크바,

그중에서도 오래도록 길이길이 회자될 만한 두 가지를 살펴보려 한다.

바로 '전쟁', 그리고 '우주'이다.


러시아 역사에서 자랑스러워하는 두 전쟁이 있다. 17세기 나폴레옹의 기세로 벌어진 '조국 전쟁',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중 수많은 사상자를 낸 독일과의 '대조국 전쟁(독일-소련 전쟁)'이다. 둘 다 러시아가 승리를 거둔 전쟁이었으므로 특별하게 느끼는 건 당연하다. 둘 중 모스크바에서는 조국 전쟁 이야기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대조국 전쟁 이야기를 하겠다.


나폴레옹 원정으로 시작된 조국 전쟁(출처: memorycode.ru)


아울러 소련과 미국의 냉전 시절, 양국이 열을 올리며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우주 경쟁도 주목할 만하다. 당시 소련은 미국보다 먼저 우주로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고 동물과 사람을 보내는 등 놀라운 기록을 남김으로써 '인류 최초'의 타이틀을 놓치지 않았다. 여기에 질 새라 미국도 가열차게 우주 사업에 뛰어 서로 경쟁을 벌였다. 이처럼 소련 시절의 화려했던 우주 이야기도 모스크바에서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1961년 4월 12일, 인류 최초 우주인이 탄생한 날(출처: meshok-monet.net)


지금부터는 모스크바 중심으로 일어난 두 가지 역사적 사건을 훑어 보고,

이를 되짚어 볼 수 있는 모스크바 대표 장소를 찾아가 보겠다.


(1) 나폴레옹도 추위로 꺾은 조국 전쟁


1812년 발발한 조국 전쟁(Отечественная война)은 과정이야 어찌됐든 결과만큼은 러시아 제국의 힘을 과시할 만한 사건이다. 우리에게도 오랜 고전으로 남아있는 레프 톨스토이의 소설 『전쟁과 평화』가 이 전쟁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소설 내용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전쟁 당시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이 조국 전쟁의 절정,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은 제국의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아닌 모스크바였다.


톨스토이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1967년 영화 <전쟁과 평화>(출처: dzen.ru)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다. 혁명의 열기에 주변국은 혹여 자기 나라에도 혁명이 일어나진 않을까 하는 염려로 함께 연합하여 프랑스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대항해 용맹하게 원정도 마다하지 않은 이가 있었는데, 그가 사령관 나폴레옹이었다. 연이은 승전보로 그는 프랑스 영웅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프랑스 사정이 나아지지 않자 나폴레옹은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그 기세를 몰아 유럽 정복에 나서기로 한다. 그러던 중 영국 해군을 치려다 트라팔가 해전에서 패배한 나폴레옹은 영국을 고립시킬 목적으로 유럽 전역에 영국과의 교역 금지령을 내렸다. 당시 러시아만 이를 어기고 영국과 통상을 이어갔는데, 이에 격분한 나폴레옹은 1812년 연합군 60만 명을 이끌고 모스크바 원정을 떠났다.


나폴레옹의 모스크바 원정(출처: ru.wikisource.org)


치열했던 1812년 보로디노 전투(출처: politika-v-rashke.ru)


나폴레옹군과 러시아군은 모스크바 서부 근교 마을 보로디노(деревня Бородино) 근처 벌판에서 전투를 벌였다. 9월 7일 하룻 동안의 전투였지만 약 5만 명이 목숨을 잃을 정도로 피비린내 진동한 시간이었다. 러시아군을 지휘한 미하일 쿠투조프 장군은 후퇴를 명했고, 그렇게 나폴레옹군은 모스크바 입성에 성공한 듯했다. 하지만 쿠투조프 장군의 지략으로 모스크바 물자와 식량은 이미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고 도시는 불태운 후라 남아있는 건 없었다. 전쟁이 시작한 건 여름이었는데,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1세의 항복만 기다리다 겨울이 도래하자 전세는 역전됐다. 겪어본 적 없는 극심한 추위, 보급로가 끊겨 식량 부족에 굶주림을 견디지 못한 나폴레옹군은 결국 퇴각했다. 러시아군은 이들을 추격해 승리를 거두었고, 내친 김에 파리까지 입성했다.


러시아 땅에서 황급히 퇴각하면서 미처 챙기지 못한 나폴레옹군의 대포는 현재 크렘린 궁전 극장 건너편에서 만나볼 수 있다. 875개나 되는 프랑스제 포는 전쟁 당시 패배한 나폴레옹 군대로부터 포획한 상징적인 전리품이 됐다.


조국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는 모스크바의 1812년 조국 전쟁 박물관과 개선문을 소개한다.


나폴레옹군의 퇴각, 그리고 그가 남기고 간 크렘린 안 대포들(출처: flectone.ru, kazanocheka.livejournal.com)


[1812년 조국 전쟁 박물관 Музей Отечественной войны 1812 года]


1812년 조국 전쟁 박물관(출처: culture.ru)


모스크바 시내 붉은 광장으로 가는 길목 혁명 광장에 위치한 웅장한 붉은 벽돌 건물은 1812년 조국 전쟁 박물관이다. 광장 입구에서 또 다른 붉은 벽돌 건물인 역사 박물관과 나란히 쌍을 이루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곳은 1812년 치열했던 조국 전쟁의 모든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박물관 건물은 1908년 건설을 승인받았으나, 제1차 세계대전 등의 이유로 중단되었다가 조국 전쟁 승리 200주년을 기념하여 2012년에 오픈했다.


조국 전쟁 박물관 내부(출처: culture.ru)
나폴레옹, 그리고 그가 사용했던 침대와 퇴각 시 사용한 썰매(출처: otzovikcom. ratanews.ru, www.ndv.ru)


비교적 현대에 개관했지만 이곳 전시품 수집은 이미 200년 전부터 이루어졌다. 박물관에는 각종 무기와 유니폼, 군사 용품은 물론이고, 알렉산드르 1세와 나폴레옹의 개인 소장품, 쿠투조프 장군과 전쟁에서 활약한 장군들의 물건까지 2천 여 점이 넘는 전시품이 있어 연대순으로 살펴볼 수 있다. 조국 전쟁 기간 중 나폴레옹이 사용했던 야전 침대와 거기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그의 머리카락, 후퇴할 때 나폴레옹이 탄 썰매도 있어 겨울에 힘겹게 돌아가던 당시의 모습을 상상해 보는 재미도 있다. 이처럼 퇴각의 역사도 흥미롭게 느껴지는 장소이다. 무엇보다 군사 역사에 관심이 많은 이들에게는 매우 흥미로울 것 같다.


조국 전쟁 박물관의 전시품들(출처: dzen.ru)
< 1812년 조국 전쟁 박물관 >
- 주소 : пл. Революции, 2/3 (혁명 광장) 붉은 광장 진입로 좌측에 위치
- 찾아가기 : 메트로 1호선 Охотный ряд(아호트니 랴드), 2호선 Театральная(치아트랄나야)역에서 도보 1~2분


[개선문 Триумфальная арка]


개선문과 승리 공원(출처: photoby.ru)


모스크바에 개선문이? 일반적으로 '개선문'하면 바로 파리의 것을 떠올리겠지만, 일반적으로 개선문은 전쟁 승리를 기념하며 그 업적을 기억하고자 세우는 건축물이다. 모스크바 서부 승리 공원 근처 도로 한가운데 위용을 한껏 뽐내는 이 개선문 또한 조국 전쟁 승리의 상징적인 기념물이다. 조국 전쟁에서 지대한 공헌을 세운 장군 미하일 쿠투조프의 성을 딴 대로에 위치한다. 모스크바 개선문은 가까이서 봐야 그 디테일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거대한 조형물 상단에는 승리의 여신 니케가 이끄는 전차와 말 6마리가 도약하고 있으며, 그 아래로 각종 조각상과 포인트 있는 기둥으로 장식되어 있다. 아치와 색상이 고풍스럽다.


마차가 다니던 시절 트베르스카야 경비대 광장에 있던 옛 개선문(출처: гривен.рф)
개선문 승리를 상징하는 장식들(출처: wikiway.com, turizm-centr.ru, fototelegraf.ru)


모스크바 개선문은 1812년 조국 전쟁에서 나폴레옹 군대를 물리친 러시아군의 업적을 기리고자 세웠다. 처음에는 목조로 지어졌으나 해체되고, 건축가 오시프 보베에 의해 오랜 시간 공을 들인 끝에 1834년 트베르스카야 경비대 광장(現 벨라루스카야 기차역 광장) 자리에 석조로 세워졌다. 이후 조국 전쟁 100주년을 기점으로 소련 정권은 1936년 개선문의 대대적인 수리를 위하여 이를 해체하게 되었는데, 그 사이에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해체된 개선문은 훼손되어 원래 자리로 돌아오지 못했다. 전쟁으로 개선문의 존재는 꽤 긴 시간 동안 잊혀졌다가, 1968년 지금 쿠투조프 대로에 본래 개선문의 모습을 최대한 재현해서 건축했다.


또 다른 전쟁으로 잊힌 승리의 역사가 될 뻔 했지만, 개선문은 옛모습을 그대로 되찾아 확 트인 장소에 있어 오가는 모두가 기억할 있게 되었다.


쿠투조프 대로의 현재 개선문(출처: dzen.ru)
< 개선문 >
- 주소 : Кутузовский просп.(쿠투조프 대로) 대로변에 서 있음
- 찾아가기 : 메트로 3∙8호선 Парк Победы(파르크 파베디)역에서 도보 2~3분


(2) 우주? 우리가 '최초'!


냉전(Cold war) 시절 소련과 미국여러 방면에서 대치와 경쟁을 이어갔다. 우주 은 더 치열했다. 소련이 먼저 불을 당겼다. 195710월 4일 카자흐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바이코누르 발사대에서 지름 58cm, 무게 83kg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Спутник-1)를 우주로 쏘아 올리는데 성공한 것이다. 당시 자국의 과학 기술이 더 앞섰다고 생각한 미국은 이 소식 큰 충격에 빠졌고, 이러한 '스푸트니크 쇼크'로 온 세계는 들썩였다. 스푸트니크 1호는 3개월  우주를 정찰했다.


그리고 이어 소련은 1957년 11월 스푸트니크 2호에 강아지 라이카를 태워 우주로 보다. 카는 7시간 생존해 있었으나 발사 시 폭음과 공포의 스트레스, 선내의 온도를 못 견뎌 죽고 말았다. 게다가 발사체에는 지구로 돌아올 장치가 없어 희생은 불가피했다. 그래도 그 덕분에 소련은 생명체 우주에 가도 생존할 수 있다는 사실과 적응 가능성까지 확인했다.


인류 최초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와 우주를 최초로 비행한 강아지 라이카(출처: flectone.ru, laika.gmik.ru)


소련의 연이은 성공에 조급해진 미국은 우주 사업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 1958년 미국항공우주국(NASA) 설립했다. 미소 양국은 서로 우주 산업에서 일인자가 되고자 경쟁하며 연구에 열을 올렸다.


그러던 1961년 4월 12일, 소련은  한 번 '초'의 기록을 달성했다. 사람을 우주에 보낸 것! 보스토크 1호(Восток-1)를 탄 우주인 유리 가가린 류 최초로 우주 비행에 성공한다. "갑시다(Поехали 빠예할리)!" 그가 처음 우주로 갈 때 남긴 말은 두고두고 회자된다. 가가린은 우주에서 108분의 비행을 마치고 지구로 돌아와 소련 영웅이 되었다. 러시아는 지금도 가가린이 우주 비행을 성공한 날인 4월 12일을 우주비행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그만큼 역사적인 날이다. 이후 미국에서도 우주인을 보내고 달착륙까지 이룸으로써 소련과의 우주 패권 전쟁을 이어갔다.


'갑시다!'를 외친 인류 최초 우주인 유리 가가린(출처: gas-kvas.com)


지금도 '항공우주'하면 러시아와 미국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한국은 러시아와 2004년 우주기술 협력 협정을 체결했다. 그 결과물로 2008년 러시아 우주선 소유즈(Союз)호를 타고 우주정거장에 가서 9박 10일 과학 실험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한국인 최초 우주인(이소연)도 배출되다. 이후 러시아와의 협력 시행착오 끝에 나로호를 발사했다. 더 나아가 2023년 5월에는 한국 자체 기술로 개발한 발사체 누리호를 성공적으로 우주에 띄워, 한국은 이제 자력으로 개발한 우주 발사체를 보유한 일곱 번째 국가가 되었다. 러시아와의 협력을 통해 우리도 한 단계 도약하게 된 것이다.


이소연 우주인과 러시아 우주인 볼코프와 코노넨코(출처: art-and-stone.ru)


다시 러시아 이야기로 돌아와, 사실 예나 지금이나 러시아의 우주선 발사는 카자흐스탄 땅에서 이루어졌지만, 우주 연구 비행 훈련의 역사는 모스크바 중심으로 주욱 이어졌다. 아울러 모스크바에는 '우주, 세계(мир)'라는 넓은 의미의 이름을 한 대로(проспект мира)가 있는데, 이곳에는 우주 비행 박물관이 위치하고 있다. 러시아 우주과학의 역사와 현재를 훑어볼 수 있는 곳이다. 또 레닌스키 대로에 서 있는 하늘에 닿을 듯한 유리 가가린 기념비에서는 우주를 향한 조국의 업적을 높이 받드는 느낌을 받는다.


[우주 행 박물관 Музей космонавтики]


우주 비행 박물관(출처: all-collector.livejournal.com)


러시아에서 우주를 만나다! 모스크바 베데엔하(ВДНХ, 국가경제성과 박람회) 가는 길에 위치한 우주 비행 박물관은 러시아 우주 과학 분야가 이룬 발전을 엿볼 수 있는 교육적 장소이다. 8개 전시장과 컨퍼런스 홀, 상영관으로 이루어진 박물관에는 우주 시대의 개막, 궤도 속 우주 비행체, 달과 태양계 행성 연구 등과 관련된 9만 9천여 개 전시품이 있다. 각종 로켓과 우주선 모형, 우주 탐사선, 실제 우주복과 우주인이 사용하는 물건 등을 보며 우주 생활을 머릿속에 그려 볼 수 있다.


또 ‘최초’의 의미를 담는 것들도 많다.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소련 당시 최초로 쏘아 올린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 모형, 인류 최초 우주 비행사인 유리 가가린의 우주복과 그가 지구로 돌아올 때 탔던 캡슐 비행체도 전시되어 있다. 잘 찾아보면 우리나라 최초 우주인 이소연의 사진도 있다.


우주 비행 박물관, 스푸트니크 1호와 유리 가가린 형상(출처: stranabolgariya.ru,  trip-for-the-soul.ru)
스푸트니크 1호 모형과 가가린이 타고 지구로 온 보스토크 1호 비행체(출처 liveinmsk.ru, mixyfotos.ru)


우주 비행 박물관은 유리 가가린의 우주 비행 20주년을 기념해 1981년 개관했다. 소련 우주 산업의 수장이었던 세르게이 카랄료프(Сергей Королёв, 1907~1966)는 우주의 대중화와 과학 유산 보존을 위해 박물관 창립에 힘썼다. 처음에는 우주 비행사들의 역사 자료, 장비와 의복을 전시하는 것으로 시작했고, 이후 확장 공사를 통해 2009년 전시 공간은 4배나 넓어졌다. 특별히 박물관 건물 뒤로 솟은 높이 107m의 티타늄 로켓 '우주 정복자' 오벨리스크가 눈에 띄는데, 이 기념탑은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을 발사한 7주년을 기념해 1964년 세워져 박물관보다 먼저 자리잡았다고 한다.


우주 비행 박물관 앞 우주 정복자 오벨리스크(출처: cosmosgroup.ru)
< 우주 비행 박물관 >  
- 주소 : просп. Мира, 111(프로스펙트 미라) 베데엔하 가는 길목 위치
- 찾아가기 : 메트로 6호선 ВДНХ(베데엔하)역에서 도보 2분


[유리 가가린 동상 Памятник Гагарину]


하늘로 오르는 형상의 유리 가가린 동상(출처: msmap.ru)


하늘로 발사할 듯한 모습, 레닌스키 대로변 가가린 광장에 높이 솟은 유리 가가린의 동상이 슈퍼맨처럼 한눈에 들어온다. 기념비 총 높이만 42.5m, 우주선을 만들 때 사용되는 티타늄 소재로 지어져 무게는 무려 12t에 달한다. 그 옆으로는 가가린이 우주를 비행한 보스토크 동그란 비행선 형상도 함께 있다. 동상의 받침대는 우주선 발사를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가가린 자체는 발사되는 로켓과도 같은 포즈를 한다. 지구인들이 최초 우주인의 업적을 이처럼 크고 대단하게 여기고 있는 듯하다. 동상은 조각가 파벨 본다렌코의 작품이다.


유리 가가린 동상과 그의 옆에 있는 비행선 모형(출처: dzen.ru, ru.dreamstime.com)d


유리 가가린 동상은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을 위해서 특별히 만들어졌다. 동상은 238개의 대형 티타늄 조각과 수많은 볼트와 용접으로 고정되고 조립되었다. 무엇보다 그의 얼굴을 만드는 작업에서 소재를 녹이는 허용 범위를 초과하는 상황을 만나 최대 난제였다고 한다. 어려운 숙제를 푼 덕분에, 가가린의 동상은 티타늄으로 만들어진 세계에서 현존하는 가장 큰 작품으로 남게 되었다.


동상이 레닌스키 대로에 위치하게 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유리 가가린이 자신의 우주 비행 결과 보고를 위해 공산당 중앙위원회로 향할 때 지나간 길이기 때문이다. 동상이 모스크바 순환 도로에서 보여야 한다는 작가의 의도에 따라 지금의 위치에 세워졌다.

< 유리 가가린 동상 >  
- 주소 : Ленинский проспект, 39/1 건물 뒤편 유리 가가린 광장
- 찾아가기 : 메트로 6호선 Ленинский проспект(레닌스키 프로스펙트)역에서 도보 3분




이처럼 모스크바에서는 세기를 막론하고 다이내믹한 역사들과 마주할 수 있다.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인고의 시간을 견뎌내 승리하고

뛰어난 능력으로 세계적인 인정을 받아,

세계사의 한 부분을 크게 차지하고 있으니

역시 대국의 면모는 다르구나 싶기도 하다.


그렇다면 러시아 제2의 수도에서는

어떤 사건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 커버 사진 출처: dzen.ru, rtek24.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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