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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험소녀 Jul 24. 2024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어느 고려인의 영혼

고려인 출신 빅토르 최를 만나다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이야기를 마무리하기에 앞서, 두 도시에서 만나는 우리와의 친숙한 연결고리를 소개하고자 한다.


물론 지금은 K-팝, K-드라마 등의 세계적 인기로 러시아에서도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높다. 한국어 배우는 사람들은 물론, 케이팝에 맞춰 춤추는 러시아인들, K-컬처로 가득한 현지의 한국 분식점 등이 꽤 많다.

사실 현재 모습이 있기 전까지 한국과 러시아는 역사 속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러시아의 인기 코리아 스트리트푸드 상점 치코리코(출처: stroitel76.ru)


앞서 러시아 이야기만 했다면 마지막으로 러시아에 녹아든 한인의 역사가 탄생시킨 기적을 소개할까 한다. 어쩌면 러시아인이 K-콘텐츠에 열광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 기적에서 찾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바로 고려인 출신 전설적 록가수 빅토르 최! 그는 세기를 가로지른 하나의 기적이다.


그의 생애와 흔적을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두 도시에서 살펴보다.


빅토르 최가 리더로 있던 그룹 '키노'(출처: spb.kp.ru)


영원한 영웅, 빅토르 최


빅토르 최(출처 :goodfon.ru)


빅토르 최(1962~1990),

그는 소련의 인기 록가수이다.

그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다. 빅토르가 세상을 떠난 지 30년이 훌쩍 넘었는데도 지금까지 그의 노래가 최신 유행가처럼 러시아인 입에 오르내린다. 러시아 주요 도시에 빅토르 최를 추모하고 기억하는 공간들이 있는 걸 보면, 그의 영향력이 세기를 걸쳐 전국적으로 얼마나 대단한 지를 알게 한다. 우리는 한국에서 2019년 개봉한 영화 <레토>를 통해서 어느 정도 그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을 것 같다.


우리와 비슷한 외모를 가진 빅토르 최, 그는 고려인이다.

그렇다면 고려인은 누구인가? 아래 글이 어느 정도 답이 될 것 같다.


빅토르 최의 증조부는 초창기 연해주로 건너간 한인이었다.

이후 최가네 식구들은 1937년 스탈린의 소수민족 강제 이주 정책으로 카자흐스탄에 보내졌다. 빅토르의 할아버지는 카자흐스탄에 터전을 잡았지만, 아버지(로베르트 최)는 레닌그라드로 자리를 옮겨 러시아 국적의 여성(발렌티나 구세프)과 결혼했다.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바로 빅토르 최다. 빅토르는 소련 현지에 정착해 살아간 고려인 후손인 것이다.


빅토르 최(아랫줄 가운데)와 그의 가족(출처: isrageo.com)


빅토르는 어려서부터 그림을 잘 그렸고 음악에도 능했다. 놀랍게도 그는 세로프 미술 학교와 레닌그라드 직업 전문 학교에 입학하여 수학하기도 하였는데, 성적이 좋지 못해 졸업은 못 했다. 학업 중에 그는 1970년대 처음으로 록그룹 <팔라타 No.6>에서 베이스 기타를 연주하면서 음악 활동에 입문한다.


1982년 그룹 '키노'의 데뷔 콘서트(출처: www.kinoman.net)


이후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의 영향을 받아 빅토르는 가사를 쓰기 시작했고, 다양한 그룹과의 공연도 이어갔다. 이때 빅토르가 속한 그룹 '가린과 쌍곡선'이 결성됐는데, 이는 곧 이름을 '키노('영화'라는 뜻)'로 바꾸게 된다. 그렇게 전설적인 록그룹 키노는 한달 반만의 녹음으로 1982년 첫 45분짜리 앨범 '45'를 발표하고 성공적으로 데뷔한다. 록 음악의 성격이 그렇듯 노래를 통해 빅토르가 쓴 가사의 메시지는 소련을 향한 저항의 메시지였고 변화를 열망하는 목소리였으므로, 소련 당국도 여기에 제재를 가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당시 젊은 세대들은 더욱 열광하여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빅토르와 아내 마리안나, 아들 알렉산드르(출처: lovlya-ryby.ru)


첫 앨범을 녹음하던 시절 빅토르는 마리안나 로돕스카야를 만나 1984년 결혼했다. 당시 결혼식에는 레닌그라드의 록클럽 전설들이 대거 참석했다. 과연 그는 록스타였다. 1년 후 이들 사이에서 아들 알렉산드르가 태어났다.

가정도 이루며 음악 활동도 활발히 이어간 빅토르.


특별히 그의 음악 활동에서 1988년 히트곡 '그루파 크로피('혈액형'이라는 뜻)'는 키노와 그를 영웅으로 만들 정도로 사람들에게 주는 영향이 지대했다. 제목에서 말하는 '혈액형'은 군인 소매에 적힌 블러드 타입을 일컫는 것으로, 노래 가사에도 전쟁이 아닌 평화를 원하는 마음이 담겼다. 이 노래는 빅토르가 주연한 영화 <이글라('바늘'이라는 뜻)> 사운드 트랙에도 수록되었다.


빅토르 최가 주연한 예술 영화 <ИГЛА 이글라>의 광고(출처: style.rbc.ru)


키노의 노래 '그루파 크로피(혈액형)'를 감상하며 그의 음악 세계에 빠져 보자.

출처: 유튜브 Группа КИНО
Группа крови 혈액형

Тёплое место, но улицы ждут 따뜻한 장소, 그러나 거리는 기다리고 있어
Отпечатков наших ног 우리의 발자국을
Звёздная пыль на сапогах 군화 위에 앉은 별의 먼지
Мягкое кресло, клетчатый плед 푹신한 의자, 체크무늬 담요
Не нажатый вовремя курок 적시에 누르지 못한 방아쇠
Солнечный день в ослепительных снах 찬란한 꿈 속의 화창한 그 날

И есть чем платить, но я не хочу 승리할 수 있겠지만 그걸 원하지 않아
Победы любой ценой 어떠한 대가를 치르면서까지
Я никому не хочу ставить ногу на грудь 그 누구의 가슴도 짓누르고 싶지 않아
Я хотел бы остаться с тобой 너와 함께 남고 싶어
Просто остаться с тобой 그저 너와 함께 남고 싶어
Но высокая в небе звезда 하지만 하늘에 높은 별은
Зовёт меня в путь 나를 그 길로 불러

(후렴)
Группа крови на рукаве 소매 위 내 혈액형
Мой порядковый номер на рукаве 소매 위 나의 군번
Пожелай мне удачи в бою, пожелай мне 전투에서 행운을 빌어주오, 나를 위해 빌어주오
Не остаться в этой траве 이 들판에 남겨지지 않길
Не остаться в этой траве 이 들판에 남겨지지 않길
Пожелай мне удачи, пожелай мне удачи 내게 행운을 빌어주오, 내게 행운을 빌어주오
빅토르 최가 그린 그림(출처: viktortsoylegenda.jimdo.com)


우수에 젖은 눈빛, 멋지게 혹은 반항스럽게 담배를 물고 있는 모습...

빅토르 최음악 활동만이 아니라 영화 출연은 물론, 아방가르드한 그림을 그리는 등 자신의 예술 영역도 넓혀갔다. 그야말로 당시의 다재다능한 만능 엔터테이너였다.


그러던 그가 1990년 라트비아의 어느 고속도로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해 돌연 사망하고 말았다. 그의 죽음은 모든 대중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온갖 음모론이 퍼지기도 했지만, 많은 이들은 록그룹 키노와 그의 전성기를 기억하며 매년 추모하는 일을 잊지 않는다.


빅토르 최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보고슬롭스코에 묘지에 안장되었다. 그가 사고로 눈을 감은 날은 8월 15일. 공교롭게도 우리의 광복절과 날짜가 같다! 그가 소련에 던졌던 음악 속 메시지만은 영원히 살아 현재까지 전달되고 있는 걸 보면, 영혼으로나마 영원히 진정한 해방을 전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보고슬롭스코에 묘지의 빅토르 최 무덤(출처: Яндекс Карты)


현재 가장 상징적으로 남아있는 곳은 모스크바에 있는 빅토르 최의 추모벽,

그리고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보일러실 캄차카일 것 같다.


[모스크바] 빅토르 최 추모벽 Стена Цоя


모스크바 아르바트 거리에 있는 빅토르 최의 추모벽(출처: rutube.ru)


모스크바 아르바트 거리에서 사람들 발걸음이 멈추는 벽이 있다. 알록달록 벽면을 가득 채운 그래피티와 초상화가 인상적인 이 벽 앞에서 소련의 전설적인 록 가수 빅토르 최의 팬들이 메시지와 꽃, 그가 생전에 즐긴 담배를 남기며 그를 진심으로 추모한다. 그룹 ‘키노’의 리더 빅토르 최는 꽃다운 나이 28세에 사고로 사망했지만, 지금은 세대를 막론하고 그의 저항 정신을 숭고하게 기억하는 러시아인들이 많다.


1990년 빅토르 최의 추모벽에 적힌 문구, '빅토르, 우리는 너를 잊지 않을게!!!'(출처: Andrey Solovyov)


추모벽은 그의 사망 소식 직후 누군가 이곳 벽에 ‘최는 오늘 죽었다’라고 적은 문구에 대한 답변으로 ‘그는 살아있다 Цой жив!'라고 적으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의 비극적 생을 반영하듯, 이곳에 반으로 부러뜨린 담배를 남기고 가는 것이 전통이 되었다.


빅토르가 태어난 6월 21일, 또 세상을 떠난 8월 15일이면 이곳에 많은 사람이 모여 그의 노래를 열창한다.

정말 '빅토르 최는 지금도 모두의 마음 속에 살아있다!'


빅토르 최를 추모하는 꽃과 술, 6월 21일 그의 생일 추모의 벽 앞에서 열린 공연(출처: 저자 제공)
< 빅토르 최 추모벽 >
- 주소: ул. Арбат, 37/2(아르바트 거리)
- 찾아가기: 메트로 3∙4호선 Смоленская(스말렌스카야)역에서 도보 7~10분


[상트페테르부르크] 보일러실 캄차카 Котельная Камчатка


보일러실 캄차트카(출처: Alexander GLUZ)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빅토르 최의 향수를 채울 수 있는 공간이다. 페트로그라드 지역 남부에 위치한 '보일러실 캄차카'는 1986~1988년까지 빅토르가 한동안 보일러공으로 일했던 장소였다. 이곳에서 빅토르 최가 많은 노래를 지었고, 키노가 리허설을 했으며, 유명 음악가들도 모여 노래를 불렀다. 용광로에 석탄을 던지는 퍼포먼스도 빠지지 않았다고 한다.


보일러실 캄차카에 있는 빅토르 최의 기타와 그룹 키노가 레닌그라드 록클럽에서 받은 상장(출처: dzen.ru, Alxander GLUZ)


이 장소는 그의 사망 이후 팬들의 성지가 되었다. 록 클럽이 설립된 이래 현재까지 박물관이자 음악 클럽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제 여기서 젊은 밴드들이 소련의 록 노래를 부르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그 시절 당시 록의 분위기와 자유 정신에 흠뻑 빠지게 된다. 아울러 같은 공간에 빅토르 최의 개인 소지품(1970년대 구입한 기타, 재킷 등)과 사진 등전시되어 있어 그를 추억할 수 있으니 성지다운 성지인 셈이다.


보일러실 캄차카에서 열리는 공연(출처: youtube.com)


클럽 입구 벽에는 빅토르 최의 기념비가 있고, 이를 둘러싼 벽에는 그의 노래 가사들이 적혀있다.

또 클럽에서 멀지 않는 곳에도 그의 그래피티 그림을 여럿 보이며, 근처에는 '빅토르 최' 공원도 있다.


빅토르 최를 온전히 느끼며 소련의 록을 접하고 싶다면 캄차카 보일러실로!


보일러실 캄차카 입구 앞 빅토르 최 기념비(출처: pantv.livejournal.com)
빅토르 최의 벽화와 그 근처 빅토르 최 공원의 그림(출처: odri-maat.livejournal.com), pictures.pibig.info)
< 보일러실 캄차카 >
- 주소: ул. Блохина, 15(블로히나 거리)
- 찾아가기: 메트로 5호선 Спортивная(스포르치브나야)역에서 도보 8~10분




이처럼 고려인 빅토르 최의 영혼이 지금도 전해지는 두 도시.


러시아(소련)가 아니었으면 이 스토리가 가능했을까?

또 이만큼 우리와도 끈끈한 인연이 또 있을까?

문화와 역사가 증거하는 현장임에는 틀림이 없다.

 

앞으로 우리가 더욱 애정을 가지고 러시아와 동행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빅토르 최(출처: mosconcert.moscow)


* 커버 사진 출처: novideo.rbc.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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