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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험소녀 Jul 03. 2024

[모스크바 vs 상트페테르부르크④] 러시아 전통 자기

태생이 다른 두 자기, 무엇에 더 끌리는가?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어떤 기념품이 유명할까?


러시아에 다녀오면 주로 마트료시카나 꿀, 초콜릿, 보드카 등 누구나 알 만한 것들을 사온다.

그래도 기왕 곁에 두고 러시아를 추억할 무언가를 원한다면 

세라믹스 제품도 고급스러운 기념이 것 같다.


그젤 찻잔(출처: nedorogoj-internet-magazin.ru)


지금부터 러시아 두 도시의 대표적인 자기 제품 둘을 나름의 대결 구도로 소개하려 한다.

바로 그젤임페리얼 포슬린이다. 각각 모스크바 근교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그 근간을 두는 기념품으로, 서로 다른 매력을 발견해 볼 수 있다. 둘 다 러시아의 대표성을 가지는 도자기라서 소장하는 것만으로도 한 나라의 많은 히스토리를 담아가는 셈이다.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담은 임페리얼 포슬린 찻잔과 장식들(출처: megamarket.ru)


푸릇한 러시아 전통 자기의 세계에 빠져 볼까?



그젤 VS 임페리얼 포슬린


이런 그릇을 본 적 있을 것이다.

음식보다
그릇이 더 돋보이네!


눈길을 끄는 아름다운 그릇은 본래 기능보다 관상용으로 더 만족스러운 경우가 많다. 그릇이 주는 색감이나 장식적인 효과 때문일 것이다. 러시아 전통 자기도 그런 효과가 있다. 푸른빛이 얼핏 네덜란드의 로얄 델프트나 체코의 쯔비벨무스터 등과 흡사한 느낌을 준다. 실제로 17세기 네덜란드 사람들은 동양과 교역하며 중국의 파란 빛깔 자기에 매료되었다. 그래서 이들은 자체 기술로 중국 자기와 유사하게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하여 로얄 델프트라는 새로운 명품을 탄생시켰다. 

그럼 러시아의 자기는 어떨까?


푸른빛의 아름다운 자기(출처: salesnip.ru)


러시아 자기도 자기만의 독창성을 가진다.

그젤의 경우, 색감과 패턴이 매우 독특하다. 자기 제조 기술의 혁신으로 만들어진 걸작이라 하겠다. 


그젤의 패턴과 그릇(출처: in-cake.ru)


그젤 명칭은 '굽다(жечь)'라는 러시아어 동사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구워서 만드는 자기 그젤, 그리고 도예업에 대한 기록은 공국 시절인 1339년 등장했다. 당시 모스크바 근교 도자기 장인과 도예가가 살던 27개 마을이 연합체를 이루었는데, 그젤은 그 연합체의 정식 지역명(그젤 연합체)이 되었다. 17세기 중엽에는 수레 15대 규모의 그젤 지역 점토가 황제 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의 특명으로 발주한 약제용 그릇과 연금술용 그릇 제조를 위해 모스크바로 옮겨졌다. 그만큼 점토의 질이 좋았던 것이다. 이후 1740년대에 화학가 드미트리 비노그라도프(1720~1758)가 해당 지역 점토를 이용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러시아 최초 도자기 제품을 만들면서 그젤 자기의 역사는 시작됐다. 


비노그라도프가 만든 러시아 자기 첫 샘플(출처: farfor-gzel.ru)
청백 스타일이 되기 전 18세기 그젤의 모습(출처: stroyfora.ru)


처음에는 자기를 여러 색깔로 만들었으나 유약과 굽는 기술을 바꾸면서 코발트 안료로만 그리게 되었는데, 코발트의 푸른색은 고온에도 잘 견뎌내 안성맞춤이었다. 그리하여 지금처럼 청백 색감의 그젤이 나온 건 19세기 초였다. 당시 청백 자기는 큰 인기였다. 그 제조 기술이 알려지면서 코발트빛 도자기를 굽는 공장들이 늘어났고, 대량 생산으로 이어지자 소규모 작업장들은 문을 닫아야 했다. 소련 시절에는 자기 제조 관련 기술 학교가 생기고 협동조합이 조성되는 등 발전을 거듭해 그젤은 지금도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다양한 코발트빛 그젤 자기들(출처: inetin-magaz.ru)


그젤이 민속 공예라면, 임페리얼 포슬린은 황실의 유산이라 할 수 있겠다. 

귀한 손님으로 대접 받는 듯한 고급스러움에서 화려한 제국 시절의 모습을 가늠해 볼 수 있다. '황제'라는 명칭이 붙은 자기는 러시아 제국 시절 탄생했다. 그젤보다는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그 시작점부터가 달랐다. 그젤은 지역 사회 중심으로 생산이 이루어졌다면, 임페리얼 포슬린은 제국이 직접 생산에 관여했다


고급스러운 황실의 자기, 임페리얼 포슬린(출처: ekb.posudr.ru)


러시아 자기를 개발한 화학자 드미트리 비노그라도프(출처: cont.ws)


18세기 러시아는 주로 외국에서 고급 도자기를 수입해왔다. 사실 도자기는 고가의 사치품이라 들여 오는데 재정적으로나 여러모로 상당한 부담스러운 상품이다. 특별히 엘리자베타 여제는 자신의 황실 도자기를 가지고 싶어 하는 열망이 컸다. 이에 러시아도 자체적으로 도자기를 생산하기 위해 외국에서 인재를 들여와, 도자기 제조소를 1744년 건설하기에 이른다. 이때도 역시 과학자 드미르티 비노그라도프, 그리고 미하일 로모노소프가 의기투합한 끝에 오직 러시아의 원료로만 유럽의 고급 제품과 최대한 가깝게 도자기를 만들어냈다. 자체 가마를 만들고 유약과 물감, 금가루까지 모두 고안했다. 바로 이때 그젤의 백토가 사용되었다. 


예카테리나 2세 시절, 도자기 제조소는 공장으로 확장되어 그녀의 콘셉트에 맞게 다양한 도자기를 제조해냈다. 러시아만의 귀족 사치품을 완성시킨 것이다. 혁명 전까지 임페리얼 포슬린은 계속 개편되었고, 유명 예술가들을 초빙해 자기에 그림을 그리거나 시기에 맞는 작품을 만드는 등 새로운 시도를 했다. 그러나 혁명 후에는 국가 도자기 공장으로 바뀌었고, 스타일이 전혀 달라졌다. 이후 다시 제국의 역사적 명칭과 명성을 되찾아 현재까지 고급 도자기를 생산하게 되었다.


19세기 임페리얼 포슬린 금빛 스타일(출처: ipm.ru)
1920년대 '국가 도자기 공장'의 매장(출처: ar.culture.ru)


그젤과 임페리얼 포슬린, 두 자기를 간략히 비교하면 아래와 같다.

'그젤'이라는 기반이 있었기에 황실 도자기 '임페리얼 포슬린'도 탄생할 수 있었으리라.


그젤 VS 임페리얼 포슬린


[모스크바] 그젤 Гжель


장식품으로서의 그젤(출처: imddsnip.ru)


러시아 그젤은 가장 대중적인 러시아 민속 공예품 중 하나다. 한 가지 색으로 다양한 음영을 나타낸다. 흰 자기 위 푸릇한 색감에 음영이 확연하게 표현된 그젤은 붓칠 횟수에 따라 푸른 강도가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식기나 컵은 물론, 닭과 고양이 등 동물 장식품, 그리고 시계나 받침대 등 생활 밀접형 제품까지 섭렵한 비교적 친근한 공예품이라 할 수 있다. 그젤은 수많은 장인이 수작업으로 그리고 만들어 구워내므로, 같은 제품도 작품의 퀄리티의 차이가 날 수 있다. 특별히 장미 패턴은 그젤 작가들이 제일 좋아하는, 대표적인 무늬이다.


그젤 장인의 손길과 대표적인 그젤의 장미 패턴(출처: yandex.ru, allforchildren.ru)


이제는 그젤이 세계적으로도 인기가 높다. 그 장식의 패턴이 아름다워 2013~2014년 가을 겨울 시즌 이탈리아의 발렌티노 패션하우스 의상에도 그젤이 적용되어 선보이기도 했다. 단순한 자기 제품에서 해외로도 수출되고 소장되는 예술품이 된 것이다.


발렌티노 패션하우스 그젤 패턴의 의상(출처: fashionmodeldirectory.com, modof.club)
그젤 주전자와 장식들(출처: ВКонтакте)


그젤은 모스크바 동남쪽 근교에 위치한 그젤 지역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생산 지역이 자기의 이름이 되고 브랜드가 된 셈이다. 처음 자기를 구워냈을 때는 여느 평범한 도자기의 모습이었을 것이나, 18세기에 작업 기술과 유약을 바꾸었더니 유럽에서 탐낼 만한 작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특별히 볼디노 마을 출신의 쿨리코프 형제는 해당 기술로 자기를 제조하는 최초의 공장을 세웠고, 그렇게 19세기 그젤의 전성기가 꽃을 피웠다. 이후 그젤 제작의 비밀이 오픈된 이후로는 유사한 공장들이 속속 생겨나, 1년 사이 24개의 기업이 세워질 정도로 확장됐다. 그중 쿠자에보 마을에서 만든 그젤 제품들이 가장 인기가 좋았다고 한다. 


19세기 말 그젤 산업이 잠시 쇠퇴하기도 하였으나, 그 명성은 쉬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1940~1950년대 소련 시절 그 불씨가 되살아나 미술비평가 알렉산드르 살티코프와 화가 나탈리야 베사라보바의 노력으로 그젤의 예술이 되살아났다. 현재 전통으로 자리잡은 청백의 그젤 자기도 손수 그젤 공예 복원에 힘쓴 선구자들 덕분에 지금껏 이어질 수 있었다. 로얄 델프트와도 비슷한완전히 러시아식 스타일을 갖춘 그젤 제품은 수세기를 걸친 대중적 '공예' 걸작인 만큼 귀하다. 과연 기념할 만한 선물이다.


모스크바와 그젤 마을 위치(출처: yandex.ru)


그젤 마을 село Гжель


그젤 마을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입간판(출처: Яндекс Карты)


2018년 라멘스키 지역에 소재한 그젤 마을에 방문한 적이 있다. 곳곳에 그젤 무늬가 보여 이곳이 시초가 맞구나 싶었으나 '공장'이라고 써 있는 길을 따라 가보니 낡은 쇠 파이프만 보였다. 갈수록 '여기가 그젤의 본고장이라고?' 의심이 들 정도로 마을은 활력을 잃은 모습이었다. 물론 당시 방문 시간이 조금 늦어(해가 질 무렵) 그런가 보다 했으나 생각했던 것보다 그젤 가게가 흔치 않았고, 겨우 찾은 상점 간판은 분명 '그젤'인데 문이 굳게 닫힌 채 인기척도 없었다. 휴대폰 번호가 적혀 있어 전화해 주인장을 불러냈더니 안에서 문을 열어준다. 집이 바로 매장 안에 이어져 있던 거다. 그젤의 원조 지역에서 그젤을 사가려고 간 것이었는데 헛걸음 할 뻔한 우리를 그 집 주인장이 구원했다. 아니, 오히려 주인장이 가족 선물을 위해 그젤을 한꾸러미 잔뜩 사간 우리 일행에게 더 감사했을 것이다. 가격은 모스크바 상점에서 구입하는 것보다 저렴했다. 흥정도 한몫했을 터. 


그젤 마을의 파랑파랑 그젤 상점(출처: bangkokbook.ru)


그젤 제조 기술이 좋아져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고, 유통도 원활해진 덕분에 그젤 본고장의 명성도 한창일 때보다는 수그러든 듯했다. 또 그젤 마을이 여러 그젤 연합체 중 하나였으니 주변 다른 마을에 가면 좀 더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젤이 이제는 러시아 전역 어느 기념품 가게에서나 만나볼 수 있는 단골 손님이 되었으므로 굳이 모스크바 근교의 본고장까지 찾아갈 필요는 없다. 너무 흔해졌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더 잘 고를 필요는 있다. 세밀하게 그림들을 살펴보는 것도 좋겠다.


그젤 마을 상점 풍경(출처: culttourism.ru)
< 그젤 마을 > 
- 주소 : село Гжель, Раменский городской округ, Московская область(모스크바주 라멘스키 지구 그젤 마을)
- 찾아가기 : 모스크바에서 차량으로 1시간 30분 ~ 2시간


[상트페테르부르크] 임페리얼 포슬린 Императорский фарфор


임페리얼 포슬린 대표 디자인, 코발트 네트(출처: posudapskov.ru)


황실 도자기에 음식을 담고 먹으면 어떤 기분일까? 요즘은 TV 등 매스컴을 통해서도 종종 노출되는 고급스러운 코발트 금빛 찻잔과 그릇은 깊고 또렷한 색감이 유난히 눈길을 끈다. 러시아 도자기라고 알려주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유럽 유명 브랜드 중 하나인 것 같다. 지금도 18세기 비노그라도프에 의해 개발된 고전적인 생산 기술을 고수하여 생산해내고 있다. 단, 조금 비싼게 흠이다. 


현재는 찻잔과 주전자, 테이블 세트, 각종 조각품, 장식 접시 등 약 4천 개 품목의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무엇보다 임페리얼 포슬린 트레이드 마크가 되는 '코발트 네트' 패턴의 자기류는 안나 야츠케비치가 임페리얼 포슬린 공장 설립 200주년을 앞두고 1944년 완성한 디자인이다. 안나는 1946년 '대조국 전쟁 헌신 노동싱' 메달을 받았고, 그녀의 코발트 네트 패턴은 사후 1958년 브뤼셀 세계 도자기 전시에서 금메달을 수상했다. 그렇게 이 패턴은 소련의 품질 마크로 인장받게 되었다.  


도예 예술가 안나 야츠케비치와 그녀가 디자인한 임페리얼 포슬린의 코발트 네트 패턴(출처: dzen.ru, triptonkosti.ru)


엘리자베타 여제의 바람으로 시작된 러시아 도자기 생산은 1744년 시작되어 1747년 첫 샘플을 배출했다. 이후 18세기 말 황실 자기의 전성 시대가 열렸고, 도자기 위에 그림도 그려졌으니 예술 작품 못지 않게 높이 평가 받았다. 황제마다 본인이 원하는 스타일과 콘셉트에 따라 국가나 주제를 부각시키거나 금을 입히기도 하는 등 다양하게 자기를 만들어갔다. 혁명 후 대조국 전쟁 때는 공장 장비 대부분이 우랄 너머 스베르들롭스크 지역으로 옮겨졌고, 본래의 공장은 다른 용도로 사용되었다. 레닌그라드 공방전 당시에는 모두 도시 방어에 전념했다. 이후 공장의 주요 예술가들은 1943년 말 작업을 재개했고 이 시기에 바로 지금의 '코발트 네트' 패턴이 탄생하였다. 이후에도 발전을 거듭해 과거의 유산을 이어가는 러시아 제국의 고급 도자기로서 임페리얼 포슬린은 세계적으로 사랑 받고 있다.


황실 자기 제작소 풍경(출처 sov-art.ru)
금빛 공원 테마의 임페리얼 포슬린(출처: vseblaga.ru)


임페리얼 포슬린 공장 박물관 Музей императорского фарфорового завода


임페리얼 포슬린 공장 박물관(출처: news-life.pro)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수많은 임페리얼 포슬린 매장이 있다. 그래도 더 특별한 곳은 없을까? 

상트페테르부르크 남동부의 임페리얼 포슬린 공장 박물관은 황실 자기의 복합 단지라 할 수 있겠다. 다양한 황실 자기를 구경도 하고, 구입도 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곳의 박물관 컬렉션에는 3만 점 이상의 전시품이 있는데, 연대별 제품만이 아니라 유럽이나 중국, 일본 도자기 예술 작품도 일부 포함되어 있다. 임페리얼 포슬린 설립 초기부터 현재까지 자기의 스타일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도 주욱 훑어볼 수 있다. 아울러 도자기와 예술에 관련된 진귀한 도서들도 소장하고 있다. 평일에는 도자기가 어떻게 칠해지고 만들어지는지 생산을 직접 지켜볼 수 있는 투어가 진행된다.


임페리얼 포슬린 공장 박물관 내부(출처: rasfokus.ru)
임페리얼 포슬린 제조 공장 모습(출처: ipm.ru)


박물관 건물 자체는 꽤 낡았다. 1844년 니콜라이 1세 법령으로 설립된 것으로, 현재도 도자기가 생산되고 있다. 임페리얼 포슬린 공장 박물관은 2001년부터 국립 에르미타주에서 관리한다. 임페리얼 포슬린 판매 매장과 현대 도자기 예술 갤러리도 함께 운영되고 있어 다채로운 볼거리를 만날 수 있다.


< 임페리얼 포슬린 공장 박물관 > 
- 주소 : просп. Обуховской обороны, 151(오부홉스키 아바로니 대로) 
- 찾아가기 : 메트로 3호선 Ломоносовская(로모노솝스카야) 도보 4분




두 가지 자기를 비교 대상으로 올려놓았지만,

결국은 같은 줄기에서 흘러나온 것임을 깨달았다.


붉은색 패턴의 황실 자기(출처: vseblaga.ru)


러시아만의 독특한 스타일, 러시아만의 방식,

연구하고 만들고 개발하고 널리 알리면서 러시아의 도자기는 새로운 길을 걷고 있었다.

유산을 지금까지 아름답게 이어오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높이 평가받을 만한 일이 아닐지.


이제는 그젤이나 임페리얼 포슬린이 단순 기념품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으니

다음 번에는 꼭 의미를 꾹꾹 눌러 담아 사와서 스토리텔링해야 하겠다.




※ 원문 관련 영상 [차원이 다른 러시아의 두 자기 이야기]

https://youtu.be/ovsRz1mpzf4

출처: 유튜브 채널 여행과 사색




* 커버 사진 출처: ptichiibereg.ru, ruskniga.com. posuda.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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