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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험소녀 Jun 05. 2024

[모스크바 vs 상트페테르부르크②] 러시아 신앙의 깊이

어느 도시의 성당에서 예배 드리고 싶은 마음이 들까?

러시아 문화의 뿌리를 따라가 보면 무엇이 있을까?

아마도 많은 러시아인이 믿는 종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 같다. 러시아에서 러시아 정교가 정식 국교로 지정된 건 아니지만 국민의 70% 이상이 믿고 있는 만큼 그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다.


경건한 러시아 성당의 내부(출처: vs-hram.ru)


우리가 러시아에 방문하면 한번 쯤은 마주치게 되는 곳 또한 정교회 성당이 아닐까.

그 공간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종교의 유무를 떠나 누구나 경건해지는 분위기를 느끼게 된다. 저마다 소망을 가지고 나와 초를 밝히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러시아인의 깊은 신앙심도 전달되는 것 같다.


(러시아 성당이 궁금하다면, 아래 글 참고)


소망을 담아(출처: crimea.ria.ru)


그렇다면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대표하는 성당과 수도원으로는 어떤 곳들이 있을까?

마치 '내가 더 아름답고 성스러운 곳이야' 자랑이라도 하듯 나름의 매력과 거룩함이 넘치는 장소들이 있다.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곳도 있을 것이다.


두 도시의 성당과 수도원을 지금부터 대결 구도로 만나보려 한다.


※ 참고 : 러시아에서는 성당 명칭을 보면 'храм 흐람', 'собор 사보르' 등 하나의 표현이 아니다. 무엇이 다를까? 종교를 막론하고 신자들이 모여 기도하는 장소인 'храм(사원)'이 보다 포괄적 의미로, 'храм' 중에서도 도시나 수도원의 주요 사원이 되는 곳을 'собор(성당)'라고 일컫는다. 예배 장소 또한 일반적으로 'собор'가 더 크다. 본문에서의 명칭은 편의상 모두 '성당'으로 통일하겠다.



(1) 성 바실리 성당 VS 피의 구세주 성당


'모스크바가 최고야!'

'무슨 소릴,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제일이지!'


이같은 논쟁을 벌이게 되는 대표 건축물이 바로 이 성당들이 아닐까 싶다.

테트리스 게임 배경으로 익숙한 성 바실리 성당, 그리고 운하 배경으로 화려한 매력을 뿜고 있는 피의 구세주 성당 말이다. 각각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상징하는 성당 건축물로서 참 아름답다.


성 바실리 성당과 피의 구세주 성당의 설립 초창기 모습(출처: g-rybins.livejournal.com, liveinternet.ru)


그 탄생 배경은 서로 다르다.

성 바실리 성당은 러시아가 몽골 타타르로부터 카잔을 되찾은 것을 기념해 이반 4세가 지은 것이지만, 피의 구세주 성당은 알렉산드르 2세가 피살 당한 장소에 황제의 죽음을 기리고자 그의 아들이 건축한 것으로, 그 이유는 달라도 어쨌든 전쟁 또는 테러로 인한 '희생'에 의해 세워졌다는 점은 동일하다.


한편, 실제로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피의 구세주 성당이 모스크바 성 바실리 사원을 모델로 하여 지은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두 성당은 종종 쌍둥이라고 부르기도 하나, 엄밀히 살펴보면 쌍둥이가 될 수 없는 각자의 모습을 지녔다.


성 바실리 성당과 피의 구세주 성당의 양파 지붕들(출처: ink-project.ru, viaggio-russia.com)


두 성당은 알고 보면 너무나도 다르게 매력적이다.

성 바실리 성당은 한 공간에 11개 교회가 모여 있어 각 돔에 예배 장소와 이콘을 가지고 있는 반면, 피의 구세주 성당은 천장이 높은 하나의 커다란 예배 공간 안에 모자이크 이콘으로 가득한 모습이 특징적이다. 또한 아름다운 성당의 외관에도 다소 차이가 있다. 붉은 벽돌을 기초로 하는 성 바실리 성당은 자세히 보면 기하학적 장식에 꽃이나 식물 등 자연 무늬가 채색되어 있고, 피의 구세주 성당에는 알렉산더 2세 통치 기간 동안의 업적을 강조하며 각종 타일 장식들과 성경 이야기 이콘으로 가득해 화려함이 돋보인다.


성 바실리 성당 및 피의 구세주 성당의 외부 장식(출처: mykaleidoscope.ru, 출처 fotostrana.ru)


성 바실리 성당 VS 피의 구세주 성당


그럼 이제 두 도시의 대표 성당들의 매력에 푹 빠져보겠다.

아마 둘 다 제대로 알고 나면, 어디가 더 좋다고 이야기하기 망설이게 될 지도 모른다.


[모스크바] 성 바실리 성당 Храм Василия Блаженного


성 바실리 성당(출처: postila.ru)


붉은 광장에서 독보적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는 성당.

가까이 볼수록 알록달록 외관이 섬세하게 도드라지고, 사방에서 보는 모습은 모두 달라서 더욱 매력적이다. 높이 60m가 넘는 성당의 전체 구조는 불균형을 보이고 있지만 그 속에서 조화를 이룬다. 중앙의 높은 탑 중심으로 각양각색 크고 작은 양파 모양 지붕들의 패턴과 색을 비교하는 것도 감상 포인트가 될 것이다. 외관만큼 미로처럼 복잡한 구조의 내부에는 교회 11개가 있는데, 사방이 고대 러시아 느낌 물씬 나는 꽃 장식 벽화, 성화들로 가득하다. 박물관 공간과 곳곳의 이콘화들도 놓쳐서는 안 될 보물이다. 또 성당 내 중후한 남성 중창단의 반주 없는 천상의 아카펠라를 들을 수 있다면 더욱 행운일 것이다.


성 바실리 성당 내 꽃장식 벽화와 교(출처: stranabolgariya.ru)
성당 내 박물관 공간(출처: hoo-ka.ru)


특별히 이곳에는 이콘화 <성모 출현> 두 개가 있는데, 성당 외부 동쪽 벽의 그림이 17세기 말 그려졌고, 내부 지하 공간의 그림은 그 이후 그려진 사본이다. 이콘을 숨은 그림 찾기처럼 열심히 찾아보며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다.


성 바실리 성당 외벽 <성모 출현> 이콘화와 내부의 <성모 출현> 사본(출처: vladimirdar.livejournal.com, pyx-pyx.livejournal.com)


테트리스 배경으로 더 잘 알려진 성 바실리 성당은 16세기 지어진 것으로 역사가 깊다. 러시아가 오랜 시간 몽골 타타르의 영향에 있던 가운데 마침내 칸국으로부터 도시 카잔을 탈환하게 되었다. 이 역사적인 사건을 기념하고자 이반 4세의 명으로 1561년 성당을 지어 올렸다. 당시 성당을 건축한 바르마와 포스닉은 성당 설립에 6년 간 공을 들였는데, 황제가 아름다운 성당을 보고 너무 깊은 감동이 된 나머지 이러한 걸작을 더는 만들지 못하도록 이들의 눈을 멀게 했다는 전설도 있다. 소련 시절 종교를 허락하지 않았던 스탈린조차 대조국 전쟁 때 이 성당을 폭격으로부터 보호하려 했다는 걸 보면, 역시 아름다움은 불가침의 영역이다.


지금의 명칭은 17세기 민중들이 추종하던 성인 '바실리'의 이름을 딴 것으로, 본래 이름은 ‘구덩이 위 파크롭스키(성모절) 성당’이었다.


성 바실리 성당의 벽화와 높은 천장의 모습(출처: pyx-pyx.livejournal.com, akrasdia.ru)


성 바실리 사원에서 붉은 광장 방향으로 사진에 꼭 함께 담기는 두 남성의 동상이 있다. 이들은 17세기 초 폴란드-리투아니아와 전쟁에서 러시아 민병대를 조직해 맞서 싸운 시민 출신의 미닌과 파자르스키이다. 민중 영웅으로서는 수도에서 최초 설립된 기념비로, 마치 성 바실리 성당과 세트를 이루는 듯한 모습이다. 앉아 있는 사람은 부상을 당한 파자르스키, 서서 손을 뻗고 있는 이가 미닌이다. 이들 주요 활동지였던 니즈니-노브고로드의 크렘린 근처에도 동일한 모습의 동상이 있다.


성 바실리 성당 앞 미닌과 파자르스키 동상(출처: stranabolgariya.ru)
< 성 바실리 성당 >
- 주소 : Красная пл., 7(붉은 광장) 붉은 광장에서 모스크바강 방향으로 위치
- 찾아가기 : 붉은 광장에 위치, 메트로 1호선 Охотный ряд(아호트니 랴드), 2호선 Театральная(치아트랄나야), 3호선 Площадь революции(플로샤지 레발류치)역에서도보 7~8분


[상트페테르부르크] 피의 구세주 성당 Спас на Крови(Собор Воскресения Христова)


피의 구세주 성당(출처: spbfavourite.ru)


그리바에도바 운하변에 마치 하나의 그림을 보는 듯 정교함이 살아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외모 1순위 성당. 정식 명칭은 '그리스도 부활 성당'으로 정교회 기념 박물관 역할을 하고 있다. 가지각색의 돔이 있는 화려한 성당은 모스크바의 성 바실리 성당과 비슷한 듯 다르며, 16~17세기 모스크바와 야로슬로블 건축 양식이 결합된 독특한 외관을 가지고 있어 더욱 눈길이 간다. 겉모습만이 아니라 성당 내부도 구석구석 볼수록 경이롭다. 특히 벽과 기둥을 가득 메우고 있는 모자이크 장식이 주는 인상이 압도적인데, 여기에만 예술가 30여 명이 참여했고 우랄 알타이 석조, 이탈리아 대리석, 보석 수천 개 등이 동원되었다.


피의 구세주 성당의 경이로운 내부(출처: vladimirkrym.livejournal.com, flectone.ru)
빛과 조명이 어우러지는 피의 구세주 성당 내부(출처: stranabolgariya.ru)
피의 구세주 성당 이코노스타스와 제단(출처: europeanmuseumforum.ru)


성당 명칭에 ‘피’가 들어간 이유는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러시아 농노제 폐지를 위해 힘써왔던 알렉산드르 2세가 1881년 3월 상트페테르부르크 한복판에서 폭탄 테러로 피살 당했다. 테러 당시 황제가 피를 흘리며 사망한 자리에 고인을 기리고자 그의 아들 알렉산드르 3세의 명으로 1883년부터 성당 건축을 시작했다. 건축가 알프레드 파를란드와 이그나티 수도원장이 성 바실리 성당과 유사한 러시아 스타일로 설계하고 24년을 건설해 1907년 완공했다. 성당의 높이(81m)가 되는 숫자 '81'은 알렉산드르 2세가 사망한 연도(1881년)를 상징한다. 운하의 격자 조각과 황제 피살 당시 도로의 돌바닥은 성당 일부에 보존되고 있다. 피의 구세주 성당은 오랜 복구 작업을 마친 1998년부터 박물관처럼 개방 중이다.


피의 구세주 성당 내 보존된 알렉산드르 2세 사망 장소의 돌바닥(출처: flutterdocs.ru, artforintrovert.ru)
< 피의 구세주 성당 >
- 주소 : наб. канала Грибоедова, 2а(그리바에도바 운하변)
- 찾아가기 : 메트로 2호선 Невский проспект(넵스키 프라스펙트), 3호선 Гостиный двор(가스치니 드보르)역에서 도보 6분


(2) 구세주 그리스도 성당 VS 이삭 성당


'성당에 전망대가?'


높이만 100m가 넘는다. 그야말로 압도적이다. 금빛 지붕이 높이 솟아 그 존재감은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정도다. 꼭대기만 보고 금방 닿을 거리일 것 같아 걸어 갔다가, 한참을 걸어도 닿지 못해 힘들었다는 여행자들의 흔한 푸념도 많이 들었다. 모스크바의 구세주 그리스도 성당과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이삭 성당은 외관은 좀 달라도 꽤 닮은 점이 많다. 둘 다 전망대가 있다는 점 외에도 거대한 금빛 돔, 웅장한 자태, 모두 재건된 성당이고 완공까지 40여 년이 걸린 점, 각각 모스크바강과 네바강의 배경을 가진 위치까지!

최대한 많은 이들에게 정교회의 위력을 그 존재감만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모스크바강을 낀 구세주 그리스도 성당과 네바강에서 멀지 않은 이삭 성당(출처: moskultura.ru, razrisyika.ru)


이 두 성당에서는 지붕이 품고 있는 것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꼭대기가 높은 만큼 인간이 하늘을 바라게 만드는 의도가 스며있는 것 같다. 모스크바 구세주 그리스도 성당에는 내부에 뻥 뚫린 중앙 돔 지붕에 신과 그의 아들, 그리고 이들을 수호하는 천사들이 표현되어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이삭 성당의 중앙 돔 천장에는 카를 브률로프가 그린 성자들에 둘러싸인 성모 그림이, 그리고 가운데에는 흰 비둘기(성령을 상징)가 있다.


구세주 그리스도 성당 중앙 돔 내부와 이삭 성당의 중앙 돔 내부(출처: sun9-2.userapi.com, karhu53.livejournal.com)


 전망대가 있다. 옛날 건축물이 늘 그렇듯 수많은 계단을 오르면 높은 곳에서 가장 멋진 도시의 모습을 조망할 수 있다. 구세주 그리스도 성당은 250개 계단을, 이삭 성당은 262개 계단을 오르면 전망대에 도착하는데, 역시 그리 만만하게 볼 여정은 아니다. 그래도 성당 지붕과 가장 가까운 지점에서 도시를 내려다 본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구세주 그리스도 성당 전망대와 이삭 성당 전망대(출처: bangkokbook.ru, ВКонтакте)


구세주 그리스도 성당 VS 이삭 성당


이렇게 전망대를 가진 금빛 돔 성당 둘은 어떤 매력을 가지고 있을까?

모스크바의 구세주 그리스도 성당은 이미 전편에서 강변을 유람하며 훑어봤지만 간략하게 또 살펴본다.


[모스크바] 구세주 그리스도 성당 Храм Христа Спасителя


구세주 그리스도 성당(출처: kulturamgo.ru)


모스크바 강변의 거대한 금빛 지붕에 감탄이 절로 나는 모스크바 대표 성당이다. 외관만 훌륭한 게 아니라 구석구석 정교함과 경이로움이 넘쳐난다. 성당 외벽에 성경 이야기와 성인, 천사의 모습들이 묘사되어 있다. 장엄한 성당 내부는 매우 엄숙하고 웅장하다. 놀라운 건 지금 성당의 모습이 19세기에 처음 지어졌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여 20세기 마지막 날 재탄생했다는 사실이다. 엄밀히는 아직 30년도 채 되지 않은 성당이다. 모스크바 강을 따라 도시를 관망하고 싶다면 40m 높이의 전망대에 올라봐도 좋겠다.


성당 외벽 골리앗을 이긴 다윗 이야기와 천사들(출처: tourister.ru, isviblovo.ru)
구세주 그리스도 성당의 종탑 옆 모스크바강이 보이는 전망대 뷰. 높이 40m(출처: dzen.ru)


오리지널 구세주 그리스도 성당은 러시아가 1812년 나폴레옹 전쟁 승리을 기념하여 세워졌다. 원래는 참새 언덕에 지어질 뻔했으나, 크렘린과 가까운 지금 자리에 1839년 건축가 콘스탄틴 톤이 공사를 시작해 인테리어에만 20년, 첫 예식까지는 총 44년 걸려 그의 한평생을 바쳤다. 하지만 스탈린은 1931년 이 성당을 파괴했고, 한때 그 자리에 거대한 수영장이 들어섰다. 이후 성당 재건을 위한 시민들의 모금 활동이 전개됐고, 1994년 원래 성당의 모습대로 건축을 시작해 1999년 말 완공했다. 오리지널 성당 건축 시에는 돔에만 금 300kg 이상을 사용했었으나, 재건 때는 불과 14kg만 들여 만들었다고 한다. 역시 금이 주는 무게감과 상징도 있다.


구세주 그리스도 성당 내부(출처: bangkokbook.ru)
구세주 그리스도 성당 내 행사(출처: gde-kartinka.ru)
< 구세주 그리스도 성당 >
- 주소 : ул. Волхонка, 15(볼혼카 거리)
- 찾아가기 : 메트로 1호선 Кропоткинская(크라포트킨스카야)역에서 도보 3분


[상트페테르부르크] 이삭 성당 Исаакиевский собор


이삭 성당(출처: pravmir.ru)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건축 기념물로 손꼽히는 대표 성당이다. 시원스레 뻗은 둥근 기둥에 후기 고전주의 양식을 한 이삭 성당은 멀리서도 보이는 거대한 금빛 지붕이 가장 인상적이다. 성당의 높이가 101.5m, 너비는 97.6m라 유럽 최대 돔 건축물로도 손꼽히는데, 돔에 사용된 금만 100kg에 달한다. 17년을 걸려 완성한 성당 인테리어 중 모자이크, 예수의 스테인글라스는 물론, 돔 천장의 성모와 성자들, 비둘기 그림과 그 아래를 둘러싼 열두 사도 조각은 놓치지 말아야 할 감상 포인트다. 또 다른 입구를 통해서는 입장료를 내고 계단으로 43m 높이의 돔 전망대에 오를 수 있는데 여기서 도시 최고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이삭 성당 외부 성모의 부조와 사도의 조각상(출처: spb-guide.ru, dzen.ru)
이삭 성당 전망대에 오른 사람들. 높이 43m(출처: bangkokbook.ru)


이삭 성당은 동로마 출신의 정교회 성인인 이사키 달마츠키의 이름으로 봉헌된 성전이다. 첫 번째 성당은 1710년 세워졌고 거기서 표트르 대제와 예카테리나 황후의 결혼식이 거행되었다. 이후 성당의 신축과 철거는 반복되었고, 네 번째 되는 지금의 이삭 성당은 니콜라이 1세 감독으로 건축가 몽페랑이 1818년부터 무려 40년 동안 건설한 결과물이다. 현관에 화강암 기둥 48개를 세워 올리고, 지름 25.8m의 돔을 만드는 등 건축 기술의 혁신을 이루며 끝내 걸작 성당이 완성된 것이었다.


이삭 성당 내부와 이코노스타스(출처: foto-na-telefon.ru, bangkokbook.ru)


1858년에 표트르 대제의 생일에 맞춰 봉헌된 이삭 성당은 수많은 역경을 굳건히 견뎌냈다. 레닌그라드 봉쇄 기간 중에는 도시 박물관에 있는 전시품들을 이곳에 옮겨와 보존했는데, 성당 건물이 높아 독일군의 공격 대상이 되기도 했다. 당시 전쟁을 기억하는 폭격의 흔적이 이삭 성당의 외관에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성당 앞 광장은 봉쇄 시기에 시민들 양식을 위해 양배추를 재배하는 양배추 밭이 된 적도 있다.


내면은 하염없이 아름답지만 역사의 부침을 함께한, 그만한 가치가 있는 자랑스러운 성당이다.


이삭 성당의 아름다운 천장과 천장에서 쏟아지는 빛(출처: mykaleidoscope.ru, fotokto.ru)
< 이삭 성당 >
- 주소 : Исаакиевская пл., 4(이사키옙스카야 광장) 이삭 광장
- 찾아가기 : 메트로 5호선 Адмиралтейская(아드미랄체이스카야)역에서 도보 7분


(3) 노보데비치 수도원 VS 알렉산드르 넵스키 대수도원


'유명인의 묘지를 보고 싶으면 수도원으로 가라!'


우리가 알 법한 러시아의 유명 예술인, 정치인, 과학자 등의 묘지는 우리네 국립 묘지와 같은 이 수도원들을 찾아 가면 웬만하면 만날 수 있다. 러시아에서 종교와 삶은 역시나 따로 생각할 수 없는 것 같다. 수도원 옆에는 묘지가 함께 있으니 삶과 죽음은 모두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지.


노보데비치 수도원 파노라마(출처: vsemidea.ru)


수도원 중에서도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대표하는 두 곳을 소개한다.

모스크바의 노보데비치 수도원은 많은 이들이 아름다운 공원에서 수도원 파노라마를 보기 위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연못과 함께 아름다운 종탑과 교회 건물이 어우러지는 풍경에서 마음의 안식을 얻어갈 수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알렉산드르 넵스키 대수도원은 넵스키 대로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스폿으로, 성당과 박물관, 다양한 종교 관련 기관들이 모여있고 나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알렉산드르 넵스키 대수도원 파노라마(출처: photoby.ru)


특별히 노보데비치 수도원은 여성 수도원으로, 제국 시절 한 동안 여성 왕족을 감금하는 장소로 사용되기도 했었다. 어린 동생들(이반, 표트르) 대신 섭정을 했던 표트르 1세의 이복 누이 소피야가 이곳에서 갇혀 지냈다. 또 노보데비치 수도원은 영혼을 지켜주는 역할도 하고 있는데, 수도원 옆 노보데비치 묘지에는 우리도 잘 아는 19~20세기 유명 작가들을 비롯해 20~21세기 정치인도 잠들어 있다.


노보데비치 수도원의 여성 사제들과 알렉산드르 넵스키 대수도원의 남성 사제들(출처: mosmit.ru, mitropolia.spb.ru)


한편, 알렉산드르 넵스키 대수도원은 남성 수도원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넵스키 대로'의 주인공 알렉산드르 넵스키 대공을 기리는 장소로서 그의 유물도 보관되어 있다. 아울러 이곳에는 4개의 묘지가 수도원 중심으로 모여 있는데, 그중 예술가 묘지치흐빈 묘지에 특히나 많은 이들이 발걸음한다. 이곳에는 많은 이들의 칭송을 받는 19세기 유명 러시아 작가와 작곡가, 화가들의 묘가 있기 때문이다.


모스크바 노보데비치 묘지 입구와 상트페테르부르크 치흐빈 묘지 입구(출처: www.chitalnya.ru, pavluhinoleg.livejournal.com)


노보데비치 수도원 VS 알렉산드르 넵스키 대수도원


이처럼 비슷한 듯 다른 모습을 갖추고 있는 두 도시의 수도원과 묘지,

종교와 삶, 죽음까지 맞닿아 있는 그 장소를 찾아가 본다.


[모스크바] 노보데비치 수도원 Новодевичий монастырь


노보데비치 수도원(출처: newizv.ru)


모스크바 강변에 위치한 역사 깊은 여성 수도원이다. 나란히 묘지도 있다. 16~17세기 모스크바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수도원의 건축 걸작들은 잘 보존된 결과 200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되었다. 티켓을 끊고 수도원 성당과 건축물 하나하나 감상하는 재미를 느껴보자. 특히 수도원 옆 고즈넉한 공원에서 그림 같은 연못을 바라보면 마음까지 평온해진다. 이곳 공원에는 1991년 미국 부시 영부인이 소련의 고르바초바 영부인에게 선물한, 줄지어 가는 오리 동상도 찾아볼 수 있다.


노보데비치 수도원 구역 내 성모승천 교회, 북쪽 문 위 변모 교회(출처: trip-for-the-soul.ru, photocentra.ru성
스몰렌스크 성당(출처: flectone.ru)
노보데비치 수도원 공원 호수변 오리 동상(출처: ozernyi-sochi.ru)


노보데비치 수도원은 스몰렌스크 정복 10주년 기념으로 바실리 3세가 1524년 설립했다. 당시 크렘린의 성모승천 사원을 모방한 5개 양파 지붕이 있는 스몰렌스크 성당이 등장했다. 이후 1680년대 수도원에는 왕관 모양의 성벽, 교회 건물, 예배당, 높은 종탑, 수도원 식당 등이 생겨나 거의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만들어졌다.


아름답기만 했던 곳은 아니다. 이곳에서 표트르 대제와 권력 싸움에서 참패한 그의 배다른 누이 소피야 황녀가 유폐되어 1704년 사망했다. 이처럼 여성 왕족의 투옥 장소가 되기도 했다. 1812년 조국 전쟁 때는 나폴레옹이 이끈 프랑스군이 이곳 교회를 파괴했고, 수도원 폭파도 시도했지만 다행히도 화약통 심지가 비에 젖는 바람에 극적으로 살아났다고 한다. 1812년 전쟁 희생자의 무덤이 이곳에 있을 만하다.


<노보데비치 수도원의 소피야>, 일리야 레핀作, 1879년(출처: dzen.ru)


노보데비치 묘지 Новодевичье кладбище


노보데비치 묘지(출처: www.mskagency.ru)


노보데비치 수도원에서 또 다른 중요한 장소는 바로 묘지이다. 러시아를 빛낸 2만 2천여 명이 묻혀 있어 평소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이들을 추모한다. 고골, 체홉, 마야콥스키, 프로코피예프, 샬랴핀 등 19~20세기 예술인뿐만 아니라, 흐루쇼프, 옐친 등 현대 정치인들의 묘도 있다. 특히 이곳 각양각색의 묘비는 유명 조각가들이 만든 것도 있어, 구경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작품 감상이 된다. 묘지는 3개 구역으로 나뉘어 있는데, 터가 너무 넓으므로 방문하고 싶은 사람이 묻힌 곳을 미리 잘 확인해서 찾아가야 한다.


체홉과 마야콥스키의 묘(출처: sparklogic.ru, en-academic.com)
샬랴핀과 옐친의 묘(출처: dzen.ru, happy-laser.ru)
< 노보데비치 수도원 및 묘지 >
- 주소 : 수도원 Новодевичий просп., 1(노보데비치 프로스펙트)
             묘지 Лужнецкий просп., 2, стр. 1(루즈네츠키 프로스펙트)
- 찾아가기 : 메트로 1호선 Спортивная(스파르치브나야), 11호선 Лужники(루즈니키)역에서 도보 10~13분


[상트페테르부르크] 알렉산드르 넵스키 대수도원 Александро-Невская Лавра


알렉산드르 넵스키 대수도원(출처: xxx-shoping.ru)


상트페테르부르크 넵스키 대로 동쪽 끝 수도원섬에 위치한 대수도원이다. 중앙에 거대한 돔 지붕의 삼위일체 성당을 중심으로 양쪽이 대칭을 이루며, 중간에 공산주의 소광장 묘지를 두고 대주교 건물이 빙 둘러싸고 있는 구조이다. 알렉산드르 넵스키 대수도원에는 러시아 정교 박물관과 교육동이 있고, 수도원 공공식당에 가면 수도원에서 만든 빵을 먹어볼 수도 있다.


대수도원을 상징하는 삼위일체 성당, 남서부 탑과 이어진 교육동(출처: help-diplom.ru, trip-for-the-soul.ru)
대주교 건물과 수태고지 교회(출처: foto-planeta.com, verav.ru)


이곳은 상트페테르부르크 최초의 수도원이다. 건축 부지는 1710년 표트르 대제가 직접 지정했고, 수도원 1713년 조성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그곳은 13세기 알렉산드르 넵스키 대공이 스웨덴 군대를 함락한 역사적 장소라 그의 이름을 부여했다. 1790년 봉헌된 삼위일체 성당에는 넵스키 대공의 유골도 보관 중이다. 대수도원(Лавра)의 지위는 파벨 1세에 의해 1797년 받았다. 알렉산드르 넵스키 대수도원은 전체를 둘러싼 모습이 마치 요새와도 같은데, 이는 이탈리아 건축가 도메니코 트레지니가 의도적으로 요새처럼 설계한 것이라고 한다. 수도원은 20세기 초까지 증축을 거듭하여 지금의 아름다운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삼위일체 성당 내 알렉산드르 넵스키 유해가 보관된 공간(출처: spbmuzei.ru)


알렉산드르 넵스키 대수도원 묘지 Некрополи Александро-Невской лавры


 치흐빈 묘지와 라자레프 묘지(출처: carposting.ru, dzen.ru)


알렉산드르 넵스키 대수도원 구역에는 4개 묘지가 있다. 그중 지하철역에서 가까운 치흐빈 묘지와 라자레프 묘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세기 초 등장한 치흐빈 묘지는 소비에트 정권 첫해 재개발로 ‘예술가 묘지’ 추모 공원이 조성되어, 도시의 다른 곳에 있던 예술인의 유골과 묘비가 이곳에 모이기 시작했다. 작가 도스토옙스키와 작곡가 차이콥스키, 글린카, 림스키-코르사코프, 화가 크람스코이, 쉬시킨 등이 여기 묻혀 있는데, 각양각색의 묘비를 보는 재미도 있어 묘지라기보단 박물관 같기도 하다. 한편, 표트르 1세의 특별 허가를 받았던 라자레프 묘지에는 과학자 로모노소프, 정치가 비테, 건축가 로시 등 당대의 특권층이 영면 중이다.


치흐빈 묘지의 글린카와 쉬시킨의 묘(출처: Яндекс Карты, legacy-time.ru)
라자레프 묘지의 로모노소프와 로시의 묘(출처: photoby.ru, liveinternet.ru)
< 알렉산드르 넵스키 대수도원 >
 - 주소 : 대수도원 наб. реки Монастырки, 1(모나스티르키 강변로)
              치흐빈/라자레프 묘지 пл. Александра Невского.(알렉산드르 넵스키 광장)
- 찾아가기 : 메트로 3∙4호선 Площадь Александра Невского(플로샤지 알렉산드라 넵스코보)역에서 도보 4~7분




러시아 성당에 방문하면 처음에는 '와!'한다.

그러다 이곳 저곳 가다 보면 다 비슷한 것도 같고 거기서 거기 같은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다 똑같은 성당이 아니다. 저마다 품고 있는 깊이는 형언할 수 없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두 도시의 대립 구도에 있는 성당들을 비교해가며 감상한다면,

러시아 정교를 잘 모르는 우리 관점에서 나름대로의 재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삶과 맞닿아 있는 러시아의 종교(출처: gitara-vrn.ru)


무엇보다 성당은 러시아 사람들의 삶과 죽음, 소망과 간구를 엿볼 있는 가장 좋은 창이기도 하니

온전히 경건함을 느끼고 온다면 더 의미 있지 않을까.



, 방문하게 된다면 현지 관례에 따라 최대한 엄숙한 마음으로,

여름에는 반바지나 짧은 치마를 삼가는 건 필수 에티켓임을 잊지 말자!



* 커버 사진 출처: bangkokbook.ru, yamoscow.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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