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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험소녀 May 22. 2024

대문호 푸시킨, 두 도시에 남긴 그의 러시아 정신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살며 사랑하며 숨쉬던 푸쉬킨의 행적을 따라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누구나 한 번은 이 시구를 접해본 적 있을 것 같다.

어떤 시인이 썼는지는 모를지언정 시로부터 받는 위로가 커서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힘을 얻는다.


시대를 지나도 읽히는 푸시킨의 명작(출처: flectone.ru)


도대체 쓴 사람이 누구이기에?

작가는 바로 러시아인 정신적 지주가 되는, 러시아 문학의 아버지 알렉산드르 푸시킨이다. 그는 지금도 많은 러시아인이 읽는 고전 문학의 저자이며 대문호로 칭송받는 위인이다. 그는 귀족 출신이었지만 격동의 시기를 지나면서 그리 순탄치 않은 삶을 보냈다. 그의 시간은 한편의 영화처럼 다이내믹하고 또 드라마틱하다.


니콜라이 게의 작품 <미하일롭스코에 푸시킨을 방문한 푸신(1875)> (출처: историк.рф)


푸시킨의 활동 무대는 주로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였다. 모스크바에서 태어나 시절의 부침으로 러시아 남부에 보내졌고 가족 영지에서 지내며 작품을 남기기도 했으며, 사망 전까지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지냈다. 그는 시, 소설, 희곡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많이 남겼는데 이는 오페라나 음악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고, 뿐만 아니라 러시아어 체계까지 확립함으로써 19세기 러시아 문학의 황금기를 연, 근대 문학의 창시자이다.


이렇게 수많은 수식어가 붙은, 세기를 막론하고 큰 관심을 받는

알렉산드르 푸시킨은 어떤 사람이고 어디서, 어떤 생활을 했을까?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만나는 푸시킨의 자취들을 통해 그를 짐작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지금부터 푸시킨 인물 여행을 떠나 본다.



알렉산드르 푸시킨 Александр С. Пушкин(1799~1837)


오레스트 키프렌스키가 그린 <푸시킨 초상화(1827)>(출처: commons.wikimedia.org)


'러시아 사람이라고?'


푸시킨이 가장 마음에 들어했다던 오레스트 키프렌스키가 그린 그의 초상화이다. 얼핏 보면 곱슬 머리에 풍성한 구레나룻이 턱까지 닿을 듯한 모습, 백인보다 약간은 어두운 피부에서 이국적 느낌이 든다.

많은 러시아인의 영혼에 큰 울림을 준 작가 푸시킨, 도대체 그에게 무슨 특별한 점이 있는 걸까?


알렉산드르 푸시킨은 1799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세르게이는 관료였고, 어머니 나제즈다는 표트르 대제의 총신이던 에티오피아 출신 군 기술자 아브람 한니발의 손녀였다. 결국은 저 초상화에 대한 해답이 조금은 풀린다. 푸시킨의 외모는 모계에서 이어 받은 것이었다.


당시 귀족 사회에서는 프랑스식으로 언어를 구사하고 모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푸시킨은 어릴 때부터 러시아적인 것도 놓치지 않았다. 어린 시절 유모의 손에서 자라면서 그녀로부터 러시아어와 러시아 민담들을 꾸준히 접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경험은 후에 그의 작품에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푸시킨이 러시아적 정신과 모국어 바탕으로 작품 활동을 펼칠 수 있게 된 건 유모 덕분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푸시킨이 공부한 차르스코에 셀로의 귀족학교(리체이), 그리고 일리야 레핀이 그린 <차르스코에 셀로 리체이 시험장의 푸시킨>(출처: spbmuzei.ru, skillbox.ru)


학생이 되면서 푸시킨은 1811년부터 6년 간 상트페테르부르크 인근 차르스코에 셀로(現 푸시킨시)의 귀족 전문학교에서 공부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많은 시를 남겨 문학의 꽃을 피웠다. 이후 학교를 졸업하고는 외무성 10급 공무원으로 일하게 된다. 그는 공무를 하면서도 문학 생활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학교 다닐 때부터 참며했던 전통적인 문학에 반대하는 서클인 '아르자마스' 활동도 이어갔다. 아울러 데카브리스트 회원들이 결성한 공동체에 가입하면서 '자유(1818)', '마을(1819)'과 같은 정치적 성격의 서사시와 자유주의를 외치는 작품을 썼고, 이로 인해 황제의 분노를 사게 되자 푸시킨은 1820년 러시아 남부 지역 장군의 집무실로 보내진다. 이무렵 러시아 스타일의 영웅적인 기사도 소설인『루슬란과 류드밀라』가 탄생했다.


코카서스 산에 있는 푸시킨(출처: rgo.ru)


푸시킨은 코카서스, 크림 반도를 다니며 작품 영감을 얻고, 1820년 9월 몰도바 남부 키시네프에서 지냈다. 그곳에서도 시를 쓰는 일을 계속했고, 1823년『예브게니 오네긴』작업에 착수했다. 당시 푸시킨은 오데사로 근무지를 옮겼지만 이내 해임되면서 어머니의 가족 영지인 미하일롭스코에로 갔다. 그곳에서 2년 여 시간을 편안하게 보내며 작품을 연이어 남겼다. 이후 1826년 푸시킨은 니콜라이 1세에 용서를 구하고 사면되어 활동을 재개할 수 있었다. 하지만 황제 입맛에 맞는 작품, 검열에 자유롭지 못한 작품들이라는 전제가 붙었다.


푸시킨 마음의 고향 미하일롭스코 영지 내 저택. 지금은 박물관(출처: imghub.ru)
볼디노의 푸시킨 동상(출처: mixyfotos.ru)


1828년 그에게 일생일대의 순간을 맞이한다. 나탈리야 곤차로바를 만나 사랑에 빠진 것이다. 그녀에게 청혼을 했지만 집안의 반대에 부딪히자 이내 코카서스로 전쟁 참전을 위해 떠났다. 참전 후 결국 결혼을 승낙 받았고, 푸시킨은 1930년 아버지가 선물한 마을인 볼디노 가족 영지에서 가을을 보냈다. 이 시기에도 30여 편의 시를 남겼다. 모스크바로 돌아온 푸시킨은 1831년 니키츠키 대문의 대승천 교회에서 나탈리야 곤차로바와의 결혼식을 올렸다. 아르바트의 신혼집에서 길지 않은 시간을 보냈으며, 여기서 미하일롭스코에 시절 집필을 시작한 『보리스 고두노프』도 완성했다. 이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거처를 옮겼으나, 그의 생활 형편은 어려웠다.


알렉산드르 푸시킨과 나탈리야 곤차로바(출처: mixyfotos.ru)


그 즈음 나탈리야가 어느 사교 행사에서 러시아 친위대 소속 프랑스 장교 조르주 단테스를 만났다. 단테스는 나탈리야에게 사랑에 빠져 그녀에게 구애를 이어가자, 푸시킨은 분노하여 그와 맞붙으려 했다. 당시 단테스는 나탈리야의 언니 예카테리나에게 관심을 가져서 일어난 일로 둘러댔다. 하지만 예카테리나와 혼인한 이후에도 익명의 제보와 함께 단테스와 나탈리야의 확인할 수 없는 염문이 불거지자, 격분해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푸시킨은 결국 그에게 결투를 신청했다.


결투는 1837년 2월 8일 상트페테르부르크 검은 강 근처 공터에서 벌어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결투의 승자는 푸시킨이 아니었다. 단테스가 쏜 총은 푸시킨의 오른쪽 복부에 심하게 부상을 입혔고, 집으로 옮겨졌으나 푸시킨은 이틀 후 사망했다. 그가 쓴 『예브게니 오네긴』에서 오네긴과 렌스키의 결투 장면이 본인의 것이 되리라는 걸 암시한 복선이었을까? 때는 향년 38세.

그의 유해는 미하일롭스코에 영지 근처 언덕 위 스뱌토고르스키 수도원에 묻혀 있다.


일리야 레핀이 그린 <오네긴과 렌스키의 결투(1899)> (출처: fontanka.ru)
미하일롭스코에 근처 스뱌토고르스키 수도원 푸시킨의 묘(출처: dzen.ru)


이러한 삶을 살다 간 푸시킨의 발자취를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내 중심으로 산책해보려 한다.

먼저, 모스크바에서는 아르바트의 신혼집인 푸시킨 집 박물관과 푸시킨이 자주 찾았다는 근처의 스파소페스콥스카야 광장, 푸시킨 부부가 결혼한 교회 부근 사랑의 분수, 그리고 국립 푸시킨 박물관과 그의 동상이 서 있는 푸시킨 광장까지 둘러본다. 이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푸시킨 동상이 상징적인 예술 광장, 모이카 강변 그가 마지막 생을 보낸 푸시킨 박물관은 물론, 푸시킨이 결투 들렀던 카페와 마지막 결투 장소까지 둘러보겠다.


보리스 셰르바코프가 그린 <미하일롭스코에의 푸시킨(1969)> (출처: aria-art.ru)


(1) 모스크바


모스크바는 푸시킨이 태어난 도시지만 그의 일생을 두고 보면 이 도시에서의 생활은 그리 긴 편은 아니다. 가장 결정적으로 모스크바에서 반려자 나탈리야를 만나서 결혼하고 신혼을 시작했으니 아름다운 시간을 보낸 곳임은 틀림 없다. 그의 장밋빛 시절과 더불어 현시대까지 푸시킨을 기억하는 장소들이 곳곳에 있으니 놓치면 안 될 것이다.


[아르바트 푸시킨 집 박물관 Мемориальная квартира Пушкина на Арбате]

 

아르바트의 푸시킨 집 박물관. 외벽에 푸시킨이 이곳에 한때 살았다고 명시된 비석(출처: moskultura.ru, design-kvartiry.ru)


아르바트 거리에서 유난히 눈길이 가는 민트색 2층 건물. 외벽에 ‘이 집에서 푸시킨이 1831년 2월 초부터 5월 중순까지 살았다’고 적힌 비석이 있다. 푸시킨과 곤차로바가 신혼 초 3개월밖에 살지 않은 집이지만, 모스크바에서는 유일하게 푸시킨이 주인으로 지낸 곳으로, 박물관이 되어 1986년 개관했다. 1층에는 푸시킨과 도시에 대한 전시관이, 부부가 신혼 생활을 했던 2층은 기념관으로 구성된다. 그가 파티와 연회를 베푼 공간에서 지금은 그와 관련된 각종 행사가 열린다. 푸시킨이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결혼해서 행복하다’고 했니, 이곳의 시간만큼은 장밋빛이었으리라.


푸시킨 주변 인물들의 초상화가 있는 홀, 푸시킨이 남긴 편지와 출판물(출처: dzen.ru)
2층 응접실과 메인홀(출처: dzen.ru)


아르바트 거리 푸시킨 신혼집 맞은편에는 손을 잡고 정면을 응시하는 푸시킨 부부 동상이 있다. 푸시킨과 곤차로바가 결혼식 후 교회를 나서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곤차로바의 동상이 조금 더 큰데, 실제로 푸시킨은 그녀보다 키가 작았다고 한다. 부부의 동상은 지금의 자리에 1999년 세워졌다.


아르바트 푸시킨 집 박물관 맞은편 푸시킨과 곤차로바의 동상(출처: rus-towns.ru)
< 아르바트 푸시킨 집 박물관 >
- 주소 : ул. Арбат, 53(아르바트 거리)
- 찾아가기 : 메트로 3∙4호선 Смоленская(스몰렌스카야)역에서 도보 2~6분


[스파소페스콥스카야 광장 Спасопесковская площадь]

 

아르바트 거리 근처 스파소페스콥스카야 광장(출처: imghub.ru)


아르바트 메인 거리에서 골목으로 들어가면 교회와 공원이 나온다. 스파소페스콥스카야 광장 공원은 푸시킨이 생전에 즐겨 찾던 장소라 일명 ‘푸시킨 공원’이라고도 부른다. 이곳에 1993년 그를 기억하는 동상이 세워졌는데, 동상 아래 비석에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푸시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가 러시아어로 적혀 있어 더욱 인상적이다.


스파소페스콥스카야 광장 옆 구세주 변모 교회(출처: azimutour.ru)


이곳 명칭은 1711년 목조로 지어진 ‘모래 위 구세주 변모 교회’의 이름을 따르고 있다. 교회는 16세기 아르바트에 형성된 모스크바 서부 친위병 정착촌의 중심이 되는 장소였다. 18세기에는 귀족들이 거주하기 시작했고, 1812년 도시 화재 이후 교회 근처 지금 공원의 모습은 19세기 후반 갖춰졌다. 푸시킨이 마음의 안식을 찾고 싶을 대 찾는 장소지 않았을까.


스파소페스콥스카야 광장의 푸시킨 동상과 그 아래 적힌 시(출처: timeforcook.ru)


Если жизнь тебя обманет,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Не печалься, не сердись!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В день уныния смирись: 서러운 날 참고 견디라,

День веселья, верь, настанет. 믿어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Сердце в будущем живет; 마음은 미래에 살고,

Настоящее уныло: 현재는 침울할 뿐이지만,

Всё мгновенно, всё пройдет; 모두 순간적이고 다 지나가는 것,

Что пройдет, то будет мило. 지나가 버린 것은 아름다워지리라.


- 알렉산드르 푸시킨(1825년)


< 스파소페스콥스카야 광장 >
- 주소 : Спасопесковский пер.(스파소페스콥스키 골목)
- 찾아가기 : 메트로 3∙4호선 Смоленская(스몰렌스카야)역에서 5~7분


[나탈리야와 알렉산드르 분수 Фонтан-ротонда Наталья и Александр]


나탈리야와 알렉산드르 분수(출처: evgechesnokov.livejournal.com)


니키츠카야 거리 중간 광장에 금빛 지붕의 로톤다가 돋보이는 분수가 있다. 이탈리아산 대리석 기둥에 둘러싸인 원형 건축물 안에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높이 1.4m의 푸시킨 부부 조각상이 마주보고 있다. 분수가 있는 자리는 1831년 푸시킨과 곤차로바가 결혼식을 올린 대승천 교회 근처라 더욱 의미가 있다. 무려 1톤이나 되는 황금 돔은 이들이 결혼한 대승천 교회의 지붕을 상징하고 있다.


분수 속 서로 마주보고 있는 푸시킨 부부 동상(출처: vseomoskve.livejournal.com)


부부의 분수는 푸시킨 탄생 200주년 되던 1999년 세워졌다. 이곳은 일반 분수와 달리 도시의 수도 시스템을 통해 나오는 물을 사용하는 유일한 분수라고 한다. 여름에는 목을 적셔도 좋다고는 하나, 그냥 감상만 하는 편이 좋다. 현지인들은 두 사람 이름을 따 '나탈리야와 알렉산드르 분수'라고 부르고 있는, 사랑의 분수다.


분수 근처 푸시킨이 결혼식을 올린 대승천 교회(출처: tvoyamoskva.timepad.ru)
< 나탈리야와 알렉산드르 분수 >
- 주소 : ул. Малая Никитская, 2/1с1(말라야 니키츠카야 거리) 건너편, 발샤야 니키츠카야 거리
- 찾아가기 : 메트로 3∙4호선 Арбатская(아르바츠카야), 7호선 Пушкинская(푸시킨스카야)역에서 도보 9~12분


[국립 푸시킨 박물관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музей А.С. Пушкина]


국립 푸시킨 박물관(출처: culture.ru)


모스크바에 있는 5개 푸시킨 박물관 중 하나로 19세기 초 귀족 저택 건물에 개관했다. 작가 푸시킨의 생애를 담고 있는 '푸시킨과 그의 시대' 전시홀과 도서홀, 컨퍼런스홀 등으로 구성되며, 18~19세기 고서와 그림, 초상화, 그릇 등과 함께 기증된 소장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은 복합 문화의 공간으로서 방문객을 위한 행사를 개최하기도 한다.


푸시킨 박물관 내부 전시들(출처: forsmi.ru, radiovera.ru)
푸시킨 어린 시절과 관련된 전시품과 고서가 있는 공간(출처: kazanocheka.livejournal.com, pushkinmuseum.ru)


이곳 박물에서는 1957년 개관 이후 첫 전시회가 1961년 열렸다. 당시 새로운 컬렉션은 반응이 엄청났다. 이후로도 박물관에 푸시킨과 관련된 초상화, 책, 원고, 가구 등 수많은 개인 소장품의 기증이 이어져 오늘날 국가 유산으로 남게 되었다. 재건을 통해 1999년 시인 탄생 200주년 기념일에는 거대한 유리돔으로 별채와 연결되는 구조를 가지게 되었다. 이 장소에서는 꼭 푸시킨이 사용했던 물건을 보는 것이 아니더라도, 동시대의 흔적도 함께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유리 돔으로 연결된 푸시킨 박물관 내부(출처: bangkokbook.ru)
< 국립 푸시킨 박물관 >
- 주소 : ул. Пречистенка, 12/2(프레치스첸카 거리)
- 찾아가기 : 메트로 1호선 Кропоткинская(크라포트킨스카야)역에서 도보 4분


[푸시킨 광장 Пушкинская площадь]


푸시킨 광장과 동상의 모습(출처: yamoscow.ru, dzen.ru)


트베르스카야 거리 중심부에서 러시아 문학의 거장 푸시킨을 만날 수 있다. 그의 청동 동상은 얼굴이 실물과 똑같이 표현되어 있고, 오른손은 자켓 안쪽에, 왼손에는 모자를 든 모습이다. 가로수길 사이 위치한 이 광장에서는 철마다 각종 콘서트와 공연이 열리고 시즌 마켓이 늘어서며, 평소에는 연인과 친구들 만남의 장소가 된다. 이처럼 활동적이고 사람으로 에너지 넘치는 광장은 알고 보면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동상 제막식 당시의 모습을 그린 그림(출처: imghub.ru)


광장 자리에는 원래 17세기 중반부터 스트라스노이 수도원이 있었다. 푸시킨 동상의 등장은 수도원 맞은편, 시인이 자주 산책하던 트베르스코이 가로수길에 1880년 그의 생일날 이루어졌다. 당시 동상 제막 행사는 투르게네프, 도스토옙스키 등 당대 유명 작가들도 참석한 빅 이벤트였다. 이후 푸시킨 동상은 소련 시절 스탈린의 명령으로 철거한 수도원의 종탑 자리, 즉, 현재의 위치로 1950년에 옮겨졌다. 지금은 수도원이 없지만, 동상 뒤 비석에서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1961년에는 기념 엽서에 자주 등장하는 로시야 영화관(現 뮤지컬 극장)이 세워졌고, 분수와 꽃밭이 조성되면서 모스크바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공원으로 거듭났다.


시민들의 쉼터가 되는 푸시킨 광장. 도로를 두고 앞뒤로 가로수길이 연결됨(출처: bangkokbook.ru)
< 푸시킨 광장 >
- 주소 : Пушкинская пл.(푸시킨스카야 광장)
- 찾아가기 : 메트로 7호선 Пушкинская(푸시킨스카야), 2호선 Тверская(트베르스카야)역, 9호선 Чеховская(체홉스카야)역에서 도보 1~2분


(2) 상트페테르부르크


상트페테르부르크는 푸시킨이 사망 전까지 지낸 도시이다. 유년시절 귀족학교를 다니며 문학적 재능을 보였고, 데카브리스트들의 마음을 뜨겁게 하는 글을 썼으며 수많은 걸작들도 완성했다. 그러나 결국 사랑을 위해 결투로 싸우다 사망에 이른 곳이 되었다. 그를 만날 수 있는 도시 속 장소들을 만나 본다.


[예술 광장 Площадь Искусств]

 

예술을 즐길 수 있는 기관들이 모여 있는 예술 광장(출처: wiki2.org)


넵스키 대로에서 미하일롭스카야 거리를 따라 가면 루스키 박물관 앞 광장이 펼쳐진다. 광장을 중심으로 미하일롭스키 극장, 뮤지컬 극장, 러시아 민속 박물관, 쇼스타코비치 필하모니 등이 한데 모여 있어, 상징적인 도시 예술의 중심이다. 특히 광장의 공원 가운데에 시를 낭송하고 있는 듯한 포즈의 푸시킨 동상을 보면 절로 예술적 감각이 솟아날 것만 같다. 예술 광장을 둘러싼 건축 기념물들은 199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귀중한 역사의 작품이기도 하다.


예술 광장의 여유로운 손짓, 푸시킨 동상. 그 뒤로는 루스키 박물관(출처: flectone.ru)


19세기 초 건축가 로시는 미하일롭스키 궁전(現 루스키 박물관) 건축 당시 주변 공간도 그에 어울리는 광장과 고전적 건물들로 조성했다. 현재 쇼스타코비치 필하모니 맞은편 고급 '그랜드 호텔 유럽'도 로시가 설계하였고, 인근 건물들도 대부분 다른 건축가들이 그의 디자인을 모방해 만들었다. 1827년에는 니콜라이 1세 명령으로 궁전 앞 광장에 영국식 정원이 생겼는데, 궁전 이름을 따라 ‘미하일롭스카야 광장’이라 불렀다. 이후 소련 시절, 이곳에 문화 기관들이 모여 있다는 이유로 1940년 ‘예술 광장’의 이름을 부여했다. 이름이 바뀌고 1957년에는 광장 한가운데 러시아 국민 시인 푸시킨 동상이 등장하면서, 미하일롭스키 궁전을 배경으로 예술적 풍경을 연출하게 되었다.


예술 광장의 그랜드 호텔 유럽과 미하일롭스키 극장(출처: elite-mag.ru, bangkokbook.ru)
< 예술 광장 >
- 주소 : ул. Инженерная, ул. Итальянская(인제네르나야 거리와 이탈리얀스카야 거리 사이)
- 찾아가기 : 메트로 2호선 Невский проспект(넵스키 프로스펙트), 3호선 Гостиный двор(가스치니 드보르)역에서 도보 5분


[푸시킨 집 박물관 Мемориальный Музей-квартира А.С. Пушкина]


푸시킨 집 박물관(출처: parus-peterburg.ru)


궁전 광장에서 모이카강 건너 12번 건물에 시인 푸시킨이 생의 마지막을 보낸 집 박물관이 있다. 푸시킨은 볼콘스키 공작 저택이었던 이곳의 1층 아파트에서 1836년 가을부터 단테스와의 결투로 총상을 입고 죽음을 맞이한 1837년 초까지 지냈다. 푸시킨이 살던 집을 박물관으로 만든 이 공간은 역사 자료를 기반으로 그가 살던 당시의 모습을 재구성하여 1927년 개관했다.


푸시킨의 서재와 그가 사망한 소파(출처: eva-k2.livejournal.com, dzen.ru)
푸시킨 집 박물관 응접실과 아이들의 방(출처: design-kvartiry, modamix.net)
푸시킨과 나탈리야 곤차로바(출처: mebel-gu.ru)


서재와 작품 초고가 놓인 책상을 비롯해 그가 숨을 거둔 소파와 결투 당시 입고 있던 조끼, 그의 곱슬 머리와 데스마스크, 부인과 아이들 물건과 초상화 등이 전시되어 있어 시인의 삶을 되짚어 볼 수 있다. 박물관을 관람하려면 정해진 시간에 그룹 투어에 참여하거나, 오디오 가이드를 빌리는 편이 좋다.


푸시킨의 데스마스크(출처: azimutour.ru)
< 푸시킨 집 박물관 >
- 주소 : наб. реки Мойки, 12(모이카 강변로 12번 건물)
- 찾아가기 : 메트로 5호선 Адмиралтейская(아드미랄체이스카야), 2호선 Невский проспект(넵스키 프로스펙트)역에서 도보 11~12분


[문학 카페 Литературное кафе]


문학 카페(출처: vk.com, turbinatravels.com)


넵스키 대로와 모이카강과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푸시킨 얼굴이 그려진' 카페이다. 건물 2층에 도시의 전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문학 카페가 있다. 19세기 최고 살롱 스타일 인테리어로 지금도 인기가 많다. 때때로 문학과 관련된 행사가 열려 마치 귀족 사교 행사에 참여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저녁마다 피아노와 아코디언, 트럼펫 등 악기와 함께 러시아 가곡 등이 연주되어 문화생활의 정점을 찍는 느낌도 든다. 카페 메뉴로는 푸시킨 시대의 레시피에 따라 준비된 러시아-프랑스 요리가 조화를 이룬다.


문학 카페 올라가는 길 및 내부(출처: flectone.ru)


19세기 초 이곳에는 '볼프와 베란제'라는 유명 제과점이 있었다. 이곳은 당대 유명 작가와 시인, 언론인 등이 정기적으로 만나 식사하며 이야기를 나누던 장소였다. 푸시킨은 물론이고, 도스토옙스키, 레르몬토프 등 19세기 문학가들도 즐겨 찾았다. 특별히 푸시킨은 1837년 2월 8일(구력 1월 27일) 오후 4시경, 단테스와 전투를 하러 가기 전 이곳에 들러 결투 입회인 단자스를 만났고 레모네이드를 마셨다. 현재는 그의 모습을 하고 있는 밀랍 인형이 카페 자리를 지키고 있다. 푸시킨 당시의 제과점은 1877년 문을 닫았고 레스토랑으로 운영되다가 1983년부터 문학 카페로 운영되고 있다.


문학 카페 내 푸시킨 밀랍(출처: bangkokbook.ru)
< 문학 카페 >
- 주소 : Невский проспект, 18(넵스키 대로 18번 건물) 모이카 강변
- 찾아가기 : 메트로 5호선 Адмиралтейская(아드미랄체이스카야)역에서 도보 5분


[푸시킨의 결투 장소 Место дуэли А. С. Пушкина]

 

푸시킨 마지막 결투 장소(출처: rusversia.ru)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이야기다. 푸시킨은 아내 나탈리야와 염문을 퍼트린 익명의 제보로 단테스를 용서할 수 없었고, 결국 그에게 결투를 신청했다. 그리고 눈 쌓인 거리, 썰매를 타고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내 북쪽의 검은강(Чёрная речка 초르나야 레치카) 인근 공터로 가서 결투 상대를 만났다. 입회인이 함께한 자리에서 두 사람은 열 발자국 움직여 서로 총을 쏘았는데, 단테스의 총탄이 푸시킨의 오른쪽 복부에 치명상을 입히고 말았다. 그리고 푸시킨은 그의 집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이틀 후 숨을 거두었다.


알렉세이 나우모프의 그림 <푸시킨의 단테스와 결투(1884)> (출처: topdialog.ru)


그의 죽음은 국가적인 비극이었다. 그것도 결투로 한순간에 잃은 목숨이었으니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했을 것이다. 사실 푸시킨 서거 50주년이 되던 1887년 결투 장소에 애도 모임에서 기념비를 세우고자 결정했으나 시행되지 못했다. 이후 푸시킨을 사랑한 여러 사람에 의해 지금 자리에 녹지 화단과 공원이 조성되고, 그의 서거 100주년인 1937년이 되어서야 오벨리스크가 세워졌다. 조각가 마트베이 마니제르의 작품이다.


마지막 결투 장소의 비석과 오벨리스크에 새겨진 푸시킨(출처: izh.kp.ru, dzen.ru)
< 푸시킨의 결투 장소 >
- 주소 : Коломяжский просп., ул. Матроса Железняка(콜로먀즈스키 프로스펙트와 마트로사 젤레즈냐카 거리 사이)
- 찾아가기 : 메트로 2호선 Пионерская(피아네르스카야)역에서 도보 12분




이처럼 엄청난 서사를 가지고 있는 문학가 푸시킨!

문학 속에 삶을 녹여내며 사랑에도 열성적인 그는 그야말로 러시아인 정신의 뿌리라 할 만하다.


유럽에 비해 뒤쳐져 있던 당시 19세기 러시아에서 진보적인 사상을 가지고 글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이끌어 냈던 그의 노력과 생활들이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구석구석에 녹아 있어 백문이 불여일견.


알렉산드르 푸시킨(출처: gas-kvas.com)


푸시킨의 발자취만 따라 문학 기행을 떠난다면

진정한 러시아인의 정서를 흠뻑 느낄 수 있지 않을까?



※ 원문 관련 영상 [러시아 대문호 푸시킨의 삶을 걷는 두 도시 기행]

https://youtu.be/HZcQy57oVoo

출처: 유튜브 채널 여행과 사색



*커버 사진 출처 : mixyfotos.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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