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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험소녀 Jul 10. 2024

[모스크바 vs 상트페테르부르크⑤] 이름이 둘인 먹거리

두 도시에서 도넛과 케밥의 명칭이 달라진 이유

여행하면 간식이 빠질 수 없다.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가면 길거리나 상점에서 각종 먹거리를 만나게 되는데,

다양한 민족이 사는 도시인 만큼 달콤한 한입거리부터 식사 대용까지 그 선택권도 넓다.


다양한 먹거리를 파는 키오스크(출처: za-edoy.ru)


그중 '이름 때문에' 호기심을 자극한 두 가지 먹거리를 지금부터 소개하려 한다.

바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도넛케밥으로,

신기하게도 이 두 먹거리를 부르는 명칭이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각각 다르다.


같은 먹거리에
이름이 둘?


도넛을 모스크바에서는 '폰칙Пончик',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피시카Пышка'라 하며,


케밥은 모스크바에서 '샤우르마Шаурма',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샤베르마Шаверма'라 부른다.


폰칙 또는 피시키 / 샤우르마 또는 샤베르마(출처: cafe-tandir.ru, edabook.ru)


명칭이 다르니 만드는 방식이나 재료에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닌 의문이 들  있겠지만, 이름은 달라도 사실 큰 차이 없이 같은 음식을 지칭한다는 게 일반적인 여론이다.


그렇다면 왜 두 도시에서 다른 이름을 가지게 된 걸까?  배경을 알아본다.


(1) 도넛


일반적으로 '도넛'이라 하면 기름에 튀긴 빵으로, 미국에서 유명한 것으로만 생각한다. 도넛은 미국으로 이민 온 네덜란드인들이 17~18세기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지만 놀랍게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구멍 난 도넛은 미국에 건너간 러시아 제국 출신 이민자 아돌프 레비트가 발명한 도넛 기계 자동으로 만들기 시작해 20세기 초 혁신적 인기를 끈 것으로 전해진다. 도넛 인기는 미국에서 최고를 쳤을지 르지만, 러시아에심심치 않게 만나는 국민 간식이 된 지는 오래다. 


초창기 도넛을 제조하는 첫 기계(출처: rishonim.info)


하지만 도넛을 칭하는 단어는 하나가 아니었다.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도넛을 서로 다르게 부르고 있 때문이다.


도넛의 두 명칭은 어디서 온 걸까?


폰칙 가게(출처: zoon.ru)


모스크바 '폰칙' VS 상트페테르부르크 '피시카'


먼저 '폰칙(복수형 폰치키пончики)'이란 명칭은 폴란드어에서 도넛을 칭하는 '퐁첵(pączek)'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졌다. 그 역사를 17세기로 거슬러 올라가 폴란드 침략자들에 의해 도넛 명칭이 러시아어에 들어왔다고 보는 것이다. 발음도 비슷한데다, 폴란드인들의 퐁첵은 튀긴 빵 안에 잼이 채워진 먹거리라 그렇게도 해석할 만하다.


줄 서서 먹는 폰칙 가게(출처: svao.today)


한편, '피시카(복수형 피시키пышки)'는 출처가 좀 더 명확하다. 러시아어 동사 피하치(пыхать, 내뿜다)에서 파생된 단어다. 19세기에 이 동사는 '기름으로 퍼붓다(обдавать маслом)'는 뜻으로 사용했고, 이후 확정된 사전적 의미에 따르면 팬에서 달궈진 기름에 조리한 러시아 밀가루 음식에 대해서만 쓰게 되었다. 그래서 기름에 튀긴 빵을 해당 동사의 명사 형태인 '피시카'로 부르게 된 것이다.


폰칙으로 칭하는 구멍 없고 속이 든 퉁퉁한 도넛 / 구멍이 있고 속이 없는 피시카(출처: balthazar.club, allo-spb.com)


일반적으로 폰칙이 더 넓은 의미로 쓰이는 것 같다. 폰칙은 가운데 구멍이 있는 것과 구멍 없필링을 넣은 퉁통한 빵까지 포함하지만, 피시카는 필링 없이 설탕가루만 묻힌 얇은 고리 모양 빵 지칭해 폰칙보다 범위가 좁다.

사실 도넛에 낸 구멍은 제조 과정 중 기름을 잘 빼기 위해 낸 것일 뿐, 만드는 방식은 폰칙이든 피시카든 동일하다. 결국 도넛의 구멍이나 필링 유무 등이 현재로서는 명칭을 결정하는데크게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둘 중 어떤 것이 먼저 '도넛' 음식에 이름 붙여졌는지는 알 수 없다. 또 러시아 식탁 위에 도넛이 언제, 어떻게 등장하게 되었는지 정확히 알려진 바 없다.


분명한 건 러시아에서 도넛의 인기는 소련 시절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도넛 경쟁이 붙은 이후 높아졌고, 그것이 지역 명물처럼 브랜드되어 각각의 명칭으로 자연스레 정착됐다는 사실이다.

1952년 모스크바 오스탄키노에 유명 폰칙 가게가 오픈했다. 이후 6년이 지나 1958년에 레닌그라드(現 상트페테르부르크)에도 인기 피시카 가게가 문을 열었다. 이때부터 어디 도넛의 인기가 많은모스크바의 폰칙과 레닌그라드의 피시카 경쟁이 시작됐다. 이후 상트페테르부르크 피시카는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 도시의 미식 코드로 자리 잡았다. 반면, 모스크바의 폰칙은 그에 비해 브랜드화는 조금 약한 편이었다.


소련 시절 폰칙 굽는 모습 / 레닌그라드 당시 피시카 가게 건물(출처: back-in-ussr.com, fotostrana.ru)
피시카 가게(출처: bangkokbook.ru)


무엇보다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오랜 도넛 가게 둘은 소련 시절 큰 인기를 누렸고 지금도 명성을 이어오는 중이다. 매장의 도넛 만드는 방식도 모두 옛날 것을 고수한다. 찾아오는 이들도, 그때 그시절 먹었던 바삭하고 푹신하고 달콤했던 맛, 당시 추억의 맛을 먹으러 오는 것이다.


추억을 먹는,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두 도시의 도넛 전통 맛집을 소개한다.


[모스크바] 폰치키 Пончики

1952년 오픈한 모스크바 오스탄키노 폰칙 가게 <폰치키> * 저자의 6월 24일 방문 사진

1952년 오픈한 모스크바에서 가장 오래된 폰칙 가게. 오스탄키노 TV 타워 근처에 위치한 이 귀여운 가게는 주문하는 창구와 약간의 공간이 전부라 아주 심플하다. 옛날 레시피 그대로 도넛을 만들고 있다. 다양한 간식 거리도 팔고 있지만 이곳 메인 메뉴는 단연 폰칙. 속이 들지 않은 구멍 뚫린 퉁퉁한 폰칙은 주문 즉시 받아따끈따끈하며 슈가파우더가 묻어 나온다. 매우 평범해 보이나, 한입 베어 물면 묵직하고도 부드럽고 바삭한 맛이 일품이다. 매장이 협소 앉아서 먹고 가는 이들보다는 포장 고객들이 길게 줄을 설 정도로 많다. 특히 어르신들이 찾아와 폰칙 여러 개를 포장해가는 찐 추억의 맛집이다. 단, 이곳은 지금도 현찰만 받는다.


폰치키 가게 내부 모습과 주문한 폰칙 * 저자의 6월 24일 방문 사진
한입 베어 문 퉁퉁한 도넛 폰칙 * 저자의 6월 24일 방문 사진
< 폰치키 >
- 주소 : ул. 1-я Останкинская, стр. 1(페르바야 오스탄킨스카야 거리)
- 찾아가기 : 메트로 6호선 ВДНХ(베데엔하)에서 도보 20분


[상트페테르부르크] 피시키 Пышки


1958년 오픈한 상트페테르부르크 명물 피시카 가게(출처: guide-spb.fontanka.ru)


1958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오픈한 전설적인 피시카 맛집이다. 발샤야 카뉴센나야 거리에 위치하는데, 매장은 시간이 멈춘듯 소련 시절 감성을 남겨 두었다. 홀이 크지는 않지만 서서 먹거나 앉아서 먹는 손님들, 줄을 선 사람들로 가득하다. 메뉴는 피시카와 음료로 단출한 편. 슈가 파우더가 뿌려진 부들부들 맛있게 튀겨진 고리 모양 도넛과 함께 특별히 연유 넣은 커피를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이곳은 매일 1.5~2천 인분의 도넛을 튀길 정도로 고객이 넘친다. 아이부터 할머니까지 손님 연령대가 다양하며 외국인도 한번씩은 찾는 명소다. 특별히 매장에는 옛날 감성 그대로 냅킨 대신 종이를 비치하여 사용하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 피시카 가게의 심플한 내부. 도넛과 연유 커피, 종이 냅킨(출처: chert-poberi.ru, dzen.ru)
< 피시키 >
- 주소 : ул. Большая Конюшенная, 25(발샤야 카뉴센나야 거리)
- 찾아가기 : 메트로 5호선 Адмиралтейская(아드미랄체이스카야)에서 도보 8분


(2) 케밥


러시아인은 고기를 좋아한다. 특히 중앙아시아에서 온 음식 숯불 꼬치구이 샤슬릭은 야외에서 해먹는 단골 메뉴이고, 그릴에 구운 스테이크는 러시아 레스토랑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음식이다.


길거리 간편식 케밥(출처: vk.com)


한편, 길거리의 유명한 고기 음식이 있다.

고기와 야채를 얇은 전병에 싼 케밥 요리로,

속재료 고기는 주로 닭고기, 양고기, 소고기 등이 사용되며 수직으로 세운 특수 꼬챙이에 고기를 꽂고 그릴에 굽는다. 긴 칼로 잘게 썰어낸 고기와 소스, 야채로 얇은 전병 속을 채우고 접어 그릴에 살짝 구워 먹는다.

도구 없이 한번에 들고 먹을 수 있는 간편식이라 든든한 한끼로 손색이 없고 우리 입맛에도 제격이다.


러시아 케밥 가게(출처: smartik.ru)


그런데 왜 이 싸먹는 케밥은 이름이 둘일까?


모스크바 '샤우르마' VS 상트페테르부르크 '샤베르마'


같은 음식을 두고 모스크바에서는 샤우르마로 판매하고, 트페테르부르크에 가면 샤베르마로 팔고 있다. 잘 모르면 혼란스러울 수 있다.


이 전병에 싼 고기 요리는 본래 중동에서 유래했다. 지역마다 도네르, 슈아르마, 자이로 등 이름도 매우 다양하다.


속이 가득 찬 샤우르마/샤베르(출처: shaurma24-pd.ru)


이 음식의 러시아어 버전은 '회전', '포장'을 의미하는 터키어 '체비르메(çevirme)'의 아랍식 발음서 유래했다는 설, 그리고 '불에 굽다' 뜻을 가진 아랍어 동사 '샤바(shawaa)'에서 왔다는 견해가 존재한다. 결론적으론 중동 문화권 영향을 받아 부르게 됐다는 이야기다.


케밥 요리사(출처: news.ru)


이렇게 싸먹는 형식의 케밥은 20세기 중엽 베를린에서 터키 요리사가 만들어 팔기 시작하면서 생겼다고 한다. 무엇보다 간편하게 먹을 수 있어 노동자들에게 인기 메뉴로 떠올랐고, 대중성을 얻게 되자 싸먹는 케밥 메뉴는 유럽 전역과 그 인근 지역까지 전파되었다.


전병에 올려지는 케밥 재료들(출처: biz-nes.ru)


그런데 러시아에서는 정확히 어디서  케밥을 처음 만들고 팔기 시작했는지 밝혀진 바는 없다. 아마도 1980~1990년대 샤우르마 또는 샤베르마로 등장했으리라 추측할 뿐이다.

그리고 당시 소련에 건너온 중동 출신 다민족 이민자들에 의해 케밥이 대도시에 들어오면서 명칭도 이들의 발음에 따라 달리 부르게 되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즉, 모스크바에는 케밥을 '샤우르마'라 부르는 지역 출신의 이민자가,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케밥을 '샤베르마'로 부르는 곳의 이민자가 이를 소개하고 전파했을 거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명확히 밝혀진 바는 아니며, 명칭과 관련된 논쟁은 지금도 여전하다고 한다.


인기 좋은 1990년대 샤우르마 가게와 2000년대 샤베르마 가게(출처: bangkokbook.ru, flectone.ru)


그밖에도 발음의 편의상 명칭이 달라졌다고 하는 언어학자 등 수많은 전문가의 주장이 많은데,

어쨌든 두 도시에서 너무나 또렷하게 이민자의 음식 명칭이 양분화되어 현지 문화로 자리 잡은 현상 자체는 참 신기하다.


그렇게 샤우르마와 샤베르마는 각각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고유 명칭으로 뿌리 내렸다.


모스크바의 샤우르마 vs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샤베르마(출처 dzen.ru)


저렴한 길거리 패스트푸드로서 가난한 유학생들 최애 메뉴기도 했던 샤우르마와 샤베르마!

이민자의 음식인 만큼 타지에서 온 이들에게도 더욱 특별한 의미를 주는 추억의 음식일 수밖에 없다.




다양한 민족이 살아가며 그만큼 명칭도 넓게 수용하고 존중하는 러시아.

이처럼 서로 지칭하는 단어가 달라, 도넛이나 케밥을 부를 때 어떤 단어를 사용하는지만 유심히 봐도 어느 지역 출신인지 짐작할 수 있으니 일종의 방언으로 봐도 될 것 같다.


추억을 담은 20세기 음식에서 처럼 두 도시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재미난 문화 현상,

이를 통해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간 은근한 신경전을 만날 수 있어서 신선다.


도넛과 케밥(출처: Telegram)


* 커버 사진 출처: pulse.mail.ru, sputnik-chita.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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