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태생 '올리비에'와 상트페테르부르크 태생 '코류시카'(출처: nuzhnaeda.ru, pofoto.club)
배경도 다르고 개성도 다른 두 도시이기에
음식의 탄생 배경에도 무언가 특별한 스토리가 있을 것 같다.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본다.
1. 모스크바 태생 '올리비에 Оливье'
축제에서 빠지지 않는 메뉴 올리비에(출처: rbc.ru)
이름도 예쁜 '올리비에'. 이 음식은 러시아에서 새해나 축제가 되면 빠지지 않는 메뉴다.
러시아 혹은 소련 영화에도 함께 모여 휴일을 축하하는 자리에 늘 이 음식이 등장한다.
사실 특별한 재료가 필요한 건 아니다. 깍둑썬 감자와 소시지, 당근, 오이, 콩 등을 마요네즈에 한데 버무린 것으로, 우리에게도 밑반찬처럼 익숙한 맛이라 거부감이 없다. 올리비에는 가장 보편적인 맛이다.
영화 <운명의 아이러니>의 신년맞이 식탁과 여주인공이 먹는 올리비에(출처: 영화 캡처)
하지만 처음부터 이런 모습이었던 건 아니다.
올리비에의 시초는 19세기 시작된다.
러시아에서 프랑스 문화의 인기가 절정이던 1860년대, 올리비에는 프랑스 셰프가 처음 개발한 음식이다.
셰프의 이름은 루시앙 올리비에(1838~1883). 그는 모스크바 트루브나야 광장레스토랑 '에르미타주'의 주인이기도 했다. 루시앙은 레스토랑에서 프랑스 요리도 선보였지만, 이를 러시아 요리와 접목한 메뉴도 고안해냈다. 특별히 그가 개발한 들새 고기에 소스를 곁들인 요리는 레스토랑의 시그니처 메뉴가 될 정도 큰 인기를 얻었다. 그것이 바로 올리비에의 시초가 되는 요리였다.
루시앙 올리비에, 그리고 그가 운영한 모스크바의 레스토랑 에르미타주(출처: dzen.ru, russia-ic.com)
당시 그 인기 메뉴는 꿩고기 필레와 닭고기 육수 젤리, 가재 꼬리와 송아지 혀, 삶은 감자와 절인 오이, 달걀 등에 마요네즈 프로방살 소스를 얹어 만들었다. 고급 음식이었어도 인기가 많아 요리에 무지하고 서투른 사람들까지 와서 재료를 마구 섞어 먹는 일이 허다했다. 손님들의 그런 요리에 대한 무례한 태도에 화가 난 루시앙은 메뉴의 모든 재료를 혼합해 마요네즈를 부어버려 요리를 내놓았다. 하지만 그 결과물이 원래의 것보다 반응이 더 성공적이었다. 루시앙이 공들여 개발한 첫 요리의 레시피는 그가 죽을 때까지 공개되지 않았으나, 그도 얻은 건 있다. 후에 루시앙이 만든 샐러드 이름에 본인의 성 '올리비에'가 붙어서 불리게 된 것이다.
루시앙 올리비에가 개발한 옛 레시피 대로 만든 샐러드(출처: dzen.ru)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에르미타주 레스토랑은 문을 닫았고 루시앙의 샐러드는 1930년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레스토랑 '모스크바'의 셰프 이반 이바노프는 루시앙의 제자였는데, 그는 스승의 샐러드를 소련 현실에 맞게 재구성하여 만들었다. 꿩고기나 가재는 부르주아의 산물이었으므로 닭고기 등으로 대체하여 레시피를 바꾸고 소스로는 마요네즈를 넣었다. 이를 '스톨리치니 샐러드'라고 부르게 되고, 역시나 인기가 좋았다.
닭고기가 든 스톨리치니 샐러드(출처: ohotamyasa.ru)
이후 1950~1960년대에는 이 샐러드에 고기 대신 사각의 소시지와 삶은 당근, 절인 오이, 완두콩 등을 넣어 먹기 시작했다. 소련 시절 당시 일부 재료는 구하기 쉽지 않았으므로 재료를 충당하려 주로 휴일에 샐러드를 만들게 되었다.그렇게 자연스레 올리비에는 휴일이나 새해 즐겨 먹는 요리로 정착했다.
나눠 먹기 좋은 축제 음식 올리비에(출처: imghub.ru)
결국 올리비에의 시작은 프랑스 셰프가 만들었지만, 한세기 반 동안 지속 레시피를 변화하면서 시대에 맞게 적응하며 살아 남아 현재 러시아의 대표 메뉴가 되었다. 지금도 러시아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이다.
이제는 대중적인 맛으로 다양한 버전의 올리비에를 모스크바를 포함한 러시아 어디서나 만날 수 있으니, 기꺼이 맛볼 수 있길 바란다.
+ 모스크바 라프 커피 РАФ +
모스크바 태생 먹거리로는 커피 '라프'도 빠질 수 없다.
부드러움이 일품인 모스크바 태생의 '라프' 커피(출처: michelbakery.ru)
1990년대 '라파엘'이라는 이름의 단골을 위한 모스크바 커피빈 바리스타의 특별 레시피로 만들어진 커피 '라프'는 우유가 들어있지 않은 극강의 부드러움을 자랑하는 커피이다.
러시아에서는 먹는 방법도 다양한데, 특별히 통으로 튀겨 먹는 것이 가장 맛있다. 가지런히 통에 꽂혀 있는 튀긴 코류시카는 손으로 집어 먹으면 그 고소함에 중독되고 만다. 굽거나 말려 먹기도 한다. 이처럼 코류시카는 러시아 사람, 특히 상트페테르부르크 사람들에게 고향의 맛처럼 참 귀한 향토 제철 음식이다.
튀겨 먹는 코류시카(출처: supercats-club.ru)
이러한 코류시카는 그냥 단순한 생선이 아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상징이다.
그 이유는 오랜 역사 속에 있다.
이 작은 고기는 18세기 초 네바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세워질 때 현지 주민들의 호평과 많은 사랑을 받았다. 아마도 코류시카가 이들의 일용할 양식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표트르 대제에게도 코류시카는 특별한 영혼의 음식이었다고 한다. 코류시카로 식사를 만들어 달라 자주 요청했던 황제는 1705년 이를 잡는 어부들을 지원하라는 칙령을, 1708년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역사상 최초 코류시카 축제를 개최하라는 칙령을 내렸다. 이 축제에서는 사람들 모두가 즐거워하고 노래를 부르며 다양한 형태의 코류시카 요리를 즐겼다고 한다.
은빛의 코류시카(출처: pofoto.club)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표트르 대제가 상트페테르부르크 설립 전 당시 이곳 물속에 떠있는 은빛 물고기 떼를 보면서 '여기 도시를 건설하면 사람들이 굶주리진 않겠구나' 생각한 것이 수도 건설 결정에 크게 작용했다고도 한다. 그만큼 중요한 물고기였다. 얼마나 중했으면 표트르가 '황제의 물고기'라 칭했을까?
코류시카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진 표트르 대제(출처: ok.ru)
코류시카는 혁명 후에도 많은 이들을 살린 물고기였다. 네바강과 핀란드만에서 잡은 코류시카는 굶주린 주민들의 배를 채워주었다. 레닌그라드 공방전 기간에도 마찬가지로 사람을 살린 양식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래서인지 상트페테르부르크 사람들은 유난히 그 애정이 깊어 '가장 좋아하는 요리'하면 코류시카를 손꼽는다.
코류시카 요리(출처: darminaopel.ru)
재미있게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코류시카에서는 신선한 오이 향기가 난다고 한다.
코류시카의 오이 같은 향은 물고기가 바다에서 네바강으로 들어가면서 생기게 되는데, 이는 마치 '상트페테르부르크산' 품질 보증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코류시카가 물론 극동이나 유럽 등지에서도 잡히지만, 오이 냄새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코류시카에서만 난다. 이곳의 코류시카는 알을 낳기 위해 이동하는 이른 봄 잡히기 시작하며, 주로 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 근처의 네바강에서 잡힌다.
오이 향이 나는 네바강 코류시카(출처: dzen.ru)
표트르 대제가 1708년 명했던 코류시카 축제 이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도시 설립 300주년을 맞이한 2003년부터 매년 5월 코류시카 축제를 열고 있다. 축제에서 주민들은 옛날 그 모습처럼 코류시카 의상에 노래와 시를 만들고, 생선 수프와 요리 등을 해서 먹는다.
코류시카 축제의 먹거리들(출처: onlinespb.ru)
코류시카 축제의 상징 마크와 축제 현장의 표트르 연출(출처: spb.air.ru)
아마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기 중에서 오이 냄새를 맡는다면, '코류시카를 잡는 봄이 왔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그런 봄날, 특별히 5월에, 꼭 오이향 나는 고소한 코류시카를 꼭 산지인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온몸으로 음미해 보고 오고 싶다.
+ 베프스트로가노프 Бефстроганов +
엄밀히 상트페테르부르크 태생은 아니지만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더 유명한 요리를 소개한다.
잘게 썬 소고기에 양파, 버섯에 크림 소스가 묻어 부드러운 베프스트로가노프!
'소고기'와 '스트로가노프'의 합성어이다.
잘게 썬 소고기 요리 베프스트로가노프(출처: lifehack365.ru)
스트로가노프는 오랜 귀족 가문으로, 16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우랄 지방의 가장 큰 지주였다. 18세기 이래 러시아 제국 백작 가문으로서 상트페테르부르크과 그 주변에 궁전과 영지가 있다.
가문 사람 중 알렉산드르 스트로가노프 백작(1795~1891)이 이 음식 탄생과 관련이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태생인 그는 19세기 러시아 제국 내무부 장관과 노보로시스크 총독을 지냈다. 퇴직 후 백작은 오데사에서 살았는데, 거기서 격식 있고 차려입은 사람이면 누구나 들어와 함께 식사할 수 있는 '열린 식탁'관습을 지켜갔다. 이때 제공되는 요리는 간편하면서 나눠 먹기 편해야 했고, 또 맛있어야 했다. 백작의 요리사가 이 조건에 맞게 러시아와 프랑스 요리의 조합으로 만들어냈는데, 그게 바로 베프스트로가노프다.
또 한편으로는, 노년이 된 스트로가노프 백작이 이가 빠져 음식 섭취가 힘들어지자,그의 프랑스 요리사가 그를 위해 고기를 잘게 썰어 부드럽게 만든 음식이 베프스트로가노프라는 설도 있다.
알렉산드르 스트로가노프 백작과 베프스트로가노프(출처: ru.wikipedia.org, ru.pinterest.com)
다양한 탄생설이 있지만 결론적으로 이는 알렉산드르 스트로가노프 백작에 의해 만들어진 요리이며, 프랑스와 러시아 요리 전통이 결합된 결과물임은 분명하다. 이후 베프스트로가노프 메뉴가 퍼져 많은 인기를 얻었고, 그 레시피도 변화하여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스트로가노프 가문의 이름이 붙은 음식이라 그런지,제국의 수도상트페테르부르크 태생인가 싶을 정도로 그곳에서 더 유명해졌다.
지금은 러시아 전역에서 부담없이 맛볼 수 있다.
이처럼 태생이 다른 음식들,
그 역사를 따라올라가 보면 당시 시대상을 알게되는 동시에오랜 시간 속에서도 잘 보존되고 현실에 맞게 적응된 음식의 모습에서 인간사도 느껴진다.
스토리가 있는 음식(출처: vkusnahka.ru)
모스크바에서 올리비에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코류시카를 먹으며,
각각 19세기와 17세기 러시아를 추억해볼 수 있길 바란다.
* 커버 사진 출처 : funnyart.club, profrybolov.ru, food-alexanderclub.ru, darminaopel.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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