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일은 줄어들 기미가 없었다.
팀 업무가 내 과업의 전부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개인 실적도 잘 챙겨야 하는데 그 중 하나가 '교육' 시간 채우기였다. 업무 공백 때문에 나는 오프라인 교육 대신 사이버 강의를 택했다. 하지만 이 또한 시간 투자가 필요한 일. 시간은 한정적인데 이걸 다 어떻게 하지?
그래, 아침 시간을 활용해 보자!
당시 집에서 회사까지 가는데 무려 한 시간 반가량이 걸렸다.
출근길 대중교통에 사람이 너무 많아 고생스러운게 싫기도 했고,
일찍 출근하면 업무 시간 전까지 시간이 충분하니 그때 사이버 강의를 들으면 좋겠다 싶었다.
이른 아침 들어선 사무실, 많은 팀원이 있을 때와 달리 다소 황량해도 고요한 분위기가 참 좋았다.
나는 8시도 안 된 시간에 이어폰 끼고 사이버 강의를 들었다. 하지만 곧 어르신 상사 한 분이 출근하신다.
헉! 살짝 당황했지만 아침 인사를 드리고 자리로 돌아와 강의를 계속 재생했다.
커피 타러 내 자리 뒤를 스윽 지나가던 상사는 모니터로 강의 화면을 보셨는지 나를 부르신다.
"아니, 서진영씨! 아침에 출근을 했으면 업무를 봐야지 뭐하고 있는 겁니까?"
사내 교육인 걸 뻔히 아시고도 업무 시간 전 나에게 '일부터 하라' 요구하신 상사님 훈수에 할 말을 잃었다.
'내가 정말 잘못한 건가?'
결국 그날 이후 일찍 출근하는 '괜한 짓'은 하지 않게 되었다.
서진영씨, 서진영씨!
팀 사람들은 수없이 나를 이렇게 부르며 찾았다.
사실 '~씨'는 회사 들어오고 가장 적응이 안 되는 호칭이었다. 학생 때는 쓸 일도 없었고 동기들끼리는 '언니, 오빠, 누구'라 했으니 말이다.
사전적 의미로 '씨'는 사람을 높이거나 대접하여 부르는 말인데, 대체로 동료나 아랫사람에게 쓴다고 돼있다.
하지만 나에겐 언제부턴가 '일을 시키기 위해 부르는 사무적 호칭'처럼 들렸다.
어차피 내가 팀에서 나이가 제일 어렸으니 그리 부르는게 맞았고, 아직은 어림도 없는 '서대리'보단 나았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성을 떼고 부르는 '진영씨' 호칭이 나는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왜였을까? 상사가 부르는 호칭으로 다른 사람들에게도 불리면 괜히 사무적으로 느껴져 싫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중에는 '씨'든 '님'이든 나를 부르는 것 자체가 공포가 되었다.
일을 주려고 부르는 것만 같아서.
아무튼 힘겨운 서무 업무는 매일 계속됐고,
상사들과의 업무 접촉은 불가피했다.
페이퍼 워크가 많은 회사 특성상 제일 많이 보는게 한글 파일(hwp) 아니면 엑셀 파일(xls).
관련 자료를 출력해 상사에게 가져가면 검정색, 붉은색 펜 첨삭과 함께 줄 맞춤, 들여쓰기 선이 그어진다. 수정하신 대로 다시 해가면 서류는 또 다르게 진화하고, 그렇게 문서 수정의 무한 반복이 이루어진다.
나 또한 문서를 그냥 대충 만들어 간 것도 아니고
윗분들이 강조하듯 기존 자료를 많이 참고해 간 건데, 상사들 넓은 뜻을 헤아리기엔 많이 부족했나 보다.
학생 때 나름 한 꼼꼼했던 나라도 '넘꼼이(너무 꼼꼼한 이)들' 앞에서는 '깨갱'하게 된다.
'차라리 직접 하시면 될 것을!'
수정본을 들고 돌아설 때마다 드는 생각이었지만,
그런 과정 덕분에 후에 도움 없이도 스스로 할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이리라.
그런데 생각해 보면,
사회 초년생 때 만난 많은 상사 분들 말씀은 주로
'나 때는 말이야', '시간 있으면 일을 해야지', '다 너를 위한 일이야', '회식도 업무인데 빠지면 되나' 등
그때는 몰랐는데 이제서야 되짚어 보니...
대부분 '꼰대'셨다.
당시 주변 구성원들이 대부분 어르신들이기도 했고,
거기에 동화되어 그런지, 사회생활이 처음이어서 그랬는지,
그냥 좀 갑갑하긴 해도 '원래 그런 분위기이고, 그렇게 해야 되는 건가 보다' 했다.
그래서 내가 초반부터 많이 위축되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나름대로는 밝고 흥 많은 아이였는데.
그리고 곧,
나는 입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Point3. 요령도 평화를 지키며 피우자!
솔직히 나는 회사 다니며 '요령' 피우는 사람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봤었다. 물론 성실하고 착실하게 모든 일에 임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지만, 세상 일이 어디 내 맘만 같겠는가? 지금 생각해 보니 그들의 요령은 '지치지 않고 오래 가기 위한' 나름의 생존 전략이었다. 단지 요령도 스마트하게 부려야 조직에서 욕은 적어도 덜 먹는다. 상사들 시대에서의 요령은 업무 태만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세대가 벌어질수록 서로에 대한 이해는 점점 멀어져만 간다. 그래도 어르신들 삶의 소중한 경험과 생각들을 최대한 존중하고, 그들로부터 배울 건 배우는 게 지금 세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에 폐가 되지 않는 선에서 어르신 눈 밖에 날 짓(?)을 해야 하는 상황이나 내가 도저히 견디기 힘든 상황이라면, 상사들 모르게, 영리하고 지혜롭게 평화 속에서 요령을 피울 것을 권한다. 사실 이른 아침의 사이버 강의는 상사 몰래 들어도 되는 일이었는데, 나는 아예 그 자체를 포기해 버린 게 안타깝다. 답답하고 분통 터져서 괜히 화병을 키우지 말자. 나도 사회에서 살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