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숙사 친구들이 초대하면 다음엔 우리가 초대하고, 그렇게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다보니 매일이 파티였다.
같은 층에는 살고 있는 일본 학생들은 우리보다 먼저 와있던 친구들이라 그런지
전형적인 일본 사람의 느낌은 덜한 것 같았다. 소식하지도 않았고, 깍쟁이 같지도 않았다.
이웃들과 잘 지낼 수 있을까 걱정이 될 때 즈음,
그들이 우리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왔다.
어느 날 수업에서 돌아왔는데, 방문에 뚫려있는 작은 우체통 구멍에 쪽지가 하나 걸려있었다.
저녁식사 초대 쪽지
저녁식사에 초대하겠단다. 환영식을 해주는 셈!
이 쪽지를 받고 얼마나 설렜는지 모른다. 평소 복도에서 만나면 인사만 하던 친구들과 친해질 기회였으니. 첫 파티는 참 신기하고도 즐거웠다.
"기숙사 복도에 책상, 탁자를 놓고 촛불도 켜고 음식을 하나둘씩 가져오기 시작했다. 일본 친구들이 참 준비도 많이했다~ 정말 맛있는 저녁식사를 하고 서로 러시아어, 한국어, 일본어로 대화했다."
- 2004. 3.13 나의 모스크바 교환학생 일기
우리와 일본 친구들이 사는 구역의 복도는 앞서 얘기한 것처럼 중간이 대형 문으로 막혀있었기 때문에 프라이빗한 공간처럼 되었다. 파티하기 그만인 거다.
일본 친구들과는 의사소통이 상대적으로 편했다. 잘 못알아들으면 한자를 써주거나 비슷한 발음을 해주면 됐고, 서로 어줍잖은 러시아어로 대화가 통했다. 오히려 영어는 입밖에 나오지도 않은 게 신기했다. 아시아 문화권의 영향이었으리라. 비록 나중에는 나의 러시아어 억양이 일본식으로 바뀌게 된 부작용은 있었지만.
일본 친구들의 메뉴(좌) 우리의 비빔밥(우)
그들의 요리 실력은 수준급이었다. 튀김에, 부침에, 스시에...
비주얼은 물론 맛까지 좋았으니 '일본에서 요리사를 하다가 왔나?' 의심될 정도였다.(거기다 미용실급으로 머리도 잘 자르니 못하는게 없었다)
그래서 우리가 일본 친구들 초대할 차례가 되면 늘 요리에 대한 부담이 있었다. 답가로 장만한 첫 음식이 가장 만만한 비빔밥! 비빔밥은 재료만 잘 준비해두면 각자 알아서 취향대로 밥에 섞어 양념과 함께 먹으면 되니 웬만해선 맛이 없을 순 없으니 말이다. 김치와 고추장이 효자였다.
그렇게 나날이 요리 실력도 업그레이드 해가며 서로의 친분은 깊어졌다.
밤마다 우리의 파티가 열렸던 널찍한 복도
그러던 어느 날...
귀여운 일본 이웃들과 서로 음식을 해서 나눠먹기로 한 5월의 저녁이었다.
룸메이트 언니와 나는 장을 보고 시간에 딱 맞춰 라볶이와 샌드위치를 황급히 준비했다. 요리 시간 지체로 일정이 빠듯해 우리는 제대로 치우지 못한 채 음식만 가지고 방을 나섰고,
친구들과 하하호호 즐거운 시간을 보냈을 거였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와 어지러진 것들을 하나둘씩 정리하는데,
방에서 생쥐가 재빨리 가구 아래로 들어가는 걸 봤다.
그때부터 공포는 시작됐다.
쥐가 방에 들어온 건 분명한데 그렇다고 찾기도, 잡기도 힘든 상황.
도움을 구하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라, 그저 외면하고 이 기나긴 밤을 보내는게 최선이었다.
그런데 눈을 감고 있으면 쥐가 무언가 갉아대는 소리가 났고,
그 소리가 더 공포스럽게 느껴져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며 잠을 청했다. 그래도 좀처럼 잠은 안 왔다.
갈수록 또렷해지는 소리.. 어둠속에서 청각은 더 열일하여 밤내내 너무 괴로웠다. 밤이 너무나 길었다.
"어제 쥐를 봐서 그만 잠을 설쳐버렸다. 그 부시럭거리는 소리에 어찌나 섬뜩하던지! 그래서 아침부터 언니랑 대청소를 했다. 바닥에 깔았던 이불들도 다 걷어내고, 침대 위치도 좀 바꿔보고, 구석구석 다 쓸었다. 청소하고 나니 말끔해져서 좋긴 한데 곳곳에서 쥐의 흔적을 발견하곤 놀랐다."
- 2004.5.5 나의 모스크바 교환학생 일기
아침이 밝자, 당장 쥐약을 사러갔다.
뭘 달라 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는데, 마침 상점 가판대에 보이는 매우 직관적인 그림(쥐와 해골이 그려있던 걸로 기억한다) 덕분에 살 수 있었다. 가격이 싸서 의심스러웠지만 그때는 그 방법뿐.
방 공용 공간 중간에 동그란 쥐약을 덩그러니 놓고, 등교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니 상황은 더 공포스러웠다.
생쥐가 쥐약을 일부 뜯어 먹은 흔적만 있을 뿐, 쥐의 사체나 다른 어떤 것도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뭐 금방 나타나는 건 아니겠지만, 방 어디서 죽어있는 건 아닐지, 발견하면 어떻게 치우나 그게 더 걱정스러웠다.
우리가 없거나 안 보는 사이에 동그랗게 생겼던 쥐약은 점점 작아져 그 형체를 잃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