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친구 방에 가면 항상 먹을 것이 있었고, 가지고 있는 재료로 뚝딱 음식을 만들어주기도 해서
우리들 사이에서는 참새 방앗간 같은 곳이었다.
어느 때나 풍성한 곳에다 손님놀이를 자주했기 때문일까?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왔는데, 그 일본 친구가 새하얘진 안색으로 말했다.
내 방에서 생쥐 2마리를 봤어....!!!!
쥐의 대담한 행보가 이어진 장소
식겁했다. 행여나 그 두 마리가 내 방으로도 올까봐 당장에 방을 청소하고 치우기 시작했다.
역시나 불안한 예감은 틀린적이 없다.
다 치우고 점심으로 흑빵을 먹으려 준비하는데, 눈앞에서 생쥐가 쌩~하고 지나갔다.
몇 달 전의 작은 생쥐와 비슷한 사이즈. 그때는 워낙 빨리 가서 제대로 생김새를 못봤었는데, 이번에는 과감한 생쥐의 행보에 눈까지 마주치고 말았다.
"냉장고 밑으로 들어가는 쥐를 정확히 봤다. 그리고선 나는 빵을 먹으며 방문과 냉장고만 주시했다. 한참 거기 있다가 다른 방, 화장실 쪽에 가더니 다시 냉장고 밑으로 와서는 밖으로 얼굴을 드밀었다 넣었다 우왕좌왕(이때 쥐가 서있는 여유만만한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다시 문 밑 틈으로 나가는 것까지 확인했다."
- 2004.10.15 나의 모스크바 교환학생 일기
다행히 내 방에는 식량이 모두 냉장고에 들어있어 먹을 것이 없다는 걸 알고 나간 모양이었다.
그날 오후 나의 일정은 생쥐 때문에 모두 망쳐버렸다.
대략 이렇게 생긴 쥐덫이었다. 내가 실제로 본 건 이보다는 훨씬 허름하고 허술한 것이었다. (출처: www.editor.ru)
가만 생각해 보니 몇 달 전 악몽이 떠올라서 이대로 두면 안 될 것 같았다.
도움을 받으려 기숙사 관리인 아줌마에게 가서 쥐가 나타났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다.
잠시 후 원시적인 해법이 돌아왔다.
곧 수위 아저씨를 통해 물건 하나를 전달받았는데,
정말 만화에서나 본 듯한 허름한 '쥐덫(мышеловка)'이었다.
작은 나무판에 먹이 놓는 곳과 쇠틀이 장착된 쥐덫 실물을 처음 영접했다. 하지만 그걸 쓰기에는 상상만으로도 너무 끔찍하고 잔인하게 느껴졌다. 쇠 스프링이 내 힘으로는 못잡아당길 만큼 너무 세서, 여기 걸릴 쥐와 그걸 치워야 할 상황은 생각하기도 싫었다.
결국 그냥 고이 모셔만 놨다.
정확히 이틀 후, 저녁에 쥐가 다시 출몰했다.
생쥐는 내 방을 두 번 왔다갔다 했다. 너무 놀란 나는 생쥐에게 대놓고 "나가! 나가라니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선 복도에 나가보니 친구들도 패닉에 빠져있었다. 마침 쥐를 나만 본게 아니었던 상황.
그때부터 기숙사 친구들과 복도에 모여 회의를 했다.
쥐 소탕작전을 개시하기 위해서였다.
"이제 쥐의 퇴치는 '우리 모두의 과제'로 남게 된 것이다."
- 2004.10.17~18 나의 모스크바 교환학생 일기
생쥐의 통로, 출입구 밑 틈을 수세미로 메꿔버렸다.
먼저 생쥐가 드나드는 통로가 되는, 문 아래 틈을 스폰지 수세미를 잘라 붙여 단단히 막아버렸다.
그리고는 내가 관리인 아줌마로부터 받은 쥐덫과 일본애들이 가지고 있는 바퀴벌레용 끈끈이를 먹이와 함께 복도에 설치했다.
다음 날 저녁,
복도에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어제 설치해 둔 끈끈이에 생쥐 한 마리가 들어가 끈끈이 틀 전체가 질질질 끌리며 움직이고 있었던 거다! 다행히도 끈끈이가 종이로 덮여있어 포획(?) 당한 쥐의 실제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물론 생쥐가 작아서 끈끈이에 붙은 거겠지만, 일본산 '바퀴벌레용' 끈끈이는 성능이 매우 우수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움직이는 끈끈이에 서로 놀라서 소리지르며 이걸 어떻게 처리할지 설왕설래하다가 시끄러워졌다.
결국 남학생 몇 명이 나서서 검은 비닐봉투에 넣고 묶어서 처리했다. 아마도 쓰레기통에 버려졌을 것이다.
내심 생쥐가 쥐덫이 아닌 끈끈이로 가주어서 고맙기도 했다. 쥐덫에 걸렸으면 비명 소리가 먼저 들렸을 터.
다행히 소탕작전 이후 쥐는 만나지 못했다.
내 방 출입구 밑 통로를 막아버린 것도 효과가 있었다.
단지, 우리 윗층에 사는 이웃이 쥐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는 소식이 이따금씩 들려왔다. 윗층으로 옮겨간 모양.
우리층 쥐를 잡아주는데 큰 도움을 준 이웃의 방에서 매일 쥐와 씨름전이란다. 잡아도 또 나오고 또 나온단다.
한창 쥐에 시달렸던 그 이웃이 했던말이 지금도 생각난다.
아, 밤마다 쥐가 온갖 곳을 긁어대는데 그 소리 때문에 미치겠어. 이렇게 괴롭고 고통스러워보니까, 러시아에서 문학작품 하나 써지겠구나 싶더라...!
조금은 끔찍하지만, 내가 들었던 전설적인(?) 이야기도 있다.
윗층 이웃의 룸메이트는 벌레만 봐도 도망가실 것 같을 정도로 점잖은 박사님이셨다.
그런데 한창 쥐가 날뛸 때 그분께서 나서서 생쥐를 냉장고 밑 코너로 몰아놓고 나오는 걸 때려잡았단다. 그리고 그걸 변.기.통.에 넣고 내려버렸다는...
러시아 기숙사 변기의 성능도 다시금 실감했다. 웬만해서는 모든 걸 소화해버리는 블랙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