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1-③ 손님놀이와 쥐의 상관관계

저녁마다 손님놀이 하다 마주친 생쥐

by 모험소녀

지금 생각해보면 교환학생 시절에서 가장 즐거웠던 기억은,

친구들과 맛있는 음식을 나눠먹으며 친목을 나누던 '작은 복도 파티'였다.


우리끼리는 이른 바, 손님(гость 고스찌) 놀이라고 했는데,

기숙사 친구들이 초대하면 다음엔 우리가 초대하고, 그렇게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다보니 매일이 파티였다.


같은 층에는 살고 있는 일본 학생들은 우리보다 먼저 와있던 친구들이라 그런지

전형적인 일본 사람의 느낌은 덜한 것 같았다. 소식하지도 않았고, 깍쟁이 같지도 않았다.


이웃들과 잘 지낼 수 있을까 걱정이 될 때 즈음,

그들이 우리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왔다.

어느 날 수업에서 돌아왔는데, 방문에 뚫려있는 작은 우체통 구멍에 쪽지가 하나 걸려있었다.

저녁식사 초대 쪽지

저녁식사에 초대하겠단다. 환영식을 해주는 셈!

이 쪽지를 받고 얼마나 설렜는지 모른다. 평소 복도에서 만나면 인사만 하던 친구들과 친해질 기회였으니. 첫 파티는 참 신기하고도 즐거웠다.


"기숙사 복도에 책상, 탁자를 놓고 촛불도 켜고 음식을 하나둘씩 가져오기 시작했다. 일본 친구들이 참 준비도 많이했다~ 정말 맛있는 저녁식사를 하고 서로 러시아어, 한국어, 일본어로 대화했다."

- 2004. 3.13 나의 모스크바 교환학생 일기


우리와 일본 친구들이 사는 구역의 복도는 앞서 얘기한 것처럼 중간이 대형 문으로 막혀있었기 때문에 프라이빗한 공간처럼 되었다. 파티하기 그만인 거다.


일본 친구들과는 의사소통이 상대적으로 편했다. 잘 못알아들으면 한자를 써주거나 비슷한 발음을 해주면 됐고, 서로 어줍잖은 러시아어로 대화가 통했다. 오히려 영어는 입밖에 나오지도 않은 게 신기했다. 아시아 문화권의 영향이었으리라. 비록 나중에는 나의 러시아어 억양이 일본식으로 바뀌게 된 부작용은 있었지만.


일본 친구들의 메뉴(좌) 우리의 비빔밥(우)

그들의 요리 실력은 수준급이었다. 튀김에, 부침에, 스시에...

비주얼은 물론 맛까지 좋았으니 '일본에서 요리사를 하다가 왔나?' 의심될 정도였다.(거기다 미용실급으로 머리도 잘 자르니 못하는게 없었다)

그래서 우리가 일본 친구들 초대할 차례가 되면 늘 요리에 대한 부담이 있었다. 답가로 장만한 첫 음식이 가장 만만한 비빔밥! 비빔밥은 재료만 잘 준비해두면 각자 알아서 취향대로 밥에 섞어 양념과 함께 먹으면 되니 웬만해선 맛이 없을 순 없으니 말이다. 김치와 고추장이 효자였다.

그렇게 나날이 요리 실력도 업그레이드 해가며 서로의 친분은 깊어졌다.

밤마다 우리의 파티가 열렸던 널찍한 복도

그러던 어느 날...

귀여운 일본 이웃들과 서로 음식을 해서 나눠먹기로 한 5월의 저녁이었다.

룸메이트 언니와 나는 장을 보고 시간에 딱 맞춰 라볶이와 샌드위치를 황급히 준비했다. 요리 시간 지체로 일정이 빠듯해 우리는 제대로 치우지 못한 채 음식만 가지고 방을 나섰고,

친구들과 하하호호 즐거운 시간을 보냈을 거였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와 어지러진 것들을 하나둘씩 정리하는데,


방에서 생쥐가 재빨리 가구 아래로 들어가는 걸 봤다.

그때부터 공포는 시작됐다.

쥐가 방에 들어온 건 분명한데 그렇다고 찾기도, 잡기도 힘든 상황.

도움을 구하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라, 그저 외면하고 이 기나긴 밤을 보내는게 최선이었다.


그런데 눈을 감고 있으면 쥐가 무언가 갉아대는 소리가 났고,

그 소리가 더 공포스럽게 느껴져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며 잠을 청했다. 그래도 좀처럼 잠은 안 왔다.

어린시절 봤던 <호두까기 인형> 만화에서 생쥐들이 무엇이든 다 갉아먹는 모습에 느꼈던 공포가 몰려왔다.

갈수록 또렷해지는 소리.. 어둠속에서 청각은 더 열일하여 밤내내 너무 괴로웠다. 밤이 너무나 길었다.

"어제 쥐를 봐서 그만 잠을 설쳐버렸다. 그 부시럭거리는 소리에 어찌나 섬뜩하던지! 그래서 아침부터 언니랑 대청소를 했다. 바닥에 깔았던 이불들도 다 걷어내고, 침대 위치도 좀 바꿔보고, 구석구석 다 쓸었다. 청소하고 나니 말끔해져서 좋긴 한데 곳곳에서 쥐의 흔적을 발견하곤 놀랐다."

- 2004.5.5 나의 모스크바 교환학생 일기


아침이 밝자, 당장 쥐약을 사러갔다.

뭘 달라 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는데, 마침 상점 가판대에 보이는 매우 직관적인 그림(쥐와 해골이 그려있던 걸로 기억한다) 덕분에 살 수 있었다. 가격이 싸서 의심스러웠지만 그때는 그 방법뿐.

방 공용 공간 중간에 동그란 쥐약을 덩그러니 놓고, 등교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니 상황은 더 공포스러웠다.


생쥐가 쥐약을 일부 뜯어 먹은 흔적만 있을 뿐, 쥐의 사체나 다른 어떤 것도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뭐 금방 나타나는 건 아니겠지만, 방 어디서 죽어있는 건 아닐지, 발견하면 어떻게 치우나 그게 더 걱정스러웠다.

우리가 없거나 안 보는 사이에 동그랗게 생겼던 쥐약은 점점 작아져 그 형체를 잃어가고 있었다.

이거, 혹시 그냥 생쥐 먹이인가?


그 이후에 음식이나 먹거리는 모두 냉장고에 쑤셔넣어 바깥에 일절 내놓지 않았고,

그래서 먹이가 없어서인지, 약발이 받아서인지, 다행히도 생쥐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몇 달 후 나의 이웃이 초췌한 모습으로 '방에서 생쥐를 봤다'고 말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 다음 '생쥐 소탕작전' 이야기에서 이어집니다 -

우리가 모르는 사이 생쥐는 문턱을 들락달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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