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브런치북
러시아. 동토 생활의 기록
20화
동토 생활이 나에게 내어준 길
러시아는 여전히 나에게 너무나 좋은 친구
by
모험소녀
May 7. 2021
10여 년 전,
러시아에 있을 때만 해도 한국에서 잘 나가는 친구들 소식을 들을 때면
해외 시골 구석에 박혀있는 내가 너무 도태된 것만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빨리 나도 한국으로 돌아가 그들과 어울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에 화도 났었다.
한국에 왔을 때 이 사진처럼 눈앞이 뿌옇기만 했다.
하지만 정작 한국으로 돌아왔더니,
너무나 바쁘고, 빠르고, 사람을 돌아보지도 않는 폭풍 같은 환경을 만나,
나는 완전 지쳐서 넉다운되고 말았다.
사실은 좀, 실망했다.
러시아에 있던 많은 이들이 한국에 돌아가면 연락이 뜸해지는 이유를 알게 됐다.
한국에서 치여 살게 되면서 언제부턴가 나는 다시 러시아를 그리워하게 됐다.
러시아에 있을 땐 비교적 시간도 여유롭고 사람들 시선도 덜 의식했는데...
다시 돌아갈 방법을 이리저리 찾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역향수병이 생긴 거다.
고생물 먹기만 했던 옛 러시아 생활에 대한 기억이 모두 미화되기라도 한 거였을까.
아쉽게도
2011년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난 것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동토 생활의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러시아 '여행의 기록'만 남게 되었을 뿐이다.
이제는 삶의 터전이 아닌, 여행지로 떠나게 된 러시아는
또 다른 선물이 되어 나에게로 돌아왔다.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은 모두 나를 환대하였고,
삶에 위축돼 잘 다니지 않았던 도시 구석구석도 색다른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업무에 대한 의무감이 없어지니 러시아의 모든 것이 내 마음과 눈으로 너그럽게 들어왔다.
더 이상 이곳에서 좀 편하게 살게 해달라고 애써 떼쓰지 않아도 되며,
당장 해결해야 할 체류를 위한 행정 서류 문제로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그곳에서 잠시 머물다 가는 이방인이니 말이다.
물론 여행작가를 하게 된 이후에는
작은 것 하나하나가 기록의 대상이 되어버려 온전히 즐길 여유는 조금 사라졌지만,
옛 동토 생활을 기반으로 작은 것 하나하나 놓치지 않는 눈을 가질 수 있게 됐다.
남들은 그냥 지나친 것들이 나에게는 사소한 기억으로 남아, 애써 옛 기억 더듬어 발굴해둔 것들이
새내기 여행작가의 소재가 되었다.
길가에서 먹었던 작은 군것질거리, 어떤 장소에서 보았던 조그만 물건,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던 러시아에서 당연한 현상들,
이런 것들을 이야기로 풀어내는 의외의 세심함이 나에게 있었던 거다.
그렇게 동토 생활의 기록들은 나에게
소소한 재미와, 사유할 수 있는 환경과,
지금의 감사함을 돌이킬 수 있는 마음까지 허락했다.
덕분에 지금의 나도 있다.
그렇다고
여행 기록으로만 끝난 게 아니다. 쓸거리들이 쌓여 간다.
아직 러시아와 함께 걸어갈 길이 멀고도 험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동행할 수 있는 건,
러시아는 여전히 너무나 좋은 나의 오랜 친구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가야할 그 먼 길,
이제 좀 기대하고 걸어가도 될까.
머나먼 길
★ 게재한 모든 사진들의 저작권은 저자에게 있습니다:) Copyright by 모험소녀 ★
keyword
여행
러시아
기록
Brunch Book
러시아. 동토 생활의 기록
16
PART2-⑥ 바이칼, 너무 가고 싶어서
17
PART2-⑦ 나를 웃고 울린 현지직원
18
PART2-⑧ 애물단지 차와의 사투
19
PART2-⑨ 겨울의 일상에 녹아들다
20
동토 생활이 나에게 내어준 길
러시아. 동토 생활의 기록
brunch book
전체 목차 보기 (총 20화)
8
댓글
2
댓글
2
댓글 더보기
브런치에 로그인하고 댓글을 입력해보세요!
모험소녀
여행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출간작가
이상한 러시아
저자
러시아어를 전공한 서진영 작가입니다. 러시아 관련 콘텐츠를 만들고 진솔한 인생 이야기를 합니다.
팔로워
254
제안하기
팔로우
이전 19화
PART2-⑨ 겨울의 일상에 녹아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