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와 비트코인
"비트코인? 그 전자화폐 같은 거?"
"하하 전자화폐랑은 결이 좀 다르지. 블록체인이라는 전 세계적인 네트워크가 보증하는 돈의 인터넷이라고 할 수 있지"
"돈의 인터넷? 어떤 의미지?"
"인터넷은 정보를 주고받는 네트워크라고 정의할 수 있지. 비트코인은 돈을 주고받는 네트워크라고 보면 돼."
"돈을 주고받는 네트워크는 인터넷 뱅킹으로 지금도 얼마든지 가능한 거 아닌가?"
"가능해 보이는 거지 실제로는 아니야. 은행에 있는 돈은 언제든지 정부나 은행의 통제를 받을 수 있어. 실제로 유동성위기를 겪는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에서는 은행에 있는 자기 돈을 마음대로 쓸 수 없거나 강제로 갖고 있던 돈이 평가절하되는 경우가 있어. 위기 상황에서 어느 나라에나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지. 은행 시스템도 국가별로 단절되어 있어서 다른 나라로 송금하려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비용도 비싸."
"그럼 비트코인은 그렇지 않다는 거네?"
"그렇지 비트코인은 온전히 본인이 컨트롤 가능해. 마음만 먹으면 정부나 은행의 통제를 벗어날 수 있어. 국경, 국적에도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보낼 수 있지. 은행 운영 시간도 필요 없고"
"그런 시스템이 어떻게 가능하지? 그리고 누가 운영해? 안전한가?"
"전 세계 컴퓨터를 연결한 블록체인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지. 그리고 어떤 운영 주체가 있는 게 아니야. 인터넷과 마찬가지지. 어느 특정한 운영 주체가 없기 때문에 안전하지.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고 검증하는 시스템이니까 말이야."
알듯 모를 듯 어렵다. 그래도 전 차장이 얘기하니 뭔가 믿음이 간다. 전 차장이 추천한 퀀트투자로 이렇게 돈을 벌고 있는데, 비트코인도 당연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신뢰감이 생긴다.
마침 이번주 동호회 모임에서 전 차장의 비트코인 투자법에 대한 발표를 들을 수 있었다. 현재의 비트코인은 마치 1997년의 인터넷과 비슷한 상황이라는 것이 핵심이었다. 당시 초기 인터넷처럼 비트코인도 아직 초기라는 것. 과거로 돌아가 1997년의 인터넷(기업)에 투자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 보면, 누구나 전재산을 투자할 거라는 논리다. 지금 비트코인이 바로 그 1997년의 인터넷과 마찬가지로 폭발적인 성장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평소에도 전 차장이 여러 주제로 발표를 했지만 이번만큼 열정적이고 확신에 찬 적은 없었다. 발표가 끝난 후 참석한 사람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뒤풀이 자리에서 고 부장님도 이렇게 말한다.
"나도 꽤 보수적인 사람이라서 이런 최첨단 분야의 투자는 항상 망설이게 되더라고. 그래서 좋은 기회를 놓친 적도 많고 말이지. 그런데 비트코인만큼은 그런 실수를 하면 나중에 정말 억울할 거 같아. 작은 비중이라도 자산을 분산하는 측면에서 좋은 투자처라고 봐. 요즘 같은 IT 시대에는 오히려 금보다 더 좋은 헤징 수단이 되지 않을까 싶어. 비트코인은 디지털 금이라는데 나도 어느 정도 동의해."
투자에는 매우 보수적인 고 부장님까지 저런 견해를 갖고 계시다니 놀랍다. 비트코인이 점점 주요 투자 자산이 되고 있다는 게 눈에 보인다. 나도 더 이상 비트코인 투자를 미루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강해진다.
뒤풀이가 끝나고 돌아가는 지하철에서 자주 들어가던 가치투자 카페의 인기글을 살펴본다. 인기 상위 글 중 하나에 '어쩌면 세계 최고의 제약사가 될지도 모르는 강소기업 젠엑스"라는 제목을 눌렀다. 세계 최대 바이오 기업에서 신제품 개발 담당이사를 지낸 분이 3년 전 한국에서 만든 바이오 벤처란다. 대부분의 암에 대응할 수 있는 주사제가 핵심 개발 제품이고 각국 유수의 제약사들과 제휴를 맺고 투자까지 받아 세계적으로도 주목받고 있는 스타기업이라는 소개다. 현재 임상 1상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고 2상에 들어가 있는데, 중간 결과가 세계적인 과학 잡지에서 표지를 장식할 정도로 성공적이라고 한다. 더 자세한 내용은 링크를 참고하란다.
흥미가 생겨 링크를 누르니 젠투모(젠엑스 투자자 모임)라는 카페로 연결된다. 회원 수 1천여 명 정도 되는 소형카페이지만 잠깐 살펴봐도 꽤 알차게 운영 중인 느낌이다. 바이오 전문 투자자들이 굉장히 상세하고 수준 높은 분석글을 꾸준히 올리고 있다. 작은 카페지만 충성도 높은 회원들이 모여 있어 분위기가 좋아 보인다. 찬찬히 분석글을 몇 개 읽어보니 전망이 굉장히 좋다. 보통 바이오 기업들이 한 가지 질환에 특화된 약을 개발하지만, 젠엑스의 특허 물질은 인간이 걸리는 대부분의 암에 대응할 수 있는 약으로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라고 한다. 해외에서도 암을 정복할 수 있는 꿈의 약물로 관심이 높다고 한다.
작년에 상장한 이후로도 꾸준히 상승해서 이미 3배 이상 올랐다. 최근에도 상승세가 지속 중이다. 이후 일주일 정도 틈만 나면 젠투모 카페에 올라온 대부분의 글을 읽었다. 카페 회원 중에 슈퍼개미이자 유튜버로도 유명한 '알파정'이라는 사람도 20억 정도를 이 종목에 투자 중이라고 공개해서 3개월 전에 상한가를 친 일도 있었다. 볼수록 매력적인 종목이다. 아무래도 여기에 최대한 빨리 투자를 해야겠는데 현금이 없다.
일생일대의 기회일 수도 있는데 한 번 과감해질 필요가 있다. 주식 담보 대출과 직장인 대출을 더해서 3천만 원을 만들었다. 젠엑스와 비트코인에 절반씩 나눠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한 달 정도 충분한 기간을 두고 천천히 나눠하기로 결정했는데, 둘 모두 며칠 사이에 빠르게 오른다. 한 달을 기다렸다간 훨씬 비싸게 사야 할 것 같아서 1주일 만에 모두 매수해 버렸다. 이제 총 투자 금액이 8천만 원을 넘어섰다. 작은 출렁임에도 월급만큼의 금액이 왔다 갔다 할 만큼이다. 살짝 떨린다. 그래도 지금까지 많이 공부하고 고민한 만큼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기대한다.
3개월 후, 가치/퀀트 병행 투자 포트폴리오는 그저 평범한 수준의 수익률을 보이고 있다. 젠엑스와 비트코인은 경이롭다. 젠엑스는 매달 10% 이상씩 올라서 거의 30% 수익, 비트코인은 50% 수익이다. 총 투자금액이 1억을 넘어섰다. 투자액 1억 달성 기념으로 고 부장님, 전 차장을 호프집에서 만나 한턱 쏘기로 했다.
"윤 차장, 투자 경력 3년도 안돼서 벌써 1억을 넘겼다니 대단한데. 정말 축하해. 그런데 레버리지(대출)는 최대한 빨리 정리하라고. 투자는 안전한 게 제일이야."
고 부장님이 축하와 함께 조언을 건넨다. 축하만 기분 좋게 받고 이 조언을 너무 가볍게 흘려 들었다.
이후 한 달간 도 젠엑스와 비트코인은 신고점을 연일 경신중이었다. 젠엑스 2상 중간발표가 있던 날 아침, 띠링.
- 젠엑스 하한가
중간발표에서 심각한 오류가 발생되어 연구를 잠정 연기한다는 뉴스가 나왔다. 다음 날, 그다음 날도 하한가. 3일 연속 하한가다. 4일째가 돼서야 겨우 팔 수 있었다. 젠엑스 투자금액이 거의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다음 날에는 비트코인 거래소의 알람이 울린다. 비트코인이 급락 중이다. 마이너스 15%. 미국의 2위 거래소에 갑자기 유동성 문제가 생겼다. 한 마디로 고객에게 줄 돈이 없어서 인출을 정지했다는 뉴스다. 일주일 만에 80%가 하락했다. 더 떨어질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급히 팔아치웠다.
게다가 미국 연준이 금리를 대폭 인상한다는 소식이 연일 뉴스를 장식하며 주식 시장이 차갑게 식었다. 그동안 꾸준히 상승하던 보유종목들이 모두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불과 2주 만에 1억을 넘었던 잔고가 대출을 갚고 계속된 손실이 싸이고 나니 4천만 원 밑으로 쪼그라들었다. 다시 예전의 악몽이 반복되는 모양새다.
12편에서 계속...
※ 이 글은 저의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픽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