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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월의거북 Apr 22. 2017

단순한 게 답일 수 있어

굶어 죽을 것에 대해 걱정하는 나에게, 의외의 해답

우리가 만나기로 한 곳은 노량진이었다. 전에 한두 번 와 본 적이 있었는데, 저렴하고 맛있는 먹거리들이 많다는 것과, 작은 카페들이 많은 골목골목들이 이어지는 거리가 있다는 것이 치명적인 매력이었던 셈.

요즘은 어딜 가나 복잡하고 세련되고 소비주의적이다.  안락함이라던가 느림의 정서를 찾기가 힘들다. 
화려하고 편리하고 독특한 것들이 수두룩하게 생겨나고 거리에서 그런 것들을 구경하노라면 정신이 어지럽다. 
카페만 해도, 단지 커피만 마시는 게 아닌 휘양 찬란한 볼거리들이 있는 카페가 많아지고 있다. 
바닥에 모래가 깔려 있다던가, 커다랗고 신기한 잔에 음료를 담아준다던가, 하얗고 반듯한 미술관처럼 생겨서 커다란 주사위 같은 의자들만 듬성듬성 놓여 있는 지나치게 미니멀하고 번쩍이지만 정작 오래 앉아 진득이 대화를 나누기엔 불편한. 

      우리에게 필요했던 것은 대화였는데.

머물고 대화하고 생각할 수 있는 곳. 나는 그런 곳이 좋다. 
세련됨과는 거리가 먼 까닭에, 다소 촌스러운 까닭에. 나는 번화가를 꺼려한다. 

친구와 만나서 어떤 책 한 권을 주제로 대화하기로 했었다.
친구가 읽고 있는 책이 있는데, 그 책이 던지는 질문들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고
그 생각들을 토대로 30일의 목표를 세워서 같이 실천해보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낭비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일상의 템포가 늘어지고 있던 나로서는 
반가운 제안이었고, 재밌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친구에게는 두어 살 어린 여동생이 있다. 내가 중학생 때 알게 된 후로 꾸준히 소식을 전해 듣고 있는 그 여동생은, 긍정적이고 밝고 붙임성 좋은 성격을 자랑한다. 단순하고 솔직하고 사랑이 넘치는 그녀는, 나와 내 친구가 보기엔 늘 연구대상이다. 어떻게 저렇게 해맑을 수 있을까. 어떻게 저렇게 솔직하고 단순할 수 있을까. 대체 어느 별에서 온 걸까. 그런데 그 동생 입장에서는 우리가 연구대상일 수도 있겠다.
마침 친구가 여동생 얘기를 꺼냈다. 
            -오늘 너 만나러 간다고 했더니, 만나서 뭐 할 거냐고 묻더라
          -그래서?
          -책 읽고 느낀 거 얘기하고 같이 질문 뽑아서 생각해보고 플랜 만들 거라고 했지
          -그랬더니?

친구가 웃음이 터지며 하는 말. 여동생이 말하길-


왜 생각을 만들어서 해?


-했단다. 정말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게.. 굳이 생각을 만들어서 할 필요가... 그러네. 맞는 말이네.
너무 그녀 다운 대답이라 나도 웃음이 터졌다.

        맞아. 우리 너무 복잡하게 살고 있는 걸지도 몰라. 
         그래서 괜히 심각하고 머리 아픈 걸 지도 몰라. 



그래도 꿋꿋이 만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책의 일부분을 함께 읽고 각자 찾은 답을 나눴다. 책에서 뽑은 질문 중에 하나는 '내가 성취를 위해 나아가는 데 있어서 걸림돌이 되는, 나의 근원적 두려움은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나의 두려움? 글쎄. 나는 실패할까 봐 두려워. 이게 내 길인 줄 알고 열심히 달려갔는데
          결국 아무도 나를 필요치 않고 나는 돈을 못 벌게 될까 봐. 돈을 못 벌게 되고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할까 봐. 결국 혼자가 되고 결국 굶어 죽을까 봐. 



그래, 난 굶어 죽을까 봐 두려워 


나는 어려서 가난했다. 단칸방에 엄마와 언니와 나, 세 식구가 살며 컵라면 하나를 나눠 먹기도 했다. 월세가 밀렸고 집주인이 매일 집에 찾아왔었다. 어려운 상황이었다. 철없던 어린 날엔 그게 어떤 상황인지 몰랐다. 그러나 어른이 되고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그때의 기억은 내게 두려움으로 남았다. 내가 재정적으로 식구들을 책임지지 못하게 되면 어쩌지? 지켜주지 못하면 어쩌지? 무능력한 사람이 되어서 먹을 게 없어지면 어쩌지? 그런 두려움이 내 안 깊은 곳에 단단히 자리를 잡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무언가에 용기 있게 도전하기에 앞서, 아니야. 망할지도 몰라. 라며 주저하고, 내가 원하는 일과는 거리가 멀더라도 좀 더 안정적이고 미래가 보장되는 일로 마음이 기우는 것이다.

나와 다섯 살 차이가 나는 아는 동생이 최근에 미국을 다녀왔다.
주일에 예배 전에 시간이 남아 그 동생과 얘기를 나누던 중, 이런 내 두려움에 대해 얘기했다. 
              난 굶어 죽을까 봐 두려운 것 같아
그러자 그 동생이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언니, 어떤 기사에서 봤는데 지금은 풍요의 시대래요. 
              현실적으로 아사는 불가능해요.

언니가 그럴 리 없어요, 괜찮아요 언니 능력 있잖아요, 뭐라도 해서 먹고 살 거예요, 그런 말을 듣겠거니 했는데, 단호하게도 내 두려움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단다. 
그러네. 단순했다. 풍요의 시대. 굶어 죽는 사람보다 자살자들의 수가 많은 요즘 세상인 것이다. 물론 굶어 죽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동생의 말은, 맨홀에 빠져 죽을 확률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 맨홀에 빠져 죽을까 봐 밖에 나갈 수가 없어'하는 것은 불필요한 걱정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는 것과 같았다. 평소 직설적이고 통통 튀는 이 동생의 단순한, 그러나 당연한 대답이 의외의 열쇠가 되어준 것이다. 

때론 단순한 게 답일 수 있고, 단순한 게 비범함일 수 있다. 




(블로그에 올린 글 http://blog.naver.com/gamram_lee/2209514044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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