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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월의거북 Jul 03. 2017

백수 6개월 차: 부끄러운 나 마주하기

스스로 초라해지지 말기


벌써 여름이다. 시간이 참 빨리 간다.

스무 살 즈음, 서른 살쯤 되면 실력을 인정받는 일을 하며 안정적으로 내 삶을 꾸려가고 있을 거라 대책 없이 믿었지만 현실은 그와 달랐던 것처럼,

몇 개월 쉬면서 진정한 자아 찾기를 성공리에 마치고, 만족감 있는 일을 찾아 이제까지와는 다른 인생을 살아가리라 다짐했지만, 결국 모아 놓았던 돈이 바닥을 드러내도록 아직 나는 머뭇거리고 있고, 현실의 칼바람에 몸을 움츠리고 어디로도 나아가고 있지 못하다.


백수 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는 가슴이 떨리고 일상이 행복하게 느껴졌다. 

'그래, 달라질 수 있다. 더 이상 돈의 노예로 살지 말자. 느리지만 천천히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가보자.'


그러나 수중에 돈이 떨어지면서 불안감이 증폭된다. 그리고 다음 달 생활비를 어떻게 할지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생각난 것이 얼마 전에 어느 잡지의 수기 공모에서 내 글이 당선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공모 결과를 뒤늦게 확인하는 바람에, 원고 마감일을 놓쳤고 결국 내 원고는 실리지 못했다. 발표 날짜를 잊고 있었고, 이메일도 잘 확인하지 않았던 내 잘못이었다. 

후에 잡지 담당자와 메일을 주고받으면서, 담당자가 원고는 실리지 못했지만 공모전 상품은 모두 보내주겠다고, 계좌번호와 핸드폰 번호 등의 정보를 요청해서 메일로 보낸 적이 있었다. 

공모전 상품은 원고료와 잡기 정기구독권이었다. 그게 4주 전이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당연히 원고를 못 싣었으니 원고료는 못 받게 됐다고 생각하며 아쉬워했다.


그런데, 당장 통장 잔고가 간당간당해지고 생활비에 대한 불안이 엄습해지자 그 원고료가 더욱 아쉬워졌다. 

그리고 그때 담당자가 내 계좌번호를 요청했던 것과, 상품은 모두 착오 없이 보내주겠다고 말한 것이 부각되어 떠올랐다.

'그럼 원고료도, 그냥 공모전 당선 상금으로 보내주는 건가?'

'그래, 계좌번호도 받았잖아, 그럼 원고료도 주는 거 아냐?' 


약간 기대감에 부풀어서, 담당자에게 메일을 보냈다. 원고료랑 상품을 언제 받아볼 수 있느냐고. 

결과적으로 원고료는 원고를 싣지 않았기 때문에 지급되지 않고, 계좌번호는 혹시나 해서 받아 놓은 것이고, 다른 상품은 착오 없이 보내주겠다는 피드백을 들었다. 


쪽팔렸다.


경제적으로 상황이 안 좋아지자 당선되었다는 성취감보다는 당장의 돈 몇 푼이 더 중요했다.

책에 싣지도 못한 글에 대한 원고료를 기대하던 내 모습을 보며,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싶다던 나의 바람이 우스워졌다. 


더욱 내 기분이 참담했던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스스로가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돈이 없으면 삶이 궁핍해질 수 있다. 

그러나 스스로 초라해지기를 선택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정말, 이 시간이 아무것도 얻지 못한 낭비되는 시간으로 여겨지게 된다. 

나는 6개월간, 나름 많은 시도를 했고, 무엇이 나를 불행하게 했는지 적극적으로 탐색했고, 여러 기회에 도전하기도 했고, 넘어지기도 여러 번, 무너지기도 여러 번, 그러나 현실이 던지는 불안감을 직면하며 싸우고 또 싸우며 꼼지락꼼지락 그림을 그려가고 있다. 


이 시간들을 위해 값을 치른 것이다. 내가 선택한 것들이다. 


돈은 없을 수 있다. 그래도 된다. 정직하게, 벌면 된다. 그러나 

불안에 잠식당해 스스로를 초라하게 만들지 말자. 

대신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당차게 해결해 나가자.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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