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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월의거북 Dec 09. 2017

사람들이 카페를 찾는 아주 다양한 이유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카페를 찾는다. 누군가와 대화하기 위해, 공적인 공간과 차 한 잔이 필요해서, 간단히 허기를 달래기 위해, 또는 하루를 시작하거나 마치기 위한 통과의례로, 적당히 시끄럽고 적당히 아늑한작업공간이 필요해서, 또는 정말 순수하게 커피가 좋아서. 그 이유는 참 다양할 것이다.

오늘 나는 피난처가 필요해서 카페에 왔다. 글을 쓰는 지금 시간은 금요일 저녁 7시 반. 왜 나는 혼자 카페에 앉아 크로크무슈와 라떼를 먹게 된 걸까. 오늘 저녁 내게는 계획된 일들이 있었다. 퇴근 후 종로에 있는 금강제화 수선소에 단화 수선을 맡긴 뒤, 얼마 전에 갔다가 흠뻑 마음에 들어버린 종로 서점에 다시 가서 '중독사회', '사랑의 다섯가지 언어' 등 현재 흥미가 있는 책들을 천천히 훑어 보고, 서점 내부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주문한 뒤 다음 달에 제작할 카트뉴스에 대한 아이디어 스케치를 하며, 한 주 동안도 참 고생했다 잘 했다, 스스로를 격려하며 보람차게 한 주를 마무리하는 것. 

 그러나 퇴근 후 회사를 나오자마자 계획이 틀어졌다. 종로에 있는 금강제화 수선소의 위치를 메모해 두지 않았던 것이 문제의 시발점이었다. 전철역으로 걸어가는 동안 핸드폰으로 이렇게 저렇게 검색어를 넣어 수선소의 위치를 다시 찾아보려 했지만 노트북으로 검색했을 땐 찾을 수 있던 정보가, 핸드폰으로는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굳이 말하자면 디지털에 약한 편인데, 핸드폰에 있는 메모장 어플을 쓰는 것도 번거롭고 복잡해서, 포스트잇에 메모를 한 뒤 핸드폰에 붙여놓고 다닐 정도로, 기계로 뭔가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뿐더러 소질도 없는 편이다. 특히 엄지손가락을 효율적으로 빠르게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핸드폰으로 뭔가 복잡한 일을 하는 것을 싫어한다! 수선소 위치를 찾는게 복잡한 일이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지만.

여기 저기 전화를 걸어 위치를 찾아볼까 하다가 번거로울 것 같아서 쿨하게 포기하고 그냥 전에 한 번 가본 적이 있는 명동 수선점을 가기로 결정했다. 종로서점까지 다시 전철을 타고 이동해야 하는 것이 번거롭겠지만 그래도 위치는 정확히 알고 있으니 그편이 안전할 거라고 생각했다. 회사에서 명동역까지는 걸어서 20분 거리였다. 명동이 워낙 사람이 많고 복잡한 곳인지라 마음의 각오는 하고 갔지만 역시나 사람이 많았고, 소란스러운 거리를 꾸역꾸역 헤치고 도착한 수선소에서는 내 단화를 보고 아직 굽을 갈 때가 아니라는 진단을 내렸다. 굽을 갈 정도로 굽이 닳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도로 단화를 가지고 수선소를 나왔다. 굽이 많이 닳지도 않았는데 왜 걸을 때마다 또각이는 소리가 크게 나는 걸까. 요 며칠간 그게 무척 신경에 거슬렸다. 그런데 원래 그런 신발인가보다. 좀 더 열심히 신고 다녀서 얼른 굽을 바짝 닳게 해서 푹신한 굽으로 갈아버려야 할까.

사람 많고 시끌벅적한 명동 길을 뜻하지 않게 누비고 다니다보니 어느새 피로감이 몰려왔다. 중국어로 호객 행위 하는 소리, 수없이 늘어서 있는 길거리 좌판들과 그 주위로 모여 서 있는 사람들, 통행에 방해되는 장애물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이 복잡하고 소란스러운 거리는 빠르게 내 에너지를 빼앗아 갔고 그럴 수록 빨리 안전한 내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저녁 7시. 명동역에서 전철을 기다리는 인파가 상당했고, 편하게 집에 가긴 글렀다는 상당히 정확한 판단이 이어졌다. 얼떨결에 사람들에게 휩쓸리듯이 전철을 올라타고 한 정거장을 지나 충무로역. 열차가 서서히 속도를 줄여가자 열차 밖에 줄지어 서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열차가 멈추면 저 무리가 모두 이 빡빡한 내부로 밀려들어오겠지! 공포감에 휩싸여 열차 문이 열리자마자 생각할 틈도 없이 열차 안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우르르 열차 안으로 이어지는 사람 행렬을 멍하니 쳐다보며, 금요일 저녁은 위험하구나, 생각했다. 

충무로역에는 대한극장이 있다. 영화관에서 혼자 조용히 영화나 한 편 보고 느즈막히 한적해질 때 쯤 다시 전철을 타고 집에 갈까 싶어 상영시간표를 확인해 보았지만 한 두 시간 후에 시작하는 영화가 대부분이라 무척 애매했다. 게다가 대한극장은 평소엔 대체로 한적한 편인데, 무슨 이벤트를 하는지 줄 지어 뭔가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붐볐다. 이곳도 안전하지는 못하다는 빠른 판단 후에, 영화관 밖으로 나와 조금 걸었다. 다시 전철이나 버스를 탈 엄두는 나지 않았고, 딱히 갈 곳은 없으니 마음이 불안해졌다. 그리고 곧 영화관과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 카페를 발견했고 내부가 협소해 보여서 그냥 지나치려다가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이 잔뜩 그려져 있는 입간판을 보고는 다시 되돌아와 크로크무슈와 라떼를 주문하기로 마음 먹게 된 것이다. 허기가 졌다. 제일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이 글을 쓰면서도 열심히 크로크무슈를 썰어 입에 넣고 부지런히 라떼를 홀짝인다. 적당히 어둑하며 따뜻한 색감의 조명 속에 파묻혀 있으니 서서히 안정감이 회복되었다.

지금 시간은 7시 50분. 크로크무슈 접시는 깨끗히 비워버린 상태. 남은 라떼를 마시며 책을 좀 읽고 카드뉴스를 위한 아이디어 스케치를 하다보면 거리도 점차 한적해질 것이다. 그때 집에 가야지. 

나는 혼자 있어도 괜찮은 사람이고 싶은데, 북적이는 거리나 소란스러운 장소에서는 그게 잘 안 된다. 무섭고 불안하기 때문이다. 이럴 땐 든든하게 내 손을 잡고 걸어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사람 많은 거리쯤, 사람이 백 명 쯤, 천 명 쯤 쏟아진다고 한들 겁 없이 거뜬하게 걸을 수 있는 사람. 
- 마주보고 있는 빈 의자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http://blog.naver.com/gamram_lee/221148527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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