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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마음이 있을까

[성장과 성찰]

by 소선 Mar 19. 2025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딸아이는 말없이 내 옆에 와 앉는다 

아내는 아무 말 없이 물 한 잔을 내민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마음이 전해진다


그런데 나는?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괜찮아요?”라는 말 한마디를  

더 자주 했어야 했을까?


아내에게 “고마워”라고  

더 자주 표현해야 했을까?


가끔은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마음이 있지만  

말해야만 비로소 닿는 마음도 있다


그러니 나는

전해지길 바라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퇴근 후 현관문을 열면 익숙한 풍경이 펼쳐진다. 아이는 조용히 내 옆으로 다가와 앉고, 아내는 별말 없이 물 한 잔을 내민다. 그 순간,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따뜻함이 있다. 하루 종일 수많은 대화를 나누고도 정작 위로가 되지 않는 순간들이 있는 반면, 이렇게 아무 말도 없이도 충분히 위로가 되는 순간이 있다.


하지만 문득,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내 마음을 제대로 전하고 있을까?


부모님께 전화를 드릴 때, 나는 어색하게 안부를 묻고 몇 마디 대화를 나누다 전화를 끊는다. 그 짧은 대화 속에서 부모님은 항상 “괜찮다”고 말씀하시지만, 정말 괜찮으신 걸까. 아무 말 없이도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건, 어쩌면 나 혼자만의 착각은 아니었을까. 부모님도 내가 먼저 "괜찮아요?"라고 물어주길 기다리고 계셨던 건 아닐까.


어릴 때는 부모님이 모든 걸 다 해주셨다. 밥을 차려주고, 옷을 챙겨주고, 학교에 다녀오면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나를 맞아주셨다. 하지만 어른이 된 후의 부모님은 달랐다. 이제는 내가 먼저 안부를 물어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나는 자주 묻지 않았다. 부모님이 늘 강한 사람이라 믿었기에, 그들도 내가 먼저 다가와 주길 바란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라는 믿음이 오히려 마음을 멀게 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아내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결혼 전에는 작은 표현에도 서툴지 않았다. 사소한 문자 한 통, 짧은 칭찬 한마디에도 진심을 담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말보다 습관이 먼저가 되었다. 서로를 위해 하는 일들이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고, “고마워”라는 말보다 침묵이 더 익숙해졌다. 아내는 여전히 내 하루를 살피고, 내가 좋아하는 반찬을 챙겨주고, 퇴근 후 물 한 잔을 내밀어 준다. 하지만 나는 그 모든 것에 얼마나 자주 ‘고맙다’고 말했을까. 혹시나 당연하게 여기며 그냥 지나쳐 버린 건 아닐까.


가끔은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마음이 있다. 아이가 내 옆에 살짝 기대오는 순간, 아내가 나른한 미소로 나를 바라보는 순간, 부모님이 별일 없다는 듯 평범한 일상을 들려주시는 순간. 그 순간들은 따뜻하고 편안하다. 하지만 어떤 마음들은 말하지 않으면 전해지지 않는다. 내가 아무리 부모님을 걱정해도, 직접 “괜찮아요?”라고 묻지 않으면 그 마음은 반쯤 닿지 못한 채 머문다. 아내에게 아무리 고마운 마음을 가져도, “고마워”라는 말 한마디가 없다면 그 마음은 온전히 전달되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한다. 어떤 사람은 자주 연락하는 것으로, 어떤 사람은 작은 배려로, 또 어떤 사람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하지만 표현의 방식이 다르다고 해서, 상대가 내 마음을 온전히 이해해 줄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되는 것 같다. 말하지 않으면 오해가 생기고, 오해가 쌓이면 마음의 거리가 멀어진다.


한 번은 친구와 대화를 나누다가, “부모님이 표현이 없어서 서운할 때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우리 부모님도 그래.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나도 부모님께 그렇게 많이 표현하지 않았던 것 같아.” 그 말이 나오고 나서야 깨달았다. 혹시 부모님도 같은 서운함을 느끼고 계신 건 아닐까? 자식이 먼저 다가와 주길 기다리고 계셨던 건 아닐까?


예전에 한 선배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관계는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표현하는 거야. 네가 누군가를 아끼고 사랑한다고 생각해도, 그 사람이 모르면 아무 의미가 없어.” 그때는 그 말이 단순하게 들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의미가 더 깊이 다가왔다. 마음은 속에만 담아두면 닿지 않는다. 표현하지 않으면 결국 오해와 거리만 남는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동료에게 감사한 일이 있어도, "알겠지"라고 생각하며 넘어갈 때가 많았다. 하지만 막상 직접 고맙다고 인사를 건네면, 상대방의 표정이 밝아지는 걸 볼 수 있었다. 그 짧은 한마디가 분위기를 바꾸고, 관계를 조금 더 가깝게 만든다는 걸 깨닫는다.


결국 관계는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먼저 다가가는 것에서 시작된다. 표현되지 않은 감정은 점점 희미해지고, 그 자리에 오해와 거리감이 자리 잡는다. 나는 이제라도 조금 더 자주 표현하고 싶다. 부모님께 “괜찮아요?”라고 묻고, 아내에게 “고마워”라고 말하고, 아이에게 “사랑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나는 다짐한다.  

전해지길 바라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전하는 사람이 되기로.  

내가 먼저 마음을 전할 때, 그 마음은 더 선명하게 닿을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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