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과 성찰]
운전을 하다가 무례하게 끼어드는 차를 보면 순간적으로 화가 치민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운전할까?" 분명 나도 가야 할 길이고, 나름의 질서를 지키고 있는데, 상대의 무례함이 내 평온을 깨트린다. 그런 순간이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온다. 상사의 불공정한 말 한마디, 지나가는 사람의 예의 없는 태도, 가족의 무심한 반응. 사소한 말과 행동들이 내 안에 작은 불씨를 남긴다. 그리고 그 불씨가 모이면 어느새 마음 한편에 미움이 쌓인다.
그런데 문득,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였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운전하면서 무심코 끼어든 적이 있었을 것이다. 피곤하고 바쁜 날, 표정 하나 신경 쓰지 못하고 퉁명스러운 말투로 가족에게 대했던 순간들도 있었을 것이다. 상사의 말에 상처받았던 것처럼, 내 말에 상처받은 동료가 있을 수도 있다. 나는 내 감정에만 집중하느라, 내가 남긴 감정을 돌아보지 못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사랑하는 마음에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걸,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조금씩 배운다. 처음엔 사랑이라는 게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를 품에 안는 순간, 모든 것이 따뜻하고 행복할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아이는 사랑스럽지만, 동시에 내 인내를 끝없이 시험하는 존재이기도 했다. 깊은 밤에도 울음을 멈추지 않을 때, 바쁜 아침에 고집을 부릴 때, 피곤한 하루의 끝에서 계속해서 나를 필요로 할 때, 나는 순간적으로 짜증이 날 때가 있었다. ‘왜 이렇게까지 힘들어야 하지?’ 그러다 문득, 내가 사랑하는 것보다 지치는 감정을 더 크게 키우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
그날 이후, 아이가 칭얼댈 때면 잠시 숨을 고르고 나 자신에게 묻는다. "지금 나는 사랑을 키우고 있는가, 아니면 짜증과 피곤함을 키우고 있는가?"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선택에 가깝다는 걸 배운다. 감정이 앞서기 전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순간이 있다는 걸 깨닫는다.
미움이 사랑보다 쉽게 자라는 건, 아마도 미움이 더 본능적인 감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억울함, 불쾌함, 짜증 같은 감정들은 우리가 아무 노력 없이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사랑은 의식적으로 키워야 하는 감정이다. 사랑은 쉽게 사라지고, 미움은 조금만 방심하면 금세 커져 버린다.
나는 가족과의 대화를 돌아본다. 바쁜 하루 끝에 지친 목소리로 대답하는 아내, 내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 서운한 순간들. 하지만 그런 순간이 올 때마다, 나는 아내의 하루를 떠올려본다. 아내도 나처럼 지쳤을 것이다. 나처럼 속상한 일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짜증을 키우는 순간, 아내도 짜증을 키울 것이다. 하지만 내가 먼저 다가가 사랑을 키운다면, 그 감정도 함께 자라지 않을까.
부모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때때로 부모님의 말이 잔소리처럼 들릴 때가 있다.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들이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조언을 해올 때, 그 순간 짜증이 밀려온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 말들 안에는 걱정과 사랑이 숨어 있었다. 단지 표현 방식이 다를 뿐이었다. 만약 내가 그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미움으로만 쌓아둔다면, 결국 후회할 날이 오지 않을까.
살면서 감정이 닿는 곳마다 사랑과 미움이 함께 있다. 상대의 행동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사랑이 되기도 하고, 미움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감정이 반복될수록, 어느 쪽이든 더 크게 자란다. 나는 사랑을 키우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현실에서는 종종 미움을 키우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어느 날, 지인의 이야기를 들었다. 부모님과 오랜 시간 갈등을 겪어온 사람의 이야기였다. 그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기대에 맞춰 살아야 했고, 결국 부모와의 관계가 점점 소원해졌다고 했다. 나이를 먹고 나서야, 부모님의 기대가 사랑의 다른 형태였음을 깨달았지만, 그걸 깨닫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내 부모님을 떠올렸다. 부모님이 나를 향해 했던 말들이 다 옳았던 것은 아닐지라도, 그 밑바닥에는 사랑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사랑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미움이라는 감정만 키워온 순간들이 있었던 건 아닐까.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는 건, 단순히 좋은 감정만 가지는 것이 아니다. 미움이 생길 때 그것을 알아차리고, 다시 사랑으로 돌아오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내가 받는 감정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주는 감정도 살펴보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사랑을 키우는 사람인가, 아니면 미움을 키우는 사람인가?
오늘 하루, 내 감정이 닿는 곳에 미움보다 사랑이 더 많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