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과 성찰]
어릴 땐 가능하다고 믿었다. 강한 사람이 되면, 단단한 마음을 가지면, 어떤 말에도 흔들리지 않을 거라고.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예상치 못한 순간에 상처받고, 때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면서도 속으로 무너지는 날들이 쌓였다. 어른이 된다는 건 결국 그런 순간에도 버티는 일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버티는 것만으로 충분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회사에서 들은 말 한마디가 마음에 박힌 날이 있었다. “좀 더 빠릿하게 움직이면 좋겠어요.” 그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업무가 지연되고 있었고, 나도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런데도 가슴이 철렁했다.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퇴근길에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왜 나는 이렇게 작은 말에도 쉽게 흔들리는 걸까. 남들은 다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 일인데, 왜 나는 혼자서 괜히 신경 쓰고 있는 걸까.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런데 문득, 딸아이가 떠올랐다. 아이는 작은 일에도 쉽게 울었다. 넘어지면 아프다고 울고, 장난감이 망가지면 속상해서 울고, 동화책의 주인공이 슬퍼하면 같이 눈물을 글썽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말했다. “괜찮아, 울어도 돼.” 아이는 울고 나면 다시 웃었다. 아팠던 걸 잊어버린 것처럼. 그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어쩌면 상처받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상처를 받아도 다시 일어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닐까.
우리는 어릴 때부터 강해져야 한다고 배운다. 눈물을 보이면 약한 사람처럼 보일까 봐 참는 법을 배우고, 상처받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해 감정을 숨기는 연습을 한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온 결과가 무엇일까. 작은 말 한마디에도 쉽게 무너지고, 혼자서 속앓이를 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속은 엉망이 되는 어른이 되었다. 정말 이게 단단한 사람이 되는 길일까.
회사에서뿐만이 아니었다. 가까운 사람에게 들은 말도 오래도록 남았다. “네가 좀 더 신경 썼으면 좋겠어.” 가족이 하는 말은 더 아팠다. 가족이기에 더 편해야 할 말들이 오히려 날카롭게 가슴을 찔렀다. 속으로 다짐했다. ‘앞으로는 상처받지 말자. 무덤덤해지자.’ 하지만 다음 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상처받지 않겠다고 다짐할수록,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한 번은 아내와 말다툼을 한 적이 있다. 대수롭지 않은 일로 시작된 대화였지만, 감정이 격해지면서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주고받았다. 감정을 다 쏟아낸 후 찾아오는 정적. 그 순간 깨달았다. 상처받지 않으려 애쓰다가, 오히려 더 깊은 상처를 주고받고 있었다는 걸. 내가 들은 말만큼, 상대도 나의 말에 아팠을 것이다. 결국 우리는 서로를 상처 입히지 않으려 조심하기보다는, 상처를 입어도 다시 회복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야 했다.
어쩌면 우리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쉽게 회복하기 위해 강해져야 하는 걸지도 모른다. 다치지 않으려고 애쓰기보다는, 다쳐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것. 아이들이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는 법을 배우듯이, 어른도 상처받아도 다시 걸어가는 법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예전에 어느 작가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마음이 단단해지는 건 벽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부서져도 다시 이어붙일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그 말을 곱씹어 본다. 단단한 마음이라는 것이 정말 아무것도 스며들지 않는 벽 같은 것이라면, 우리는 결국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되는 건 아닐까. 차라리 약해도, 때때로 무너져도 다시 회복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더 의미 있는 일은 아닐까.
살면서 상처받지 않을 순 없다. 직장에서도, 가족 사이에서도, 친구와의 관계에서도 우리는 크고 작은 상처를 입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상처가 우리를 무너뜨리지 못하도록 스스로를 다독이는 방법을 배우는 일이다.
딸아이가 넘어졌을 때, 나는 말했다. “괜찮아, 울어도 돼.” 그리고 아이는 울다가 다시 일어났다. 그 모습을 보며 스스로에게도 같은 말을 해본다. “그래, 괜찮아. 상처받아도 돼.”
살다 보면 상처받을 일은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 상처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나의 선택이다. 감정을 숨기는 게 아니라,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건 어떨까. 회사에서 지적을 받으면 속상할 수도 있다. 가까운 사람의 무심한 말 한마디에 서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감정을 억누르는 대신, “그래, 속상하네. 그래도 괜찮아.”라고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다면, 우리는 조금 더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결국 중요한 건, 상처받지 않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안고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우리가 정말 강해져야 하는 순간은, 다치지 않으려 애쓰는 때가 아니라,
다친 후에도 다시 일어나야 하는 때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