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과 성찰]
딸아이가 작은 도토리를 손에 꼭 쥐고 말했다.
"아빠, 이거 보물 같아!"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는 공원에서 주운 도토리를 소중하게 품에 안고 있었다. 사소한 것에도 기뻐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나도 따라 웃었다. 하지만 문득 생각했다. 언제부터 나는 보물을 크기로 판단하게 되었을까? 언제부터 우리는 값비싼 것, 눈에 띄는 것만이 가치 있다고 여기게 되었을까?
행복도 그렇다.
어릴 때는 단순했다. 좋아하는 과자를 먹고, 친구와 놀이터에서 뛰어놀고, 밤늦게까지 텔레비전을 보며 깔깔 웃는 것이 행복이었다. 하지만 자라면서 행복의 기준이 점점 높아졌다.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하고, 좋은 학교에 가야 하고, 더 좋은 직장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른이 되면서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되었다. 넓은 집, 높은 연봉, 좋은 차, 남들보다 앞서는 성취. 행복이란 결국 더 많이 가지는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하루하루 열심히 살면서도, 때때로 허전함이 느껴질 때가 있다. 목표를 이루어도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고, 금방 새로운 목표를 세운다. 마치 끝없이 올라야 하는 계단처럼. 만족하기 위해 달려가지만, 도착점은 늘 저 멀리 있다.
그런데 퇴근 후 문을 열었을 때, 아이가 반갑게 달려오며 "아빠!" 하고 부를 때면, 복잡한 생각이 한순간에 사라진다. 길게 말하지 않아도, 그 짧은 순간이 하루의 피로를 녹인다.
늦은 밤, 하루를 마무리하며 아내와 나란히 앉아 있을 때도 그렇다. 특별한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같은 공간에 조용히 머물러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잘 지내세요?"라고 묻고, 돌아오는 대답.
"그래, 건강해라."
그 짧은 말 한마디에 담긴 따뜻함.
이런 순간들이야말로 내게 주어진 작은 보물들이 아닐까?
어린 시절에는 손 안의 작은 도토리 하나도 보물이었는데, 어른이 되면서 너무 많은 것들을 지나쳐버렸다. 우리는 종종 더 큰 행복을 찾아야 한다고 믿으며, 이미 손 안에 쥐고 있는 것들의 가치를 잊어버린다. 하지만 아이는 작은 도토리를 보물이라 부르고,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깨닫는다. 행복은 결국,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들 속에서 발견하는 감각이라는 것을.
행복은 조건이 아니다. "더 좋은 직장이 있으면 행복할 거야." "돈을 더 많이 벌면 만족할 거야."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행복은 항상 미래로 밀려난다. 마치 다음 정거장에서야 비로소 탈 수 있는 기차처럼. 하지만 정작 도착한 그곳에서도 우리는 다시 다음을 바라본다. 그러다 보면 평생 행복은 '곧 다가올 무언가'가 되어버린다.
행복이란, 찾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다.
도토리를 보물이라 말하는 아이처럼, 나도 내 하루에서 작은 행복을 발견하며 살아가고 싶다.
회사에서 힘든 날이 있더라도, 퇴근길에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이 기분 좋다면, 그것도 하나의 행복.
바쁜 하루를 보내느라 정신없었어도, 잠들기 전 가족들의 고른 숨소리를 들으며 안도할 수 있다면, 그것도 하나의 행복.
멀리 있는 친구에게 문득 안부를 묻고, "잘 지내고 있어"라는 답을 들을 때, 그것도 행복.
우리는 종종 행복이란 큰 성취, 특별한 순간에서만 느껴진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우리의 삶을 따뜻하게 채우는 건 이런 사소한 순간들이다. 작은 것들을 소중하게 바라보는 태도, 그것이야말로 행복을 발견하는 힘인지도 모른다.
어느 날 딸아이가 도토리를 쥔 채 내게 다시 물었다.
"아빠는 뭐가 보물이야?"
나는 아이를 바라보며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말했다.
"네가 나한테 보물이야."
아이의 눈이 반짝였다. 그리고 활짝 웃으며 내 손을 잡았다.
그 순간 나는 확신했다. 행복은 크기가 아니라, 마음이 머무는 곳에서 발견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