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과 성찰]
기억이란 뭘까. 우리는 과거를 떠올리는 걸까, 아니면 우리에게 필요한 대로 다시 쓰는 걸까.
아이와 함께 거실에서 사진첩을 펼쳐놓고 한 장씩 넘겨보다가 딸아이가 사진 하나를 가리켰다.
"아빠, 이때 행복했어?"
사진 속의 나는 활짝 웃고 있었다. 아이를 안고, 카메라를 향해 밝게 웃고 있는 모습. 하지만 나는 그날을 기억하고 있다. 회사에서 큰 실수를 했던 날이었다. 상사에게 혼이 났고, 내내 위축된 기분으로 하루를 버텼다. 퇴근길에도 기분이 가라앉아 있었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그런데도 사진 속의 나는 웃고 있었다.
나는 아이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행복했어."
진심이었다. 분명 그날은 힘든 날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사진 속 순간을 떠올리며 행복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때의 감정을 정확히 기억하는 게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서 기억이 조금씩 변한 걸까?
부모님과의 기억도 그렇다.
어릴 적 나는 부모님의 잔소리를 유난히 싫어했다. "공부 좀 해라." "일찍 들어와라." "밥은 먹었냐?" 그런 말들이 늘 부담스러웠다. 아침마다 학교 가기 전에 어머니는 "오늘 뭐 입을 거야?"라고 물었고, 나는 귀찮다는 듯 대충 대답하곤 했다. 하지만 이제 부모가 되고 나서야 그 말들이 단순한 잔소리가 아니었다는 걸 안다. 그건 관심이었다. 걱정이었다.
어느 날 부모님과 통화를 하다가, 아버지가 여전히 같은 질문을 하셨다. "밥은 먹었냐?" 어릴 때는 그 질문이 지겨웠지만, 이제는 다르게 들린다. 부모가 자식에게 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하고도 확실한 애정 표현. 나는 짧게라도 대답한다.
"네, 잘 먹었어요."
그리고 문득 든 생각. 어릴 때 나는 부모님의 잔소리만 기억했지만, 혹시 내가 잊고 있는 따뜻한 순간들이 있었던 건 아닐까?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부모님은 더 자주 나를 안아주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서운했던 날보다 더 많은 날을 나를 걱정하며 보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기억이 허락하는 부분만 떠올리며 살아왔던 건 아닐까.
기억이란 결국 있는 그대로 간직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조금씩 변화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때는 힘들었던 순간도 시간이 지나면 따뜻하게 남을 수도 있고, 반대로 그때는 좋았다고 생각했던 순간이 지나고 보면 아쉬움으로 남을 수도 있다.
회사에서 퇴근하던 날의 기억도 그렇다.
그날은 하루 종일 실수투성이였다. 마감 기한을 맞추지 못했고, 회의에서도 내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무기력한 기분으로 퇴근을 하며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문득, 저녁노을이 눈에 들어왔다. 평소라면 바쁘게 스마트폰을 보거나 생각에 잠겨 흘려보냈을 풍경이었다. 그날따라 유난히 붉고 선명했다. 나는 그 노을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때는 힘든 하루의 끝자락이었지만, 지금 떠올려보면 이상하게도 그 순간이 따뜻하게 남아 있다. 내 기억은 그날의 피로보다 노을을 먼저 떠올리고 있다.
우리는 기억을 떠올리는 걸까, 아니면 우리가 견딜 수 있도록 다시 쓰는 걸까.
어쩌면 인간은 기억을 있는 그대로 간직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진 존재일지도 모른다. 아픈 기억이 무뎌지고, 힘들었던 날들이 흐릿해지기에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게 아닐까.
반대로, 정말 좋은 기억들도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진다. 오래전의 여행, 친구들과 함께했던 밤, 부모님과 걸었던 길. 그 순간에는 소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세부적인 장면들은 흐려지고, 감정만 남는다. 그 감정이 따뜻할 수도 있고, 아쉬울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도 언젠가 더 따뜻한 기억이 될까?
언젠가 딸아이가 자라서 우리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며 "이때 참 좋았지"라고 말할까?
지금의 나는 피곤하고, 때로는 짜증이 나고, 고민도 많지만, 훗날 이 순간을 돌아볼 때 나는 어떤 감정을 떠올릴까?
어쩌면 우리는 기억을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편집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하는 이 순간순간의 선택들이, 언젠가 더 좋은 기억이 될 수 있도록,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