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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다는 건, 여전히 배우는 걸까?

[성장과 성찰]

by 소선 Mar 03. 2025

어릴 땐 어른이 되면 다 알 줄 알았다  

모든 게 명확해지고

실수 없이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막상 어른이 되고 보니

더 모르는 것투성이였다


아빠가 되어보니

부모가 다 이해되지는 않았고  

직장에 다닌다고 해서

다 어른스러워지는 것도 아니었다


가끔은 서툴고

가끔은 두렵고  

어떤 날은 여전히

철없는 실수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나는 배우고 있다


딸아이가 내 말투를 따라 할 때  

아내가 나보다 더 지쳐 있을 때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야겠다고 문득 떠오를 때


그때마다 깨닫는다

어른이 된다는 건 완벽해지는 게 아니라  


서툴러도

흔들려도

계속 배우는 과정이라는 걸


마흔이 되어도

나는 여전히 나를 배운다





어릴 적 나는 어른이 되면 모든 걸 알게 될 줄 알았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자연스럽게 깨닫고, 실수 없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막상 어른이 되고 보니,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어른이라는 이름을 가졌다고 해서 모든 것이 명확해지는 것도 아니었고, 실수를 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여전히 어떤 선택이 옳은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가 많았고, 어떤 날은 분명 최선을 다했는데도 결과가 엉망이 되기도 했다. 서툴고, 흔들리고, 때로는 도망치고 싶어질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생각했다. 나는 정말 어른이 된 걸까? 아니, 어른이 된다는 건 대체 무엇일까?


나는 아빠가 되면서 부모를 조금 더 이해할 줄 알았다. 하지만 아이를 키운다고 해서 부모님이 내게 했던 말과 행동이 모두 명확하게 이해되는 건 아니었다. 아빠라는 역할을 맡았지만, 여전히 나는 배우는 중이었다. 직장에서 한 자리를 차지한다고 해서 무조건 어른스러워지는 것도 아니었다. 사람들과 부딪히고, 책임을 감당하고, 때로는 억울한 순간을 견뎌내면서도, 나는 여전히 서툴렀다. 가끔은 내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후회할 말을 내뱉기도 했고, 어떤 날은 아이처럼 철없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그런데도 나는 배워가고 있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부모라는 사실을 가장 실감하는 순간은 딸아이가 내 말투를 따라 할 때다. 처음엔 귀엽고 신기했다. 그런데 어느 날,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날씨에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무심코 한마디를 내뱉었을 때, 딸아이가 똑같은 말투로 인형을 대하는 걸 보았다.


"아, 진짜 귀찮아."


가슴 한쪽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이는 단순히 말을 배우는 게 아니었다. 나를 배우고 있었다.


내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고스란히 딸아이의 세계가 된다. 그러면 나는 다시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나는 어떤 말을 하는 사람인가? 아이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가? 어른이 된다는 건 단순히 나이를 먹는 것이 아니라, 내 말과 행동에 책임을 갖는 일이었다.


가족 속에서도 배움의 순간은 찾아온다. 아내가 나보다 더 지쳐 있을 때, 나는 종종 그걸 놓친다. 집에 들어와 피곤하다는 이유로 소파에 털썩 앉고 나서야, 아내가 이미 온종일 지쳐 있었음을 깨닫는다. 그럴 때면 어색하게라도 물어본다.


"많이 힘들었어?"


그 짧은 말 한마디에 아내는 순간 멈칫하다가, 애써 웃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그제야 깨닫는다. 내가 힘든 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아내도 힘들었을 거라는 걸.


이따금 부모님이 떠오르는 순간도 있다. 나는 어릴 때 부모님이 늘 강한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야 부모님도 나처럼 흔들리고, 지치고, 때로는 힘든 감정을 숨기며 살아오셨다는 걸 알게 됐다.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야겠다고 문득 떠오르는 순간, 나는 배운다. 그때 부모님이 내게 했던 말과 행동이 사실은 걱정과 사랑이 담긴 것이었다는 걸.


어른이 된다는 건 완벽해지는 게 아니라, 서툴러도 흔들려도 계속 배우는 과정이라는 걸 나는 그렇게 알아간다. 그리고 배움은 거창한 순간이 아니라 사소한 일상 속에서 찾아왔다.


퇴근 후 현관문을 열었을 때 들려오는 아이의 웃음소리, 지친 얼굴로 소파에 앉아 있는 아내, “밥은 먹었냐”는 부모님의 짧은 안부 전화. 나는 그 순간순간 속에서 배우고 있었다.


가끔은 회사에서 뜻대로 되지 않는 날도 있다. 억울한 순간도 있고, 예상치 못한 실수로 자책하는 날도 있다. 그런 날에는 어른으로서 책임을 지는 게 버거울 때도 있다.


"이게 최선이었을까?"


자신에게 끝없이 묻게 된다. 하지만 어쩌면 최선이란 없을지도 모른다. 매 순간 고민하고, 흔들리면서도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어른이 되어간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어릴 때는 어른이 다 정답을 알고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어른도 모르는 것이 많고, 실수도 한다는 걸. 부모님도 그랬을 것이다. 우리 앞에서는 언제나 단단한 모습이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민하고, 흔들리고, 실수도 하셨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배워가며 우리를 키우셨을 것이다.


아이가 넘어졌을 때 나는 "괜찮아, 다시 일어나면 돼"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내가 넘어졌을 때는 그렇게 쉽게 일어나지 못한다. 어른이 되어도 실패는 여전히 아프고, 실수는 여전히 부끄럽다. 그럼에도 다시 일어나야 한다.


왜냐하면 아이가 나를 보면서 배우기 때문이다.


아이는 내가 넘어진 걸 본다. 그리고 내가 다시 일어나는 것도 본다. 어른이 된다는 건 결국, 넘어지고 일어나는 과정을 멈추지 않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배우고 있다.  

아이 앞에서 내가 어떤 어른인지 고민하는 법을.  

아내가 말하지 않아도, 지친 하루를 이해하는 법을.  

부모가 말 한마디에도 힘을 얻는다는 걸 깨닫는 법을.


그래서 나는 묻는다.


우리는 정말 완벽한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결국 끝까지 배우며 살아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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