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고래 Sep 28. 2022

80살, 90살까지 할 거니까요.

요가 일기

# 지난 3분기에는 출판사와 계약을 했고, 이직도 완료했다. 그렇게 올해 목표로 했던 큰 숙제를 두 개 끝냈다. 그래서일까? 그 시간 동안 내가 나를 너무 밀어붙여 소진시킨 탓인지, 또는 새롭게 시작된 삶에 적응하느라 그런 것인지 글이 영 써지질 않았다. 책 속의 글도 잘 읽히지 않았다. 이러다가 글을 아예 놓아버리는 건 아닌지, 책과 점점 더 멀어져 버리는 것은 아닌지 불안했다. '아무 책이나 필사라도 좀 해볼까?', '문학이 안되면 쉬운 에세이를 읽어야 할까?' 그런 생각을 하던 요즘이었다.


# 어제는 아쉬탕가 수련을 했다. 수업 전 선생님이 다운 독(downward facing dog pose) 자세를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다운독은 빈야사, 하타, 아쉬탕가 등 요가의 다양한 장르(?)에 늘 빠짐없이 등장하는 기본 동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누구나 다 하는 그 동작도 선생님이 알려준 대로 보다 신경 써서 취하다 보니 다섯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동안 동작을 유지하는 것만도 꽤 어려웠다. '아 너무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쩐지 더 제대로 된 동작을 취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들이쉬는 숨에도, 내 쉬는 숨에도 몸에 힘을 뺄 수가 없었다. (결국 오늘 근육통이 찾아왔다.)


# 그렇게 다운독으로 시작해서 머리서기며, 다누라사나에 컴업과 드롭백까지 이어지는 동작들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성실히 취했다. 50분의 치열했던 수련의 결과 마지막에 온 몸에 힘을 빼고 바르게 눕는 동작인 사바아사나를 할 때는 몸에 긴장이 쉬 사라지질 않았다. (원래 사바나사나는 전신에 힘을 빼고 천천히 호흡하며 이완하는 자세다.)


# 사바아사나까지 끝내고 수업을 마무리하는 인사를 하기 위해 반가부좌 자세로 앉았을 때였다. 선생님이 이렇게 말하셨다. "예전에는 제가 80~90까지도 요가를 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늙어서도 할 자신 있었어요. 그런데 문득 생각해보니 너무 나를 밀어붙이며 수련을 하면 오래 요가를 할 수 없게 될 것 같더라고요. 평생 하고 싶고, 할 요가인데 그럼 나를 너무 밀어붙이지 말고 여유를 가지고 내 수준과 컨디션, 내 박자에 맞춰 수련해야겠다고 마음을 바꿔먹었어요." 그 말을 들으니 그날 수련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 치열하게 했다. 과하게 했다. 바로 다음 날 당연히 근육통이 올만큼 나를 밀어붙여 수련했다. 사실 이건 다른 무언가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적응할 새 회사에도 빠르게 적응하고 올드 멤버들처럼 편안해 지고 싶어 무리하며 업무를 익히고, 내 역량을 보여주려 애썼고(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 갔다.), 책을 쓸 때도 본격적으로 원고를 '끝내겠다.' 결심한 뒤부터는 하루도 쉬지 않고 원고를 썼다. 그리고 전체 원고 수정만도 3번 이상을 연이어하며 질릴 때까지 원고를 읽었다.


# 그렇게 나를 밀어붙인 결과였다. 독서나 요가, 글쓰기에 권태기가 찾아온 이유는 말이다.


# 책도 평생 읽을 것이고, 요가도 빨리 고수가 되기보다 삶 속에 두고 오래오래 하고 싶고, 글쓰기도, 보람을 느끼는 일(work)도 살면서 평생 할 것들인데 내가 너무 단기간에 몰아붙이니 그 모든 것으로부터 금방 나가떨어지는 것이었다. 이 '잘하고자 하는 마음으로부터 비롯되는 조급증'이 결국 내게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빼앗아 가겠구나- 싶었다.


# 그래서 다짐했다. '빠르게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이 '빠르게'를 없애고, '내가 지금 즐기고 있는가?', '내가 더 나아진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 활동(글, 요가, 일 등)에 성실히 임하는가?를 물어야겠다고 말이다.  그렇게 질문을 바꾸고, 태도를 바꾸면 권태기보다는 더욱 애정 하는 마음이 깊어지지 않을까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명상이 필요한 아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