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신

두발로 우뚝

by 꽃무릇


뱀의 머리처럼 솟은 호스에서 찬 물줄기가 뿜어 나온다. 동그란 안경알 위로 물이 흘러내렸다. 앞치마를 뒤집어 안경을 대충 닦고서야 신발 속에도 물이 흥건하다는 걸 알았다. 종아리 중간까지 올라오는 짙은 청색 장화였다. 어린 시절, 엄마가 사주신 노란 장화가 신고 싶어 비가 오기만을 기다렸던 때가 떠올랐다. 오십여 년 전 그 노란 장화가 내게 준 기다림과 설렘, 그리고 며칠 전 청색 장화를 받아 들고 내가 느꼈던 차가운 긴장감이 겹쳐진다. 새로운 일을 찾아 첫 출근 한 오늘. 두 팔 벌려 나를 반긴 건 보기 좋게 뿜어댄 물줄기였다. 이십 년을 근무한 직장과 이별을 하게 된 것은 그놈의 코로나 팬데믹 때문이었다. 육십이 다 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기란 동네 마트에서 행운권 추첨으로 경차를 타는 것만큼이나 어려웠다. 나는 혼자서 묵묵히 할 수 있는 일을 원했다. 영업을 하며 사람에 시달린 시간들이 힘겨워서 그랬을 것이다. 그동안 늘 목표와 달성의 노이로제에 시달린 나는 될 수 있는 한 사람과 부딪치지 않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선택한 나의 새 직업은 학교 기숙사 청소일이다.


절대 잊을 수 없는 2002년 5월, 하늘에서 내려다본 서울의 거리가 온통 붉은색이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월드컵의 그날, 나는 모두가 힘들다고 하는 영업을 직업으로 선택하였다. 언젠가 돌돌 꼬여 돌처럼 단단해진 가느다란 목걸이 줄을 풀며 내가 말했었다. “이렇게 꼬인 줄이 고객님의 마음이여..”라고. 우스게 소리였지만 어쩌면 그것은 늘 마음속에 잠재된 영업사원의 숙명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일은 몇 년 주기로 고비가 찾아왔으며, 그때마다 나는 용케 그 고비를 보란 듯이 이겨 내곤 했는데 그렇게 보낸 세월이 이십 년이나 될 줄은 몰랐다.


코로나의 여파는 갯벌에 빠진 발처럼, 발버둥 치면 발버둥 칠수록 더 깊은 속으로 두 발을 끌고 들어갔다. 높고 파란 하늘마저도 언제부턴가 깊은 바다가 되어 그대로 내게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공포스러움으로 출렁거렸다. 하루하루가 숨 막히는 전쟁이 되어갔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의 여파로 나의 일은 더 이상 견뎌내기 힘든 지경에 도달했다. 실적이 저조하니 당장 수입이 줄어 들었고 이제 먹고사는 문제가 나의 심장을 조여왔다. 누구도 원망할 수 없는 현실이기에 고통은 온전히 나의 몫이 되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럴 때 아버지라면 어떠셨을까.



언젠가 하시던 일이 안 풀려 집안 형편이 어려웠던 때가 있었다. 그때 아버지는 낡은 007 가방 하나를 들고는 거리로 나가셨었다. 가방 안에는 남대문시장에서 도매로 떼온 목걸이, 반지, 넥타이핀 등의 액세서리로 꽉 차 있었다. 그것들은 어린 내가 봐도 촌스럽기가 그지없었다. 도대체 이걸 어디 가서 파신다는 걸까 하고 걱정했던 기억이 난다. 남에게 얻으셨다던 그 007 가방 안쪽엔 자주색 비로드천을 붙이셨는데 아마도 금붙이들을 빛나게 하고 싶으셨던 간절함 이었던것 같다. 하지만 늙은 아저씨가 주먹구구식으로 떼다 판 그것들이 팔리기는 만무했기에, 결국 장사는 얼마 못가 중단되었다. 그 후 그 액세서리들은 007 가방 속에서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그 후에도 아버지는 무엇이든지 닥치는 대로 하셨다. 시장통에서 배운 기술로 호떡장사를 시작하신 것은 그 해 겨울일이다. 그러나 온종일 구워도 제대로 된 것은 하나도 없었고, 여기저기 옆구리가 터진 호떡으로 철판은 설탕 범벅이 되었다. 그 시절 사춘기였던 나는 모든 게 못마땅해 투덜대기 일쑤였다. 그러나 이제 아버지의 나이가 되고 보니 그것이 얼마나 큰 용기이며 능력인지 조금은 알 것만 같다.


통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관악산은 녹색의 푸르름으로 넘실대고, 고개 들어 올려다본 하늘은 까르르하며 웃음을 쏟아낼 것 같은 하얀 구름들이 떠 있다. 여유로운 출근 시간 덕분에, 나는 처음으로 새벽 운동도 하게 되었다. 숲에서 들리는 온갖 새소리와 풀 내음으로 모든 세포가 다시 살아난다. 푸르른 잔디가 펼쳐져 있는 넓은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기숙사로 향하니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친구는 이전의 내 모습과는 너무도 다른 일을 택했다고 안타깝다고 했지만 그 걱정이 곧 사라지리란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시기가 당겨진 것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가장 적절한 때였으며 그 선택은 행운과도 같은 것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어려운 상황일지라도 한 구석에서 싹트는 새로운 기회는 있었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약간의 용기만 있다면 그 기회는 더 큰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다. 그리고 그 용기는 비록 무모할지라도 끊임없이 행하셨던 내 아버지의 용맹함이 주신 선물이란 것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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