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되려고 그러니

by 꽃무릇

'서운한 기대'


돌아가신 우리 엄마는 삼 남매 중 특히 나의 미래를 궁금해하셨다. 내 행동이 마땅치 않거나 해서 화가 나시면 목소리를 높여 화를 내는 방법 대신 이 말을 툭 던지곤 하셨었다.

"너는 커서 뭐가 되려고 그러니?"

왜 말을 안 듣냐든지, 또 그럴 거냐는 등의 잔소리보다 조용한 음성으로 던지시던 이 한마디가 나에겐 더 큰 꾸지람이었다. 가끔 그 말은 옆집 아이에게 하는 듯이 서운하게 들리기도 했고, 이대로 커서는 정말 뭐가 되기 힘들 것 같은 두려움을 갖게도 했다. 엄마는 나에게 거셨던 기대가 무너질 때마다 속상함과 실망감을 그렇게 표현하셨던 것이겠지만 말이다.


"너는 뭐가 되려고 그러니?"


학창 시절에도 영락없이 나의 미래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생겼다. 왜 다들 내가 무엇이 되는 것에 대해 관심이 많았을까? 하지만 엄마의 그것과 다른 게 있다면 선생님은 속상하거나 화가 나지 않아도 이 말을 농담처럼 자주 하셨다는 것이다. 그 말을 잘 못 이해하면 '그래 가지고 뭐가 되긴 하겠어'라는 부정적인 말로 오해할 소지가 있어 매우 위험한 표현이란 것을 그때는 몰랐다. 아무튼 먼 훗날 내가 무엇이 될까 말까에 대한 관심을 주셨다는 것은 고맙고 반가운 일이겠지만, 그것이 나를 칭찬하거나 기대하는 상태에서 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때마다 나는 무기력해지곤 했다. 공교롭게도 꼭 무언가 맘먹고 잘하려고 하다가도 그 말을 들음과 동시에 어그장을 놓고 싶은 반항심이 일어났으며 그 회수가 거듭되며 나는 하기도 전에 미리 포기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도 뭐가 될 수는 있을까?'


아이에서 어른으로 들어서는 경계점에서 나는 두렵고 불안했다. 오래전 자주 듣던 그 별 것 아닌 것 같은 말이 귓가를 맴돌았던 것이다. 엄마는 나에 대한 기대와 서운함으로 하신 말이란 것을 알지만, 학창 시절 들었던 그 말, 가랑비처럼 서서히 나를 적셨던 그 말들은 나의 자신감을 꾹꾹 밟고 찌그러지게 했었으니 말이다. 그 시절 나는 힘겨운 방황도 했었고, 원하는 것에 시도했다가 주저앉기도 했으며 길을 잃고 포기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너는 커서 뭐가 되려고 그러는구나"


기숙사 학생들에게 방을 깨끗하게 쓰라는 잔소리보다 '깨끗하게 써줘서 고맙다'는 쪽지를 미리 붙여놓으니 어지럽히지 않았다고 했다. 가벼운 멘트 하나로 보이지만 그것은 너를 믿는다는 믿음과 응원의 표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도 그렇게 해 보면 좋지 않을까?

"너는 커서 좋은 선생님이 되려고 그러는구나" 그래서 그렇게 행동을 했구나.

"너는 커서 멋진 화가가 되려고 그러는구나" 그래서 그렇게 행동을 했던 거야.


'나는 뭐든지 될 수 있다.'


오래전 돌아가신 엄마의 걱정과는 달리 나는 지금도 그 무엇이 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변한 게 있다면 사회와 학교의 강요가 아닌 내 의지로 한다는 것이다. 책을 가까이하고 세상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오십 중반에 늦깎이 국어국문과 대학생이 되었고, 졸업 후 좋아하는 글쓰기를 하고 있다. 덕분에 브런치에 글을 올리게 되는 기회까지 얻었으니 이 얼마나 신기하고 행복한 일인가. 무엇이 되려고 그러니 하고 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다.


인생이라는 것이, 일단 견디고 버티다 보니 나름 작은 깨달음을 덤으로 주기도 한다. 우리 모두는 뭐든지 될 수 있고, 되어야 하는 시기는 그 어느 때라도 좋다는 것이다. 원하던 그 길이 아니면 또 다른 길 이 있을 테고, 이번에 안되면 또 하면 되는 것. 단지 자기 인생의 설계는 자신의 몫이며 실천 또한 자신의 몫이라는 것만 잊지 않는다면 우린 모두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빠르고 늦다는 것의 기준은 무엇일까. 그때가 언제이든 가장 중요한 것은, 나는 여전히 그 무엇인가를 향해 진행중이라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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