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내가 가야 할 코스는 40km를 걸어내야 하는 만만치 않은 여정이었다. 새벽 5시. 아직 아무도 깨지 않은 알베르게에서는 행여 나 때문에 옆사람의 잠을 방해해서는 안된다. 최대한 소리가 나지않게 주섬주섬 옷을 입고, 침낭을 개고, 물건들을 챙겨 배낭을 꾸린다. 흐린 핸드폰 불빛 하나에 의존하며 밤새 내려앉은 어둠을 뚫고 걸어야 한다. 좌우로 끝도 없이 펼쳐져 있는 들판을 두리번거리며, 길게 늘어져 있는 도로의 중앙선을 힘차게 밟고 걸었다. 어둠으로 인해 새벽의 공기는 더욱 서늘했지만, 한 시간쯤 걷고나니 저 지평선 끝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오는 새벽안개로 어둠은 조금씩 물러갔고 서늘한 기운도 사라졌다. 저 멀리 어딘가에서부터 온천지가 붉게 물들기 시작하면 심장이 터질 듯이 아름다운 아침해가 솟아오른다. 스페인 땅끝 대서양으로 향하는 길 위의 태양은 그렇게 노란빛으로 빛나며 붉그스레 타올랐다.
대충 이틀쯤 걸려 가야 하는 거리지만 중간에서 끊기가 어중간해서 하루안에 걷기로 결정했고, 그래서 다른 날 보다 일찍 서둘러 길을 나선것이다. 목적지에 가기 위해선 여러 개의 높고 낮은 산등성을 넘어야 한다. 배낭을 메고 산길을 가면 예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혹시라도 길을 잃거나 할 경우가 발생하여 그 순간 밀려드는 두려움은 순간 공포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힘든 코스를 걷거나, 산을 오르면서 아주 귀한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하는 것처럼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도 '시작은 그 하나부터'라는 것이다. 높은 산을 오를 때 '저 높은 고지를 향하여'라고 하는 것보다, '앞사람의 발 뒤꿈치만 뚫어져라 보며 따라가는 것'이 훨씬 쉽다는 것을 터득한 것이다. 물론 나만의 방법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얼마나 왔나 얼마나 남았나 고민할 것 없이 '그냥 묵묵히 뒤꿈치 따라가기'를 하는 것 말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사람들의 경험담과 깨달음은 참 다양하고 흥미롭다. 우연히 그 길의 신비로움에 빠져버린 나는, 3년을 준비하고 계획하여 55세에 비로소 그 길 걷기에 도전할 수 있었다. 유럽땅은 처음인 아줌마가 겁도 없이 길을 떠난다고 했을 때 걱정으로 말린 이도 있었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예상대로 나는 1000km를 무사히 걷고 돌아왔고 그 이후 다시 나의 인생을 살아가기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처럼 그 길을 걷고 왔다고 해서 뭔가 대단한 것을 깨달았다거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변신하듯이 바뀐 것은 많지 않다고들 한다. 가기 전이나 다녀와서나 모든 상황은 별 다르지않게 이어져갔다고도 한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그 길을 다녀오고나서 내가 삶을 받아들이는 자세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무엇이든 커다란 장벽이 내 앞을 가리거나 그로인해 두려운 마음이 들 때, 그 길을 걸으며 터득한 것처럼 묵묵히 걸어가다 보면 결국은 원하는 곳에 다다를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미련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내가 해 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앞사람의 뒤꿈치를 바라보며 한 걸음씩 내딛는 마음으로 그렇게 가다 보면 아무리 높은 산등성이라도 결국은 도착한다는 것이다. 열정을 가지고 살다 보면 늘 새로운 문제에 봉착하게 되고, 또 매번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고민도 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마음속으로 부터 주문을 걸어본다.
'서두르지 말고 한 걸음, 한 걸음!!'
'언젠가는 다다른다!!'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