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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회사에서 해고는 갑자기 오지 않는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지만 모두가 겪는 순간들

by Jaden

뉴욕에서 일한다는 건


늘 경쟁과 기회 사이를 오가는 일이다.


그리고 가끔, 아침에 만난 동료가 점심 전에 사라지는 장면을 보게 된다. 올해 초 어느 금요일, 회사 로비에서 오랜 경력을 가진 한 임원을 만났다.


"이번 주 K-치킨 먹으러 갈까요?" 그녀가 웃으며 제안했다.


그로부터 30분 뒤, 그녀는 20년을 일한 회사를 조용히 떠났다.


그날 나는 다시 깨달았다.

"여기에 누구도 완전히 안전하지 않구나."



1. 해고가 '갑자기' 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절차다


내가 경험한 글로벌 기업에서는 분기별 구조조정과 프로젝트성 재편이 주기적으로 일어난다. 작년부터 단순 반복되는 업무를 하는 직원들이 AI 도입과 자동화 흐름에 따라 가장 먼저 재편 대상이 되었다. 올해는 비용 압박까지 겹치며 여러 부서가 빠르게 흔들렸고, 많은 직원이 그 여파를 직접 느끼는 한 해였다.


연초에 시작된 구조조정은 상위 리더십 (임원 전무 상무)을 중심으로 한 탑다운 식이였고 글로벌하게 수백 명을 관리하던 리더들이 물러 나면서 회사는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되었다. 그 과정에서 개편 기준에 대한 여러 해석과 추측이 동시에 오갔다.



2. 휴가에서 돌아왔는데 팀이 사라졌다


올해 5월, 나는 처리할 일이 있어 미리 계획한 일주일 휴가를 냈다. 휴가 중, 처음 보는 미팅 알림이 연달아 열 개가 울렸다. 매니저에게 이메일로 참석 여부를 물었지만 답장이 없었다.


불길했다.


팀원들에게서 문자가 왔다.


팀은 해체되었고

비용 절감으로 일부 팀원들이 레이오프 (layoff) 되었고

매니저는 Independent Contributor 로써 다른 팀으로 이동할 예정이고

남은 팀원들은 재배치될 예정이라는 내용이었다


휴가를 마치고 출근했을 때 매니저에게 들은 설명은 짧았다.


"오래 생각해 온 방향이 있었고, 그쪽으로 가기로 결정했어."


평소 명확한 것을 좋아하는 매니저 성격과는 정반대로 모호하고 짧은 설명이었고 그 말이 유난히 크게 들렸다.



3. 미국 회사에서 해고는 ‘기술적 프로세스’


겉으로는 해고가 갑자기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전부터 일정한 절차가 있다.


관리자는 최소 6~8개월간:


직원의 업무 성과, 행동, 패턴을 문서화하고

리스크를 점검하고 해고 케이스를 만들고

법적 문제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준비한다


전 부서에서 해고자들의 회사를 상대로 한

소송을 관리한 적 있다.


해고 사유를 정당화할 기록을 만들어 놓지 않고 해고하면, 직원들이 부당 해고로 소송을 걸고 일정기간 소요되는 법적 절차는 회사에 큰 비용과 평판 저하 등 각종 리스크를 동시에 안겨준다.



4. 내가 본 ‘해고 직전 신호들’

뉴욕 회사에서 일하며 느낀 건 해고 전에는 항상 조용한 신호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일종의 패턴이다.


미국 회사 해고 직전의 신호들:

매니저가 갑자기 감정적으로 변한다: 평소 이성적이던 매니저가 사소한 일에도 지나치게 예민해진다. 작은 실수에도 표정이 굳거나 언성을 높이는 등 갑자기 예민해진 듯 보이지만 사실은 이미 결정이 기울어졌다는 신호일 경우가 많다.


매니저의 태도가 '거리두기'로 바뀐다: 이전에는 농담도 하고 편하게 대화하던 매니저가 필요한 말만 짧게 한다. 감정적 교류를 줄이고, 업무 외 이야기를 끊는다.


매니저가 미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다음 분기 목표는…" "내년 성장 목표는..." 이런 말들이 사라진다. 당신은 이미 내년 그림에서 제외됐다.


피드백이 추상적인 불만으로 바뀐다: 예전엔 "이 부분만 다듬으면 좋겠어"라고 구체적으로 조언했다면, 어느 순간부터 "좀 더 ownership이 필요해" 같은 추상적 불만만 반복된다. 방향 제시가 아니라, 정당화 작업이다.


1:1 미팅 빈도가 급격히 줄어든다: 가장 위험한 신호 중 하나이다.


중요한 회의에서 제외되고 새 프로젝트가 없다: 새 프로젝트 배정이 사라지고, 주요 회의 초대가 빠지고, 의사결정 테이블에 들어가지 못한다. 일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영향력을 회수하는 것이다.


이메일로 사소한 내용까지 기록을 남긴다: 평소 말로 하던 내용까지도 "Just documenting this…"라는 문구와 함께 이메일로 남긴다. 이건 내부적으로 파일링(file) 만들기 단계다. 문서화는 정리 준비 과정에서 반드시 등장한다.



처음에 이런 일을 겪으면 매니저가


"오늘 기분이 안 좋은가?"


"바쁜가?" 하고 넘기기 쉽다.


하지만 이 패턴이 4~6주 반복되면, 조용히 재정비 작업이 진행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신호를 빨리 파악해야 한다.



5. 해고 조짐이 보이면 어떻게 대응할까?


해고 신호를 처음 보면 누구나 불안해진다. 그 불안을 부정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차분히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1) 감정보다 팩트 기록하기:


매니저의 반응 변화, 업무량의 줄어듦, 회의 제외, 피드백 톤 변화등을 사실에 기반하여 기록해 둔다. 추후 인사부와 대화를 하게 될 경우 기록은 나를 위한 가장 강력한 방어이고 보호 장치다.


2) 나의 가치를 다시 보여준다:


해고 신호가 보이면 대부분 사람은 움츠러든다. 그럴수록 내 역량, 업무 속도, 가시성을 끌어올리는 게 중요하다.


3) 회사 내부 이동 가능성 탐색하기:


전 동료들, 친한 윗사람 등 네트워크를 활용해 내부 이동 경로를 조용히 확인하고 실행에 옮긴다. 내 경우 팀 해체 전 다른 팀으로 이동이 공식화되어 있던 상태였다.


4) 나의 시장가치를 업데이트한다


이력서 업데이트, 리크루터와 소통, LinkedIn 프로필 업데이트 등 외부 지원을 시작한다.


6. 뉴욕에서 내가 배운 것


뉴욕에서 일하며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있다.


“Don’t take anything personally.”
(어떤 일도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말 것)



관찰자일 때는 쉬었지만 당사자가 되면 어렵다.


몇 년간 매니저와 Skip-level과 긴 시간을 함께 일하며 관계를 쌓아왔다고 생각했는데 회사의 방향은 개인의 관계보다는 더 크게 움직였다. 회사원으로써 인지하고 있는 부분이지만 상황이 닥치면 잠시 숨을 멈추게 된다...


내가 받은 충격은 아마도 관계에 기대를 걸고 있었던 미숙한 나 자신과 예측 가능한 위기에 충분히 준비되어 있지 않았었다는 점이다.



7. 이 글을 쓰는 이유


회사에 출근했는데 아이디가 작동되지 않아서 이메일을 체크해 봤더니 해고 통지가 왔더라 등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글로벌 기업들은 절차대로 일정 기간 동안 케이스를 만들고 리스크를 최대한 줄이는 방법으로 정리한다.


그리고 미국 회사에서 아무도 이런 신호를 직접 설명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신호는 항상 존재한다.


보는 사람이 있고,

놓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이 글이 당신의 커리어를 지키는 작은 감지기가 되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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